정체성 싸움(수5:1-5)

여호수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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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7월 3일 수요일
제목 : 정체성 싸움
본문 : 여호수아 5:1-5
1. 우리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1) 정체성을 잃어 버린 두부전
제가 성도님들에게 퀴즈를 하나 내보려 합니다. (김치찌개 사진) 이 사진은 어떤 음식일까요? 네 맞습니다. 김치찌개 입니다. (파전 사진)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떤 음식인가요? 네, 해물파전 또는 파전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입니다. 이 음식은 무엇일까요? (두부전 사진) 야채를 볶은 거 같기도 하고, 계란말이를 하려다 실패한 것 같기도 하네요. 다들 이 음식 정체에 혼란스러우실텐데, 애석하게도 이 음식은 제 아내가 만든 두부전입니다.
올 초 기독교 세계관으로 자녀를 양육하고자 일명 ‘엄마곰’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때 두부전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아내는 잘 듣고 만들어서 남편과 아내에게 건강식을 차려주고자 했던 아주 기특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물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 두부전, 오늘 날 우리의 정체성은 아닌가?
사실 방금 음식을 두부전이라고 제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두부전일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날 크리스천들이 그렇습니다. “나는 믿는 사람이야.” 또는 “이 사람 교회 다녀.” 라고 말하기 전까진,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며 믿는 사람인 줄 모른다는게 현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점차 소실되어져 가는 시대 속에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지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죠.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우리의 다음세대는 지금보다 더 소실되어져버린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어느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탈종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22년 기독교인의 비중이 15%였지만, 2032년에 이르러서는 10% 미만으로 떨어질 거라 예측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녀들이 커감에 있어서 교회다니는 사람 자체가 희소성을 띄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은 교회를 왜 떠나는 겁니까? 물론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높은 비율로 “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실망”이 이유라는 겁니다. 자칭 믿는 이라 말하는 자들의 행실로부터 실망과 좌절을 느끼게 되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지요.
왜 그럼, 이들은 아니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실망이 커진 걸까요? 이들의 기준이 터무니 없이 높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주는 유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잃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는 잃어버린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또 우리가 찾아야 할 정체성은 그래서 무엇입니까?
2. 우리는 이해할 수 없던 하나님의 계획 : 요단강 건너 할례까지
1) 아무도 생각치 못한 요단강 건너는 방법
오늘 본문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메세지를 선포할 수 있지만, 저는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오늘의 본문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 입성을 눈 앞에 두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죽음을 맞이 하지요. 이에 여호수아라는 한 인물이 새로운 지도자로써 세워지게 됩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모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 바로 가나안 땅으로 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를 막아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요단강’ 입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 조금만 찾아봐도 ‘생각보다 건널만 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 거 없어 보입니다. 당대 기록에 의하면 수심 1m에 폭도 30m 정도 입니다. 한강의 수심이 3-5m에 폭이 700에서 1,500m이니, 한강에 비하면 요단강은 볼품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건기때 이야기 입니다. 우기나 추수때가 되면 요단강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됩니다. 수심도 4m가 나오며 폭은 1.6km나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 요단강을 건너는 시점이 언제 입니까? 여호수아 3장 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추수때 이들은 도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이를 건너야 한다면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가장 안전한 방법은 돌아가는 겁니다.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면, 건넌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해 보이지만 굳이 건너야 한다면 땟목과 같은 배를 만들어 건너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주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아마 이 생각을 아모리 사람들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코 걸어서 건널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보이셨습니다. 이들이 두 발로 걸어 건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요단강 건널 뻔 했어~”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단강 건넌다는 것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요단강을 두 발로 건너간다는건 이스라엘 백성도 백성이지만 아모리 사람들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건너게 하셨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첫 발을 내딛을 때 물은 멈췄습니다. 그리고 뭍이 드러나 그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갔습니다.
2) 아무도 생각치 못한 아모리와의 전투를 준비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을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누구인가를 모두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모리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여호수아 5장 1절이 그 모습을 본 아모리 사람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아모리 사람들은 마음이 녹았습니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들은 전투 의지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아모리 사람들의 넋이 나감은 곧 따놓은 승리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최고의 상황 아닙니까? 크게 힘들일 필요가 하나 없습니다. 가서 짓밝고 끝내면 아주 편하게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장 2절,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승리를 눈 앞에 둔 상황인데 갑자기 할례가 튀어 나옵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삭에게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음에 대한 증표가 바로 할례 입니다.
근데, 본문을 보니 이 할례를 ‘다시’ 행하라 기록합니다. 사실 할례가 딱 한 번 멈쳤던 시기가 있습니다. 광야 40년때 이들은 할례를 멈쳤습니다. 광야 40년은 기동력이 충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할례로 인해 1-2주 기동력을 잃는다는 것은 꽤나 큰 타격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광야 40년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해 보살피는 시기였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렇게 광야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례는 멈쳤습니다. 다시 말해, 광야에서 태어난 이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럼 광야 전 할례를 받은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장 4절,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어찌 되었습니까? 애석하게도 전부 죽었습니다. 왜요? 이들의 불순중. 하나님 없이도 나는 살 수 있다 생각한 교만이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그럼 현재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할례를 받은 자가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없는 겁니다. 광야 40년이 끝나자 하나님은 다시 이들로 하여금 언약의 확인시키고자 모두 할례를 행하도록 합니다. 어느 시점에서요? 아모리 사람들이 넋이 나가 따놓은 승리를 앞 두고 말입니다.
그렇게 이들은 할례산에 올라 할례를 행합니다. 완벽한 무장해제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 시점에 할례를 명하셨을까요?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 이 전쟁의 승리는 너의가 가진 칼도 아니고, 너희가 가진 군사력도 아니고, 너희가 가진 전술과 전략적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3.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있다!
1) 정체성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라!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로부터 오며, 또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정체성,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자녀됨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럼 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합의란 없습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말씀 붙들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끝없이 고민해야 하고 목숨걸고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가 만든 두부전이 두부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생각한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집사님들께 묻고 시도하고 수정했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두부전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또 노력하면 된다는 겁니다.
아직 우리도 또 우리의 자녀들이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책망하고 질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야.’ ‘예수님이 너를 너무나 사랑한데~’ 그들이 이 사실을 붙들고 끝까지 싸워 나갈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앞에서 하나님 앞에 절대적 순종으로 그 발을 내딛었던 것처럼, 승리를 눈 앞에 두고도 할례로 절대적 순종을 보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절대적 순종으로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최근 제게 정말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친구가 아엘이를 문겁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아파서 엄청 울었을 겁니다. 보니까 피멍도 피멍이지만 자국도 남아서 흉질까 염려가 너무 컸습니다. 아니 염려가 아니라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모로써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에게 화를 내고 나면 나는 편안해질까? 단순히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호해야 할 점에 있어서는 단호하되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저번 주 김기락 목사님 설교 중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왜 봐? 근데 우리는 사람을 볼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바보가 되어야 한다. 예수를 바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날 아내와 저녁에 서로의 화를 참아가며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저는 제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본 받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그 사람이 우리 교회를 오게 되었는데, 우리가 화를 낸 것에 그들이 상처 받아 교회를 적대하지 않도록 크리스천 답게 행동하자는 겁니다.
사실 지금도 화는 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끝까지 싸워가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 성도님들도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요 빛과 소금이라는 정체성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도 정체성을 전수해 주시는 어른이 되고, 또 그런 어른들이 있는 교회되길 소원합니다.
저는 이 빵이 참 싱거워서 여러분들께 이 빵을 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저는 정말 우리 성도님들이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시며 더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도 그 정체성을 전수할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어른들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나의 가는 길 + 부르신 곳에서
- 나의 가는 길 내 생각, 내 뜻, 내 느낌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인도하시는대로 걸어가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의 인도자 되시며 영원히 우릴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자, 주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2. 주 품에
- 예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성경학교를 통해 세상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능히 하실 능력의 주님 앞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 예꼬들 되게 하소서.
- 선생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영적 충만함으로 무장되어 준비된 교사들 되게 하소서. 주께서 허락한 양들에게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사들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준비하며 다가오는 거친 파도와 폭풍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것 다스리시는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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