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5 금요기도회: 시편 1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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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이 세상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하나님 앞에 결코 바르게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짓는 것을 즐거워하기에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저희에게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도 저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저희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다 감찰하시는 성령님 앞에 저희의 모든 간구와 마음을 다 내려놓고 위로와 소망을 얻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29편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129 NKRV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무더위 가운데서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라고, 우리의 그늘과 피난처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더 열심을 내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시편 129편으로 계속해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 해당되는 시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이 129편을 지은 시편기자는 지난 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지나간 그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기대하는 시편인데요. 이 시편기자가 되짚는 역사는 무엇일지와 그 역사를 토대로 무엇을 기대하는지 함께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이 시편은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편기자는 과거의 역사들을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악인들로부터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던 역사입니다.
1절부터 보시면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기자가 속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압제하는 악인들은 이 이스라엘의 어린 시절, 즉 이스라엘 공동체가 태동할 때부터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부터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곱 이후에 이스라엘이 히브리 민족이라는 한 민족으로서 성장한 것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애굽인들에게 핍박받고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노예로서 애굽인들이 시키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애굽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블레셋, 아람,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악인들에게서 계속해서 억압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언제나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앗수르나 바벨론만 생각하더라도 앗수르나 바벨론은 당시 근동 지방을 제패할 정도로 강대국이었지만, 그에 반해 이스라엘은 약소국이었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영원히 다스릴 것 같았고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괴롭힘 당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미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편기자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절에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바로 아무리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혔지만, 이스라엘을 결코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악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상당한 고통을 줄 정도로 괴롭혔음에도 결코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3절을 보시면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을 마치 밭을 가는 모습으로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밭을 가는 데에는 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악인들이 밭 가는데 사용한 땅은 이스라엘의 등입니다. 밭을 갈기 위해서는 상당히 뾰족한 도구들로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행위를 등에서 했으니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겠습니까? 제가 밭을 갈아본 적은 없어서 밭 가는 것을 잘 모르긴 하지만, 시편기자가 표현하는 이 표현에서 이스라엘이 악인들로부터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이스라엘 등 위에서 밭을 갈고 고랑일 길게 짓는 아주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시편기자는 지난 과거 이스라엘이 악인들로부터 아주 극심한 고통을 당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으나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악인들은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약해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보자 “아이구 불쌍해라”라는 동정심이 있어서 이기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4절에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바로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나 이기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이기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을 밭 가는 모습을 통하여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했듯이 여기서도 “줄을 끊었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표현이냐면, 밭을 갈 때 소나 말에게 줄을 매어 괭이를 연결시켜서 밭을 갈게 하는데, 이 줄이 끊어지면 괭이질을 하지 못해 밭을 갈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줄을 끊으셨도다”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 소나 말에게 줄을 매어 괭이질을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줄을 끊으심으로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막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임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괴롭히도록 좌시하지 않으시는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막으셨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악인들에게서 핍박과 압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고, 사사, 그리고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셔서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고, 때로는 고레스나 아하수에로와 같이 한 나라의 왕을 움직이셔서 악인들의 줄을 끊기도 하셨고, 강대국이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으로 악인들의 줄을 끊기도 하셨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괴롭힘 당하는 걸 좌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누군가는 그저 우연으로, 또는 강대국이 약해져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시편기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악인들의 줄이 끊어진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렇게 시편기자가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지만,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줄을 끊으신 지난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이제 지금의 고난, 또는 미래에 겪을 수도 있는 고난을 위해 시편기자는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이 5절부터 시작됩니다.
시편기자는 5절에서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악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신 과거를 떠올리자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괴롭힘도 과거와 똑같이 될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인들, 원수들은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괴롭히는 악인들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악인들은 어쩔 수 없이 악한 역할을 맡은 자들이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미워하는 것을 그들 의지로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우리의 가장 큰 원수인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악역이 필요해서 맡은 존재가 아닙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을 미워하는 것을 즐기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의지적으로 미워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여기에서 더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이 악을 선택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시온, 즉 하나님께 구원받은 공동체인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거부한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고 음부에 갑니다. 음부에 간 부자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에 비해 구원받은 나사로는 그렇지 않으니 천국에 나사로와 같이 있는 아브라함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6:24입니다.
누가복음 16:24 NKRV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 부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음부에서 벗어나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고 어떻게 말합니까? 나사로를 보내어 손 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늘 서늘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구원받지 못한 자는 천국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음부에 갔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을 다스리는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음부는 서로가 왕이 되려는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니 서로 다투고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면서 고통을 주는 곳이 음부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인들, 원수들은 시온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온을 미워하고 괴롭히길 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맞이할 결과는 5절에서 시편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수치”입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자가 당하는 것과 같은 수치를 당하기를 시편기자는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시편기자는 이 악인들이 패배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파멸되는 것까지 기도하는데요. 그 내용이 6-7절입니다.
시편기자는 악인들을 지붕 위에서 말라 사라지는 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집의 지붕을 만들 때 나뭇가지와 흙을 뭉쳐서 만든 여러 겹으로 된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봄에 비가 올 때 풀은 흙이 있는 지붕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건조한 기간이 시작되면 비가 올 때는 마구마구 자라고 빨리 자라던 풀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금새 빨리 말라 죽어버립니다. 언제 있었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말입니다. 시편기자는 그러한 모습을 악인들의 모습에 빗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풀과 같은 모습일 뿐만 아니라 시편기자는 그 풀이 자라기도 전에 마른다고 말합니다. 바로 잠시 번성하는 것 같았던 원수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시편기자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풀과 같은 악인들은 7절에서 베는 자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크게 자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악인들이 완전한 지배자로 서기 전에 파멸되고 말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인들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계속해서 말하듯이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의인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향해 시편기자는 거룩한 분노를 지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악인들을 향한 시편기자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악인들에게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등을 땅으로 삼아 밭을 가는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에 맞먹는 분노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이러한 시편기자의 거룩한 분노는 8절에서 이 원수들이 어떤 복도 받지 못하기를 기도하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바라면서 결론을 맺습니다. 이 8절은 시편기자가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은유인 밭에서 추수하는 자들 곁을 지나가면서 축복의 말을 건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잘 드러내는 것이 룻기입니다. 룻기 2:4입니다.
룻기 2:4 NKRV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로 이렇게 추수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축복의 말을 건내면서 서로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모습을 시편기자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큰 수확을 주시기를 기원하면서 이렇게 서로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기원했을 겁니다. 이러한 축복의 말은 그냥 밭을 지나가기만 해도 거저 받는 축복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들은 파멸되고 지붕 위의 풀처럼 말라져 누구도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성하게 하시리라는 문안이나 축복 인사를 건내지 못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그저 밭을 지나가기만 해도 거저 받는 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악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원수들이며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위한 축복이나 문안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악인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거부할 겁니다. 하나님이 싫기 때문에 그분이 베푸시는 복도 싫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축복은 있을 수 없고, 시편기자가 기도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심판과 저주를 경고하는 말들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인들의 줄을 끊으신 과거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그리해주시도록 기도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함으로 악인들에게 받는 고통으로부터 염려를 떨쳐놓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신약에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시편기자와 같은 동일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시편기자보다 더 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우리는 이미 성취된 악인들을 향한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과 원수들이 있는 곳에 직접 자신이 뛰어드심으로 십자가와 부활로 악인들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시편기자가 말하는 악인들이 수치를 당하고, 지붕의 풀과 같이 파멸을 당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조차도 받지 못하게 되는 그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또한 그 쟁취하신 승리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악인들이 아무리 괴롭히더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더 큰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오늘 129편의 기도를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 교회가 누리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공중 권세 잡은 자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고, 악이 존재합니다. 또한 신자인 우리를 괴롭히고 교회를 괴롭히는 악인들도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얻으신 승리가 교회에 있으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백성이 악인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결코 좌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도 교회를 지키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십자군처럼 무력으로 악인들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을 향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그 악인들을 향한 분노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된다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우리를 공격하고 괴롭힐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악으로부터 승리하신 그 승리가 이미 교회에게 있고, 하나님은 언제나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습니다. 우리 새순교회도 악인들이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교회를 핍박하고 압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교회를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 129편의 시편기자처럼 악인들이 교회를 괴롭히지만 이기지 못한 경험들을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기억하며 미래에도 그리될 것을 소망하십시오. 또한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언젠가 그것을 경험할 날을 소망하십시오. 그것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신다는 것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는 복을 누리시게 될 겁니다. 오늘 이 129편 말씀을 붙들고 그리스도께서 쟁취하신 승리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미워하고 괴롭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고통받습니다. 우리 새순교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9편 기자는 말합니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여러 번 괴롭혔으나 이기지 못하였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악인들에게 괴롭힘 당할 때 그리스도께서 쟁취하신 승리 안에서 평강과 소망을 얻게 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해주시길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반드시 지키고 계신다는 복된 경험을 하게 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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