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구력을 키워라 vol.1
2024 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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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수련회
2024 여름수련회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수련회가 한달도 남지 않은 시기이다. 지난주까지 사사기에서 삼손에 대해 함께 나누었는데, 수련회 기간까지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1차 전도 여행부터 3차 전도 여행까지 쭉 나누려고 한다. 그리하여 수련회에 가기 전 기도회에 온 친구들은 한번도 기도회에 오지 못한 친구들보다 훨씬 더 큰 은혜들을 누리리라 확신한다. 피곤하고 힘들지라도 끝까지 성령님과 동행하는 이 밤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안디옥 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다. 이들이 금식할 때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안디옥 교회가 금식 기도를 하고 이 두 사람이 안수하여 파송한다. 이 두 사람이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다. 그러면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안디옥의 실루기아 항구에서 구브로 섬의 살라미와 바보에서 전도한다. 구브르 섬에서 밤빌리아 버가(시리아~튀르키예)로 간다. 이때 마가와 요한이 바나바와 바울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이 일로 나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1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여 바울이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튀르키예)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를 낭독한 후에 참석자 중에서 설교할 사람이 있는지는 묻는다. 그러자 바울이 일어나 설교를 시작하게 된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바울의 설교를 길게 소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함께 읽으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 5분이나 걸려서 스킵하고 42절부터 읽기로했다. 먼저 바울의 설교는 이스라엘 역사를 짧게 요약하여 지나간다. 조상들, 이집트에서 해방, 광야 생활, 가나안 땅 정복, 사사 시대, 사울 왕 그리고 다윗 왕을 말한다. 이렇게 긴 역사를 단지 여섯 절에 다 말한다. 바울의 설교는 다윗 왕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그 후에 바울의 설교는 다윗에게 직접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이다. 다윗의 언약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세워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이 약속에 따라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오신다. 바울은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뜻이 이제 다윗의 후손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이다. 바울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말한다.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자에게 주목하라고 증거한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구원자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예언을 외우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해서 예수를 정죄하여 죽였다.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 나아가 예수님의 죽음은 예언의 성취라고 강조한다. 바울의 설교는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나아간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제자들이 그 증인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바울은 시편 2장 7절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 특히 부활을 성취한 말씀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사실을 명확하게 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길게 강조한다. 그의 설교에서 무려 여덟 절이나 말하고 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이 바울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이다. 다윗은 죽어서 땅에 묻혀 썩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여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편 말씀을 성취한 것이라고 설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짧게 말한 후에 다윗에게서 예수님으로 넘어갔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 큰 강조를 한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역사적이며 객관적인 사건이다. 또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사건이다. 이제 바울은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이 사건들을 믿으라고 권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고 설교한다. 특별히 바울은 율법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말한다.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의롭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죄 용서와 칭의를 가져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믿는 개인에게 생각과 마음과 삶 속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개인에게 미치는 실제 삶에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 마디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평생 나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울은 설교를 마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당할 것이라고 경고를 더욱 강하게 말하고 있다.
바울의 설교는 당시 그곳에 듣는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음 안식일에도 와서 설교를 해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 중에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바울의 설교를 반박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말씀을 들을 우선권은 유대인에게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로 가는 이유를 이사야 예언을 근거로 이야기를 한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여기서 이방인의 구원이 “땅 끝까지”라는 표현이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이방인들이 옆에서 바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방인들의 반응이 어떤가? 듣고 기뻐하였다. 받은 은혜를 깨달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눈여겨 살펴봐야할 것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진 믿음과 구원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주님이 선물로 주셔야지만 믿을 수 있다. 구원은 영생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그 도시에 있던 모든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음’으로 나아온 사람들이 회심한 후에 복음메시지가 그 지역 전체로 퍼져 나갔다. 결국 유대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복음전파자가 되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복음을 환영했지만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다. 두 사도를 그 지방에서 핍박하고 쫒아내었다. 그때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라는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이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죄인들의 부정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상징이었다. 복음을 거절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몰아낸 유대인들이 더 이상 진정한 이스라엘의 일부가 아니며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거절을 당하더라도 계속해서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 회당에 계속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회당 안에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은 주요한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좌절을 경험했지만 꺾이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운 제자들의 공동체에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렸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는 첫 번째는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한 목적이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제1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신 목적으로 창조하셨다. 선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다. 그것이 인간이 본래에 가진 진정한 행복이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을 하고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 수도 찾을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더 나아가 스스로 구원조차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인간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잃어버린 목적과 형상을 회복해야한다. 그러면 무엇이 당장에 필요하겠는가? ‘구원’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의 길이 주를 믿는 자에게 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온 인류가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야하는 우리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명대로 복음을 전하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서 낙심하게 되고, 점점 소극적이게 되고 결국에는 사명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는 때가 오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지, 결과가 어땠는가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실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바울도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지역에 있는 사람 모두가 회심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바울을 배척했고, 다른 일부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요, 구원을 이루어가는 목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다. 전도나 선교를 하게 될 때, 영접기도를 할 때가 있다. 영접 기도는 이렇게 기도하면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이지 영접 기도를 통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과학적인 설명이나 논리나 설득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 죽으셨지,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흘리신 피는 값싼 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떠한 조건으로 부르신 것이 아닌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당연한 것이다. 왜인가? 아직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복음을 듣고 믿어진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세 번째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도 마찬가지로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을 학교와 직장과 가정에서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이 복의 통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주 월요일과 오늘 아침, 점심, 하교 시간에 아이들을 학교로 찾아가 기말고사 위로 심방을 했다. 그때 아이들에게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스트나 햄버거를 우리 드림인 아이들에게 주면서 옆에 있는 친구도 주었다. 그 친구는 “이거 받아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너 누구 친구니까 받는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우리 드림인 아이들이 친구들의 토스트와 햄버거의 통로가 되었다. 그 순간 햄버거를 받을 수 있게 데려와준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복음을 전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돌아오게 된다면 영원한 복인 영생과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 친구는 영원토록 친구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에 수련회의 주제를 ‘믿음의 지구력을 키워라’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차고에 가만히 두게 되면 결국에는 좋은 자동차가 아니라 흉물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확실하건데 여기 계신 분들은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없이는 굳이 이곳에 올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 밤에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여기있는 분들은 경건생활도 꽤나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동차를 정비를 열심히하고 세차도 열심히 하는데, 달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차가 정말 좋은 차인지 머리로만 알고 실제로 체감하지 못하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러니 달려봐야한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성령을 의지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모습과 반응으로 날마다 살아간다고 한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