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이러니 2024 0707 출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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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1–10 (NKRV)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아이러니의 뜻.
우리가 예상하는 상황과 기대되는 결과 값이 완전히 반대될 때. 예상치 못했던 현실과 기대 사이의 놀라운 차이를 이야기하는 문학적 방법.
오늘 본문은 아이러니함으로 가득찬 본문이다. 우연의 연속이 가득한 내러티브이다.
바로의 딸이 나일 강으로 한 두번 목욕하러 내려왔을까? 그런 갈대 상자들을 이집트 사람들이 한 두번 봤을까?
세상은 우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연이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어떻게 보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인정하기 싫은 문장처럼 보임.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이것이 진리됨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가치를 수행한 일들이 있었다.
1.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통해 인종 차별에 맞섰습니다. 그는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고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받았지만, 결국 그의 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물리적 힘으로 싸우기보다 평화와 사랑으로 싸우는 것이 더 큰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 27년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나와 보복을 선택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국가를 통합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를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만들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평화로운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의 핵심 인물인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패배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분의 희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는 사랑과 희생이 진정한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도 민주화를 위해 폭력적인 강함이 아닌, 겉으로 보기엔 당장엔 지는 것 같아 보이는 비폭력 평화 시위를 통해 결국 지금의 민주화를 이뤄낸 역사적 사실이 있다.

세상의 강함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아이러니.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주석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의 아이러니 목록.
파라오가 선택한 파멸의 도구(나일강)은 모세를 구하는 수단이 됨.
여자(딸)는 파라오에 의한 죽음에서 면제받았는데, 바로 그 여자들로 인해 파라오의 계획이 좌절 됨.
모세의 어머니는 파라오의 명을 따랐는데, 모세를 구할 수 있었다.
파라오의 딸이 아버지의 계획을 손상시키고, 또 이집트 왕조를 멸망시킬 자를 구함.
이집트의 왕족이 히브리 소녀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파라오의 예산으로 해결함!
모세는 히브리인이면서 파라오의 궁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음.
공주는 단순히 건져냈다는 이름을 주었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한 이름이었다.

하나님의 아이러니

미리암의 지켜봄. 아이러니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림.
하나님의 약함에 실망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그 타이밍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리암은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렸다.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가장 적당한 타이밍에 바로의 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뤄냈다.
하나님은 아무 힘도 없는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신다. 약한 그 때에 강함을 주신다.
때로는 아무 힘도 없이 세상의 폭력과 잔인성 앞에 그대로 죽어가기도 한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땐, 100% 실패로 보인다.
그러나 그 100% 실패가 아이러니하게도 100% 하나님의 방식대로 반전을 이룬다.
출애굽기 2:6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아기가 우는지라. 히브리어로는 히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바로 그 때가 임하길 축복함. 바로 그 때의 은혜. 내 인생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하심이 있기를!

하나님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씨앗을 심자.

모두가 죽음은 끝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요, 승리요, 성공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그랬다. 제자들은 로마에 압제당하는 이스라엘을 뒤엎을 정치적 메시아인 예수님을 기대했다. 많은 유대인들도 그러한 예수님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하게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신다. 세상 모두는 그러한 무기력함에 울고 또 울었고, 한편으로는 조롱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위에서 내려오라고 빈정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곳에서 죽어야만 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이다. 죽음은 끝인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십자가가 희망이 되려면 죽음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말이다. 순교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가 못하실 일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실 수 있다.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과 폭력과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도 있다. 다니엘처럼.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순교자들은 그저 세상의 폭거 앞에 그렇게 아무 의미없이 스러져갔다. 그러나 그 피 흘린 그곳에서 복음의 씨앗이 자라났다. (울지마 톤즈-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를 아는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남수단 작은 마을 톤즈라는 곳에서 의료, 선교, 교육활동을 펼친 신부님이 계셨다. 의학 공부를 하고 의사의 신분으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가장 어렵고 힘든 곳으로 주의 복음을 들고 갔다. 지금도 내전으로 힘든 곳이지만, 그 때는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는 병원과 학교를 짓고, 내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 활동을 펼치고, 또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 청소년들을 모아서 브라스 밴드를 만든 것. 혼자서 모든 악기를 배워야 해서 독학으로 배우고, 악보를 만들고, 그래서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서 정부행사에 초청되기까지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셨다. 그런데 휴가차 2008년에 한국에 들어와 건강검진을 받는데, 대장암 4기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그의 생이 꺼져가는 것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서 다시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할지 고민했다는 것이다. 암판정 당시, 마을에 우물을 파다가 왔다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주변인들이 뜯어 말렸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그는 다시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1월에 선종하게 된다. 그의 삶을 보면, 보장된 안전된 삶을 뒤로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자진해서 가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암 판정까지 받고 결국 그렇게 일찍 사망한 실패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한 한 인간의 삶을 통해서 그의 죽음으로 수단에 작은 씨앗이 심겨지게 했다. 그 때 이태석 신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한국으로 와서 똑같이 그를 따라 의사가 되었다. 2024년 2월에 전문의 시험을 통과했고, 그들의 목표는 다시 수단으로 돌아가 열악한 자신의 나라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약 8년의 시간 동안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 남긴 것은 겉으로 보기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그의 죽음 이후에 그곳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경험했을까?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심겨진 사랑의 씨앗은 다시 그 땅을 향한 사랑으로 자라고 있다.
하나님의 방식이 세상의 인과관계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우리 눈에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갈대상자는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아무 힘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작은 한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 세상의 논리라면, 파라오의 아들쯤은 되어야 한 민족을 구원할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신라의 박혁거세, 고구려의 주몽 모두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모습.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저 마굿간에 태어난 작디 작은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러나 그 힘없는 어린아이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셨다.
하나님의 아이러니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말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 라고 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바로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논리를 뛰어넘는 삶을 산다.
내가 뭘 할수 있나? 라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내 인생,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내 인생이 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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