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1(월)_새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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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일 월요일 주님을 만나는 새벽예배
주만새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양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 200장)
오늘 이 새벽 함께 은혜 받으실 하나님 말씀은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반응할지 돌아보는 시간 갖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선포하는 데
지금 선포하고 있는 이 장소, 이 성전이 무너지고 멸망할 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5절에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고
7절에
성전 안에 있던 자들은 제사장, 선지자, 모든 백성 으로
하나님을 알고 따른다고 자부하는,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 깊은 이면에는
단순히 재앙, 멸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 돌이킴에 대한 간절한 소망
진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이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내리려던 뜻을 돌이킨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특별히 ‘혹시’ 라는 단어에 굉장이 마음이 쓰이더라구요
혹시… 뭔가 솔직히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 않으세요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표현하는 이 ‘혹시’라는 단어 속에서
ESV 성경을 보면 영어로 may , may be 라고 쓰고 있는데 불확실함을 의미하고 있거든요
왜 이런 표현이 들어 있을까
저는 이 단어에서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완전히 다 느낀다고 말할 수 없지만
조금 그래도 이전에 봤을 때보다는 좀 더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계셔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인격체로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혹시라도 이 말씀을 돌이키지 않을까
그래서. 재앙을 내릴 수 밖에 없고 심판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이 형편과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간절한 기대, 소망
이것이 우리로서는 절대 이해가 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아닐까요?
우리가 이 사랑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과 그 마음에 온전히 반응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지길 소망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결코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려하고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 원합니다.
그 뜻 아래서 이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또 5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꾸준히 보내신다고 하는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
미쁘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돌아오라고
어제 김지연 약사님 통해서도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하나님 말씀은 결코 후퇴 없이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에 맞게 반응해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의 장터의 아이들 비유처럼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때, 슬퍼하고
슬퍼하고 울어야 할 때, 웃고 있는 모습처럼
오늘 말씀의 당사자들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거절합니다
그냥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8절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예레미야 너는 반드기 죽어야 해
이 반응은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을 죽인다는 고백과 똑같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왜 이들이 이토록 강렬하게 반응했나 보면
읽지 않았지만 9절에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이 성전이 황폐하게 되고, 실로 같이 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는데요
실로 같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실로는 여호수아 가나안 정복 이후에 하나님의 언약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던
비공식적이지만 이스라엘의 수도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요충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실로가 엘리 제사장 때 그의 두아들이 언약궤를 가져가서
블레셋 군대와 전쟁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뺏기고
실로를 무너집니다. 그리고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죠
결국 이들에게 실로 같이 된다는 말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이 선민의식이 무너지는
꼭 우리 하나님이 신들의 전쟁에서 진 것 같다는 표현처럼 들려요
이스라엘 백성의 그 근본 뿌리를 건드리는 것과 비슷한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런 반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선민 의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선택받은 민족으로
복음을 전세계 이방에게 전하고 만민이 복을 받는 통로로 사용돼야 하는데
자신의 민족성의 우월성과 과시성에만 사용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돌들로도 너희와 같은 선택받은 백성을 대신할 수 있다고
강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들이 이와 같이 과거의 영광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야 라고 하는
선민의식에 매여 있는 모습이 (약간 텀을 투고)
이미 한물 지나간 용어이긴 하지만 요즘 말로 표현해보면 ‘라떼는 말이야’
이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라떼 신앙이라고 이름을 붙여 봤어요
우리 신앙생활에도 이 ‘라떼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에 은혜 받고 하나님 앞에 뜨겁게 열정있게 반응했던 모습들을
추억처럼 이야기 하는 모습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도 남성셀에서 가끔 이야기 해요 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때, 이미 말 속에 어폐가 있죠 가장 행복했던 때라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잖아요 하나님은 지금 오늘도 그 행복을 누리라고
그 복음을 오늘 지금 누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마치 지금은 그 때만큼 아니고 뭔가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고백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지금 이런 고백을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과 뜨거웠던 관계가 단순히 과거에만 머물러 있기 원하실까?
하나님 말씀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지 않다는 것은
과거에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특별한 은혜들이 단순히 간증거리 하나 늘어난 게 아니라
지금 그 은혜를 통해 더 하나님과 깊이 관계하고 더 알아가고
앞으로도 그 신실하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늘도 내일도 변하지 않고 꿀과 같이 달게 여기면서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원하시지 않으실까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라떼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 라떼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사장과 선지자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는 사장시키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뭐겠어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행함 없는 믿음이 곧
그 말씀을 사장시키고 죽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라떼 신앙에 머물러 있지 말고
목사님께서 항상 외치시는 오늘도 변화 성장하기 위해
저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그냥 무조건 가자! 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혹시라도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사랑
꾸준히 말씀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
나는 나를 포기할 때도 많은데 지금까지 우리 인생 속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시고 견인해가시는 하나님의 변치않는
그 사랑을 !!!
느끼고 발견하고 누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