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atonement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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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속죄 atonement
본문 : 롬 5:11
(롬5:11) 그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속죄(atonement)를 받았으며 그분을 통해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느니라.
(레4:18) 또 그 피의 일부를 주 앞에 있는 곧 회중의 성막 안에 있는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제단 곧 번제 헌물 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레4:19) 또 그는 그 수소에서 모든 기름을 취하여 제단 위에서 태우되
(레4:20) 죄 헌물의 수소에게 한 것 같이 그 수소에게 할지니 곧 이 소에게 그리할지니라. 제사장이 그들을 위하여 속죄할 터인즉 그들이 용서받으리라.
——
(레4:22) ¶ 만일 치리자가 알지 못하여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주 자기 하나님의 명령들 중에서 하나라도 어겨 죄를 짓고 조금이라도 행하여 유죄가 된 경우에
모르고 짓는 죄도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레4:23) 자기가 지은 죄를 알게 되거든 그는 흠 없는 숫염소 새끼를 자기의 헌물로 가져다가
(레4:24)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주 앞에서 그들이 번제 헌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을지니 그것은 죄 헌물이니라.
(레4:25)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그 죄 헌물의 피를 찍어 번제 헌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것의 피는 번제 헌물 제단 밑에 쏟으며
(레4:26) 그것의 모든 기름은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기름같이 제단 위에서 태울지니 제사장이 그의 죄에 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할 터인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레4:31) 또 그는 그것의 모든 기름을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기름을 취하는 것 같이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 주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할 터인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
(레4:35) 또 그는 그것의 모든 기름을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기름을 취하는 것 같이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같이 그것들을 제단 위에서 태울지니 그가 범한 죄로 인하여 제사장이 속죄할 터인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오늘은 속죄(atonement)에 대해서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이 단어에 대한 사실을 몇가지 살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이 단어는 성경전체에 70번 정도 등장합니다.
70번이라는 숫자는 그렇게 큰 숫자는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른 중요한 단어들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70번 중에 43번이 레위기에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제사장에게 그만큼 중요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단 한 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롬5:11)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레위기에 등장 횟수가 몰려 있는 이유는
제사장이 바로 속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속죄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영어 단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두 개의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속죄 atonement = at + one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두 당사자가 있고 이들이 함께 잘 지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논쟁이나 불쾌한 일이 생겨서 두 당사자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들 두 당사자를 다시 불러와서
이들 두 사람을 하나로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이들 둘을 하나가 되게 만들때 필요한 것이 속죄 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 사이에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롬8: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인간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
1. 본성에 속한 사람(구원받지 않은사람),
2. 영적인 사람(구원받은사람),
영적인 사람은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와 같습니다.
3. 육신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이 본성에 속한 일을 하는사람입니다.
여전히 구원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육신적은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롬8:7)
(약4: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선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아픈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장님이 볼 수 있게 해 주셨고, 저는 자를 걷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은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게 못박았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미워했고 그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과 육신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마음에 품은 것들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는 일에 방해되는 일들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가장 큰 명령은 무엇인가요?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두 번째 명령은 무엇인가요?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22:38)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마22:39)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본성에 속한 사람과 육신적인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항상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의 뿌리입니다.
이기주의 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본성에 속한 생각과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참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의로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장에만 가도 우리의 대화는 짜증이 섞여있고
원망이 섞여 있는 대화를 주변사람들과 하게 됩니다.
인터넷을 켜고 들어가면 우리의 죄를 부추기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가 집을 나서면 주변에
우리가 짜증 나는 언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환경이 즐비해 있습니다.
서점에 가서 잡지를 손에 들고 펼치면
여러분의 탐욕을 자극하고 정욕을 자극하는 사진과 광고가 가득합니다.
이런 환경은 모든 곳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벧후2:8) (이는 저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의 불법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불편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쩔 수 없이 이런 것들과 공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이런 불편함들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살지만
우리 안에 세상의 것들이 자리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무슨 사귐을 갖겠느냐?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느냐?
(고후6:15)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무슨 일치를 보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고후6: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고후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주 곧 전능자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세상과 구별되어 살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벨리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고후6:14) …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느냐?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도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함께 존재할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것들은 섞어 놓으면 형태와 모양과 색갈이 변하겠지만
나름대로 그들은 그 안에 함께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과 아둠은 함께 가둘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둠의 정의는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빛과 어둠 사이에 경계막을 만들어 준다면,
빛과 어둠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존재 할 수는 있습니다.
(시104:1)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위엄으로 옷 입으셨나이다.
(시104:2) 그분께서 옷으로 덮는 것 같이 빛으로 자신을 덮으시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고
하나님은 빛으로 옷을 입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8:12)
성경은 지금 있는 세상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하게 되면
더 이상 해가 필요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는 어린양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계21:23) 그 도시는 해와 달이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었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라.
세상과 하늘에 경계를 두심
시편 104:2 에서 …옷으로 덮는 것 같이 빛으로 자신을 덮으시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집에도 커튼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집안의 빛이
어두운 바깥으로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있는 곳이 이 땅에서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 봐도, 하늘에 어둠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 너머의 빛의 세계는 지금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 너머에 빛으로 계신 하나님은 어둠의 세상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과 구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하고, 어둡고, 불의한, 이세상과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신과 세상에 경계를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불만하지 않는 사람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많은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시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안좋은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탓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지적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가 죄를 짓는 것을 방치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방치해 주길 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가서
가르치지 않느냐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느편을 들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죄로 가득차 있기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과 경계를 두고 거룩히 구별되어 계시는 것입니다.
(겔33:17) ¶ 그럼에도 네 백성의 자손들이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그러나 그들로 말하건대 그들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어느쪽 편에도 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섞일 수 없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는 의로운것들만 있게 됩니다.
더럽혀진 것들은 그곳에 들어올 수 없고 누구도 거짓말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 이 땅의 모든 불의를 처리하러 언젠가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합1:12) ¶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나의 거룩한 이여, 주께서는 영원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죽지 아니하리이다. 오 주여, 주께서 심판하시려고 그들을 정하셨나이다. 오 능하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바로잡아 주시려고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합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불법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배신하는 자들을 바라만 보시고 사악한 자가 자기보다 더 의로운 자를 삼키는데도 주의 혀를 억제하시나이까?
하박국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불의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보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이 땅에 일어나는 불의를
그대로 두고 계신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젠가는 이 모든 불의를 정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59:1)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사59:2)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범죄를 가져오는 불법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갈로놓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죄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개념에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으로 멋지게 찾아 오셔서
우리의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나 저에게는 생명이 없기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야만 합니다.
주님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결국은 돼지 우리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려 돼지우리로 찾아갔나요? 아닙니다.
탕자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구별되어 계시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불의를 거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을 거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법을 거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속죄를 위해 요구하시는 것
속죄라는 atonement라는 단어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함께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화평하게 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과 화해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일을 위해서 몇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은 헌물을 원하십니다.
범죄에 대한 댓가로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려야 합니다.
죄를 범한 쪽에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가져와야 합니다.
상해를 입혔거나, 피해를 주었으면
그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죄가 없이 무죄한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유죄인 상태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문제에서는 완전히 무죄한 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잘못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결코 죄를 지으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배상을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4:18) 또 그 피의 일부를 주 앞에 있는 곧 회중의 성막 안에 있는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제단 곧 번제 헌물 제단 밑에 쏟을지니라.
번제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레4:25) 제사장은 자기 손가락으로 그 죄 헌물의 피를 찍어 번제 헌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것의 피는 번제 헌물 제단 밑에 쏟으며
죄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레4:31) 또 그는 그것의 모든 기름을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기름을 취하는 것 같이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워 주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할 터인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화평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각각의 경우 모두 헌물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냥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같이 앉혀놓고 화해 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문제도 그런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분이지만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결고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죄들이 없었던것처럼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죄들을 사람들의 눈 앞에서 치워버리고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화해할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공평한 심판을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만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그 둘 사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레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
하늘도 하나님의 것이고 땅도 하나님의 것이고,
우주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 이신 하나님께서 규칙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너희 혼이 속죄를 받아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피로는 이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뭔가 다른 것을 받으셔야 합니다.
피가 없는 속죄
속죄라는 것은 반드시 피가 필요한데,
성경에서 오직 두 곳만이 속죄라는 단어가
피와 같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죄 헌물 중에 있습니다.
죄 헌물로는 하나님께서 양이나 염소를 요구하십니다.
만약에 양과 염소를 드릴 수 없으면
두 마리의 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리면 됩니다.
만약에 비둘기조차 드릴 수 없다면 밀가구 한 에바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계십니다.
죄는 여러분의 삶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할때
여러분은 어쩌면 양을 드릴 수 있는 능력이 안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가진 것들을 다 낭비하고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비둘기 두 마리 드릴 돈도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피가 없는 밀가루 한 에바라도 드리면 될 것입니다.(레5:11)
두번째는 속죄의 돈이 있습니다.
(출30:13) 그들이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곧 계수된 자들 가운데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에 따라 반 세겔을 바칠지니 (일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반 세겔은 주의 헌물이 될지니
(출30:15)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려고 그들이 주께 헌물을 드릴 때에 부자들은 반 세겔보다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들은 덜 내지 말지니라.
모든 사람의 혼에는 같은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이 모든 혼에 동일한 값을 지불하게 하셨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 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혼의 값은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을 예표하는 놀라운 그림입니다.
누구나 그들의 혼의 구원을 위해서 동일한 값이 지불 될 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 값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맥을 보면 이 속죄는
여러분의 혼이 하나님께 속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계수 될수 있게 만드는 속죄입니다.
혼을 속죄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피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 17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레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피가 필요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요구하시는 것은 누군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피를 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겔18:3)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사용할 기회가 없으리라.
(겔18:4) 보라, 모든 혼은 내 것이라. 아버지의 혼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혼도 내 것이니 죄를 짓는 혼, 그 혼은 죽을지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고 죄를 지은 혼은 죽은 것입니다.
죄를 속죄 받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아무것이나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향도 드리고 기름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혼이 하나님께 속죄 받기 위해서는
여러분에게 피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여러분에게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 양과 숫소와 황소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양을 가져와사 하나님께 드릴때,
양이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죽어야 할까요?
양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양이 죽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양을 가지고 먼저 성막의 문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요10: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해 양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넘어가는 자 바로 그자는 도둑이며 강도이나
어린 양을 가지고 문으로 가서 그 양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죄인은 살아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요구하는 그 자리에
나 대신 누군가가 대신 죽고 나는 대신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소의 피와 염소의 피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그림자이고 모형인 것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 것을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이 양을 헌물로 드릴때 그 양을 다른 곳에서 훔쳐오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을 가져와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우리의 상태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씀하십니다.
빈곤의 극치를 달리는 상태입니다.
우리에게는 의로움에 합당한 양 한 마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에 합당한 염소나 밀가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 드릴 수 있는 헌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64:6)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눈에 모두 부정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의를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눈에는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레17: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누구의 피가 요구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제사 제도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그 피를 준비하시겠다고
명백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준비한 피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제단에 뿌릴 자신의 피를 주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를 제단 위에 흘리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흘리셨나요?
혼들을 속죄하기 위해서 흘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시키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주어진 피를 들고 하늘로 걸어 들어가서
하나님께 이 피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 피가 있습니다.” “이 피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내 죄를 씻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린 커튼의 바깥쪽에 있는 존재 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일을 행할 제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드릴 헌물을 가지고 문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야 합니다.
일반 사람은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그 헌물을 받아서 제단으로 가져가서 태워야 합니다.
아무나 마음대로 성막에 들어가서
헌물을 드리고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거룩하게 계시는 바깥쪽에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제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히5:1) 사람들 가운데서 취한 대제사장마다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서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을 받나니 이것은 그가 죄들로 인해 예물과 희생물을 드리게 하려 함이라.
(히3:1)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히9: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거룩한 곳에 들어가서
자신의 피를 가져가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의 혼을 속죄시키셨습니다.
(롬5:10)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을진대 화해하게 된 자로서 더욱더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해서 그분의 원수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롬5:11) 그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속죄를 받았으며 그분을 통해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제 속죄를 받았습니다.
이것으로인해서 우리가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었고
불타는 지옥불에 던져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황폐하게 되어 있고 우리가 가난 했었고
우리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가 아무것도 드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피를 주어서 제단에 뿌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혼이 속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서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5: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니 그는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
주님은 그저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피의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한 일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모든 잘못을 멈춘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순간에도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나이가 몇살인지와 상관없이
여러분은 어제 보다 오늘 여러분이 들어갈 무덤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구원을 받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우리에게는 너무도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해주신
구원의 제안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성경은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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