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과 고난을 마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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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핍박과 고난을 마주할 때
설교본문: 벧전5:8-9
(벧전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마귀는 실존한다.
성경은 사실이고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마귀의 공격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은
마귀가 그냥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고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 속의
가상 존재가 아니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가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우리의 대적은 마귀이고 마귀는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면 마귀와 원수가 됩니다.
루시퍼는 그의 교만때문에 추락하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에 있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귀인 루시퍼는 여러분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여러분의 삶의 반대 쪽에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8은 우리가 마귀에 대해서
심각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경각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쪽에 서 있는 대적이 있고
그 대적은 울부짖는 사자같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를 삼킬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자에 비유된 마귀
성경은 우리의 대적인 마귀를 울부짖는 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자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듯이
사자와 맞서서 좋은 결과가 나올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의 이 말씀의 경고로 봐서 마귀를 우습게 상대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귀와 한판 붙으면 반드시 심각한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한 것입니다.
마귀는 육신적인 상처보다 더 심각한 상처를 여러분의 삶에 주기 위해서
여러분을 삼켜버릴 듯이 찾아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바라는 삶을 여러분이 살 수 없도록
여러분을 망가뜨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Can 과 May의 차이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주의 깊게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단어 하나도 그냥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5:8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may"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게 됩니다.
(벧전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seeking whom he may devour:
삼킬 자를 = 마귀가 삼킬 수 있게 하는 자를 = whom he may devour
“Can” 과 “may”는 차이가 있습니다.
may는 허락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마귀는 삼킬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삼킬 수 있도록 허락된 경우에만 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키도록 기회를 주지 않는 사람의 삶은 삼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에게 우리를 삼킬 수 있는 기회와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벧전5: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약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여러분이 마귀에게 틈을 주면 마귀는 여러분을 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여러분을 삼킬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고난(벧전)
(벧전5:9) …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악과 맞서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내용은 의롭게 고난받는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벧전1:6)
(벧전1:6)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지만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
7절은 사람들의 믿음을 단련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벧전1:7)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
13절에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그 은혜로 인해 끝까지 소망을 가질지어다.
2:11에서는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벧전2:11)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내가 간청하노니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고난 받으시는 본을 남기신 주님
2:21에서는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따라오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벧전2:21) 참으로 너희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3:14에서는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벧전3:14)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니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벧전4: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는 이미 죄를 그쳤나니
베드로 전서는 이와같이 육신의 고난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로 흐르고 있습니다.
고난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형제들에게 이런 육신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여러분 혼자가 아니라
주안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같은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키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이런 고난이 오는 것과 마귀들이 대적하는 일들은
성도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5:9절의 말씀은 기록당시의 성도들에게 만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엘리야의 낙담
엘리야는 열왕기상 18장에서 위대한 영적인 승리를 얻고
영적으로 최상의 상태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19장에서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쫓아오자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우울해져서 죽고싶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내 생명을 취하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상19:4) ¶ 그러나 그가 스스로 하룻길을 가서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에 이르러 그 밑에 앉아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오 주여, 족하오니 이제 내 생명을 취하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10절에는 엘리야는 산 꼭데기에 올라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만 혼자 남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상19:10) 그가 이르되, 내가 주 만군의 하나님을 위하여 심히 질투하였나이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들을 헐며 칼로 주의 대언자들을 죽였기 때문이오며 나만 곧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제거하려 하나이다, 하니
(왕상19:18)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칠 천명을 남겨 두었다.
너만 그렇게 특별한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너와 같이 바알에게 머리 숙이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만 혼자 있는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시간은 다르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와 대적하고 있는 것이 여러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전하고
주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고
주님을 위해서 가족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여러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가 입으로 말을 뱉어내지 않을 뿐이지
마음속으로 불평과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9절은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네가 특별한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너 하나 뿐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대한민국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형제 자매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고난과 핍박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어려움을 동일하게 겪고 있고
그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있는 형제 자매가 있다는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에 대해 숨김없이 알려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고난과 핍박과 반대에 부딪히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를
숨김없이 성경에 정직하게 다 알수 있게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작은 글씨로 숨겨 놓거나 암호형식으로 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반드시 여러분의 대적이 여러분을 삼키려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회를 주기 만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은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마귀도 여러분을 대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1세기에 복음이 번성하기만 했을까요?
수많은 성도들이 고문을 당하고 복음을 전하던 전도자들이
콜로세움에서 실제 사자 앞에 놓여서 삼켜지는 장면이
이교도들의 오락거리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고생하려고 태어납니다.
(욥5:6) 고통은 티끌에서 생기지 아니하며 고난은 흙에서 솟아나지 아니할지라도
고난(affliction)이란 단어는 베드로전서 5장에 나오는 같은 단어입니다.
(욥5:7)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
사람에게는 태어남과 동시에 고생이 주어져 있습니다.
고난은 사람들 삶의 일상적인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만 고난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아있기만 하면 고난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난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든
다 나름대로의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이 있을까요?
육체적 통증, 슬픔, 억압, 괴롭힘…
이런 고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고난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여러분이 거듭났다고 해도
세상이 저주아래 놓인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여자에게서 태어난 존재이고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고난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에게는 더 많은 고난이 주어집니다.
(시34:19) 의로운 자의 고난이 많으나 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
여러분이 의로운자라면 고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의로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양의 고난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들어오는 고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막4:16) 또 그와 같이 돌밭에 뿌려진 것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나
(막4:17)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만 견디다가 후에 말씀으로 인하여 고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즉시 실족하는 자들이요,
“고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when이라고 되었습니다.
“고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if”이 아니라 “때 / when” 입니다.
위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
그 말씀 들과 함께 어떤 고난이나 핍박이 함께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와 함께 할 고난과 핍박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질때
그 말씀이 뿌려진 이유로인해서
고난과 핍박이 여러분의 삶에 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받지 않았다면
그런 고난과 핍박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말씀으로 변화받지 못하게 마귀가 공격
그런데 만약 이 성경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말씀으로 인해서 변화된 삶을 갖지 못하도록
마귀가 여러분을 공격해서 그 말씀을 망가뜨리고
여러분을 망가뜨리기 위한 일들을 시작되게 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제대로 뿌리 내리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 그 말씀때문에 오는 핍박과 환난이 오게 되는데
그때 그 말씀의 뿌리가 없어서 실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뜯어 보면
환난과 팝박이 된 그 말씀을 받은 적이 없다면
그 말씀으로 인한 환난과 핍박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 5장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하는 고난
시편34편에서는 의인이라면 더 많이 고난을 당함
마가복음 4장에서는 말씀이 채워지면 고난이 같이 찾아옴
고난을 경고해 주시는 이유
(요16:33)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In the world ye shall have tribulation:)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반드시 겪게 되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ye shall have tribulation
이 말씀은 약속처럼 주어진 확실한 말씀입니다.
(요3:16)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shall not come into condemnation;)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For whosoever sha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
(요16:33)에서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은
구원의 약속과 같은 수준의 확실성을 언급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반드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뒤따르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의 대장으로 짊어진
고난의 부분을 함께 따르는 것입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인 고난
(행14:21) 그들이 그 도시에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움과 안디옥으로 돌아가
(행14:22)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며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
“우리가 받드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거치게 되는 것이 환난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갔다면 앞으로 생길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롬14:17)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니라.
이 하나님의 왕국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이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대적) 반드시 하나님을 믿으려는 여러분을 대적할 것입니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돌로 맞아 죽을 뻔한 곳이었습니다.
(행14:19) ¶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움에서 거기로 와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돌로 바울을 친 뒤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는 도시 밖으로 그를 끌어내니라.
(딤후3:12)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모든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주변사람들이 여러분이 하는 일에 박수를 치고 기뻐하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게 됩니다.
지금 찾아 본 구절들은 우리가 겪게 될 고난에 대한
약속의 구절들 중에 일부일 뿐입니다.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또다른 이유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계시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다락방에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 사건과 그 후에 있을 승천을 위해서
제자들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요16:1) 내가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서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기대한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기대한 핑크빛 환상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잘못된 목사님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말해주었을 것이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복받고 기쁜일이 많이 생긴다고
이야기를 해준 것을 믿고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기있는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아픈 자녀들의 질병을
고쳐줄 것이라고 거짓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알려줬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그런 목사님을 좋아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목사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은 거짓 약속으로
여러분들이 기대하게 해 놓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의로운 일을 할 수록
더 많은 고난과 환난이 주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해 준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숨김없이 올바르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멋진 삶을 제시해 주셨지만
그런 삶에서 고난과 환란도 함께 겪어야 한다고 이미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이 시작되지 전에 그런 어려움이 일어나도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화낼 필요가 없도록 미리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여러분에게 시련이 오면 이제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의 인생을 고단하게 만들면
이제 여러분은 일어날 일이 일어 났구나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잘 서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충격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일3:13) 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두 팔을 벌려 환영하지 않는다면,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맞는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살전3:3) 아무도 이런 고난들로 인해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런 고난들을 받도록 정해진 줄을 너희 자신이 아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경고해 주시는 이유를 또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제 그런 일로 우리가 흔드리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일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 빗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하고
이런 어려움이 닥쳐오면
우리가 능숙하게 이 문제를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여러분에게 아직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구원을 받기 않았거나
주님을 위해서 별로 한일이 없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에 열심히 따르지 않는 사람을
대적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경우가 아니면 아직 여러분에게
일어나야 할 고난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사례
성경은 여러분에게 다가올 수 있는
여러 환난과 시험의 사례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여러분들이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원하는 것은,
이런 진리의 길을 잘 숙지해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이런 진리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벧전5: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위 구절에서 고난이 반드시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겪어야할 고난에 대해서 사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본보기 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 자체가 고난과 시련을 통해 죽음에 내어 주기까지 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53장에 그분이 당한 고난을 잘 기록해 놓고있습니다.
(사53:7) 그가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끌려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아무 죄와 이유없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요1: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요1:11)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주님은 이유없이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본이 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분과 다른 길을 가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언자들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약5:10) 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대언자들을 고난당하는 것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
예레미야와 다니엘은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주님을 따르는 것이 마치 장미빛 인생을 약속받은 것처럼 상상했던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다시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일꾼들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히11:35)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되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히11:36)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또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히11:37)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 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히11: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어떠했나요?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행20:23) 오직 성령님께서 모든 도시에서 증언하사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나
이런 고난은 바울의 일상적인 동반자입니다.
그가 가는 곳 마다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딤후3:10) 그러나 너는 나의 교리와 삶의 방식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딤후3:11) 안디옥과 이고니움과 루스드라에서 내게 닥친 핍박과 고난을 잘 알았으며 내가 어떠한 핍박을 견디어 냈는지 잘 알았느니라. 그러나 주께서 그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져 내셨느니라.
디모데에게 고난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고난 속에서 성령님의 기쁨과 더불어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으니
(히10:32) 그러나 너희가 조명을 받은 뒤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냈던 이전의 날들을 회상해 보라.
예수님께서 그럴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초대교회를 시작으로
주님을 더 열심히 따를 수록 그들은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는 일들이 계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시켜왔던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는 좋은 방법
“정신을 차리라”
마귀의 대적에 정신을 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뭔지 아시나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고난과 핍박이 당연히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고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벧전5:9에서 다른 형제들이 이런 고난을 겪고 있다고
현재형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겪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현재형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저 교회사의 일부로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형제 자매들이 세계 여러곳에서 이런 고난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히13:3) 결박 중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되 그들과 함께 결박당한 것 같이 기억하고 너희 자신도 몸 안에 있은즉 역경 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라.
이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도 순교를 각오하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억해 내야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로 도우며
때로는 더한 고통이 올 수 있음을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난과 수고를
절대로 헛되이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주님께서 주실 영광의 관을 소망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난을 완성하라?
(벧전5: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Whom resist stedfast in the faith, knowing that the same afflictions are accomplished in your brethren that are in the world.
“Accomplished” 조금 문맥에 잘 맞지 않아 보이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accomplish라는 단어는 완성된다는 의미 입니다.
고난은 어려움이고, 고통이고, 문제거리인데,
이런 고난을 완성시킨다는 표현이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변화사 사건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장명세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눅9:31)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앞으로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셔야 할 그분의 별세에 관하여 말하였으나
Who appeared in glory, and spake of his decease which he should accomplish at Jerusalem.
이루셔야 할 accomplish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acomplish의 뜻은 완성하다 끝내다 실행하고 가득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결국에는 모든 일을 완성하는 일로
결말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결국 행복한 결말로 그 끝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눅12:50) 그러나 내게는 잠겨야 할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But I have a baptism to be baptized with; and how am I straitened till it be accomplished!
예수님은 침례가 이루어질때까지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예수님은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신 것입니다.
(요19:28) ¶ 이 일 뒤에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accomplished) 아시고 성경 기록을 성취하시려고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그래서 그분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무언가 얻어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제공해 줄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고난
고린도후서 12장에서는
바울이 사탄의 사자를 통해서 고난을 받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바울의 삶을 완성하기위해서 원했던 일인 것입니다.
(고후12:7)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악한 현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고난을 조율하고 운영하실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은 선을 위해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육에 부하를 주고 스트레스를 주어야 근육이 커지게 됩니다.
고난과 시험은 여러분의 인생의 근육을 키우기위한 주님의 배려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의 마지막에는
여러분이 겪은 고난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유익되었는지
그때 아시게 될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들을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 완성되게 하실 것입니다.
(고후12:9)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해집니다.
여러분의 연약함 위에 하나님의 권능이 머무르게 하고자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사용하셔서 여러분에게 무언가 완성하고자 하십니다.
오늘 살펴본 말씀들을 보게 되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진리임이 입증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에대한 오해와 분노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고
마귀에게 삼켜버리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이 문제를 잘 이해하고 대처한다면
주어진 고난과 문제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고,
좀더 성숙한 방법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고,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큰 보상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성숙한 삶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더 낮아진 종으로 만들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님께서 다른 성도들에게
당신의 형제들 중에 한 사람에게서
고난이 이루어져 완성되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고난과 핍박을 멋지게 견디고 이겨낸 여러분을
하나님은 마귀 앞에서 당당하세 내세우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