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흰 왕자 심판 / 구약성도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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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큰 흰 왕자 심판 / 구약성도들 그리고…
본문 : 계 20:13-14
(계20:13)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계20:14)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오늘 설교내용과 관련해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입니다.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지옥이 죽은 자들을 넘겨준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죽어서 지옥으로 간 사람도 있고,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고 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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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어야 그들이 구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이 쉽지 않는 과정이라는 것도 사실 입니다.
오늘 우리는 백보자 심판에 대한 교리를 배우고자 합니다.
(단12:2)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고 얼마는 수치와 영존하는 치욕에 이르며
(요5:28)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요5:29)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만약에 성경에 부활과 미래의 삶에 대한 구절이 이 두 구절 밖에 없다면,
여러분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으면 무덤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마지막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심판을 하실 것이다.
그래서 선한 사람과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하늘 나라로 불러들일 것이고
나쁜 일들을 해서 자격이 미달 된 사람들은
지옥으로 던지실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에 관해서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판에 관해서 여러가지 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모든 사람은 죽을 것이고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의 심판 석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보상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심판인 크고 흰 왕좌 심판에서는
불 호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어떤 심판을 받을 까요?
모든 사람은 죽은 뒤에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있게 될 것이고,
다음으로 크고 흰 왕좌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죽으시기 전에 있었던 구약 사람들은
무슨 심판을 받은 것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의 사람들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휴거가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즉 환난 기간동안에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의 기간 동안
예수그리스도의 통치아래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끝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 성경에는 없는데
성경적인 사실인것 처럼 믿고 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 죄인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갈보리 이전의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고,
갈보리 이후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뒤로 바라보고 구원을 받는다”
이런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벧전1:9)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벧전1:10)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
(벧전1:11)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는지 탐구하였느니라.
(벧전1:12)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것들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수행하였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것이니라.
구약에서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사역이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시편22편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이야기 했고
그분의 십자가에서 못박힘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다윗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이들에게는 아직 허락되지 않은 것입니다.
(시22:1)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시22:16) 개들이 나를 에워싸며 사악한 자들의 무리가 나를 둘러싸고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이사야서에서도 우리의 범법으로
예수님이 징벌을 받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이사야는 이 말을 기록하면서 하나님께 무슨 뜻인지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는 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구약의 기록을 보면
그 기록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구약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의미를 알려고 연구도 하고 조사도 하고,
하나님께 묻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인물들 즉 아브라함, 모세, 다니엘, 여호수아 등은
예수님의 피를 통한 죄들의 용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직 흘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니다. (골1:14)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피를 통해 죄들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가능해진 것은 그분의 피가 이제는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내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
(골1:25)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함이니라.
(골1:26)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골1: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1:28) 우리가 그분을 선포하며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우리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라.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들이 있는데
그런 예언들은 아직 성취도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록은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기록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언자가 대언했던 갈보리 사건이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대언자가 말했던 부활이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죄들이 그분의 피로인해서 씻겨 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십자가를 알리기 시작함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초대 신약교회들을 사용해서
그들이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놓으셨는지를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것을 믿기만 한다면
그 순간에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 곳에서는 이 사건이 숨겨진 이야기였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이 이야기가 이제는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더이상 숨겨진 신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 사람들은 십자가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십자가를 향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야기를 구약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내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마16:21)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알리기 시작하십니다.
(마16:22)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
지금 여러분은 다 알고있는 것을 베드로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았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이야기 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과 직접 보면서
매일 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요13:36) ¶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오리라, 하시거늘
(요13:37)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내가 지금은 주를 따라갈 수 없나이까? 내가 주를 위해 내 생명을 내놓겠나이다, 하매
(요13:3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해 네 생명을 내놓겠느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1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요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또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14:5) 도마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어찌 그 길을 알겠나이까? 하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병사들에게 매 맞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야하고
그곳에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그 일이 예수님에게 일어나자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도마는 자신은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차례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해서 배워왔습니다.
1500년 이상의 기간동안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메시아에 대해서
들어왔고 배워왔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게 될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왕좌에 앉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왔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이 땅에오셔서 자신이 메시아 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아픈자들을 치료하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장님이 눈을 뜨게 하고 죽은자들 살리시는 일로 모든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고난을 받게 될 것과 피를 흘리시게 될 것과
죽으실 것과 땅에 묻히실 것과 땅의
더 낮은 부분에 가실 것에 관한 부분을 다 읽었을 것인대도
막상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그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침례인 요한도 알지 못했습니다.
침례인 요한은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침례를 받고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요한은 자신이 선포한 그 왕이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이제 막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보라 너희의 왕이 오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다른 말을 하게 하십니다.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요한은 침례 사역을 하면서 대언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땅에 세워질 왕국과 왕좌와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만 선포해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한 왕이 왔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양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침례인 요한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있었다면,
침례인 요한이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을 선포했을때
이들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아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침례인 요한이 선포한 메세지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의심한 요한
요한은 마지막에 감옥에 가게 됩니다.
요한은 왕의 간통죄를 지적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땅의 왕국을 세우시고
이 땅의 통치자가 되실 분이 오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침례인 요한은 시간을 보면서
예수님이 감옥문을 열고 자신을 구해주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을 감옥에서 꺼내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지 의심을 했습니다.
(마11:2) 이제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듣고 자기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을 보내어
(마11:3)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니
(마1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그것들을 요한에게 다시 보이되
(마11:5) 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마11:6)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요한은 제자들에게 가서 당신이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지를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로 인해서 실족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이 실족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각한대로 하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라는 말을 마지막을 하고 마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말씀이
더해져 있었지만 그 말씀은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61:1)
요한은 뭔가 빠진 것 같았지만
예수님이 전해준 말은 그것이 전부였고,
실족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여 전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민족적으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왕국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모두 실망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은 제자들
예수님께서 부활한 아침에 여인이 무덤을 찾아 왔던 여인은
그분의 몸에 향료를 바르기 위헤서 왔습니다.
부패한 몸에서 썩은 내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고 기대하고 그자리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12명의 사도들은 집에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었다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뒤에
무덤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자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말은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볼로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선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굴라와 부리스길라가 아볼로를 데려와서
십자가에 대해서 알려주게 됩니다. (행18:26)
구약 사람이 머물던 낙원
(눅16:22)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눅16:23)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는 죽었고 지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가지 못했고 주님과 함께 있지도 못했고,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낙원입니다.
(고후5:8)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우리는 죽으면 곧바로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보리 사건 이전에 죽은 사람과
그 이후에 죽은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바로 주님께로 가게 되지만
십자가 이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모세가 새로 만든 돌판을 만들고 산 위에서 하나님을 만남
(출34:6)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
(출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법과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내가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하여 삼대와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모세가 죽게 되면 긍휼과 은혜가 모세에게 주어지지만
모세는 깨끗하게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값이 아직 지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나 기드온이나 말라기가 죽었을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을 행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주어지지만
그러나 이들이 깨끗해 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그들의 죄값을 지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골2:13)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할례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셨으며
(골2: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신약 성도들은 이제 죄들을 용서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의 기록이 사라지고 아주 깨끗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은 것은
우리와 동일 하지만
구약 성도들은 죄에 대한 모든 기록이 깨끗해지진 않았습니다.
골로새서 2:14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골2: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우리의 죄들의 기록을 지우시고 그것을 치우셨습니다.
여러분과 하늘 사이에서 장애가 되었던
죄의 존재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으로 가보겠습니다.
(히10:1)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10: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구약의 희생물로는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물로는 우리의 죄들을 제거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성도를 데리고 올라가심
구약 성도들은 죽으면 아브라함 품 안에 안겨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는 (엡4:8)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사십일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때 주님은 포로된 자를 이끌고 함께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죽었고 구원을 받았지만
그들의 죄값이 지불되지 않아서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죄값을 지불하자마자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낙원 전부를 셋째 하늘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구약 성도와 우리는 구원받은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고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에게 주어진 믿음을 행함으로 주어진 것이고
여러분의 구원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믿음을 행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차이점은 그들의 죄는 아직 지불되지 못했고,
우리의 죄는 이미 깨끗하게 되어서 하늘에 갈 수 있게 된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그 순간 바로 하늘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옮겨져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는 이 증언을 가졌느니라.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였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구약의 의인들이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께 뭔가 보여주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언급하지 않고 믿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고 했지
믿음 + 행위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히11:39)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히11:40)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되어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물로
완전함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죽은 뒤에
길게는 수 세기 동안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순간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과의 관계
그럼 이 모든 것이 크고 흰 왕좌 심판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사람은 한 번 죽게 되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 기록에 있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심판을 통과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에녹과 엘리야와 에스겔은 어디서 심판을 받은 것일까요?
그들은 아직 심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계20:11)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계20: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보았다고 했지 구원받지 못한 자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계20:13)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계20:14)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성경은 지옥이 죽은 자들을 넘겨주었다고 말하지 않고,
사망과 지옥이 그들 안에 있었던 죽은자들을
넘겨 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크고 흰 왕좌 심판석에 서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옥과 사망도 크고 흰 왕좌 심판석에 서있습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석에는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았던 사람들도 서있고
죽어서 지옥에 갔던 사람들도 서 있는 것입니다.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죽은 자들이 던져졌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망과 지옥이 불 호수에 던져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죽었던 사람을 붙잡아 놓았던 그 장소와 자리가 불 호수에 던져진 것입니다.
하늘이 사라지고 땅도 사라지고 지옥이 사라지고 사망도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혼들과 하나님 만이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12절에서 이 책들(복수)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13절에서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1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크고 흰 왕좌 심판석에서 마지막 최종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심판석 앞에 놓인 세 권의 책
여기에 하나님의 요구사항이 기록된 66권의 말씀이 있고,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그들의 삶의 기록이 기록된 책이 있고,
그리고 또 한권의 책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찾게 되면
그들은 불 호수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데,
그 방법으로 불 호수에 던져지는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조건을 믿음으로 충족시킨 사람들 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이미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그것으로 영원한 생명이 이미 보장 된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도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선택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의 죄들을 지워지게 할 것인지,
그분을 거부하고 생명책에서 여러분의 이름이 지워지게 할 것인지
심판 하는 이는 말씀
(요12:48)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를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말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여기서 사람들이 하는 큰 실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여러분을 심판하는 분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아니십니다.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감정도 없고 애정도 없고 융통성도 없습니다.
흑백만을 가릴 뿐입니다.
성경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 말씀은 여러분이 믿었는지 아닌지만 판단합니다.
(사14: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이 장면에서 루시퍼는 “땅”에 있습니다.
(빌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빌2:11)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언젠가 크고 흰 왕좌 심판석에서 불리게 될 마지막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은 루시퍼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와서 서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군대가 바라보고 있을때
그는 왕좌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크고 흰 왕좌 심판석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영원한 불 호수에 던져지는 끔찍한 장소입니다.
또는 크고 흰 왕좌 심판석은 숨쉬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입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크고 흰 왕좌 심판을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