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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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평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
본문: 롬 5:1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게 되었으므로(롬4:24)
우리가 칭의를 얻게 되었으므로 (롬4:25)
적대적 관계의 종식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원자로 믿게 되면,
하나님과 죄인인 여러분 사이의 적대적 관계는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죄인이고 죄인과 하나님의 대적관계는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전쟁은 끝이 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둘이 화해를 하게 되었으면
이제 이 둘은 화평을 얻게 된 것입니다.
고난의 문제가 없는 곳은 죽음 뒤에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죽음의 문을 통과하게 되거나
아니면 휴거를 맞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고난과 문제가 없는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칭의를 얻고 구원을 받았는데도
여전이 고난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고난과 환난이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없는 삶을 약속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가서 주님과 함께 하기 전까지는
이런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약속해 주신 것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은 이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사용할 수 있다면,
고난과 함께하면서 화평한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구원과 하늘나라 사이에 놓인 삶의 중요성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에 대한 의미를 물으면,
과거에 죄인 이었던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해주신 것과,
미래에 하늘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한 믿음은 이야기 하지만,
지금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현재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수많은 고난과 슬픔과 아픔들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주시기기 위해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각자의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고난은 나의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고통이 너무도 특별하고
큰 고통이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으십니다.
주님은 문제 없는 삶을 약속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재정적 문제가 없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육체적 질병이 없게 건장을 보장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적이 없습니다.
가정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적도 없으십니다.
주님은 이런 문제들 가운데서도 화평을 가질 수 있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순간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 있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어려움의 원인은 여러분의 마음이 문제에 붙들려 있기 때문
지금 여러분이 시련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 문제 때문이 아니고
여러분의 시련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나타나는 문제에 붙들려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6절에서 보여주는 의미는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염려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크게 만들 것인가?
우리가 도전받아야 할 부분은
그 모든 걱정과 고통과 염려들을
그때 그때 해결하지 않고 감당할 수 없을때까지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무거운 벽돌을 나를때,
한 꺼번에 많은 양을 옮기게 되면 힘들고 지켜서 몇 번 못하고 지칩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처음에는 4장씩, 다음에는 8장 다음에는 10장씩,
그렇게 자신의 체력에 맞게 작게 쪼개서 옮기면 좀더 지치지 않고
오래 벽돌을 나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닥쳐올때도 문제가 작을때 조금씩 처리하지 않고
문제가 산떠미처럼 커질때까지 방치하게 되면
그 무게에 눌려 지치거나 포기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커지기 전에 처리하면 화평이 이길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시험이 닥치고 시련이 오고 마음이 우울해지고
여러분의 욕망이 어둠을 향하려고 할때마다 방치하지 말고,
곧바로 주님께 모든 문제를 가져가게 되면 주님의 주시는 화평이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근심을 키워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의 화평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크기? 화평의 적절한 사용!
문제는 하나님의 화평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때마다 하나님의 화평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으면,
그 문제가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가 될때까지
키워버리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방식으로 이런 저런일 다 해보다가 안되니까
뒤 늦게 하나님께 찾아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기때문인 것입니다.
이미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서 마음은 두려움에 휩싸여있고,
절망이 가득한 상태가 되버린 것입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 오늘 문제도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오다가 과거 어느지점에 우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나의 모든 죄가 제거될 것이고,
나의 죄로인한 모든 형벌은 제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통해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 대신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우리 마음에 있는 쓴뿌리 대신에 화평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 대신에 사랑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성도들이 그건 아닌것 같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일주일치 근심을 제거할 능력은 안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지옥불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몇일 안에 일어날 근심거리로 부터는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시간 뒤에 있을 말싸움에서,
거실에서 일어날 논쟁에서,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과 한 바탕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리가 지끈거릴때,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해결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라, 믿음이 문제
시련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고 고난이 생기는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문제보다 더 크시고 강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 없음때문에,
우리가 근심에 사로잡히고, 시련에 무너지고,
마음이 무거워 우울해져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은 믿는데, 지금은?
(사26:3)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사26:4) 너희는 영원토록 주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 안에 영존하는 능력이 있도다.
4절의 말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영원히 신뢰한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도 믿고,
주님이 준비하신 저택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도 믿습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원을 말하는 것은 쉽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아직 영원이라는 영역에 들어와 있지 않기때문에,
막연하게 영원을 말하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고 지금에 대해서는
어떤 믿음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부모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계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후 내내 그 일을 생각합니다.
결국 오후 시간도 다 망치게 됩니다.
과거의 상처에 묶여 있다면
만약 여러분이 20살이 넘은 청년이 되어 있는데,
그런데 여러분이 과거에 잃어버린 가족이나 친구의 무덤에 서서
자신의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래서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는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면
빨리 여러분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 하고
그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어린 시절 일어났던 일로 인해서
성인이 된 나의 삶을 망가뜨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라고 하면서 거듭나기 이전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꾸 화평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화평을 줄 수 있는 영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구원을 받았다면
나의 화평이 너를 지켜줄 수 있는 곳에 머물러 주길 바란다.
주님은 주님이 주시는 화평의 삶이 얼마나 더 좋은 삶인지를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자꾸 화평을 빼앗기는 방향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사용하고 행한다면
그곳에는 내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때 사용했던 그 믿음을
매번 매순간 주님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두고 행하게 된다면
그곳에 내 화평이 주는 기쁨이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히6:18)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친구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아내와 남편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뢰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없다고 해서
하나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억울한 일인 것입니다.
(히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나니
(히6:20)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토록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거기로 들어가셨느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여러분은 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소망의 결과는 하늘에 준비된 내 집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 할 수 있나요?
왜냐하면 내 소망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닻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히6:18)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확고한 안위를 제공하심
18절 말씀에 따르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이렇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에게는 반석이 계십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에게는 혼의 닻이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는 하늘에 거할 집이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그곳에 데려갈 주님이 계십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그곳에 갈때까지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에게 안전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 의미는 이 땅에 살면서
자식 문제, 배우자 문제, 경제적 문제, 건강문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에게 안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확고한 안위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음
지금 하늘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에게 확실한 안위가 주어졌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안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확고한 안위를 얻는 방법
만약 우리가 하늘에 계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믿음을 둘 수 있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삶에 대해서도 동일한 믿음을 주님께 두기만 한다면,
우리가 안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어도 안위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안위가 필요없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안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기 전에도
여러분에게 고통이 오고 황당한 일이 생기고 복잡한 일이 생기고,
가족과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겨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이런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에게 다가 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 여러분은 안위를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히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히7:2)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화평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은 여러가지 이름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이름들 중에 화평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화평의 왕국이 있고 예수님은 그 왕국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보통의 사람처럼 쉽게
이랬다 저랬다 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고,
그리고 이 문제 저 문제 일으키는 사람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이 모든 것에서 완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화평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화평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화평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고
그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의의 왕이시고 그 다음으로 화평의 왕이십니다.
의가 있어야 그 다음에 화평이 주어집니다.
(히12:1)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히12: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3) 죄인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이처럼 거역한 것을 견디어 내신 분을 깊이 생각할지니 이것은 너희가 너희 생각 속에서 지치고 기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아니하였노라.
고통은 죄의 결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라 우리의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한번도 그분을 거역하고 죄를 지은신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땅에 살면서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시고 계십니다.
이 의미는 이런 고난들은 다 죄의 결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마귀들린 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시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셨습니다.
(히12:5) 또한 자식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권면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6)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친히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느니라, 하셨느니라.
만약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실제로 많이 아플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징계하고, 채찍질을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여러분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화평을 잃어 버린 것은 고통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화평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내게 일어난 고통으로 인해 주님을 믿는 믿음을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정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나에게서 화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 많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화평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화평을 잃지 않는 길은
그 문제로 인해 삶이 장악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내가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화평을 잃어버리는 쪽으로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 삶의 고난과 어려움은 나의 감정을 격동시키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불필요한 일에 힘을 소모를 하게 만들어서
내 안에 화평을 사라지게 만드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화평을 잃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내가 나의 화평을 망가뜨리고 빼앗아가는 사건에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히12:7)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
(히12:8) 모든 사람이 징계를 받으므로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잘못을 방치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닙니다.
자녀들의 잘못을 보고 징계하지 않는 부모는 부모가 아닙니다.
아이를 돌보는 선생님은 남의 자녀를 부모처럼 징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전히 옛 사람의 일을 계속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여전히 마귀의 자녀처럼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놔둔다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히12:9) 또한 우리에게 있던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우리가 더욱 복종하고 이로써 살아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히12:10) 진실로 그들은 며칠 동안 자기들이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그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의 육신적 부모와 선생님과 목사님은 여러분을 징계하시만
항상 옳바른 방법과 동기로만 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올바른 방법과 동기로만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히12: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그것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죄인 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인류역사 6천년 동안 쌓여온 인간의 죄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여러분의 삶에 강력한 충격으로 덮쳐 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죄인들입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만나는 친구도 죄인이고
계약을 하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도 죄인이고
직장에서 상사로 만나는 사람도 죄인이고,
여러분의 아내도 여러분의 남편도 죄인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대할 때만 죄인이 아닌 것처럼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판단인 것입니다
거울 속에 있는 여러분 자신도 죄인입니다.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놀랄 일이 아닙니다.
내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놀랄 일이 아닙니다.
죄인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화평을 줄테니 의를 행하라
이런 현실세상에 놓여있는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화평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화평의 왕이시기 때문에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옳바르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화평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의로운 일을 하면, 그 다음에 내가 너에게 화평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네가 다음에 의로운 일을, 옳바른 일을 하는게
더 쉬워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나는 너에게서 고난이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제거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고통과 고난과 문제 보다 더 큰 화평을 너에게 줄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옳은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2:12) 그러므로 늘어진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12:13) 너희 발을 위해 곧은 행로들을 만들지니 이것은 저는 것이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고침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면
손발이 늘어지고 어깨가 축 쳐지게 됩니다.
이 땅에 태어나면 아프기도하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로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살다가 아프다가 죽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돈을 좀 주십시요!”
"싫다. 네가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라!!"
우리는 또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여러분의 문제만 보지 말고 주님이 주신 축복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겪는 문제를 가볍게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미 받고 있는 축복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면한 문제로 인해서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많은 복된 것들을 잃어 버리고
지금 당장의 문제만을 심각하게 보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죄를 사해주시고,
칭으로 의롭게 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지금 일어난 말다툼이나 근심으로 인해서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지금 일어난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여러분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소망을 붙잡지 못하게 됩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5)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도록 할지니
(히12:16)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 한 조각을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히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뒤에 그가 복을 상속받고자 하였으되 거절당하였으니 그가 눈물을 흘리고 염려하며 뜻을 돌릴 곳을 구하였으나 그것을 찾지 못하였느니라.
에서가 음행하는 자였다는 정보가 히브리서에는 있지만 창세기에는 없습니다.
동생 야곱이 형을 속인 것은 분명이 잘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도 속을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아 넘긴 후 한 참 후에
자신이 앞서 결정한 일로 인해 자신의 삶이 곤란해 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가서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지금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 결과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과거의 잘못을 다시 원상 복구 시켜서
자신의 장자권을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나는 그렇게 해줄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줄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망가뜨린 결과는 원상복구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뿌리고 심은 것들은
그리스도 심판석 이후에 모두 초기화 될 수 있을 뿐
이 땅에서 여러분이 망친 결과는 여러분이 짊어지고 사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늘에 들어가면 이 땅의 일로 연관된 결과로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여러분은 행복하고 신나고 기쁘고 즐겁게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화평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화평이 주어지는 이유는 여러분이
드디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잡혀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화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속여도
여러분이 주님과 올바른 관계로 굳게 서 있기만 한다면
그 순간 여러분은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완벽하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여러분이 이땅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은
완전하신 주님의 도움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감정과 여러분의 판단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여러분은 점점 더 화평을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모든 과정을 화평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당연이 휴거가 되지 못한다는 조건절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말일까요? 2절을 보겠습니다.
(히12: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을 보지 않는다면 화평과 거룩함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화평이 없다는 것은 내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계속 보고 있으면 주님을 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악하게 대했는지 아세요.
아버지만 보면 지긋지긋해고 화가 나요!!
예수님 : “형제여 ... 나를 좀 보시게!!”
나 : “아니요!! 주님은 거기 계세요..
내가 아버지하고 한번 시시 비비를 따져 봐야겠어요…”
예수님 : “어허!! 나좀 보라니까 !!”
나 : “기다리세요. 지금 주님하고 이야기 할 기분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때 왜 나를 때렸는지... 좀 따져봐야겠어요…"
지금 이 사람은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죄인인 아버지(남편, 아내, 자식)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 화평은 사라진 것입니다.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은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면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과 따질 일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면 나는 화평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고.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4:35) 바로 그 날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
주님은 반대편으로 가자고 하시고 너희도 같이 가자고 하시는 겁니다.
(막4:36) 그들이 무리를 보내고 그분을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작은 배들도 그분과 함께하더라.
예수님의 제안에 동의한 사람들은
모두 배에 올라타고 그분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게 됩니다.
구원받고 싶으신 분은 주님이 가자고 하실때 함께 배에 올라 타시면 됩니다.
아직 배에 타지 않은 분이계십니까?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은 무한정 주어지지 않습니다.
(막4:37) 큰 폭풍이 일어나고 파도가 배 안에 들이쳐서 이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으되
예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막4:38) 그분께서는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라. 그들이 그분을 깨우며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화평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있고, 배는 흔들리고있고,
물은 넘쳐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화평을 유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건너편으로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건너편에 가자고 하신 분이시고,
예수님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계시고 어디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쉬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이 가득찬 배에서 어떻게 주무실 수 있었을까요?
주님은 아직 배가 가라않을 만큼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문제가 너무 많아서 큰일 났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아직 배가 가라앉을 만큼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배가 가라 앉을 때까지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 더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냐 ! 내가 볼때 조금더 감당할 수 있어!!”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매"
이런 말을 주님께 하신적이 많으실 겁니다.
"주님 정말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혹시 주님이 저를 잘못 이끄신 것이 아닌가요?”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을때 가는 길에
폭풍이 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막4:39) 그분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신즉 바람이 그치고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막4:40)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막5:1) 그들이 바다 저편으로 가서 가다라 사람들의 지방으로 들어가니라.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자고 했나요?(건너편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이 어디인가요?(건너편 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하늘로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에 동의하고 구원의 방주 안에 올라 탔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도착하게 될까요?(하늘 나라에 도착하게 될 것)
문제는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서 건너편으로 갈때까지
화평을 유지할 만큼의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바다에 가라않게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바다에서 좌초되도록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배에서 밖으로 던져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의 항해 기간 동한 바람을 원지 않는다고
바람이 분다고 난리가 나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화평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좀 없애 주세요, 파도좀 멈춰주세요! 두렵고 무섭습니다.
주님 지금 뭐하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에게 준 믿음이 있는데, 어째서 화평을 잃고 난리를 치는 것이냐!!
사람들은 고요한 바다만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봄바람같이 부드러운 삶만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에 갑자가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보다
믿었던 환경이 거칠고 강한 힘을 보이자 그것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바다의 파도의 높이에 더 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이 가야할 목적지까지 가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탄 배는 목적지에 반드시 무사히 도착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문제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어깨가 쳐진 상태로 있지 말고,
주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행복의 미소를 띄면서 앞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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