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의 의미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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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멘의 의미
본문 : 롬 1:25
(롬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아멘”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존 대형 교회들이 아멘이라는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 있어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독립침례교회에는
오히려 아멘이라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멘의 의미가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아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잘 이해를 해서,
앞으로 아멘이라는 말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얼마나 자주 해야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그냥 호기심 천국처럼
그냥 호기심을 해결하는 성경공부 차원이 아니라
아멘이라는 외침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의미를 잘 알고 하게 된다면,
교회 생활에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겠습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너희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다. “아멘”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한다면, 26절 이하가 되게 하시겠다.
(롬1:26)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롬1:27)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해 욕정이 불 일 듯 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함으로 자기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 속에 받았느니라.
(롬1:28)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손가락을 끼우고 데살로니가로 가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대환난에 관한 구절입니다.
(살후2:1)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우리”는 구원받은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포함해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를 아룰러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이 부르시면 그분께로 불려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께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살후2:2)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너희”는 서신서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불안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살후2:3)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떨어져 나가는 일”
사랑이 사라지고 성령님께서 떠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교회가 휴거되고 난 뒤라 이 땅은 삭막한 분위기로 변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멸망이 아들이 나타났다고 드러나게 되기전까지는
그런말에 속지 말아라.
멸망의 아들이 드러난 것을 여러분이 보고 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해서 휴거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정말 큰일이 난 것입니다.
(살후2:4)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
스스로를 하나님 이라고 하면서 성전에 앉아 있는 적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아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높은 곳에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 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살후2:5)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살후2:6) 너희는 그가 그의 때에 드러나게 하려고 무엇이 저지하고 있는지 지금 아나니
(살후2:7) 불법의 신비가 이미 일하고 있으나 다만 지금 막고 있는 이가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 막으리라.
아직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존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로인해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구원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살후2:8)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날 터인데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친히 오실 때의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살후2:9) 그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적그리스도는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을 가지고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나타나게 됩니다.
(살후2:10)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지금 멸망의 아들이 누구에게 오고 있나요?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멸망하는 자들인가요 아닌가요?
우리는 멸망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즉 교회에 속한 우리는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중재림때 위로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모여있는 상태입니다.
(살후2:11)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냅니다.
그들은 누구 인가요?
진리를 거부한 사람, 구원받지 않은 사람.
교회에 속한 우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믿게 하십니다.
(살후2:12)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그들이 다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이 정죄를 받게 됩니다.
진리를 믿지 아니한 사람, 불의를 기뻐한 사람들
(살후2:13)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13절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는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우리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받게 되는 정죄를 받지 않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서신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우리"라고 말을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경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라고 했다면
그 "우리" 안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할때는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표적과
거짓 이적을 가지고 등장하는 것을 볼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형제들은 그런 것을 보지 않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롬1: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롬1: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롬1:8) 먼저 너희 모두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두루 전하여졌기 때문이라.
계속해서 "너희"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라는 것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가르켜서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1:26)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애정에 내주셨으니 이는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
“그들”을 수치스러운 애정에 내주셨으니
(롬1:28)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성경을 그냥 읽기만 하지 말고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봐야 합니다.
로마서는 구원받은 사람을 향해서는
"나" "우리" "너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을 향해서는
"그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화를 믿는 사람들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지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6:32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성경은 "그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읽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가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환난을 통과하는 대상은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걱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우리"라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롬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아멘”
이 단어는 히브리단어 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확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멘은 성경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이고
누군가 말을 하면 그 말에 동의를 표하고
나도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동의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십자가에서 드러내 보이시고
그 의를 믿는자에게 의를 전가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자들 가운데 머물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만 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게 하셔서 우리가 멸망의 아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한 일이고, 영원히 찬송받으실만 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진리를 말하고 내가 그 말에 동의가 되면,
그 말에 나도 동의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사례를 보겠습니다.
(렘11:5) 이로써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맹세를 이행하리라, 하였는데 그것이 이 날에 보듯 그리되었느니라, 하라, 하시기에 이에 내가 응답하여 이르되, 오 주여, 그대로 되리이다(So be it), 하였노라.
"그대로 되리이다”
이 표현이 "아멘"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백성들은 저희도 그 약속이 그대로 되어야 할 것을 믿습니다.
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렘28:6) 곧 대언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주께서 그리하시기를 원하노라(the LORD do so). 주께서 네가 대언한 네 말들을 이루사 주의 집의 기구들과 포로로 끌려간 모든 자들을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주께서 그리하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그리하시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아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이라는 것은 누군가 설교를 하면
그일이 이루어지기를 나도 동의한다는 반응의 표시입니다.
서약의 의미
“아멘”에는 동의의 의사가 있기 때문에 서약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를 나온 뒤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가나안 땅에서 이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백성들에게 읽어줍니다.
(신27:11) ¶ 모세가 바로 그 날 백성에게 명하여 말하되,
(신27:12) 너희가 요르단을 건넌 뒤에 이들 곧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신27:13) 이들 곧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설지니라.
(신27:14) ¶ 레위 사람들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이르기를,
(신27:15) 기술자의 손으로 만든 것 즉 새기거나 부어 만든 형상 곧 주께 가증한 것을 만들어 은밀한 곳에 두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아멘”하라고 하는 것은 그 말에 동의 하고 그 말대로 이행하겠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이 아니라
쌍방의 동의로 체결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맏아 적고
백성들과 하나님이 서로 쌍방 합의를 합니다.
(출24:7) 언약의 책을 가져다가 백성이 듣는 데서 읽으매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리이다, 하니
(출24:8) 모세가 피를 취해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주께서 이 모든 말씀에 관하여 너희와 맺은 언약의 피를 보라, 하니라.
모세가 언약의 책을 가져다 읽어주었고,
백성들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그리고 피를 취해서 뿌리면서 쌍방이 동의한 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동일하게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을 읽어주고,
백성들을 “아멘”이라는 말로 동일한 합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27:1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장면을 한 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황량한 평야에 수 많은 군중이 모여 있습니다.
광야에서 앰프시설도 없고,
주변에 다른 건물도 없고,
MP3도 없고, 핸드폰도 없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이 방해받을 것이 없는 공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읽고,
백성들이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화답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자신들이 그렇게 지키겠다고 답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연상하면서 나머지 구절들을 읽어 보겠습니다.
(신27:18) 눈먼 자로 하여금 길을 벗어나 헤매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19) 나그네나 아버지 없는 자나 과부의 재판을 굽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0)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함께 눕는 자는 자기 아버지의 옷자락을 드러낸즉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1) 어떤 종류의 짐승이든 그것과 함께 눕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2) 자기 누이 곧 자기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함께 눕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3) 자기 장모와 함께 눕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4) 자기 이웃을 은밀히 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5) 무죄한 사람을 죽이려고 대가를 받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확인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절까지 계속해서 "아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을 주시고 우리가 그 명령대로 하겠다고
말로 소리내어서 동의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몇구절 찾아 보겠습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그분 안에서 아멘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아멘(Amen)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대문자 Amen 입니다. 이 아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은 그렇게 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다 성취시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게 되도록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아멘하는 모습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설교와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존 교회들이 성도수 줄어들게 만드는 설교는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머리 수만 늘 수 있다면,
헌금하는 성도가 늘기만 한다면,
왠만한 죄들을 눈감아주는 설교를 합니다.
이제 동성애를 편들어 주는 설교를 한다든지,
술좀 마시고 음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뭔가 사랑으로 덮어주려고 하는 등의 경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폭력을 행사해도 사랑으로 감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법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고,
결혼할 계획도 없는 관계인데
그냥 애인 사이가 되어서 교회에 앉아 있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럴때 강대상에서 이런 말씀이 선포됩니다.
부부가 된 사이가 아니면서 남녀가 서로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죄라고 설교를 할때,
그럴때 성도들이 큰소리로 "아멘"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만나는 애인을 데리고 교회에 와서 앉아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큰 찔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신원조회를 하고 도덕성을 조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자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말씀의 문을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그들의 간증을 듣고 무엇이 죄인지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지,
다시말해 성경대로 믿고 따르는 신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능력이 발휘되는 외침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 말의 위력이 발휘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수만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외에는 없습니다.
라고 할때 그곳에 있던 50명의 성도가 "아멘"이라고 외치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던 진리가
이곳 성도와는 동의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진리가 올바른 것인지
다시 확인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비대면 예배를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그래서 "아멘"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그리고 신약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 한다는 의사표시를 함으로
동의하는 사람에게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나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은 추임새가 아닙니다.
"아멘"은 그냥 설교중에 흥을 돋구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틀린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아멘이라고 외쳤다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의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아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그냥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목적으로
"아멘"을 요구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적절한 "아멘"의 사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에 대해서 안좋은 감정이 있는데,
목사가 아내들의 잘못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혼자서 "아멘"이라고 외친다면,
스스로 아내의 잘못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런 아멘은 잘못된 아멘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방법으로 사용되는 "아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것은 우리에게 큰 은혜입니다.
라고 했을때 여러분이 그 말을 듣고 공감하고 그 사실에 감격한다면,
"아멘"이라고 외칠수 있는 것이고,
두 손을 하늘로 들고 흔들며 큰 소리로 "아멘"을 외치고
동의를 표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얼마나 구원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이 하고 있는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시선을 끌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면
그 일은 멈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강대상 앞으로 걸어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 결기를 다지고
주님께 강한 의지를 드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고,
잘 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지나친 행동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좋은 방법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일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동기와 주변의 상황을 잘 인식해서
질서있고 품위있게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말씀에 동의가 되고 은혜에 감사가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행동이라면
그것을 스스로 잘 알아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그들이 자기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을 통해 부정함에 내주사"
이 문장은 다른 곳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는 표현입니다.
(시81:10)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그것을 채우리라.
(시81:11) 그러나 내 백성이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내게서 아무것도 원치 아니하였도다.
(시81:12)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에 넘겨주매 그들이 자기들의 계획 안에서 걸었도다.
(시81:13) 오 내 백성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스라엘이 내 길들로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81:14) 그리하였더라면 내가 곧 그들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쳤을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들이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도록 예정하셨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의 결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에 얻게된 결과 입니다.
즉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멈춰주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옳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멈추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그 어떤 곳에서도 여러분이 나쁜 일을 할때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이 결정한 일을 좌지 우지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여러분 앞에 바위를 옮겨 놓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는 것도 여러분이 원해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멈추라고 말해 주는데도 계속하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마음에 작정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네가 나를 섬기고 싶다면, 나를 따르고 싶다면,
내가 성령님을 통해서 그 일을 돕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네 육신의 욕망과 세상의 욕망을 따라가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네가 가는 길을 막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길을 막고 보호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생각대로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이 언젠가는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의 마음에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진리입니다.
저에게는 저의 옛 본성에 속한 욕망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 있는 옛 본성에 속한 욕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성령께 속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육신을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신다면,
그분은 그 마음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갈등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술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과 불편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통제되지 않아서 하나님과 불편하고,
어떤 사람은 친구와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결하고 싶어질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그 마음의 일이 해결되도록
성령님을 통해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을 원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시켜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자 하나님께 손을 내밀때,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여러분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멈추고자 할 때,
여러분이 과거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옛사람과 싸워서 이기고 싶어할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전하라는 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나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든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서 나온 뒤에도 여전히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요나가 고래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 아니 곳을 가는 것도 언제든지 요나의 선택입니다.
(욥21:7) 어찌하여 사악한 자가 살아남고 늙도록 지내며 참으로 권세도 강하냐?
Wherefore do the wicked live, become old, yea, are mighty in power?
사람들은 예수 따위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가 없어도 배불리 잘 먹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안믿어도 법없이 살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의롭다고 말합니다.
(욥21:14)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이르되,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는 주의 길들 알기를 원치 아니하나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자신들에게 전혀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고자하는 자기가 지향하는 삶에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렘9:5) 또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을 속이고 진리를 말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자기 혀를 가르쳐 거짓말을 하게 하였으며 불법을 행하려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도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그들 스스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밤 늦게 까지 술마시면서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밤새 게임을 하거나, 여자와 음행을 꾸밀때는, 피곤할 줄 모르고,
자신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덮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해서 머리가 지치게 됩니다.
(렘9:6) 네 처소가 속이는 일 한가운데 있도다. 그들이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 알기를 거부하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예정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 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지식과 기회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그런 지식을 알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전도지 주려고 하지 말아라.
광고전단지는 받아도 전도지는 싫어합니다.
내 집에 들어와서 전도라는 것 하지 말아라.
방문 판매원이 들어오는 것은 괜찮아도
예수믿으라는 사람을 들어는 것이 싫습니다.
내 앞에서 예수님 이야기 하지 말아라!
부처님 이야기는 해도되는데, 예수님 이야기만 하면 분노합니다.
예수 믿는 인간들은 꼴도 보기 싫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언론 보도들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이 보여준 잘못된 모습때문에
이미 미운 감정이 깊숙히 박혀있습니다.
그런 사례나 이미지를 무기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많은 기회와 정보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향해 불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호4:6) ¶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거부하게 됩니다.
잘못은 사람이 먼저하고 있고
그 이유로 하나님이 사람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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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 빈도와 정도가 넘치면서 죄가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술취한 부모,
술마시고 아내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
편모 편부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
자녀를 무책임하게 낳고 버리는 부모들,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처럼 소리치면서
남편을 쥐잡듯하는 엄마를 보고자란 자녀들,
이들에게는 잘못된 성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되도,
성역할에 혐오를 갖게 되고,
남자는 어떻게 가정을 이끌어야하는지 아버지를 통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자는 폭행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남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본인에게난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반드시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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