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올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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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하는 올바른 자세
본문 : 마 6:9, 10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마6:10)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면서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기록해주신 것 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세와 태도가 진정성
우리가 자녀들에게도 매사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나요?
그들이 잘못했다고 반성할 때에 자녀들이 진정한 마음에서
올바른 자세로 반성을 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부모의 말에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순종하지 않고
억지로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그것은 올바른 순종이 아닙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결국 자세와 태도가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결혼생활 가운데 배우자에게 말을 할 때
말하는 내용 보다도 어떤 자세로 말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말을 해도 왜 그런식으로 이야기 하냐고 하면서 다툼이 될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 어떤 자세로 이야기 하는지가
그 상황을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바꾸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 할때도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할 때도
우리가 말하는 내용 그 자체보다도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이야기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젊은 자녀들이 대화하는 장면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들 딸들이 부모와 대화를 하면서
마치 자기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듯이 격식과 예의가 없이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조금 곤란한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 이지만
부모에게 말하는 태도와 친구에게 말하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이 상황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확장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부모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자 하시고
그 대화의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이야기 할때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태도로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나님께 할 수 있지만
우리기 지켜야 하는 존경과 예의를 갖추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히4:14)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히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담대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때 소심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망설일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초대하신 것이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 중에 위로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상황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얻고 위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주님 앞에 가지고 가서 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말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히10: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엡3:1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며 또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갈때 취해야 할 자세는
제일 먼저 확신을 가진 담대함입니다.
이것이 성경기록이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 말씀은 몇글자 안되지만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말씀으로 문장이 시작되고 입니다.
우리의 근심, 두려움, 연약함, 우리의 필요, 우리의 죄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맡기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를 이 구절에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입증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기 충분할 정도의 모든 것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돌보실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가지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지고 와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모든 문제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담대함과 겸손의 조화
(벧전5:5)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장은 우리가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 대해
겸손 이라는 표현을 세번 강조하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담대하게 주님께 나오라는 말과
겸손이라는 말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담대하지만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양의 겸손을 가지고 담대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나가면서 불손하지 않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담대함의 올바른 의미
담대함이란
우리가 그분 앞에 무례하게 끼어들어서 우리의 요구를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가가는 것은 주님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분이 어떤 분이고
우리가 그분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사주의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뭔가를 지시하고 요구만 하면
하나님은 다 들어 줘야하는 것 처럼 말씀을 합니다.
그런 자신감은 우리가 하나님께 취해야 하는 담대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길을 묻고 조언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길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손에는 자신감과 담대함을 가져야 하지만
다른 한 손에는 그 보다 더한 겸손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10:17) 주여, 주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예비하시며 주의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여러분이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자세로 여러분에게 구해야
여러분이 자녀의 요구에 기쁘게 응답해 줄 수 있을까요?
마치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무례하게 요구를 하는 자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주고 싶을까요?
아니면 겸손한 자세로 감사하고 감히 이런 요구를 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자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고 싶을까요?
우리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뭔가 대단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확신을 가질만한 뭐가 있어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도 없는 존재입니다.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인해서 우리가 가지게 된 자격이고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에 근거해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성경에 기록으로 주신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하지만 겸손을 갖춘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을 가져야 하지만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렘12:1) 오 주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 주께서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의 심판들에 대하여 주께 아뢰고자 하오니 어찌하여 사악한 자들의 길이 형통하니이까? 어찌하여 크게 배신하는 자들이 다 행복하니이까?
한 대언자의 기도를 통해서 담대함과 겸손함의 균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시고 저는 항상 잘못하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묻고 싶은 목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사악한 자들의 길이 형통하니이까?"
"어찌하여 크게 배신하는 자들이 다 행복하니이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왜 그런 것입니까?”
그럴리가 없는데 제 눈에 하나님이 불공정하신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왜 그런건가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의로우신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느끼는 이 불공정함은 무엇때문인지
하나님께서 설명을 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불만이 아닌 이해를 구함
지금 예레미야는 자신이 놓여 있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솔직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너무 궁금해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이 누구보다 뛰어난 것을 고백하는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어서 자신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직함과 솔직함을 드러내는 기도
예레미야는 12장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예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세는 정직하고 솔직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삶을 허락하신 것이
무슨 이유에서 인지 정말 궁금했던 적이 없으신가요?
그럴때 하나님께 예레미야처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의롭고 옳으신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태를 잘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가진 궁금함을 숨겨두고
주님께 내 놓지 못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숨겨질까요?
여러분이 하나님께 화가 나 있다면
여러분이 말을 하든 안하든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의심하고 있거나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다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마음 속에 품은 궁금한 것들을 모두 주님 앞에 털어 놓는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열어서 주님 앞에 숨김없이 보여 드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로잡아 주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로 환경을 바꾸지 못합니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내가 놓여 있는 여건과 환경이 바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놓인 환경이 바뀔 수도 있고 안바뀔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내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에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때 기도를 통해서 바로 그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 놓음으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는 길인 것입니다.
솔직함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확신을 주십니다.
예레미야 12장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물리치지도 않으십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원하는대로 백성들에게 곧바로 심판을 내리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주신 메세지에 대해서 확신을 시켜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 후로 20년간을 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됩니다.
마음을 쏟아 놓는 자세
(시62:8)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이니이다.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쏟아 놓았을 뿐이오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닌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의도가 있는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색을 칠해서 본질을 숨기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영적인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을 주님앞에 쏟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신뢰가 바탕이 되는 기도
결혼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혼 생활에서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람 간에 이렇게 열린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어느 수준 이상의 신뢰를 서로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시62:8)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우리가 주님을 항상 신뢰할 수 있다면
그 결과로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솔직한 기도
(눅22:39) ¶ 그분께서 나가사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매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더니
(눅22:40) 그분께서 그곳에 계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눅22:41) 그들에게서 물러나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어떤 자세로 기도하셨는지 보이시나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요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염려를 주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삶 가운데 가장 어려운 지점에 도착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떨어진 것입니다. (눅22:44)
다른 대안을 찾으신 예수님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들이키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길을 피하고 다른 대안을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최선임을 인정하심
예수님도 솔직한 심정을 아버지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순종입니다.
기도는 순종이지 지시가 아닙니다.
(요6:38)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히10:7)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였나이다, 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 뜻을 주장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가 바로 그 일을 하는데 최고의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시 보시기 바랍니다.
(눅22:43)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그분께 나타나 그분을 강건하게 하더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제안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했고, 그 길은
그는 죄로 가득찬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아버지가 보이지 않은 곳으로 떨어져 나가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기도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힘과 도움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자신의 뜻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본으로 보여주시는 그분의 삶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했다고 해서,
주님이 우리 주변의 그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주셔서 우리를 바꾸어 놓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마6:10)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하나님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가 실현되도록 하나님께 지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감사하는 자세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분의 뜻이 나의 뜻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고 기도하는 것
(마21:22)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믿는 것 believing
(약1:5)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약1:6)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지니라. 흔들리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나니
(약1:7)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주께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라.
6절 믿음으로 구하는 것
우리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규형잡힌 자세를 찾아야 합니다.
로마서 8:26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1장, 약1장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의 응답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그 기도의 결과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를 하면서
내 아들이, 내 아내가 구원받기를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도 분명이 내 아들과 내 아내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믿고 구원을 받도록 강제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내가 기도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강제로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십니다.
이 기도의 결과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인 각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는 누군가의 결혼관계가 올바로 서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이 모든 것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의지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21장의 내용과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가지고
균형을 잡아보기 위해서
이 모든 관련 구절들을 저울에 올려 놓고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믿음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의 기도에 항상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내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될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를 알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그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그리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으로 구한것은 모두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마21:22)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이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구절이 한 구절이 있습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주문과 같은 영접기도문이 적힌 전도지를 받아들고
그 기도문을 읽는다고 구원이 이루어질까요?
구원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믿음이 동반되어야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 기도와 함께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도문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믿음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역에 믿음이 행사되어야
그분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그 기도에 그런 확신이 있을때
그 기도에 응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그 응답이 우리의 최선의 길이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감사)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보다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할때 우리의 기도가 불평으로 들리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런 상태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시100:4) 감사와 더불어 그분의 문들에 들어가며 찬양과 더불어 그분의 뜰에 들어가서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라.
(시100:5) 주께서는 선하시도다. 그분의 긍휼은 영존하며 그분의 진리는 모든 세대에 지속되는도다.
우리가 기도로 그분 앞에 나아갈때
우리가 함께 가져가야 할 자세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떠오르는 필요가 있다면
숨길 필요없이 하나님 앞에 다 열어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취해야 할 자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문 앞에서 자세를 점검
그분을 만나는 문 앞에서서 잠시 멈추고 우리의 자세를 점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는 좋은 것들 그리고
나를 통해 이루신 모든 선한 것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모든 일에 감사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요구는 감사로 둘러 쌓여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떠올리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돕는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부모가 되어서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부모에게도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지면
얼마나 기쁜지 아실 것입니다.
자녀들이 자신의 속 마음을 열고 아버지께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 놓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 아실 것입니다.
한편 부모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올 때
올바른 자세로 다가오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때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고
그런 간구를 위해서 자신에게 오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올바르고 겸손하고 공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담대하고 겸손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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