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 세워진 교회
Notes
Transcript
제목 :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
본문 : 엡2:13
(엡2:13) 한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오늘은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그리고 그들이 마음에 변화가 생겨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들이 회중으로 모이고 함께 모여서 교제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행18:24) ¶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볼로라 하는 어떤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렀는데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 기록들에 능통하더라.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행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해 주니라.
(행18:27) 그가 아가야로 건너가려는 마음을 먹으므로 형제들이 편지를 써서 제자들에게 권면하여 그를 받아들이게 하니라. 그가 가서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행18:28) 이는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며 힘 있게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되 공개적으로 그리하였기 때문이더라.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확신시키고 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가있는 동안 바울이 에베소에 방문합니다.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이 위 지방들을 두루 다니고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 하거늘
(행19:3)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요한의 침례라, 하매
침례인 요한은 메시아가 오기전에 길을 놓은 사람이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고 외친사람입니다.
(행19:8) 그가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말하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강론하고 설득하되
에베소에서 복음의 전파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상은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롬1:16)
그리고 그들은 바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행19:23절을 보면,
(행19:23) 바로 그때에 그 길에 대하여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니라.
(행19:24)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 세공업자가 다이아나를 위한 은 성물 함을 만들어 장인들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주었는데
(행19:25) 그가 이들과 더불어 같은 직업을 가진 직공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선생들아, 그대들도 알거니와 우리가 이 기술로 우리의 재물을 얻는도다.
유대인들이라면 다이아나를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이아나를 섬길일은 없습니다.
유대인의 집에 은 성물 함을 가져다 놓고
거짓신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지점에서 이 지역에 소동이 일어난 것은
누군가가 다이아나를 섬기다가 종교를 바꿔서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고 이방인들입니다.
오늘의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여러분이 교회라는 장소 이외의 곳에서
10대 청소년과 80대 노인이 서로 같이 인사하고 교제하고
몇 시간을 같이 앉아서 같은 주제의 말씀을 듣고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마주 할 수 있는 곳이 교회말고 다른 곳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부유한 분도 있고 상대적으로 가난하신 분도 계십니다.
많이 공부하신 분도 계시고 학교를 많이 못다니신 분도 계실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어떤 분은
작은 월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어떤 분은 큰 아파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집에 살았는지 얼마나 배웠는지
여러분이 서울 사람인지 광주 사람인지 대구사람인지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데 어떤 제약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든,
수 십년간 오래 해 오신 분이든,
우리는 예배가 끝나면 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에 앉아서
같은 음식을 나누고 먹게 됩니다.
높은 직분의 사람이 앉는 좌석이 따로 없고
서열이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자리에 앉아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한 분의 구원자만이 계시고,
그분만이 우리의 공통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한 분의 구원자가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직종별로, 교육수준 별로, 소득수준별로, 부동산 보유 가치별로
여러개의 몸을 만들어서 우리를 구별된 몸 안으로 집어 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성장 배경도 다르고
서로 다른 취미생활을 하고 살아왔지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동일한 피값으로
한 몸안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서로가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저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피값이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지불한 피값은
동일한 값을 치르고 얻게 된 생명입니다.
그 값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갖을 수 있게 해주신
그분에게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
에베소에는 위대한 다이아나를 외치며 신전을 가득채웠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실 메이사를 선포했던 요한의 침례를 믿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 신전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실제로 오셔서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사도가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을 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앉아서 형제 자매로 서로 빵을 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그분의 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입니다.
이방인 유대인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우리는 하나가 되자고 구호를 외칩니다.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
평화롭게 살자고 합니다.
서로 미움과 다툼을 끝내자고 합니다.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사랑, 평화, 그리고 미움이 없는 세상들은
이미 우리 교회가 함께 모여서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교회가 누리는 것을 자신들도 누리고 싶어합니다.
우리와 그들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그 결과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운동가들이나,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를 만들고자하는 사람들이 찾고자 했던 것들을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지역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전통이나 식습관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전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이아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생이 유인이고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역을 통해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첫 번째 출생인 민족적이고 육체적 태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이루어주신 새로운 출생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우리가 누리는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삶은
과거의 어떤 삶과 신분으로도
대체할 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진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한 신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특징
에베소서 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에베소서의 특징은
에베소 교회의 어떤 문제나 현안에 대해서
언급하는 서신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서신서가 마찬가지 지만
이 기록은 지금 현재 교회에 모여있는 회중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장의 중심 대상은 에베소에 있는 이방인입니다.
(엡2:1)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2)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엡2:3)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2절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의 영을 따라 걸었다.”
구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주신 내용
하나님은
유대인에게만 율법을 주셨습니다. / 다른 민족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희생물을 드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민족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만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거룩한 날들(안식일)을 주셨고 주의 명절을 주셨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이런 명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흩어진 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거룩한 민족에게 편지를 쓰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신도 섬기지 않았다.
우리는 한번도 마귀를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만을 항상 섬겨왔다.
우리는 바위를 섬기거나 다이아나와 같은 이상한 신을 섬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방인들인 너희는 다이아나와 같은 것들을 섬겨왔다.
3절에서 우리도 다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며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죄인인 것은 맞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죄의 구덩이에 빠져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죄의 구덩이에서 허우적 대고 있던것을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엡2: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사랑할 때”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다고 할때 우리에 누가 포함되는지 아시나요?
에베소에서 다이아나와 같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은
유대인들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에 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랑하시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잘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까지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성령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서로 다는 쪽에 있는
이들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엡2:5)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종교적인 행위로(묵주 반지, 교리문답, 물침례)
사람들에게 구원을 확신시키는 것을
가증스러운 행위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경학교 졸업장이나 교회 직분으로는 구원을 담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저와 이들 모두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엡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엡2:7)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자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있으면 이방인은 그 회당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우상(다이아나)을 섬기던 이방인과
침례인 요한을 따르는 유대인들 모두를
다 함께 하늘로 올려서 하늘의 처소에 같이 앉아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광장에 같이 모여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로 그렇게 같이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주님은 결코 실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사람끼리도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건물에 함께 모여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교회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에 모여서
하나가 되어 같이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늘의 처소에 함께 앉혀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늘 위에서 해놓은 일을
이 곳 땅에서 교회에서 우리가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하늘에 함께한 우리 상태에 걸맞는 모습을 드러내고
보여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의 과거 경력때문에
그들과 같이 하기를 꺼려하신 분이 계십니까?
저사람은 너무 가난해서 저 사람은 너무 부자라서,
저사람은 전에 건달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같이하기 싫어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주님은 그들에게도 여러분과 동일한 피값을 주고 사오신 혼들입니다.
그들도 이미 주님께서 하늘의 처소에 함께 앉혀 놓으신 상태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영원을 함께 할 예수그리스도의 형제들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살았던 우리가 서로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주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사회운동가들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했던 것
다문화 가정이 차별없이 같이 할 수 있는 것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고
이런일이 실제로 가능해지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엡2:8)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2: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엡2:10)우리는 그분의 작품(workmanship)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workmanship)이요 ”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 기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행전 19장으로 가보겠습니다.
(행19:24)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 세공업자가 다이아나를 위한 은 성물 함을 만들어 장인들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주었는데
(행19:25) 그가 이들과 더불어 같은 직업을 가진 직공(workmen)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선생들아, 그대들도 알거니와 우리가 이 기술로 우리의 재물을 얻는도다.
그들은 손으로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을 직공(workma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44: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그때부터 네게 말하여 그것을 밝히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곧 나의 증인이니라. 나 외에 신이 있느냐? 참으로 신은 없나니 나는 다른 신을 알지 못하노라.
(사44:9) ¶ 새긴 형상을 만드는 자들은 다 헛되며 그들이 기뻐하는 것들은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니 그것들이 그들의 증인이로다. 그것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한즉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사44:10) 누가 신을 만들거나 새긴 형상 곧 아무것에도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형상을 부어 만들었느냐?
(사44:11) 보라, 그의 모든 동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 기술자(workmen)들 곧 그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함께 모여 서 있게 하라. 그리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며 함께 부끄러움을 당하리로다.
우상을 만드는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주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금속 조가리로 형상을 만든는 것에 내가 지친다.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이 형상이 너희에게 힘이 되느냐?
너희가 직접 새겨서 만든 이 나무 덩어리가
너희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네 스스로 만들어 놓고 네가 만든 것을 경배하는 것이
정말 제정신으로 하는 일이냐?
이 우상을 만드는 사람을 여기서도 기술자(workme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도 workman이라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만든것이 여러분과 대화도하고
여러분을 돕기도하는 경배의 존재로 여기시나요?
(엡2:10)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데메드리오가 성물함을 만들고 우상을 만들고
다이아니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살아있게 만들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너희를 빚어서 만들었고 생명을 불어 넣었다.
누가 진짜 기술자인가?
누가 더 나은 기술자인가? 너냐? 아니면 나 하나님이냐?
은으로 동상을 만든 너희들이냐? / 너희들을 만든 나이냐?
나는 너희들을 선한 행위를 하도록 만들었다.
너희가 만든 저 형상들을 그런 선한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만든 너 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엡2:11)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아 [할례자]라 불리는 자에 의해 [무할례자들]이라 불리던 자들이라.
유대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으로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자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엡2:12)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엡2:13)한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한 때 멀리 떨어져 있는 너희가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것 때문이 아니라
(제사장의 헌물, 의복, 명절, 성전)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야기 전개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엡2:14)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분리 벽을 허무시고
“우리 사이의 중간 분리 벽”
지금 읽은 구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일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의 벽으로 이해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셔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었고
아무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고, 아무때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사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지금 14절의 말씀을 이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가로막힘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구절은 요한의 침례를 따른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다이아나의 성물함을 만드는 세공업자와
광장에서 다이아나를 외치며 경배하는 사람들과
바위나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들 모두에게 자신의 긍휼과 은혜로 손을 내밀고
자신의 피로 이들을 하나되게 하셔서
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이들을 내가 들어 올려서 하늘의 처소에 함께 앉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너희가 이 땅에서도
내가 만들어 놓은 교회에 와서 함께 앉아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찬양하며
이 땅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다른 너희를 하나되게 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라는 공통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제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엡2:15)원수 되게 하는 것 즉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화평을 이루려 하심이요,
예수님의 육체는 여러분의 육체보다 중요합니다. 동의 하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투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우리들을 위해서
온갖 고난과 죽음을 감수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육신을 다른 형제 자매를 위해서
온갖 고난과 모독과 죽음을 감수하는데 사용하고 계십니까?
내가 더 배우고 높은 위치에 있다고
다른 형제자매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것을 꺼려하지는 않으시나요?
여러분이 좀더 비싼 아파트에 산다고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예수님의 찢겨진 몸이 무엇을 위해서 드려졌는지 알고 계시는 건가요?
“원수 되게 하는 것 즉 규례들”을 없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가 되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때문에 이들은 이방인들과
먹는 것이 달랐고 하고 다니는 모습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규례들은 사라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로 없애셨습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유대인이 나를 초청해서 커피를 못하시게 하면 어떨까요?
내가 청바지를 좋아하는데
유대인들이 내가 청바지 입는것을 비판하고 비난한다면 어떨까요?
나는 바지를 입는 것이 좋은데
유대인들이 치마를 입어야한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들은 정작 메시아가 오자 그분을 십자가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의 건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된 것은 구약의 율법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더이상 그런 것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가 되게하는 규례들을 없애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장벽이 되는 것은 이제 없앴으니
그런 장벽에 얽매여서 하나되는 것에 방해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닌 내가 너희를 지배하게 하라
율법이 너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지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나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나에게 오고 유대인도 나에게 와서
우리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예수님만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십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교제에 방해가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서 최고의 순위에 있다면
우리는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함께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고
이 교제가 지속되는데 큰 동력이 될 것입니다.
혹시 나라가 있어야 주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이 나라 다음의 존재 인가요?
여러분이 진보이고 보수인것이
예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 보다 중요한가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기 보다
애국성도이길 원하시나요?
내가 생각하는 애국과 다른 사람을 교회에서 몰아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을 가치없게 만든다면
주님이 만들고자하는 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그리스도가 아닌것은 다 똥으로 여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 오면
우리의 관심은 예수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누구든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 오면
우리의 관심은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인지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았다면 어떻게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누구든 구원받은 지체라고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기쁘게 환영하고 주님 안에서 교제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뒤로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 안으로 정치를 끌고 올 필요도 없고
사업이야기를 끌고들어 올 필요도 없습니다.
성도를 상대로 영업을 하려고 들어올 필요도 없습니다.
"화평을 이루려 하심이요,"
화평을 이루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엡2:16)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이이 원수 되게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로 가면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나머지 일들이 무엇인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님께로 화해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엡2:17)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엡2:18)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나니
(엡2: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유대인은 이방인이 아니고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구원을 받으면 이방인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으면 유대인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후에 모두가 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사람은 피부가 하얗고 코가 크고,
동양사람은 피부가 노랗고, 눈이 깊지 않고
아프리카 흑인들 피부가 검고 운동신경이 좋고,
어떤 사람은 커피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녹차를 놓아하고,
어떤 사람은 육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채식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 오면 좋아 하는 음식도 같아야하고,
좋아하는 옷도 같아야하고 피부색도 같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최상위 우선순위가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우리 모두가 붕어빵처럼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보다
예수님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절의 말씀은 내가 더이상 나와 다른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출신도 다르고 서로 좋아하는 것도 다르지만
우리가 동료 시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집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형의 성격이 틀리고, 형이 좋아하는 취미도 틀리고,
서로다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식구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고
나도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엡2:20)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엡2:21)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엡2:22)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우리가 건물을 지을때 많은 건축자재들이 필요합니다.
시멘트도 있어야 하고 벽돌도 있어야 하고 철근도 있어야 합니다.
건물이 하나 지어지려면 모든 자재가 순서와 공법에 맞게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한번에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바닥이 굳을때 까지 기다리고
그리고 한층을 올리고 층과 층 사이에는 계단을 만들고 하면서
건물을 지어나가게 됩니다.
모레와 시멘트와 벽돌이 조화를 이루어서
한장 한장 쌓여지지 않으면 개별 자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모레 자체가 우리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시멘트만으로 주방을 만들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배우려는 사람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가르치는 사람만 있어도 안됩니다.
대장이 되려는 사람만 있어도 안되고
앉아서 설교를 듣는 사람만 있어도 안됩니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질서있게 해주어야
교회가 쉼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께서
완전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라는 장소로 모여서 서로 골격을 맞추어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온라인 동영상 모니터에 붙어 앉아있어서
교회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내와 자녀들이 한 집에서 함께 만나서
식사하고 소통하고 다투고 섬기고 하는 일이
만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냥 동영상으로만 서로 여보 남편을 부르고
동영상 비대면 가족생활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다면
그 말에 순응하실 수 있으신가요?
새로운 높은 차원의 비대면 가족이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시려는 건가요?
비대면 예배라는 것이 성경에 있나요?
우리가 서로 “만났을때” 사랑으로 섬길 수 있고 서로 위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에 안드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주님을 위에 놓고 여러분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해야합니다.
모든 사람이 여러분 자신과 같지 않지만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예수그리스도로 하나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서로 헐뜯고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들이 씻겨졌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때문에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이 있으신가요?
그분의 은혜로 우리의 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세상 신분과 출신은
예수님의 신분 앞에 내놓을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 보다 더 가치있는
신분과 부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의 다른 것들은 멀리하고 주님으로 하나되는
낮은마음침례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