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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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올바른 회개
본문 : 행 20:21
(행20:21)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회개를 해야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고 규정을 했습니다.
회개가 여러분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가 없다면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해서 회개한 두 사람을 보게 될 것인데
이들은 회개는 했지만 구원은 받지 못한 사람들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회개는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지만,
회개를 하고도 다음 단계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찾아서 사례를 찾아 보겠습니다.
야곱과 에서
창세기에서 형제 관계인 야곱과 에서가 등장합니다.
에서는 장남입니다.
장남에게는 많은 기득권이 있습니다.
장남은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 중에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해서 그를 한 민족으로 세우십니다.
그 민족의 정통성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은 에서의 차례가 되는것이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
(창25:29) ¶ 야곱이 죽을 쑤었는데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지쳐서
(창25: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지쳤으니 원하건대 그 붉은 죽을 내가 먹게 하라, 하더라.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더라.
(창25:31) 야곱이 이르되, 이 날 형의 장자권을 내게 팔라, 하니
어느날 에서는 밖에서 오랜 시간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온 터라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죽 한 그릇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장남이 물려받을 모든 것을
나에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자권은 그냥 형이라는 호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남이 갖는 모든 권리를 동생이 달라고 하는데 형이 좋다고 대답합니다.
(창25:32) 에서가 이르되, 보라, 내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하매
에서는 배고파 죽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 "죽겠다"는 표현은 사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봐야 합니다.
에서는 그저 배가 고플 뿐 입니다.
보통 육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장자권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하매”
에서는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죽을것 같은데
죽을 먹지도 못해서 죽으면
나중에 장자권이 있은 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입니다.
(창25:33) 야곱이 이르되, 이 날 내게 맹세하라, 하니 그가 그에게 맹세하고 자기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파니라.
(창25:34) 이에 야곱이 빵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그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 자기 길로 갔더라. 에서는 이와 같이 자기의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빵과 팥죽을”
야곱은 처음 계약에 없었던 빵을 서비스로 제공합니다.
“장자권을 업신여겼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진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상속자가 되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결과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결정
에서에게는 지금 신중함이 없습니다.
젊은 형제 자매님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때
긴 안목에서 나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아무렇게나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편하고 지금 당장 즐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미래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미래는 오늘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과 무관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서는 지금 자신의 한 선택과 내뱉은 말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는 당장 뱃속에 죽을 집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금 자신의 미래에 큰 유익이 될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죽 한그릇에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깍지도 않고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혹시 여러분은 자신이 살집을 고를때나 직장을 선택할때
아니면 학생들은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할때
아니면 투자전략을 세울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며 선택하십니까?
지금 나의 이 선택이 부패하고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거룩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길인지를 마음에 두고 선택하고 계십니까?
인생을 앞선 어른의 조언
우리가 인생을 오래 산 어른 들에게 삶의 지혜를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그들은 모두 내가 젊었을때 좀더 진지하게 삶을 결정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좀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면,
내가 좀더 나의 영적인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고
결정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거룩함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12:15)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도록 할지니
하나님은 은혜에 이르지 못하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는 쪽은 사람입니다.
만약 교회 청년들이 성인이 된 후
너그럽게 받아주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교회를 떠나서 세상으로 나가서
인생을 허비하고, 술마시고, 답배피우고,
아내 이외의 여자를 만나서 인생을 보내고
40이 넘어서 자신을 되돌아 보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신을 냉냉하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차가운 눈초리와
가슴에 남겨진 후회와 응어리만 여러분의 삶에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좋을텐데,
좀처럼 반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는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아담의 본성인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이렇게 만든 분이 하나님이라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쓴뿌리의 시작은
여러분이 거룩함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결정한 것에서
그 뿌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절대로 돈만 보고 인생을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인생을 즐거움으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이 결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이끌어주는 결정인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 일로 하나님의 거룩함 안에서 걸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쓴뿌리를 심어서 키우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히12:16)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 한 조각(one morsel of meat)을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에서의 상황을 좀더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먹는 것 한 조각 때문에 장자권을 판 것입니다.(팥죽 안에 고기 덩어리)
(히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뒤에 그가 복을 상속받고자 하였으되 거절당하였으니 그가 눈물을 흘리고 염려하며 뜻을 돌릴 곳을 구하였으나 그것을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 뒤에"
에서는 어른이 되어서 장자권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알았을때는
이미 그 장자권은 자신의 손에서 떠나고 사라진 뒤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복과 주님과의 화평을 위해서
무엇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좋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그들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을
더러운 세상에 부패한 일들에 던져 넣고
나중에는 후회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바꿔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고 염려하며 뜻을 돌릴 곳을 구하였으나 그것을 찾지 못하였느니라."
지금 우리는 회개하는 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한 잘못을 어떻게 하면 고칠수 있는지
그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지금 그가 뜻을 돌릴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찾지 않는 후회
왜 그는 찾을 수 없게 되었을까요?
그는 거룩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 지금 회개하고 난 후도
그가 찾는 것도 거룩함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지금 회개하고 난 후에도
그가 찾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일들을 그저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일들을
고쳐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잘못된 일이 고쳐지기만을 바란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 입니다.
건강이 망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 망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찾아와서 기도하고
목사님을 찾아가서 기도를 부탁하고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된 결정으로 엉망이 된 문제를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께 삶을 맡기지 않는 회개
이 모든 생각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여전히 예수라는 분이
내 삶의 주인이되어서 내 삶을 이끌어주길 바라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내가 음행을 해도 임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남자는 바람을 펴도 내 아내가 떠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회사 돈을 조금 횡령했지만
이 일로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게해달라는 것입니다.
지우개를 원하는 회개
오늘도 하나님은 수천명 수만명의 회개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들 대부분의 기도는 내 잘 못된 결정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내 잘못으로 나오게 될 결과만을 지워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던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결과를 지울수는 없습니다.
그런 종류의 회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결정하고 실행한 일들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회개를 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고
그 죄로 인해 얻게 된 결과를 잘 관리하고 처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올바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분이 없이 살았을때 느낄 수 없었던
넘치는 기쁨과 행복과 화평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회개는 에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하나님의 거룩함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 한 것입니다.
유다의 회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밖에서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27:1) 아침이 되매 모든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이려고 의논한 뒤에
(마27:2) 그분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분을 넘겨주니라.
(마27:3) ¶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그분께서 정죄 받으신 것을 보고 뜻을 돌이켜 은 서른 개를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해서 팔아넘긴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뜻을 돌이켜”
지금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회개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는 지금 누구에게 회개를 하고 있나요?
그러나 그의 회개가 하나님께 이루어지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런 일을 저질러서 미안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분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것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배신한 일로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쁜 결과가 주어진 것이 미안한 것입니다.
"은 서른 개를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며”
이 일은 유다가 회개했다는 매우 중요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유다는 자신이 댓가로 받은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유다는 피의 댓가로 받은 더러운 돈을 도로 돌려준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씩 옮겨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27: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김으로 죄를 지었노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거늘
"죄를 지었노라”
유다는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옳바른 고백입니다.
"무죄한 피”
이 말도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이셨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거늘"
지금 죄를 지은 한 사람이 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제사장은 이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 제사장이 보여준 모습은 유다가 가져온 그 돈으로는
죄의 사면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제사장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27:5)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
유다가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할까요?
유다가 예수님을 잡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동산으로 왔을때
유다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유다를 향해 이렇게 말을 하십니다.
(마26:5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 하시매 그때에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거늘
"친구여, 네가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향해 친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은 삼십개에 값싸게 판 사람에게 친구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유다는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친구라고 불러주고 있는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정한 친구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를 아무댓가 없이 값없이 해결해줄 분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있던 강도는 예수님께 다가 갔습니다.
죄책감만을 지우고 싶은 유다
그러나 유다가 원한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다는 자신에게 지워진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자살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예수님을 가까이 두고도
그것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누구보다도 쉽게 예수님께 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회개를 하고도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잘못된 길로 간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고 향해야 할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은 여러분이 그 어떤 것을 고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고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회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면 들을 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잊지 말라야 합니다.
죄인들 끼리 비교해서 누가 더 나은지는 의미없는 일입니다.
(고후7:8) 비록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하노니 바로 그 서신이 잠시 동안만 너희를 근심하게 한 줄을 내가 아노라.
자신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교회 사람들을 너무 부끄럽게 만든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은 자신이 그 편지를 쓴 것을
후회(회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편지쓴 것을 후회한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편지로 인해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고후7:9)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식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너희가 우리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에서도 회개를 했습니다. 유다도 회개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다음에 어떤 차이를 보여주는지 보겠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식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에서는 근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방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근심했지만 구원에 이르게하시는 그분을 갖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받지 못한사람들 처럼 죽게 된 것입니다.
유다는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슬픔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예수님께로 이끌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회개는
죄는 해로운 것이고 그 죄에서 돌아서게 하는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그럴께요,
제가 그런일을 저질러서는 안되는데…
주님 제 부끄러움을 없애주세요 …”
라고 말만하지 말고,
주님께로 가서 그분께 구원을 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20:21)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하나님을 향해서 그분께 이루어진 회개라야
또다시 회개할 일이 없는 회개인 것입니다.
그 길은 옳은 길이고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고후7:11)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한 것 바로 이것을 보라. 그것이 너희로 하여금 얼마나 조심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너희 자신을 해명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분개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두려워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열렬히 갈망하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참으로 얼마나 징계하게 하였는가! 너희 자신이 이 일에서 결백함을 너희가 모든 일에서 입증하였느니라.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회개는 결과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회개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이런 일들을 행하게 만드는 것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들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그 일들에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음주운전을 하고 경찰에게 걸리고나서 하나님께 와서
"제발 벌금안나오게 해주세요. 다음부터는 다시는 음주운전 안하겠습니다."
이런 저렴한 방법의 해결을 위해 자꾸 하나님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인 찬스를 쓰거나 뇌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불필요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의 댓가는 여러분을 바로 잡아주지 않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그게 뭐가 문제데?"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는 다른 교회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와서
이런 죄 된 행위로부터 나를 구원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고 내 마음을 고쳐서
이런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는
나의 상속지분을 빼앗아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을 소홀히 했던 나를 고쳐달라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의 죄책감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꿔주셔서 고작 은 삼십개에 메시아를 팔아버리는 어리석을 일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나쁜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나쁜 일을 한 내가 도데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알고
나의 문제를 고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핵심은
어쩌면 우리의 잘못이 들통나지 않는다면 죄책감도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바람피는 남자는
바람을 피다가 걸리지만 않으면 땡규하는 마음으로 바람피는 겁니다.
그러나 걸리면 그때 가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은 걸렸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안걸리고 바람도 잘 피는데
나는 불쌍하게 걸렸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로 그런 수준의 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행위에 진리의 빛이 비춰지면
여러분의 죄와 잘못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드러난 잘못과 죄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더이상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딤후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초는 확고히 서 있고 거기에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며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 하는 글이 담긴 이 봉인이 있느니라.
(딤후2:20) 그러나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어떤 것들은 존귀에 이르고 어떤 것들은 수치에 이르나니
(딤후2:21)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존귀에 이르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
(딤후2:22) 또한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성경은 정욕은 위험하니 조심해서 다루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음난물을 조금씩만 보라든지
그러다 중독되면 도움을 요청하라든지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근처에 나타나면 곧바로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딤후2:23) 그러나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들을 피하라. 네가 알거니와 그것들은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딤후2:24)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딤후2:25)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시리니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과 은혜를 추구하지 않고
청년의 정욕을 쫓고 있다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의 행복을 반대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나는 내 육신의 정욕을 쫓아서 살테니, 하나님은 저리 비켜 계시라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때 좀 와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반대하는 행위들 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적으로 대하는 행위들 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여러분을 해롭게 할 뿐입니다.
(딤후2:26)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찾게 하려 함이라.
여기 한 사람이 올무에 걸려있습니다.
마귀가 올무를 설치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잘 숨겨 놓은 다음에
마귀는 덤불 속에 숨어 있습니다.
올무 안에는 술이나 담배나 돈이나 여자나
교회에 못하오게 하는 것이나
무엇이든 매력적인 것을 놓고 누군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무 안으로 들어오면
마귀는 올무를 당겨서 여러분이 구덩이에 빠지고
밧줄은 여러분의 발목을 옭아 맵니다.
하나님은 올무를 풀어주지 않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와서
여러분의 발목에 묶인 올무를 풀어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만약 너희가 회개를 한다면,
네가 스스로 발목의 올무를 풀고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에게서 마귀의 올무를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회개하면, 스스로 그 올무에서 나올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여자를 계속 만나면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계속 인격적으로 모독하면서 미안하다고 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재정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정 문제가 있다면 나가서 일해서 돈을 벌라는 것입니다.
자꾸 누가 얼마를 도와줬다는 간증만 하지 말고
스스로 일해서 벌으라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로 회개하고 있다면
허리를 숙여서 발목에 묶인 밧줄을 풀고 벗어나서
나가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발목에 묶인 올무를 그대로 놓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하나님께 자꾸 도와 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안하다고 말만하지 말고 스스로 올무를 풀고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내마음대로 잘 안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흘려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묻히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천년이 넘게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며
복음을 지켜왔고 여러분의 귀에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의 올무를 푸는 일조자 하기 싫어서
구원의 길을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타락으로 이끄는 올무가 여러분의 발목에 묶여 있습니다.
허리를 숙여서 그 올무를 풀어내십시오.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스스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오는 길을 선택하시고 그분과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5절 26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딤후2:25)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시리니
(딤후2:26) 이것은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찾게 하려 함이라.
마귀도 여러분을 원하고 있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가지게 만들고 싶다면,
마귀는 여러분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드리고 싶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받으실 것입니다.
마귀를 원망하는 일을 멈추시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비난하는 일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직접 마귀가 놓은 올무를 벗어버리고
예수님께로 스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에서는 상속지분을 돌려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올무를 벗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책감을 제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올무를 벗어버리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죄가 자신을 묶고 있는 올무를
벗어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도
자신들의 발목에 감겨있는 올부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방법으로 올바로 회개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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