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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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발람의 교리
본문 : 계 2:14-16
(계2:1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게 하고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며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계2:16)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우리라.
발람의 교리와 관련해 우리 신약 교회가 교훈을 삼아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은 발람의 교리란 어떤 교리를 말하는 것인가?
그 의미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있고 하늘에서 내려온 책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성경은 필요없다고 합니다.
신약성경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구약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구약 성경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읽은 계시록 의 내용도
구약의 민수기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발람의 삶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발람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의 주제를 이어나가지 전에
우선 우리가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약을 통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민수기 22장의 이야기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동하던 중
모압 땅에 이르게 됩니다.
모압에 있는 발락이 이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고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려주도록 하고자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발람이라는 대언자가 선택되었습니다.
발람에 대해서 주어진 정보는 아주 적습니다.
발람의 아버지는 브올이라는 것/ 보솔(벧후2:15)
발람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별다른 배경설명이 없이 갑자기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브돌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민22:5)
브돌은 아람으로부터 동쪽 산지에 위치해 있다(민23:7)
그곳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는 장소다. (신23:4)
이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발람의 배경에 대한 모든 정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꿈을 해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발람에 대한 궁금증
민수기 22장을 읽어 내려가면
이 사람에 대해 매우 궁금한 것이 생기게 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과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발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전달받아서 선포도 합니다.
어떤 관계인지 명확히 설명을 안되지만 발람과 하나님 사이에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발람은 점치는(divination) 일과 연관되어 있다. (민22:7)
발람은 또한 마술(enchantments)을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민24:1)
발람은 점쟁이(soothsayer)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수13:22)
발람과 하나님을 같은 라인으로 묶을 수 없습니다.
발람이 하는 일과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발람이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뭔가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발람은 올바른 하나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발람은
발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았지만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발람은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는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올바른 하나님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기서 잠깐 생각을 해보죠..
여러분은 옳바른 하나님은 가지고 계십니까?
주님의 의도와 뜻을 올바로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하나님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다면,
많은 부분이 엉망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문제를 처리할때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발람에 관한 언급 세 곳
1. 베드로후서 2장 15절에서 발람의 길을 언급합니다.
2. 유다서에서 발람의 잘못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 계시록 2장에서는 발람의 교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베드로 후서 2장에서 그 관련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대언자들이 있었던 것 같이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니 그들은 정죄 받을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심지어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자기들 위에 신속한 파멸을 가져오리라.
(벧후2:3) 그들이 탐욕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말들을 가지고 너희를 상품 취급하리니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오래되어 이제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받을 정죄는 잠자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대언자들이 거짓을 말하게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탐욕이라는 것입니다.
(벧후2:2)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독한 길들을 따를 터인즉 그들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요,
거짓 교사들로 인해서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 내용은 진리가 아닌 형편없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제 삶은 다른 사람들이 그 정도를 벗어나게 살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위선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대언자와 교사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구약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벧후2:15) 그들이 바른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
(벧후2:16) 자기의 불법으로 인해 책망을 받았으니 곧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그 대언자의 미친 것을 막았느니라.
이 말못하는 당나귀가 말을 한다는 것이 정말 미친 상황인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상황은 민수기 내용을 보면,
발람이 이런 상황을 이상하다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당나귀와 대화를 시도하고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은 지금 발람과 탐욕이 가득한
거짓 대언자를 서로 연관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에서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상품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지금 구약에서 하나의 사례를 가져와서
이것을 진리의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이 사례로 선택된 이유는 그가 옳은 길을 저버렸고
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5절)
그리고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딤전6:10)
(민22:7)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점치는 대가를 손에 들고 떠나서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발람이 하는 일이 점쳐주고 대가를 받는 일입니다.
(민22:8)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을 여기에서 지내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내가 너희에게 말을 다시 전하리라, 하니 모압의 통치자들이 발람과 함께 머무니라.
8절을 보면 발람은 내가 하나님께 물어보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는 것은 그 이유가 때로는
우리가 그 질문의 답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22:9)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셔서 이르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기도요청을 하기 전에
미리 발람을 찾아 오셔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물으십니다.
(민22:12)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12절에서 이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전합니다. (13-14절)
(민22:13)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통치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주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는 것을 거절하시느니라, 하니
(민22:14) 모압의 통치자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이르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나이다, 하니라.
거절의사를 확실히 통보한 것입니다.
(민22:15) ¶ 발락이 여전히 그들보다 존귀한 통치자들을 다시 더 많이 보내거늘
발락은 더 많은 사람을 발람에게 보냅니다.(15절)
(민22:17)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큰 존귀에 이르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리니 그러므로 원하건대 와서 나를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매
더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민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자기 집을 은금으로 가득히 채워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주 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서 적든 많든 할 수 없노라.
발람의 답변은 많은 은금을 주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넘서서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에는 지금 은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받고 싶다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은금의 제안은 발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만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받고 싶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교회들에서 부흥 강사들 불러서
건축헌금 강요하게 만들고 목사에게 잘 해주라고 말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민22:19) 그런즉 이제 청하건대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묵으라. 주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지 내가 알아보리라, 하더라.
발람은 하나님께서 혹시나 마음을 바꾸지 않을지 기다려 보고 싶은 것입니다.
뭔가 합당한 명분이 생긴다면 은금을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민22:20)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너는 오직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시니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오거든"
20절에서 하나님은 "만약(if)"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조건이 이루어지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민22: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모압의 통치자들과 함께 가니라.
발람은 조건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곧바로 그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20절의 조건을 확인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따라갔습니다.
(민22:22) ¶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이제 그는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었는데
왜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을까요?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집에 은과 금으로 가득찬것을 향해 간것입니다.
발람은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이미 은과 금에 빼앗긴 상태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가는 것입니다.
발람의 의사결정의 근거
발람이 하는 일의 방향이 이런 것입니다.
발람의 의사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명확히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발람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부분은 내가 이일을 하면
나에게 어떤 유익한 결과가 주어질지에 대한 것이라는 겁니다.
발락이 원하는 일을 하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생길지가
발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의 의도대로 뒤틀어서 자기의 유익에 맞추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유익이 생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돈이 된다고 하면 오라고 하는데는 다 가면서
자신의 양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찾아가면 돈 줄만한데는 열심히 찾아가는 목사가 있다면,
그 일의 원조는 발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목사는 그들의 삶에 활력이 되는 성경 말씀 몇가지 던져주고
대가로 사례를 받고 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거짓 목사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유다서와 베드로후서는 쌍둥이 구절처럼 유사합니다.
가능하신 분은 유다서와 베드로 후서 2장을 오가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1:4)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라.
(벧후2:1) "이단 교리들을 몰래 들여와” /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고”
(유1:6)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벧후2:4)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벧후2:4)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유1:7)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것들의 주변 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
(벧후2:4)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
(유1:8) 또 그와 마찬가지로 이 추악한 꿈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고 통치권을 멸시하며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
(벧후2:10) "행정권을 멸시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 “두려운 줄도 모르고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유1:10)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그것들을 비방하고 또 이성 없는 짐승들같이 자기들이 본능으로 아는 것 즉 그것들로 인하여 스스로를 부패시키느니라.
(벧후2:12)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비방하므로” / "자기들의 부패 속에서 철저히 멸망”
(유1:12) 이들이 너희와 함께 잔치를 할 때에 두려움도 없이 먹으니 그들은 너희의 사랑의 잔치에 얼룩이라.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는 물 없는 구름이요, 열매가 시들고 열매가 없으며 두 번 죽어 뿌리째 뽑힌 나무요,
(벧후2:17)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다니는 구름이라”
(유1: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어내는 바다의 성난 물결이요, 떠돌아다니는 별들이니 그들을 위해 캄캄한 어둠이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느니라.
(벧후2:17) "그들을 위해 어둠의 안개가 영원토록 예비되어 있나니”
이런 모든 일의 결과가 어디로 이어지는 보겠습니다.
(유1:11) 그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들이 가인의 길로 갔으며 대가를 바라고 발람의 잘못을 따라 탐욕을 내며 달려갔고 고라의 반역 가운데서 멸망하였도다.
(벧후2:15) 그들이 바른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
이 두권의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이토록 유사한 것이 놀랍지 않나요?
베드로후서 2장 1절에서 사람들은 정죄받을 이단 교리를
몰래 들여오는 거짓 교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다서1:4에서는 이런 불경건한 자들이 교회 안으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교회에서 일어나는 이 두가지 상황이
구약에서 발람의 잘못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서에서 발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고
베드로후서 2장에서 발람의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고,
세 번째
이런 상황이 만들어 지는 데는
계시록의 발람의 교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계2:12-16절의 내용은 버가모에 있는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계2:12) 버가모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계2:13)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계2:14)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이는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게 하고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며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거니와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계2:16)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우리라.
발람의 교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걸림돌을 놓아서
어떻게 이들이 잘못된 것을 붙잡게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확인해 보기
구약으로 가서 내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부릅니다.
발람은 발락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다 다시 가게 되는데 천사가 그의 길을 막아서게 되고
당나귀가 천사가 막아선 길을 멈추자
발람은 당나귀를 때립니다.
그리고 당나귀와 발람은 대화를 나눕니다.
발람은 발락과 함께 올라 갑니다.
그리고 희생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번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24:25) 발람이 일어나 가서 자기 처소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가니라.
발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발락도 자신의 길로 돌아간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이 고용한 이유와 목적을 이루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은과 금을 받지도 못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산 이스라엘
상황이 이렇게 그냥 끝났다면 좋았을텐데,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민25:1) 이스라엘이 시팀에 머무르며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행음하기 시작하니라.
(민25:2)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릴 때에 백성을 부르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니라.
(민25:3) 이스라엘이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연합하였으므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니라.
(민25:9) 그 재앙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더라.
고린도전서 10:7에서도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저주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하려던 일을 못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하나님이 진노를 하십니다.
그 이유가 발람이 한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발람은 이들에게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하신 이유는 발람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발람의 죽음
민수기 31장에서 이스라엘은 미디안과의 전쟁에 이깁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누가 죽었는지 보겠습니다.
(민31:8) 그 죽은 자들 중에서 남은 자들 외에 미디안의 왕들을 죽였으니 곧 에비와 레겜과 수르와 훌과 레바 즉 미디안의 다섯 왕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도 칼로 죽였더라.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조언을 따라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브올의 사건에서 주를 대적하고 범법하게 하여 주의 회중 가운데 재앙이 있었느니라.
민수기 25장에서는 보여지지 않았던 자세한 정보가
여기에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24장에서는 발람이 떠났습니다.
2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과
음행과 우상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31장과 계시록 2장으로 보면
이 모든 일의 뒤에는 발람이 발락에게 가서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해 준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람이 돌아와서 발락이 제안한 은과 금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궁리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불법이 보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에게서 삐뚤어진 것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이들을 저주 할 수 없었다면,
이들이 스스로 저주를 받게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발람이 한 어떤 일도, 그리고 이스라엘이 한 어떤 일도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들의 위치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 근거한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잘 지키든 지키지 않든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은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잘 지키는지 아닌지는
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지 그 축복에서 떨어져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이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인지, 아닌지
그것은 이들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부패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지는 이들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전가된 의를 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의롭다고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서 불법과 삐뚤어진 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론을 가지고 우리가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발람의 교리인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그렇다고 가르치는 것,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여러분의 축복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늘에 가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주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발람의 교리를 절대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구원을 받았으면 다 된 것이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구원시켜주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 이상의 멋진 일들을 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 이상의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말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노래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활하는 것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발람의 교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은
교회 안에서 발람의 교리가 설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움직이고 타협하고 가는 길이 바로
발람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발람의 길로 가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게 한다고 하면서 계속 죄가운데 머물러 있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너무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
그러나 동성애자도 같이 끌어안고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서로 끌어안고 가자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저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육신적인 일들에 초대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들수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발람의 교리를 결코 우리가 가져갈 멍애가 아닙니다.
발람의 잘못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해서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을 섬기게 만드는 사람들
돈이 생기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고,
돈이 안생기면 하나님이 막는 일이라는 것으로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맘몬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라고 한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그 기준이 돈이되는 사역을 하는 일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숫자가 많아져야 좋은 교회라고 말하는 사람들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만 가득채워서
그들을 필요를 만족시켜서 교회를 이끄는 모습들,
이 모든 것들은 발람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댓가가 기준이 되는 결정
베드로 후서에서 발람의 길이라는 것은
그들의 결정의 배경과 동기가
그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발람의 길의 끝
결국 발람이 받은 것은 은과 금으로 가득한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발람의 교리를 따라서 범법을 가르쳤던 사람들은
모두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발람의 길의 끝은 어디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발람의 길은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육신을 쫓아 사는 것은 죽음 뿐 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사망입니다.
영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설교를 마치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발람과 같은 끔찍한 교회가 있고 그런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다시 고린도전서 10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고전10:11) 이제 이 모든 일은 그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났으며 또 그것들은 세상의 끝을 만난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기록되었느니라.
(고전10:12) 그런즉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
의외로 우리가 발람의 교리를 지지하는 일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킹제임스 성경을 꼭봐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떠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성경보다는 정치적 주장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변해있습니다.
교단은 마귀가 집어 넣은 누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단이 만들어진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의 결과에는 분명이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주 작은 잘못된 교리들이 가르쳐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영향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항상 하나님을 위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의 뒤에는 사람들의 육신적 유익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그 뒤에는 돈과 명예와 세력을 규합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단 발람의 길로 방향을 틀어서 가게 된다면,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지를 알게 된다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우리가 아주 작은 잘못된 교리라도 허용한다면,
우리는 발람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방향의 것을 하고있지 않은지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어디에서는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교회 인원수가 줄까봐,
더 많은 사람이 교회에 올수 있다고 생각해서,
교회에 인원이 더해지던 빠져나가던
그 영역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선상에 있는지를 항상 살피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정도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교회 안에 방치한 일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켜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타협점을 주는 것이 바로 발람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
여자는 교회 안에서 가르치지 마라,
여자가 물을 것이 있으면 네 남편에게 가서 물어봐라,
이런 말씀에 타협점을 찾고 계신다면,
여러분 자신은 발람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은 누군가 저주하도록 고용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교회 목사에 대한 성도들의 생각은 이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머니를 통해서 그의 월급을 주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더 붙잡고 싶을 것입니다.
한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발람이 한 일이라는 것은 그가 물질적인 이익으로 보이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적인 욕구를 물질적인 보상으로 채울 수 있는 일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의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쾌하게 주신 말씀을 옆으로 제껴놓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정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용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쓰고 계시나요?
발람에게 그런 길의 결과는 어떻게 주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전10:11) 이제 이 모든 일은 그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났으며 또 그것들은 세상의 끝을 만난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기록되었느니라.
(고전10:12) 그런즉 스스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할지니라.
발람은 매우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실존 인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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