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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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 안에서 새 삶
본문 : 고후 5:17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구원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얻게 되는 새로운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성령님께서 침례를 주시고
우리를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주시는 일이
믿는 순간 순식간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봉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엡1:6)
우리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죄가 없고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엡1: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흠이 없게 드러나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엡1:14)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얻게 된 이 위치는 영원히 안전하게 보장되는 것이고
그 안전은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봉인해서 보장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결과가 망가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그 순간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게 봉인이 되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안전하게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완전하고 안전하게 끝내시게 되는 것입니다.
(빌1:6)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우리의 몸이 구속받을 그 순간 까지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게 봉인되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특권과 특혜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하신 주님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죄와 사망과 지옥과 무덤을 이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 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죄의 유혹으로부터도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고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환경을 이기게 해주시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그 사실로 인해서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나의 사후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보장받는 것이지만,
또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나의 매일의 삶에서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받아들였듯이 그렇게 그분 안에서 걷되
그리스도 안에서 걷게 되면
구원받은 후 하늘에 갈때까지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엡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엡2:10)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에 나의 선행은 일조를 한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선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
결국 우리 삶의 전부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가
우리가 선한 행위를 열심히 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딛2:14)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장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선한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읽은 구절은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선한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성경에서 제시하는 이 놀라운 개념의 진리와 교리와 원리들을
나의 매일의 삶에서 적용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런 진리를 내가 나중에
영원한 세상에서 이루어질 개념정도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삶에서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구원의 보장, 하늘에 거할 집,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창조물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사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4가지 핵심단어
4 가지 핵심 단어에 집중해서 그 해답을 찾아 보겠습니다.
(롬5: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내가 죄인이 된것은 한 사람의 불순종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롬5:20)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
(롬5:21)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19절에서 한 이야기는
나는 본래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얻은 구원
그래서 나의 순종으로는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구원은 나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했던 분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던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시던 그 순간에도 이 사실이 진리였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한 것은
우리의 구원 이후에도 이것이 진리이신 분이십니다
구원 이후에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주님
우리가 주님의 순종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
우리가 순종으로 주님을 기쁜게 해드리고 있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겠지만,
우리는 구원 이후에도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순종과 아무 상관없이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 우리에게 복된 일입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충분히 다 덮어주실 능력이 있으시고 의지가 있으시다면
우리가 그럼 고민없이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되는게 아니겠냐는 질문입니다.
죄가 얼마나 더러운건지 얼마나 무서운건지를 잘 모르고
죄의 쾌락만 가지고 죄에 더 머물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네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짐을
예수님의 힘으로 벗어나게 해 주었기 때문에
너희가 전과는 다른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나쁜 방법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의로운 삶을 만들어 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을 지배할때
내 삶속에서 의로운 것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롬5:21) 이것은 죄가 군림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를 통해 군림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죄를 지을 수 있다는데 사용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들 가운데서 죽음 / 죄에 대해서 죽음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롬6: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dead to sin)
1절과 같은 생각을 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어 주신것은
우리도 주님과 같이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마련해주고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엡2:1)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2: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엡2:3)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엡2: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엡2:1) ...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
(엡2: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
(롬6: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1. 에베소서 2장에서는 내가 죄 가운데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로마서 6장 2절에서는 내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에서는 나를 함께 살리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살아나게 하신 걸까요? 예수님과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5-6절을 보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앉히셨다고 합니다.
(엡2: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내가 복음을 믿었을때
죄가운데 죽은 나를
죄에 대해서 죽게하시고 나를 그리스도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dead to sin
(롬6: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장의 침례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와 같이
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모두 함께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면 나도 죽습니다.
그분이 묻히면 나도 묻힙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고 하셨습니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그리고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된다고 하십니다.
(롬6: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면 내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도 죽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시면, 내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도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 나는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도 일으켜지고 부활하게 됩니다.
그럼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5절에서 죽음으로 심겨졌던 것은 무엇인가요?
6절에서 이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머리를 떨구고 자신의 영을 포기하고
그분의 몸은 무덤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의 옛 사람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죽고 묻힌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옛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묻힌 것입니다.
옛 사람은 어떤 권리도 없고 특권도 없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 후 같은 몸 그러나 새로운 몸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흘 뒤에 그 무덤에서 다시 걸어 나오실때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은
옛 사람은 버리게 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4절)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뒤에
그분은 여전히 같은 예수님이셨고 몸도 같은 몸이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무덤으로 들어가실때와 무덤에서 나오실때에는
완전히 다른 상태로 바뀌신 것입니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로 돌아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문을 사용하지 않고도 방으로 들어 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기어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눅24:39)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살과 뼈는 그 이전의 상태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고, 나의 옛 사람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나는 이전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안에 계십니다.
내 안에 새 사람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하려는 새로운 소망들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이 죽으실때 나의 옛사람도 죽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실때 나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 가운데 죽지 않고,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주님이 주신 위치를 누리기 위해서
(롬6: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롬6: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롬6:7)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롬6:8) 만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6: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으므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6:10) 그분께서는 죽는 것을 통해 친히 죄에 대하여 단 한 번 죽으셨으나 살아 계심을 통해 친히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시나니
여기서 의문이 들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내가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으며
이 사실은 성령님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는
내 위치에 관한 이 교리를 내가 어떻게 매일의 삶에서
현실로 드러나게 만들 수 있을까? 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네 개의 단어로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미 일은 3절에서 나온 단어 입니다.
1. 알아야 합니다.
(롬6:3) ...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6: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롬6: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으므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해야 할 새 생활은
그 시작이 아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진리를 잘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리를 안다는 것은 논리적 주장을 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를 안다는 것은 여러분의 매일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마22: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
(호4:6) ¶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딤후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딤전4:13) 내가 갈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라.
매일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목사가 성경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듣고
교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
구약에서 희생물을 가져와서
성막에서 희생물을 드리게 하신 이유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알지 못하여 지은 죄들로 인해 희생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민15:24) 회중이 알지 못한 가운데 알지 못하여 조금이라도 죄를 지었거든 온 회중은 어린 수소 한 마리를 주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 헌물로 드리고 관례에 따라 그것의 음식 헌물과 음료 헌물을 드리며 또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죄 헌물로 드릴지니라.
누군가 잘못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르고 했다고 해서 잘못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았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에 대해서도
희생물을 가져와서 죄를 씻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판에 율법을 기록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을 세워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모른다는 변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다르게 다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몰랐다는 것도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몰라서는 안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변명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계속 말씀하십니다.
알아야 한다. 모르기를 원지 않는다. be not ignorant
우리는 아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단어는 여기라는 것입니다.(reckon)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참으로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산 자로 여길지어다.
옛 것은 지나갔고 이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새로운 생명으로의 삶을 시작할지에 대한 시작은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그 다음은 내가 알게 된 것을
진리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면
이제 그 알게 된 것에 대해서 내가 결심을 하고 마음에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진짜 진리이고 맞는 말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앞서서 읽은 10개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보고 계십니다. (2절)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3절)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습니다. (4절)
새로운 생명으로 일으켜졌습니다.(4절)
십자가에 못박혔고(6절)
죄로부터 해방되었고(7절)
그리고 11절에서 이와 같이 여기고 받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여기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분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있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육신이 죽었다고 여기고 계시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육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계시냐는 것입니다.
여기다라는 영어 reckon은 회계용어 이기도 합니다.
장부에 그 가치를 달아 놓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부에 그 가치가 기록되고 달아 놓아야
그 가치만큼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왔거나, 수입이 생겨서 돈이 들어 왔다면
그 금액 만큼을 장부에 달아 놓아야
얼마가 들어와서 얼마를 갚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이 받은 영적인 자산을
자신의 장부에 실제로 기록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벧후1:3)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여러분이 받은 자신을 여러분의 장부에 기록하고
그 강력하고 풍부한 자산을 이용해서
여러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빌4: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고후9: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실은 여러분의 장부에 진리로 기록해 놓으셨나요?
우리는 들어서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장부에 지워지지 않게 기록하셔야 합니다.
(롬6:8) 만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그분과 함께 살 줄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 믿음은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걷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3. 세 번째 단어는 "내어 드리라 yield"입니다.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4)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
12절에서 죄가 너희 안에 군림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죄가 우리 안에 군림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용납하기 때문입니다.
(롬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지으리요?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롬6:16)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내어드린다고 번역된 단어 yield는 양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앞질러 가지 않고
주님이 먼저 앞서도록 주님이 먼저 주도권을 잡도록
내어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결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내 육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나를 구원해주신 분의 기쁨을 위해서 결정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본성대로 결정할 것인가
나를 억제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결정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어 드린다"는 성경적 의미는 골로새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의 육신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양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앞서게 하시고 우리는 그분을 뒤를 따라야하는데
우리의 옛 사람은 주님보다 앞질러가서 모든 일을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그 길을 내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9:27)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4:22) 이전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릴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엡4:23) 너희의 생각의 영 속에서 새롭게 되라.
여러분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벗어버려야 할 존재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옛 사람이 죽었다고 여기십니다.
우리도 옛 사람이 죽었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옛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 진리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튀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반응해야 합니다.
옛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첫 번째 두 번째 이슈로 돌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옛 사람이 죽은 것으로 여겨야 하고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양보해서
주님의 의의 도구로 쓰임받도록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 단어 순종 obedience 입니다.
(롬6:16)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knowing / reckonning / yield / obey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롬5:19)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은 우리의 순종이 필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은
이들의 순종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들기 위해서
훈련시키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해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주 섬세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내가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고리도후서에서는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고후3: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는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우리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강제로 구원을 받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대로 살도록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도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순종은 자신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그런 순종이 아닙니다.
이 순종은 내가 육신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순종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순종은 결국 포기하게 만들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을 다른 죄를 더 짓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순종은 내가 알게 된 진리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은 내가 진리라고 여긴 것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그분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위치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삶을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나갈지는,
내가 알고 있는 진리를 사실로 여기고
나를 죽이고 주님께 앞장서게 하고,
그분의 뒤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지에 따라 달려있는 것입니다.
(갈5: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갈등의 해답이 16절에 있습니다.
(갈5: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의 욕심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요?
우리가 죄에 점령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일 아닐까요?
그 해답은 성령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걷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갈5: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로마서 6장에서 살펴본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여기라고 다시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떻게 성령 안에서 걸을수 있기때문입니다.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갈5: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늘에 가는 것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도 복음과 같이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기위해 실체적인 순종을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아야 하고,
진리로 여겨야하고,
나를 주님께 양보해야하고,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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