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을 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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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벨탑을 세우는 사람들
본문 : 창 11:4
(창11: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라는 말 안에는 누가 포함이 되어 있을까?
우리끼리 모여서 몰아내고 싶은 존재가 있나요?
(창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11:2) 그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 거하니라.
(창11:3)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창11: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창11:5) 주께서 사람들의 자녀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니라.
(창11:6)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하니 이제 그들이 하려고 상상한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11:8) 이처럼 주께서 거기서부터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 세우기를 그쳤더라.
(창11:9)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거기서부터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더라.
한절씩 보겠습니다.
하나의 언어
(창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온 땅의 언어가 하나라면 우리 생각에는 많은 것들이 좋아질 것만 같습니다.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의 언어로 지식을 쌓아간다면
더 많은 지식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쓴 논문을 언어의 장벽없이 읽을 수 있다면,
인터넷 쇼핑할때도 언어의 장벽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로 세상의 종교를 통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무신론자든 모두 같이 모여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세계는 하나가 되어서 대단한 일들을 해 낼것 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창세기 11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일 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UN을 만들어서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도시를 세우자고 하고 있고 함께 탑을 높게 세우자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UN을 만들어서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UN 건물 앞에는 이런 성경구절도 적혀있습니다.
이사야서 구절의 일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2:4) 그가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며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리니 그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자기들의 창을 쳐서 가지 치는 낫을 만들리라. 민족이 민족을 치려고 칼을 들지 아니하고 그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
이들이 우리가 함께 연합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은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직접 통치하는 세상이 될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배워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나누시는 하나님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1:2)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창1:3)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4)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지금 읽은 네 개의 구절을 보면
1절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4절에서 하나님께서 나누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기록해 놓은 내용입니다.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창1: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창1:6)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이 함께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물들도 나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누시는 것을 성경의 시작부터 하고 계십니다.
(창1:14) ¶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또 그것들은 표적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해(年)들을 나타내라.
(창1:15) 또 그것들은 하늘의 궁창에서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16) 하나님께서 커다란 두 광체를 만드사 큰 광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광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또 별들도 만드시고
(창1:17)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사 땅 위에 빛을 주게 하시며
(창1: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어둠에서 빛을 나누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기 시작하고 있다면,
그분에 대해서 배우고자 성경 말씀을 펴서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 할때
우리가 첫 페이지를 펴서 하나님께서 하신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면,
1장에서 다섯 번이나 나누는 일을 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과 신약을 다르다?
어떤 분은 그것은 구약이라 그런 거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냉철하시고 엄격한 분이라 그러시지만,
예수님은 사랑이 많은신 분이라 우리가 모두 서로 사랑하고
하나나기 되길 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어울리고 연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구약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눅12:51) 너희는 내가 땅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열이니라.
“너희는 내가 땅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여러분은 “네!!!”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신 분이기 때문에 화평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불교다 기독교다 천주교다 이슬람교다 하면서
서로 분열하지 말고 모두가 하나가 되자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51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열이니라.”
(눅12:52) 이제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하며 둘이 셋과 하리니
(눅12: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와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분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왜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심판을 이야기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적받기 싫어하고 판단받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분열을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이런 분열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런 분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이단을 허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교회 안에서는 분열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엡5:8) 너희가 한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들이
서로 나뉘어 구별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가 서로 분리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둘이 하나가 되어 걸어가길 원하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빛을 어둠에서 나누셨습니다.
어둠과 빛을 나누듯이 자신의 양과 세상의 염소가 분리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것과 정결하지 못하는 것을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 안에는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무언가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리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고 시간을 빼앗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멀리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절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눈 앞에서 치워버리셔야 합니다.
(시101:3) 내가 사악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곁길로 가는 자들이 행하는 일을 미워하오니 그것이 내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육신을 즐겁게하는 것이 여러분을 집요하게 붙잡고 있다면
여러분은 말씀으로 거룩함을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거부하셔야 합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잊고
다른 것에 빠져서 살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성경을 읽는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시도합니다.
거룩함 같은 것은 잠시 잊어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의로운 것은 잠시 잊고 살도록 가르칩니다.
너무 거룩하고 너무 의로운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불의와 타협을 하고 하나가 되자고 말합니다.
우리가 킹제임스 성경을 고집하고자 하면,
세상은 우리를 속좁은 고집쟁이로 치부하거나,
킹제임스 성경을 우상화하는 이단 종교취급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분열을 조장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위해서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합니다.
거룩한 삶과 올바른 성경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말씀을 포용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도시와 탑을 세우는 사람들
(창11:2) 그들이 동쪽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땅에 있는 평야를 만나 거기 거하니라.
(창11:3)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창11: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력으로 도시를 만들고 탑을 만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계십니다.
심지어 화를 내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해서 내려와서 이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고
이들을 지면에서 흩어버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방어 체계를 만듬
도시와 탑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도시와 탑은 뭔가 방어 체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시에 거대한 탑을 세우고 벽을 세워서
누군가의 침략이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에 탑을 세우는 것은 방어를 쉽게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망대(탑)의 역할
(왕하9:17) 예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었는데 예후가 올 때에 그가 그의 무리를 탐지하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매 요람이 이르되, 기병 하나를 취하여 보내고 그들을 맞이하게 하며 말하기를, 평안하냐? 하게 하라, 하니
파수꾼은 망대(탑)에 올라가서 멀리까지 바라보며
적들이 오는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적군이 오는 것이 보이면 망대 아래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적들의 공격에 준비를 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11장 사람들이 탑을 세운 이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창세기 11장의 모습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도시에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흩어지지 말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도시에 탑을 만드는 장면이 흥미롭게 보입니다.
그들은 도대체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누구로부터 보호를 받고자 탑을 세우고 있는 걸까요?
이런 방어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하나님의 반응을 보면 이들의 행위는 매우 나쁜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망대를 세워 안전을 지키시는 하나님
(마21:33) ¶ 다른 비유를 들으라. 어떤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그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포도즙 틀을 파고 망대를 세운 뒤 농부들에게 그것을 세주고 먼 나라로 갔다가
주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집주인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 집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안에다 주변에 울타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망대를 세운 뒤에 농부에게 맡깁니다.
자신의 민족이 보호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 받게 하신 것은 농부가 농사를 잘 지어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포도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 마저 죽입니다.
(마21:37) 그가 맨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으나
(마21: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이르되, 이 사람은 상속자니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의 상속 재산을 빼앗자, 하고
(마21:39) 그를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내던지고 죽였느니라.
이들은 포도원을 주인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위해 포도원을 지킨것입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다른 적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지킨 것입니다.
이들이 맺은 열매는 폭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리새인을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용을 계산해 보라
(눅14: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 할 때에 자기가 가진 것이 그것을 완성하기에 충분한지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14:29)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그가 기초만 놓은 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보는 모든 자가 그를 조롱하기 시작하여
(눅14:30) 이르되, 이 사람이 세우는 일을 시작하고 완성하지는 못하였다, 하리라.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망대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망대를 세워서 어둠으로부터 악으로부터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할때는
우리가 이 일을 완수 할 수 있는 비용과 능력이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비용이라는 것을 자꾸 믿음의 영역에서 해결하려는 분들이 계시는데
돈은 더하고 빼서 계산하는 대상이지,
빈 헌금주머니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고
아무 과정없이 헌금 주머니에 돈이 채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목적한 규모와 예산을 잘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다가
변죽만 울리고 중도에 그만 두면, 조롱을 받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계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제자가 되는 길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니 시작할때 너희가 중도 포기 없이 할 수 있는지
자신의 능력과 각오를 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망대보다 주님을 먼저
(대하14:7) 그러므로 그가 유다에게 이르되,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 도시들을 건축하고 그것들 주위에 성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을 구하고 우리가 그분을 구하였으므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사방에 안식을 주셨느니라, 하였으며 이에 그들이 건축하고 형통하였더라.
자신의 도시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기 위해서
성벽과 망대를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하나님을 구하는 일이 먼저 있지 않으면,
우리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시127:1) (솔로몬을 위한 시, 위로 올라가는 노래)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우리가 도시를 세우고 망대를 세운다고 하더라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길 원한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곧 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말라. 주는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로켓을 만드는 사람들 편에 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무기를 만들고 전략을 세우는 사람들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삼하22:1) 주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지신 날에 그가 이 노래의 말씀들로 주께 아뢰니라.
(삼하22:2) 그가 이르되,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구출자시요,
(삼하22:3) 내가 신뢰할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로다. 주께서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시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높은 망대가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악한 사람들에게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적은 누구일까요?
창세기 11장의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고 망대를 세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누구로부터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탑을 쌓은 것일 까요?
그들이 자신의 도시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개입을 막으려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세운 도시에서 자신들이 세운 질서속에
하나님이 개입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그들의 적은 하나님이 아닐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조상들을 홍수로부터 멸망시킨 것을 보았고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도시에 탑을 세운것입니다.
그리고 벽을 높게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11:3)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창11: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이 구절들을 보면 주님이 보시기에
이들에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시게 됩니다.
(창11:5) 주께서 사람들의 자녀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니라.
(창11:6)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하니 이제 그들이 하려고 상상한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간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럼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홍수 이후의 사람들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이들의 수명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 달라진 점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아담의 후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창6:5) ¶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들의 마음과 상상하는 것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서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1장의 사람들도 여전히 그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11:6)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하니 이제 그들이 하려고 상상한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홍수 이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상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들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시고
그분의 지혜로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악을 제제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들의 악한 상상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하신 것입니다.
이들을 막지 않으면 이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데로
모든 일을 성취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게 됩니다.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한계를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편하게 만들어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을 보고 말리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의 잘못을 보고 말리지 않아서 저주를 받습니다. (삼상3:13)
바울이 경배하려는 자들을 말려서 죄에 개입되지 않습니다.(행14:11-18)
12. 바나바는 주피터라 하고 바울은 머큐리라 하더라.
언어를 제제 하심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이들에게 가한 첫 번째 제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서로 말하는데 제약을 두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면
이들이 가진 악한 생각을 조금은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의 악함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마15:11, 18)
그래서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3:6 에서는 혀는 불이요 불법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혀라는 것은 즉 말이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잠10:19) 말이 많은 곳에는 죄가 부족하지 아니하거니와 자기 입술을 금하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말을 많이 할 수록 죄의 문제가 여러분을 따라다니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잠17:28) 어리석은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자기 입술을 닫는 자는 명철한 자로 여겨지느니라.
말하면 말할 수록 엉망으로 만들게 됩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도시 세우기를 그침
(창11:8) 이처럼 주께서 거기서부터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 세우기를 그쳤더라.
하나님은 이들의 언어를 흩어서 말을 서로 못알아 듣게 하셨을 뿐아니라
이들을 지역적으로 흩어 놓으십니다.
이들은 한 군데 방치하면 서로 언어를 배워서
또 언어의 장벽이 사라질 수도 있을테니 아주 이들을 멀리 흩으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상상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이들의 움직임에 극복하기 힘든 제약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고 교회로
더러운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러분은 악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는 것을 자주 거르게 된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고, 불순종의 정도는 커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서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경계를 정하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거주의 경계를 두시고
지면에 흩어져 살게 하셨습니다. (행17:26-27)
어려움이 있어야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롬1:19)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한계가 생기게 되면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원했던 것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겠습니다.
그들은 탑을 세워서 자신들이 높아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은 타고난 본성이 악하고, 죄인이고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 높아지려고 합니다.
성경은 자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 합니다.(갈6:3)
만약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면, 그래서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가지 못하십니다.
그들를 지옥으로 던져버리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1,7-9)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는 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야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올바른 문으로 통과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56:5) 곧 그들에게 내가 내 집에서 또 내 성벽 안에서 아들딸들의 것보다 더 좋은 처소와 이름을 주리라. 내가 그들에게 끊어지지 아니할 영존하는 이름을 주리라.
하나님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자녀들에게
영존하는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도시를 만들고 자신의 망대를 세워서,
진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자신의 성벽을 쌓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자신들의 진리와 바알의 교리를 가르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사장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권력자들도 있는데,
예수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훼손되어도 상관없고,
우리 목사님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교회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이 원하는 망대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찾는 일이든, 직장을 찾는 일이든, 교회를 찾는 일이든,
여러분이 하는 그 중심에 주님을 향해서 달려가는 일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바벨탑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더 높이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꾸미는 일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강한 손아래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