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 나타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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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꿈 속에 나타나신 주님
본문 : 렘 23:24-25, 28
(렘23:24) 주가 말하노라. 어느 누가 내가 보지 못하도록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느냐? 주가 말하노라.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지 아니하느냐?
(렘23:25) 내가 그 대언자들이 말한 바를 들었거니와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들을 대언하며 이르기를, 내가 꿈을 꾸었다. 내가 꿈을 꾸었다, 하는도다.
(렘23:28) 주가 말하노라. 꿈을 꾼 대언자는 꿈을 말하며 내 말을 가진 자는 신실히 내 말을 말할지니라. 알곡에 비하면 겨가 무엇이냐?
성경을 읽다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꿈이라는 것을 꾸게 됩니다.
우리가 꿈을 꾼다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꿈을 통해서 미래의 일들을 보여주시기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럼 오늘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꿈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할 필요가 있으실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 찾아보는 시간을 갖아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꿈의 현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렘29:8) ¶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의 한가운데 있는 너희의 대언자들과 너희의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고 너희가 꾸고자 하여 꾼 너희의 꿈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지니라.
잠자면서 꾸는 꿈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꿈을 꾸면 꿈이 잘 맞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돼지 꿈을 꾸거나 용꿈을 꾸면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꿈에 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하나님은 내가 성경을 너희에게 주었으니
사람들이 꾸며낸 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검증할 수도 그 끝을 서로 책임을 질 수 도 없는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일을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렘29:9) 그들은 너희에게 내 이름으로 거짓으로 대언하느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누군가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꿈이 주어지는 형태 세 가지
꿈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세가지 형태로 주어지고,
세 가지 환경에서 꿈이 꾸어집니다.
첫 번째 :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경우 입니다.
(욥33: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참으로 두 번 말씀하시되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33:15)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거나 밤의 환상 가운데 있거나 잠자리에서 선잠을 잘 때에
(욥33:16) 그분께서 사람들의 귀를 여시고 그들을 위한 교훈을 봉하시나니
(욥33:17) 이것은 그분께서 사람을 그의 계획에서 물러나게 하려 하심이며 또 사람에게서 교만을 치워 숨기려 하심이라.
욥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의 방법으로 이야기 하시는 것이 흔한 방법이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형태로 주어진 적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가 잠들었을때 말씀하시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도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일에 대한 계획으로 마음이 분주하고 바쁘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의 이야기에 집중시키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밤중에 깊은 잠에 빠져 있을때 오셔서
그의 생각들을 모두 물리치게 하시고 그에게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이방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아비멜렉은 이방인이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이교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에 나타나십니다.
그에게는 성경이 없었고, 기록된 문서도 없었습니다.
그는 지금 미혼의 한 여인이라고 생각한 여자에게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결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당할 신변의 위협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단호하게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쪽 지방으로 이동하여 가데스와 수르 사이에 거하며 그랄에 머물렀더라.
(창20:2)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가니라.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말하자
사람을 보내서 그냥 데려간 것입니다.
(창20:3)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가셔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데려온 여인으로 인해 너는 죽은 자가 되었나니 그 여인은 한 남자의 아내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여자와의 관계를 갖는 것을
심각한 죄로 여기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사라가 음행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십니다.
(창20:4) 그러나 아비멜렉이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민족도 죽이려 하시나이까?
(창20:5) 그가 내게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또한 그녀도 스스로 이르기를,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순전한 마음과 무죄한 손으로 이 일을 행하였나이다, 하매
(창20:6)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이르시되, 참으로 네가 순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한 줄을 내가 아노라. 나 역시 너를 막아 내게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이런 까닭에 네가 그녀에게 손대는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노라.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방인 왕에게는 전해줄 성경책도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이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심
(창28:10) ¶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창28: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매 거기서 온밤을 지내려고 그곳의 돌들을 취해 베개로 삼고 그곳에서 자려고 누우니라.
(창28:12) 그가 꿈을 꾸었는데, 보라, 사다리가 땅 위에 세워졌고 그것의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더라. 또 보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것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라.
(창28:13) 또,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주니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씨가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널리 퍼지며 너와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창28:15) 또,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며 너를 이 땅으로 다시 데려오리라. 내가 네게 말한 것을 행할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돌들을 베개로 삼고
땅에 누워서 자고 있는 야곱에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한 약속이
너에게도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줄 대언자도 성경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라반에게 나타나심
라반이 지금 자신의 사위인 그를 해할 목적으로 쫓아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리아 사람인 라반을 꿈을 통해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창31:22) 셋째 날 야곱이 도주했다는 소식이 라반에게 들리므로
(창31:23) 그가 자기 형제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이레 길을 가서 그들이 길르앗 산에서 그를 따라잡았더니
(창31:24)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시리아 사람 라반에게 오사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야곱에게 좋다 나쁘다 하지 말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반에게 꿈에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하고 경고해 주신 것입니다.
요셉과 꿈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꿈으로 인해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창37:7) 보소서, 우리가 들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는데, 보소서, 내 단은 일어나 똑바로 서고, 보소서, 형들의 단은 둘러서서 내 단에게 경의를 표하였나이다, 하매
(창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를 통치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지배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라.
(창37:9) ¶ 그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자기 형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가 또 꿈을 꾼즉, 보소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경의를 표하더이다, 하니라.
이 꿈으로 인해서 가족간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40장에서 두 직무 수행자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40장에서 파라오의 직무 수행자 두 명이 왕을 노엽게 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감옥에 있던 요셉과 만나게 됩니다.
요셉이 이들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 중에 잔드는 자에게는
사흘 안에 전과 같이 잔드는 일로 회복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빵 굽는 자들의 우두머리에게는
사흘안에 죽게 될 꿈이라고 해석해 줍니다.
요셉이 해석대로 한사람을 직무에 복귀하고 한 사람은 죽게 됩니다.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
41장에서 파라오가 꿈을 꾸고 불안해 지게 됩니다.
(창41:14) ¶ 이에 파라오가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부르니 그들이 급히 그를 감옥에서 데려오므로 그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파라오에게 들어오니라.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고
왕에 의해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창41:41) 파라오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자, 내가 너를 세워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게 하노라, 하며
기드온의 이야기
사사기 7장에서는
기드온을 보내서 다른 사람의 꿈을 듣고
해석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게 해서 전쟁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삿7:13)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보라, 어떤 사람이 자기 동료에게 꿈을 고하며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보라, 보리 빵 한 덩이가 미디안 군대 안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른 뒤에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뒤엎으매 그 장막이 쓰러지니라, 하니
기이한 꿈입니다. 빵 한 덩어리가 굴러가서 장막 하나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삿7:14) 그의 동료가 응답하여 이르되, 이것은 다름이 아니요,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께서 미디안과 그 온 군대를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더라.
(삿7:15) ¶ 기드온이 그 꿈과 해석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군대로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주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는
꿈을 통해서 기드온이 그 해석을 듣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적들을
힘을 내서 물리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에도 이방인 왕에게 많은 꿈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과 하나님의 대화
열왕기 상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선물을 받게 되는 이야기가 솔로몬의 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왕상3:5) ¶ 기브온에서 밤에 주께서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하라, 하시니
(왕상3:9)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사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라.
(왕상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주께서 그 말을 기쁘게 여기시니라.
(왕상3:13)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 즉 재물과 명예도 내가 네게 주었은즉 네 평생토록 왕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
(왕상3:15) 솔로몬이 깨니, 보라, 꿈이더라. 그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주의 언약 궤 앞에 서서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드리며 자기의 모든 신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더라.
솔로몬이 꿈에서 깨어났고 그 꿈의 내용들이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꿈에 대해서 우리가 유의할 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꿈속에서 저에게 말씀해 주셨다고 하고,
내가 꾼 꿈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기준으로 꿈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찾아본 내용은
지금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읽은 내용의 주인공들은 어느 누구도
우리와 같은 완성된 성경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해 주신 말씀은
우리 믿음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그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롬10:17)
절대로 믿음은 꿈에서 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꿈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문 경우입니다. 흔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사용하셔서 진리를 전달하시려고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는 진리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책이 없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빌라도의 아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려는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마27:19) ¶ 그가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은 그 의로운 사람과 조금도 상관하지 마소서. 이 날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일로 시달렸나이다, 하더라.
이 꿈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 지역의 왕이고
왕좌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녀의 남편 앞에 서 있고
그녀의 남편은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이 장면은
자신이 꿈에 본 장면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꿈에서 본 장면은
예수님께서 왕좌에 앉아 계시고
자신의 남편은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판의 결과는 끔찍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남편이 예수라는 분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제가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면 이후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꿈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묻히시고 다시 일으켜지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말씀하시는 기록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이 꿈을 꾸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말해 주려고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더이상 꿈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그 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이미 다 기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꿈 속에서 하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에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시키신 말씀이 있어서
성경을 찾아 봤더니 성경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 꿈은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그 꿈은 무시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성경에 모두 기록해서 우리 손에 주셨는데,
기록된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는 않고
꿈이나 계시등으로 사람을 속이는 이야기에 신뢰를 두려고 하는 것은
악한 죄입니다.
꿈으로 말씀하는 하나님은 여려분과 상관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나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상관없이 꿈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의도를 이야기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서에서 처럼 미래에 대해서 보여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고,
여러분에게는 이런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일어날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가지고 말씀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꿈에서 본 것이나 잠시 머리에 스치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논쟁을 벌인다면 그처럼 비신앙적인 생활은 없는 것입니다.
어제 꿈을 잘 꿔서 오늘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한다면,
성경보다 여러분의 꿈을 더 높은 권위에 두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날 여러분이 어떤 드라마를 보고
이제는 남편에게 잘 하기로 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드라마 이야기를 더 신뢰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느낌이나 생각, 또는 꿈의 내용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부모님들이 하늘나라에 갔는지가
궁금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찾아와서 위로해 주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어제 잠을 자는데 자매님의 어머님이 하늘 나라에 계신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고 거짓 선지자를 통해 거짓 대언을 하게하고,
그런 목사에게 감사 헌금을 한 것이,
무당에게 복채를 주는 것과 뭐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고후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꿈에서 이야기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 시대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대환난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욜2: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있으며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 백성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욜2:28) ¶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여러분이 꿈으로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여러분은 대환난을 통과할 계획을 가지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유대인(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면
이 말씀도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대환난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제한 적인 대상을 향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환난기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휴거되고 난 뒤에
그들이 비로소 성경을 가지고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기 시작할까요?
환난시대에 성경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 심리적 압박이 있을 때
(전5:3) 꿈은 일이 많아 생기고 어리석은 자의 목소리는 말이 많아 알려지느니라.
어떤 일이 심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게 되면 꿈을 꾸게 됩니다.
저는 어느날 학교 에 갔는데
갑자기 시험을 치겠다고 하는 꿈을 꾼 적이 많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꿈을 꾸면 농사를 져야 하는데
물이 나거나 하는 일을 꾼다고 이야기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낮은마음 침례교회를 시작했을때,
한동안 꿈을 꾸면 갑자가 교회 강대상에 섰는대,
앞에 있어야 할 성도들이 아무도 없기도 하고,
설교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강대상에 서기도 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이 매몰되어 있을때
마음에 중압감이 느껴져서 견디기 힘들때
깊이 잠이 들지 못하고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육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육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때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채우는 꿈을 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참 속기 쉬운 상태입니다.
그들은 돈을 지불하고 손금을 보러 다니고
타로점을 치러 다니고, 사주팔자를 보러 다니고,
토정비결을 보러다닙니다.
스님을 찾아가고 무당을 찾아가가서,
몇 백 만원짜리 제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런 미신과 무속신앙을 위해서 돈을 가져다 바치면서,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합니다.
(사29:8) 주린 자가 꿈을 꾸고, 보라, 꿈속에서 먹을지라도 깨면 그의 혼이 허전하며 목마른 자가 꿈을 꾸고, 보라, 꿈속에서 마실지라도 깨면, 보라, 기진하며 그의 혼에 식욕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대적하여 싸우는 모든 민족들의 무리도 그와 같으리라.
배가 고프면 먹고 싶습니다.
꿈속에서라도 먹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깨어나면 눈 앞에 있던 음식이 사라집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면 마실 물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도 괴로운 일로 인해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잠이라도 자면 슬픔을 잠시 잊을텐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욥7:13)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잠자는 의자가 내 원통함을 풀어 주리라, 할 때에
우리도 침대에서 잠이 오지 않으면 소파에 가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욥7:14) 주께서 꿈들로 나를 놀라게 하시며 환상들을 통해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욥7:15) 그러므로 내 혼이 내 생명을 택하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나이다.
(욥7:16) 내가 내 생명을 싫어하며 계속해서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내버려 두소서. 내 날들은 헛것이니이다.
그는 열 명의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들을 땅에 묻고 너무도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의 건강은 많이 상했을 것이고, 그는 재산도 다 잃었습니다.
꿈보다 하나님의 말씀
(렘23:23) 주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있는 하나님이며 먼 데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렘23:24) 주가 말하노라. 어느 누가 내가 보지 못하도록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느냐? 주가 말하노라.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지 아니하느냐?
(렘23:25) 내가 그 대언자들이 말한 바를 들었거니와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들을 대언하며 이르기를, 내가 꿈을 꾸었다. 내가 꿈을 꾸었다, 하는도다.
(렘23:26) 이 일이 어느 때까지 거짓들을 대언하는 대언자들의 마음속에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자기 마음의 속임수로 말하는 대언자들이로다.
(렘23:27)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바알로 인해 내 이름을 잊은 것 같이 저마다 자기 이웃들에게 자기 꿈들을 말하여 내 백성으로 하여금 내 이름을 잊게 하려고 생각하는도다.
(렘23:28) 주가 말하노라. 꿈을 꾼 대언자는 꿈을 말하며 내 말을 가진 자는 신실히 내 말을 말할지니라. 알곡에 비하면 겨가 무엇이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속고 싶다면 대언자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안전하게 거하고 싶다면 선포자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말하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속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꿈을 팔기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어 드리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렘23:29) 주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산산조각 부수는 쇠망치 같지 아니하냐?
(렘23:30) 주가 말하노라. 그런즉, 보라, 각각 자기 이웃에게서 내 말들을 도둑질하는 대언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숨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그들이 내 말들을 도둑질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렘23:31) 주가 말하노라. 보라, 자기 혀를 놀려, 그분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는 대언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렘23:32) 주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꿈들을 대언하고 그것들을 말하며 자기의 거짓말과 경솔함으로 내 백성을 잘못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여러분의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지 잘 보셔야 합니다.
속지 말아야 할 책임이 여러분 각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성경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자신의 느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내 백성을 속이는 자들을
대적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거짓 목사나 대언자들로부터 속지 않으려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의 꿈을 듣기 위해서 교회로 모이도록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받도록 교회에 모이도록 하신 것입니다.
두 가지 구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백성이 자기를 낮추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
(대하7:14)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내 백성 = 내 이름으로 불리는 = 이스라엘
이런 일이 대한 민국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렘23:21) 내가 이 대언자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달음질하였으며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대언하였도다.
(렘23:22) 그러나 그들이 내 계획 가운데 서서 내 백성으로 하여금 내 말들을 듣게 하였더라면 저들의 악한 길과 악한 행위들에서 저들을 돌아서게 하였으리라.
(렘23:23) 주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있는 하나님이며 먼 데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자신의 백성들이 겸손해지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는 이유는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겸손해지는 것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겸손해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기
보다는 말씀을 선포하는 선포자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이나 비젼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자신들의 생각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애국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를 하거나,
저의 꿈이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정치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교를 한다면,
이런 설교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 목사님은 정말 영성이 좋으셔서
하나님이 항상 가까이 대하시는 분인가 보다! 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사람은 주님이 내가 대적하겠다고 한 대언자
즉 거짓 꿈으로 대언하는 자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절대로 꿈이나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성경 속에서 답을 찾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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