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받는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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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가 받는 심판
본문 : 고전 3:13
(고전3: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 우리가 이 땅에서 한 일에 대해
심판을 받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한 일 중에 어떤 일은 불에 타서 없어지는 일이 있고,
어떤 일은 그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지옥에 갈지 하늘나라에 들어갈지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심판은 구원받은 것을 전재로 그 후에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를
심판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 심판에서 어떤 심판이 이루어지는지를 잘 알아야
우리가 이 심판을 잘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고전3: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고전3: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3:12)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고전3: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고전3: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고전3: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위치를 유지하고 고린도 후서로 가보겠습니다.
(고후5:9)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있든지 떨어져 있든지 그분께서 받아 주시는 자가 되려고 수고하노라.
(고후5:10)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구원과 지옥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방금 읽은 그리스도의 심판석 이라는 것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지 구원을 잃어버릴지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누가 지옥을 가게 될지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하늘에 들어가도록
안전하게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평가를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의 결과는 보상
그리고 그들의 심판의 결과는 보상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보상을 얻게 될지 잃어버리게 될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판의 결과는 혼의 구원이나 구원의 상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혼의 구원의 문제는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었을때 이미 해결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성도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구원자를 위해서
살아가게 되고 그 삶의 결과에 대한 보상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루어질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은 대체로 이렀습니다.
십일조를 잘해야 하고,
교회 행사에 잘 참여해야 하고,
올바르게 착하게 살아야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문장들을 함께 놓고 살펴보면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지금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통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하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하고 하면
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육신에 속한 자"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상태를 육신에 속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모두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또한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처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린아이 같음을 인정함
당신이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고 넘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성숙한 어른으로 이교도에 속해서 지옥으로 향하는것 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너희들이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말하듯이 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젖과 고기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meat)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아직 고기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이야기 해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읽은 구절을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듣게 되면 이렇게 이해합니다.
젖에 해당하는 말씀은,
사랑과 기쁨과 평강과 용서와 교제와 은혜와 친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기에 해당하는 말씀은,
계시록 13장의 말씀이나(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짐승,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
천사에 대한 것이나,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나,
갭(간극)교리나,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들이
더 잘 이해하는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룹이나 스랍이나, 천사나 천사장이나, 재림이나, 휴거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과 아무상관 없습니다.
여러분은 많이 알아도 여전히 어린아기 일 수 있습니다.
지적 정보를 배우고 취득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영적인 사람 : 말씀으로 제어되는 사람
성령님에 의해서 육신을 제어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아이 이면서 지적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여전히 화를 내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여전히 불만을 쏟아내고,
가정을 깨드리는 사람은 여전히 가정을 깨뜨리는 일을 하고 있고,
인간관계가 깨진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깨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말씀을 서로를 향해 날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젖에 해당하는 말씀만 소화 하고 있고,
지적 정보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고기에 해당하는 말씀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신학과 교수로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아이 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육신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와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진영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이 어떻게 다른지
휴거(살전 4장) 즉 공중재림과 지상재림(마 24장)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이런것을 알고 있는 것을 영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어 영적인 사람이 되었다면,
왜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일을 하고 있고, 이혼을 하고 있고,
다른 형제와 육신적인 일로 다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성경을 많이 아는 그런 사람들이
다른 지체와 잘 지내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 다니는 것일까요?
우리는 영적이라는 것이 마치 성경의 숨겨진 지식을
잘 알아내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사람 : 시기 다툼 분열
성경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육신적인 사람이라고 정의 하고 있고,
이들이 육신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기는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분열이 생기지 않게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 동조해주는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울리기 싫어하는 것은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육신적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를 시기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위치와 돈과 환경에 대해서 불만하는 것은
육신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육신적인 것입니다.
저사람은 나보다 돈이 많고, 나보다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고,
저사람은 아버지가 힘이 있는 사람이고,
저사람은 나보다 잘생겼고, 저 사람은 돈 많은 아내를 가지고 있고,
저 사람은 좋은 승용차도 가지고 있고,
여러분이 계속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육신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과 이 땅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어떤 기쁨과 만족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은 하나님께 모욕을 주는 삶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건져내 주셨고
우리의 모든 죄들 사해 주셨고 주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쾌감을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들이 나보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들이 나보다 좋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유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의 가치를 모르면 육신적으로
여러분에게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아직 구원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것을
구원을 받으면서 갖게 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인지를 여러분이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 가치 없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3: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3: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복음 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김
바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했고 그의 복음 사역으로
많은 고린도 지역의 우상숭배자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선포한 그리스도 보다
바울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볼로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도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아볼로의 복음 사역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어떤 사람은 아볼로 진영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울 진영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 진영을 따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하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나는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홈스쿨을 지지 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고,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농구 좋아 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이 예수님에게 있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진영끼리 모여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입증해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에 중심을 두고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공교육에 자녀를 맡기는 사람들하고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하고,
나도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하고,
나도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팝송을 듣는 사람하고는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교제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느 누구하고도 어울릴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과 같이 조건이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을 당신이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존중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교제의 장으로 초청해 놓고
내가 생각하는 주제를 이야기 하고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주길 바란다면,
그런 교제는 오래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육신적인 이유
이 이야기의 촛점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육신적이 이유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삼위일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고 진보 정치인 누구의 지지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가지고 있으면서
보수 정치인 누구의 지지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뭔가 다른 것들을 더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목사는 누구라고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 좋아하는 목사를 좋아하면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보다 교회가 중요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고전3: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고전3: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고전3: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고전3: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에 커다란 농장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농약을 뿌리고,
농기구로 곡식을 거두고, 농기구를 손질하고,
일꾼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합니다.
만약 각자가 맡은 일이 있는데 자신이 하는 일은 중요하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저사람이 씨를 뿌리면 나는 물을 안줄거라고 불만을 하거나
서로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농장의 일들이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농장 주인에게는
농장이 더 중요하고 농장을 통해서 곡식을 거두는 것이 더 중요한데,
일꾼들이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꾼들과 어울리기 싫다고 한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기초가 있습니다.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여러분이 목수로 일하고 싶다면 목수로 일하면 됩니다.
창문을 다는 사람이면 창문을 달면 됩니다.
전기면 전기, 배관이면 배관일을 서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일을 해야 집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하는 사람들보다 집이 지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는 일꾼들 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자세의 중요성
(고전3:10)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고전3:11)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3:12)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고전3: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고전3: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고전3: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얼마나 넓은 땅을 갈았는지를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그 땅을 갈았는지를 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종류” 인지를 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성공적으로 일을 했는지를 본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를
보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했는지를 보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만이나 자기 만족으로 다른 지체를 무시하면
자! 조금 뒤로 물러나서 문맥이 말하는 바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10명의 혼을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자신이 한 일을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 만큼 혼들을 인도하지 못한 시람들을
교만과 오만한 자세로 내려다보면서,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향해서
저 형제가 내 교회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는 교회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름다운 찬송을 부릅니다.
그런데 자신 처럼 찬양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내 교회를 아프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나가서 훌륭한 설교자가 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배우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한다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설교를 하고 있다면, 그런 일들은 하나님 앞에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것들입니다.
다음 절에서 시작하는 다른 측면을 또 한 번 보겠습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고전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611년 영어 성경은 현대 영어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thee thy thine thou 는 단수 입니다.
you ye your yours 는 복수입니다.
단수 복수를 구별하면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고전3:16) 너희(복수 너희 모두 ye)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복수 너희 모두)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복수 너희 모두 ye)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3:17) 누구든지(각 개인 any man) 하나님의 성전(복수 너희 모두)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복수 너희 모두 ye)가 곧 그 성전이니라.
목사 한 사람은 교회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집사 한 사람이 교회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찬양 인도자가 교회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각 개인도 교회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각 개인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상하게 한다면,
주님은 네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들은 내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모두 태워버리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찬양봉사를 하고 헌금으로 교회에 재정을 돕고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의 선교사역을 돕는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을 상하게 했다면,
그런 행위는 모두 태워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 각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 교회를 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문맥입니다.
수 많은 교회가 깨져왔던 것은 대부분
누군가 자신이 교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더 옳고, 내 방법이 더 맞는 것이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의견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교회를 분열시켜서
교회가 깨지게 만드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지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교회를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모든 행위를 다 불태워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전3:18) 아무도(각 개인 no man)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고전3: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음이니 기록된바, 그분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느니라, 하였고
(고전3:20) 또 다시, 주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하였느니라.
(고전3: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단수와 복수를 생각하면서 다시 읽어 볼까요?
(고전3:21) 그러므로 아무도(각 개인 no man) 사람들(각 개인)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너희(구원 받은 모든 사람의 yours) 것이니라.
여러분 각 개인이 구원받은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도는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고,
내가 이교회에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서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존재도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교회의 일원으로 모두 중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일원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더이상 구원받기 이전의 개인의 신분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전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 것들이나 장래 것들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고전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교회 안에는 노래를 잘하는 성도가 있고
피아노를 잘 치는 성도가 있고 성경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노래를 잘 하고 싶고, 악기를 잘 다루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잘 하는 사람들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할 필요없이,
그들의 재능을 감사하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잘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앞에서 성도들에게
성경을 잘가르치고 있다면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준 재능은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 만족이나 자랑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앞에 서지 못한다고 시기하거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누군가 자신 보다 잘 생기고 예뻐서 자신보다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불만이 생기는 삶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 학력이 높아서 나보다 더 존경을 받는 것 같아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고,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결핍된 마음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요?
여러분과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일까요?
과거에는 주어진 것에 감사했습니다.
우리 보다 앞선 어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에 감사해 하고 기뻐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쌀이 있으면 감사해 했고,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면 감사해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벌거 벗고 돌아다녔고,
어디서 누가 입던 옷을 물려 받으면 그것으로 감사해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노숙자도 임금님 수랏상보다 잘 먹고 사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졌다고
불만을하고 시기를 하고 나라를 원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국민이 아이폰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휴대폰 때문에 차별을 느끼면 안된다고 주장 한다면,
그것도 말이 되는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만을 조장하고 그것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세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값이 올라가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면
절대로 만족이나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부러워했던 그 사람의 위치가 되어서 많은 것을 갖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합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들이 가진 문제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의 것을 나누지 않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로마 교황청도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재정과 권력과 군사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단 종파들을 보면 교주는 엄청 호화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그 위치를 나누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여러분 보다 부자일것이고, 여러분 보다 좋은 집에 살고 있고,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고, 좋은 차를 가지고 있고, 노래를 잘 하고,
설교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교회들 사이에서 인지도도 높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걸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가지고 있고,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죄부터 깨끗하게 되었고,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고,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에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들이 여러분이 지금 갖고 싶어하는 것 보다
못하다는 것인가요?
주님을 섬기고 교회 생활을 할때
경쟁심이나 시기심을 가지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저 교회는 우리 교회보다 성도수가 많고, 돈도 많고, 예배당도 크고,
하면서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경쟁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여러분에게
몇명을 전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헌금을 했는지,
주일학교 교사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
설교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와 같은 것을 묻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죽음으로 구원한 지체들을 위해서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할지 생각해 보셨야 합니다.
지금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준비하는
우리의 생각과 기준을 다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아직 예수님과 같은 형상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그런 모습은 끝내야 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일 입니다.
여러분에게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쉬운일 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때 부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주변을 사랑하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