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our father)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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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조상(our father) 아브라함
본문 : 롬 4:1-2
(롬4:1)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our father)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 입니다.
로마는 이방인들의 지역입니다.
이들에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our father)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유대인이 아닌 우리에게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잘 이해해야 우리의 구원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도 은혜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담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은혜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은 율법과 행위에 대한 것이고
신약은 은혜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아담도 가인도 죄를 짓는 순간 죽었습니다.
은혜가 아니었다면 노아의 식구는 홍수에 잠겨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존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을 설명하실 때,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첫 번째 성경 책인 창세기로 멀리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방인이었던 한 사람 아브라함을 제시하십니다.
그는 할례받지 않는 상태에서 살다가 할례받는 민족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경우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당신이 이방인든 유대인이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
아브라함은 살면서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눈에 의롭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로움은 이 땅의 삶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롬4:3)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3절에서 당신의 느낌, 감정 생각, 친구의 의견을 묻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질문의 답들은 그때 그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진리이고 변하지 않는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택해야 합니다.
(롬4:4)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4:5)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우리는 지난번 설교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믿은 후에도 의롭지 못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은
단지 그의 믿음에 대해서 반응하신 것입니다.
지폐의 비유
우리 주머니에는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가 있습니다.
이 지폐의 재료는 종이에 불과 합니다.
우리가 휴지조각과 같은 종이를 가지고도 밥을 사먹을 수 있는 것은
관계된 사람들이 서로 그 가치에 동의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용거래라는 방식도 마찬 가지 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돈을 주고 받지 않더라도
서로 동의 한 가치를 주고 받으면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가서
자신들만 인정한 방식을 제출하고 하나님께 의롭게 해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나는 그런 것들을 인정해주지 않겠다고 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받은 물침례, 유아세례는 하나님이 인정한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쌓아놓은 행위의 수고들도 하나님이 인정한 방법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만든 노력들은 오염되었고 더럽혀져 있는 것들 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에 가고 싶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한 믿음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져오면 당신은 당신의 모든 죄들을 제거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충분한 가치를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인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
(롬4:1)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아브라함이 바울의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교회 성도가 아브라함을 자신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자를 너희 아버지라고 부리지 말하고 하셨습니다.
(마23:9)
성경은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 그가 너의 친아버지라면 상관없지만,
종교적인 관계로 특별한 옷을 입고
친아버지가 아니면서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51:1) 의를 따르며 주를 찾는 자들아,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저 반석을 보라. 너희가 거기에서 쪼개져 나왔느니라. 저 구덩이의 구멍을 보라. 너희가 거기에서 파헤쳐져 나왔느니라.
(사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보라. 내가 그를 홀로 불러 그에게 복을 주고 그를 증대시켰느니라.
(사51:3) 주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녀의 모든 피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녀의 광야를 에덴같이, 그녀의 사막을 주의 동산같이 만들리니 그 안에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노래 가락 소리가 있으리라.
(사51:4) ¶ 내 백성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오 내 민족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한 법이 내게서부터 나아가리라. 내가 내 판단의 공의를 백성들의 빛으로 머물게 하리라.
여기 이스라엘 민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실망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하나님은 대언자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51:1) 의를 따르며 주를 찾는 자들아, …
(사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 보라. …
로마서 4장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찾는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이 아브라함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이 로마서4장의 말씀과 동일한 맥락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네가 주님을 알고 싶으냐? 그럼 가서 아브라함을 보라!”
“네가 의로운자가 되고 싶으냐? 그럼 가서 아브라함을 보라!”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나요?”
“그는 너희 아버지(조상)이다.”
“그는 하나님과 이 민족의 관계가 시작된 처음이 되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여겨주셨다.”
아브라함에게서 열쇠를 찾아라
하나님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민족에게 율법이 열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희생헌물과 희생물을 가지고 있는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건 것들은 열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과 거룩한 산을 가지고 있는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열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와 관계를 맺고싶고 의로움을 인정받고 싶다면,
가서 아브라함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걸려넘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관계와 별도로 매번 뭔가를 더해주셨는데,
그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부차적으로 주어진 것들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부차적인 것을 주기 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경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전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지켜야 할 율법을 주기 전으로 돌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함께 처음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너희와 관계를 맺게 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종교적인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온갖 종류의 종교적인 형태는 다 붙들고 있는데,
정작 예수그리스도를 올바로 알려는 노력과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두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 나를 찾고 있는 것이 맞느냐?
네가 정말 의로움을 찾고 있는 것이 맞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를 얻었는지를 다시 가서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내가 말한 것을 믿었을때
그리고 그가 그것들을 했을때 나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마1:1)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마1:2)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족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6절로 가보겠습니다.
(마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
(마1:17) 그러므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모든 세대가 열네 세대요,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까지 열네 세대요,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세대라.
신약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마지막 단어가 무엇인지 보시겠습니다.
(말4:6)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치지 아니하게 하리라.
영어 성경은 “저주”라는 단어가 마지막에 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첫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예수님께로 갈 수 있을까요?
2절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로 시작합니다.
17절에서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까지라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이 첫 페이지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싶다면,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 멈추면 안된다.
침례인 요한이 바리새인을 향해서 말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마3:7) ¶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그가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요한은 자신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환영한다고 말하지 않고, 독사들의 세대라고 말합니다.
(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3:9)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로 있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너희가 아브라함에게로 가서 거기에서 멈추고 하나님께로 가지 않으면,
너희는 잃어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라고 말하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무슨일을 했는지를 알고 그 일을 너희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이라는 것 만으로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영적인 혈통으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들이 실수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장로이기 때문에 또는 목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한 사람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인정받은 것은
혈통을 통해 후손들에게 계속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아니면 진리를 알수 없습니다.
(요8:30) 그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더라.
(요8:31) 이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8:32)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니라.
세상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로 인용하고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걷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요8:33) ¶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되,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로서 결코 누구에게도 속박된 적이 없거늘 어찌 네가 이르기를,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하매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나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때문에
하나님께 갈 수 있는 특별 통과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속박된 적이 없거늘”
이집트, 미디안, 블레셋, 바빌론, 페르시안, 메데, 그리스,
그리고 이말을 하고 있는 그 당시에는 로마에 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보여준 역사는
속박되었다가 자유를 얻는 일의 반복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하지 않고,
그런거 없어도 잘 살고 있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8: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만 죄를 짓지 않고 살아보십시오.
사람은 죄의 종입니다.
(요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항상 거하나니
예수님은 지금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는 영원히 살고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당신은 영원히 살지 못하고 당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당신은 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지금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
(요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요8:38) 나는 내가 내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가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느니라, 하시니라.
이들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사람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 죽이려고 합니다.
(요8:39)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니라,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행위를 하고자 할 것이로되
예수님은 너희 행위를 보니 너희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너희 아버지가 맞다면 족보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한 일을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요8:40) 하나님께 직접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이제 너희가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들이 희생헌물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삶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는데 너희가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믿었다는 것입니다.
(요8:30) 그분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더라.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의 속박아래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말을 듣고서 예수님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아브라함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내 말을 들었다면 그는 내 말을 믿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사야서 51장이 가르치는 것과 로마서 4장에서 가르치시는 것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8:40) 하나님께 직접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이제 너희가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8: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하는 일들을 하는도다, 하시매 이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는 음행을 통해 나지 아니하였고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거늘
이들의 말 속에는 예수님은 음행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와 요셉에게 와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아이가 있다고
말해주었고 그것을 들은 사람은 이들 둘 입니다.
미혼의 여인이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의 수치를 덮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나은 변명을 수 십가지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진리를 이야기 해야했기 때문에
자신이 본 그대로 이야기 해 준 것입니다.
마리아는 유대인 사회에서 격게 될 편견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진리를 이야기해야하는 믿음이 더 강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마리아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것이고
예수는 마리아의 음행을 통해서 태어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거늘”
예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8: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나아왔기 때문이라. 나는 스스로 오지 아니하였으며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
(요8:43) 너희가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로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으셨다면,
십자가 처형을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나는 아주 쉽게 너희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했어야 마땅한 일들을 너희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족보를 따지며 아브라함을 들먹이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켜야 할 절기도 율법도 없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지켜야 할 절기도 없었고, 희생헌물을 드리는 방법도 없었고,
지켜야 할 율법도 없었습니다.
그가 의로워지기 위해서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희에게는 침례가 있고 주의 만찬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일, 말씀을 선포하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열심히 한다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향하셨고,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고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의 사망과 지옥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하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측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에 가장 쉽고 부담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마귀이기 때문에
전해주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낭떨어지로 밀어 떨어뜨려고 하고 있고 돌로쳐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죄에 노예가 되어 있고 그들의 주인인 마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
이들은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는데
모세가 나타나자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당신이 나타나서 파라오를 건드려서 우리가 더 힘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제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로 나옵니다.
그들은 광야에 앉아서 이집트에서 생활하던 때가 그립다고 말을 합니다.
그때 먹었던 고기와 야채가 그립다는 것입니다. (민11:4-5)
이들은 작업장에서 채찍과 작업반장의 억압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노예였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인은 제거하지 않고 결과만 원망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망하고 집을 잃게 된 것은 아쉬워 합니다.
질병이 생기거나 가정이 망가지면 그런 결과에 대해서 후회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작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술마시고 게을렀던 죄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망친 음행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위에 계신 분은 여러분을 이미 영원한 형벌에 처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지금 당장 자유롭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이 제시한 자유를 택하기 보다는
죄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롬4:1)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그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수고와 행위로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전가된 의를 선물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수고로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여러분은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 (롬4:1)
성경에서 육체(flesh)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15:39)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인간의 몸도 육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 전체를 육체라고 부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육체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롬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여러분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육체안에 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육신은(flesh) 우리 안에서 의로움을 반대하는 부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적이 있는데, 세상과 육신과 마귀입니다.
내 피부가 나의 적은 아니고 내 몸이 나의 적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죄를 사랑하고 불의를 사랑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육신(flesh)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
이 말의 의미는
우리 모두는 이 죽음의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고,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서
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9번 나타나십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변곡점에 해당하는 중간지점이 바로 15장에서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저 하늘의 별 만큼 너희 후손이 많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믿겠느냐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은 믿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장면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시고
아브라함이 이제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지점을 중심으로 그 앞에 4번 나타나셨고 그 후에 4번 나타나셨습니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의"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4:3에서 처음으로
믿음으로 누군가에게 칭의가 부여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4:3)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라.
1장 부터 3장까지 하나님은 의롭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믿었고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그 의로움을
너희에게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의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것이지,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선언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잘 정리해 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의로운 일들을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더 의로워졌다고 평가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난 뒤에 불의한 일을 했다면
여러분은 다시 불의한 자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순간에 여러분은 의롭다고 선언된 것이고,
그 선언은 그 자체로 영원한 선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여러분의 의는 안전하게 보장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완전한 수준의 의로움을 얻게 된 것이고
그 선언은 안전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