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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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과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본문: 롬 2:5-8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But after thy hardness and impenitent heart treasurest up unto thyself wrath against the day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롬2:6)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Who will render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deeds:
(롬2:7)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To them who by patient continuance in well doing seek for glory and honour and immortality, eternal life:
(롬2:8)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But unto them that are contentious, and do not obey the truth, but obey unrighteousness, indignation and wrath,
격노와 진노의 대상은
8절에서 하나님의 격노와 진노를 받을 대상은 누구라고 하는 걸까요?
그 대상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대상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진리와 논쟁하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몰랐던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논쟁하기(contentious)라는 말의 의미는
반대를 위해서 다투는 것을 의미합니다.
논쟁한다는 것은
반대 진영과 맞서서 논쟁하고 투쟁한다는 의미이고,
반대진영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고
반대진영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논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한낫 먼지에 지나지 않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논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롬2: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Or despisest thou the riches of his goodness and forbearance and longsuffering; not knowing that the goodness of God leadeth thee to repentance?
(롬2:3) 오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들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And thinkest thou this, O man, that judgest them which do such things, and doest the same, that thou shalt escape the judgment of God?
(롬2:2)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But we are sure that the judgment of God is according to truth against them which commit such things.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But after thy hardness and impenitent heart treasurest up unto thyself wrath against the day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앞에서 읽은 구절 중 세 구절에 거쳐서
하나님께서 내가 말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에서는 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논쟁하려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를 선하게 대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반대편에서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열심히 논쟁하고 다투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노와 진노를 말씀하시지만
분노와 진노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날카롭게 비판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다투고 있고
그들은 하나님과 말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웃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랑하는데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매우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마다
반박하고 논쟁하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너무도 잘 아는 하나님의 말씀
거리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판에 써서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 판을 적대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리에는 수 많은 간판이 있고 구호가 적혀있지만,
사람들은 유독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것에만 적대감을 보이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술집 전단지가 많이 뿌려져 있고,
매춘을 유혹하는 명함들이 거리와 자동차마다 꽂혀있지만,
사람들은 유독 교회 전도지에만 적대감을 갖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돈을 갈취하는 호객행위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면서,
예수님을 알리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고 논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처럼 행동할까요?
왜 그들은 성경을 믿지도 않으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이 진리임을 입증하라고 하는걸까요?
사람들은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성경이 그들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의 긍정적인 면을 보겠습니다.
논쟁의 좋은면에 대해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 논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28:1) (다윗의 시) 오 나의 반석이 되신 주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내게 잠잠하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처럼 될까 염려하나이다.
<A Psalm of David.> Unto thee will I cry, O LORD my rock; be not silent to me: lest, if thou be silent to me, I become like them that go down into the pit.
나는 구덩이로 내려가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구덩이로 내려가는 사람들 처럼 되려고 노려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시28:2) 내가 주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을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Hear the voice of my supplications, when I cry unto thee, when I lift up my hands toward thy holy oracle.
(시28:3) 사악한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소서. 그들은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해악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나이다.
Draw me not away with the wicked, and with the workers of iniquity, which speak peace to their neighbours, but mischief is in their hearts.
(시28:4)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저지른 사악한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일한 대로 그들에게 갚으사 그들이 받을 보응을 그들에게 내리소서.
Give them according to their deeds, and according to the wickedness of their endeavours: give them after the work of their hands; render to them their desert.
“보응 desert” 의 영어 단어가 디저트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들에게 디저트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시28:5) 그들은 주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분께서 손으로 경영하신 것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므로 그분께서 그들을 멸하시고 세우지 아니하시리로다.
Because they regard not the works of the LORD, nor the operation of his hands, he shall destroy them, and not build them up.
나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서 멸망 당할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3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시28:3) 사악한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소서. 그들은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해악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나이다.
이들은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악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화평을 말하며 다가오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들의 목적은 우리를 그들에게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들의 속마음을 빨리 인식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사악한 자와 어울리지 않는 방법
(잠28:4) 법을 버리는 자들은 사악한 자들을 칭찬하나 법을 지키는 자들은 그들과 싸우느니라.
They that forsake the law praise the wicked: but such as keep the law contend with them.
여러분이 만약 술집이 많은 환락가 거리에서
그곳에서 남녀가 어울려 술마시고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해준다면
그들이 여러분을 좋아하겠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과 논쟁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당신들이 듣는 음악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당신들의 옷차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술마시는 것도 문제고, 매춘하는 행위도, 음행도,
간음도 잘못이라고 지적한다면
그들은 더이상 여러분과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인들과 맞서고 다투는 한 그들과 어울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들의 동의를 구하거나 그들의 칭찬을 구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주장과 맞서고
그 진리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자신의 영역으로 초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세상에 여러분의 입장을 말하십시오.
여러분이 직장을 얻어서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여러분의 신앙적 입장을 그들에게 명확히 드러내게 된다면,
그들은 더이상 여러분을 찾아와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거나,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하거나 같이 음란물을 보자고 하면서
여러분을 힘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들과 논쟁하려고 할 것을 알것이고,
그런 여러분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쉬운 방법은 의로운 쪽에 서서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논쟁하는 것입니다.
무례하거나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미소를 짓는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굳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한 일에
참여 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노하고 분노하시겠다는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더이상 그들의 초대 명단에 들어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광신도라고 비웃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친구하나 없이 외롭게 살다가 끝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감당해야 하는 결과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자신을 빼달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그런 판단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Beloved, when I gave all diligence to write unto you of the common salvation, it was needful for me to write unto you, and exhort you that ye should earnestly contend for the faith which was once delivered unto the saints.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른 믿음을 위해서 힘써 싸워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위해서 힘써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이면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붙잡는 일에는
많은 적들이 생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과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반대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 종교와 거짓 교리에 맞서 힘써 싸워야 합니다.
유1:3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들과 진지하게 싸워야 합니다.
피의 속죄를 부인하거나,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을 부인하거나,
성경의 무오함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아무도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과도 싸워야 합니다. (요14:6)
의로움은 중립이나 침묵으로 지켜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립을 지키면서 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침묵하면서 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숨기면서 의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위해서 힘써 싸워야 합니다.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고 난 후
복음은 다락방을 떠났고, 거리 설교에서 3천명의 혼을 구원했고,
그 후 어느 누구도 다락 방으로 다시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싸웠고, 빌립보에서 싸웠고, 아테네에서 싸웠고,
고린도에서 싸웠고, 그리고 안디옥에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신정동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믿음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것과 싸워야 할 것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는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함께하는 노력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를 그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장소로 변질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갈곳은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이 교회 마저 그들이 좋아하는 장소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과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주제를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불편해 할 만한 말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성경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교회를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쇼핑 중독처럼 종교놀이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는
다른 곳에 충분히 있을테니, 적어도 저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몰라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있겠지만
제가 성경의 기준을 알면서도 그 기준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교회 인원이 다 사라져도 말씀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감옥에도 사람들이 차고 엄쳐나는것을 보면,
교회에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더럽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빠르게 늘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엡5:22)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Wives, submit yourselves unto your own husbands, as unto the Lord.
지금 이 말씀도 우리에게 존중 받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가 쉽게 용납하기 힘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엡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For the husband is the head of the wife, even as Christ is the head of the church: and he is the saviour of the body.
(엡5: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Therefore as the church is subject unto Christ, so let the wives be to their own husbands in every thing.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그 말씀과 동일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남성다움에 대한 저항감
요즘 세대는 남성다움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남성다움이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남성다움이 여자에게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여자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없이 믿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이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축복으로 답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하나님과 다투고자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2:11)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Let the woman learn in silence with all subjection.
여러분이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여인은 하나님과 다투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꼭 그렇게만 해석해야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경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적용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딤전2:12)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But I suffer not a woman to teach, nor to usurp authority over the man, but to be in silence.
이 말씀은 여자는 24시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교회가 모여서 구성이 이루어졌을때,
그곳에는 남자 성도가 있고 여자 성도가 있습니다.
그때에 교회에 모여 있을때 여자는 절대로 가르치지 말아야하는 것이고
허락되지 않는 권위를 찬탈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이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지 않은 세상 사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 말고는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목사가 되어서 강단에 서게 되고, 여자가 교회 집사가 되고,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들은 세상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 보다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세상과 다른 이야기로 하나님 편에 서게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여러분의 기분을 편하게 만들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피하고
그들의 인기를 얻기위한 말을 하기 위해서 이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런 길이 주님이 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목회를 하는 여자 목사들도 이 말씀의 뜻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이 어떤 뜻인지 알지만,
저항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뿐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여자 목사는 성평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자가 목사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성평등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동일하게 구원하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일하게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일하게 하늘에 집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일하게 예수님과 공동상속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만을 여자에게 하지 말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머리가 될 수 없는 것이고, 교회에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나님이 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슬람 종교에는 여자에게 해서는 안될 일이
적어도 이 두가지 보다 훨씬더 많이 있을 겁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규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만일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분들은 다른 종교에는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현대 여성이 여성의 자유로움을 말하면서 이슬람 종교로 개종했다면,
그 여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청소년 범죄가 통제를 벗어남
(사3:12) ¶ 내 백성으로 말하건대 아이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여자들이 그들을 다스리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자들이 너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며 네 행로들의 길을 무너뜨리느니라.
¶ As for my people, children are their oppressors, and women rule over them. O my people, they which lead thee cause thee to err, and destroy the way of thy paths.
요즘 십대 청소년 들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자기 여자 친구에게 매춘을 시키고,
십대 청소년이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빨리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멀지 않아 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십대 청소년들을 통제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이 나라의 국민 정신 상태가 여성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도 여자 선생님 뿐이고,
이들에게 남자 선생님들이 간혹 있어도
그들마저 이전의 강한 남성성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여성화된 남자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아버지의 권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나서서
우리 아들이 친구를 때리기는 했지만 알고보면 착한 아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삼식이 취급받으며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 여성적인 설교자가 있다면,
그리고 여성 정치인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면,
여성적인 선생님들에게만 배우고 있다면,
세상은 여성적이고 나약해지고 부드럽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공격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세상은 십대들의 불법 천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나는 남성적인 강한 지도력을 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남자를 떠나게 만드는 여자의 자소리
(잠21:19) 다투며 성내는 여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It is better to dwell in the wilderness, than with a contentious and an angry woman.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를 피해서 광야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느끼게 만들어서
집에 들어오기 싫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머리가 되라고 했는데,
당신이 나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자신의 집에 와서 편하게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토끼같은 아이들이 재롱을 부리는 것을 보고싶을 것이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와 나란히 누워서 달콤함을 누리고 싶을 겁니다.
짜증을 내는 아내, 말꼬리를 잡는 아내, 남의 남편 부러워하는 아내,
돈도 못벌어 온다고 구박하는 아내가 있는
그런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잠27:15) 비가 몹시 오는 날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같으니
A continual dropping in a very rainy day and a contentious woman are alike.
비가 몹시 많이 오는 날에는 천장에 떨어지는 빗물이 채 빠지기도 전에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
어디선가 빗물이 넘쳐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똑... 똑... 똑....
큰 소리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소리는
시간이 갈 수도록 견디기 힘들어집니다.
양말좀 똑바로 벗어놔요...
면도기좀 썼으면 제자리에 놔야죠...
소변좀 똑바로 봐요. 변기에 다 튀 잖아요… 똑... 똑... 똑....
옷을 벗어 놨으면 옷걸이에 걸어 놔야죠...
신발좀 제자리에 벗어놔요!! 똑... 똑... 똑....
여보 생일에 입을 옷이 없어요...
친구 만나러 가는데 신발이 없어요...
당신 얼굴만 보면 답답해 죽겠어요…. 똑... 똑... 똑....
솔로몬은 성전보다 큰 궁정을 자기 집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말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있을 장소가
내집에 한 군데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신뢰하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여자만 조용히 하라고 하고 남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없나요?=3 =3”
하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논쟁을 하려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논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박하지 말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동일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둘 중에 하나 입니다.
남자가 여성답게 살게 만들어서 여자가 남성스럽게 살 수 있게 만들던가
아니면 남자가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일들이 생기고 이 땅에 이혼율은 점점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화된 남자들과 남성화된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와 더이상 다투기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더이상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롬2:7)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To them who by patient continuance in well doing seek for glory and honour and immortality, eternal life:
사람들은 하나님께 점점 더 다가가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청하신 것을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그 길에 끝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하기 싫은 논쟁
(롬2:8)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But unto them that are contentious, and do not obey the truth, but obey unrighteousness, indignation and wrath,
가정에서 교회에서 논쟁하며 따지지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리에 나가서 자기 주장으로 논쟁하기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모습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노력과 시도에
반대하는 모습의 그림인 것입니다.
(롬2:9) 악을 행하는 사람의 모든 혼 위에 환난과 곤고가 닥치리니 먼저는 유대인의 혼 위에요 또한 이방인의 혼 위에며
Tribulation and anguish, upon every soul of man that doeth evil, of the Jew first, and also of the Gentile;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는 빛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계점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이 문제에서 빠지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앉아서 너희들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짐을 싸서 지붕으로 올라가던 광야로 나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은 감당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확신을 얻게 됩니다.
누군가 전도지를 주면 관심을 갖고 받아듭니다.
호텔에 가면 서랍에서 성경을 발견하고 펼쳐서 한 두 구절 읽어봅니다.
기회가 되면 일 년에 두 세 번 교회에 갑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우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빛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자신을 전도하는 가족을 무시하고
손에 들려준 복음 전도지를 찢어버리고, 교회에 가고 싶어하지 않고,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도 어느 한계점이 넘어가면
더이상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벗어나서 나를 원하는 사람에게로 떠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논쟁이 사용되는 사례
지금 하나님도 손을 놓게 만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모습니다.(contentious)
남자를 떠나게 만드는 여자의 모습도 동일한 단어 “다투기를 좋아하는”
(contentious)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흥미롭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상황에 놓이는지 아십니까?
심지어 교회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조금씩 진리의 빛을 비추어서 끌어 안으려 할때 마다
그들이 하나님과 논쟁하고 따지고 가르치려고 하고 비판하려는 모습을
계속해서 물방울 떨어지듯이 하나님을 향해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힘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시점에서 성령님께서 나는 더이상 이사람을 설득하고
논쟁하는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떠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하신 일에 헛점을 찾아서
비난하고 따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찾아도
그들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을 떠날 수 있습니다.
(사55:6) ¶ 너희는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 Seek ye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ye upon him while he is near: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때 그들이 주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숯에 숯을 더하듯이 논쟁을 더하지 말라
(잠26:21) 타오르는 숯에 숯을 더하는 것과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As coals are to burning coals, and wood to fire; so is a contentious man to kindle strife.
화로에 나무를 더해서 불이 커지게 되면 그 열기에 몸을 뒤로 물리게 됩니다.
불이 붙은 나무들을 흩어 놓으면 강했던 불꽃이 금방 식어 버립니다.
다툼은 다툼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연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논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리의 시위대들은 주동자를 중심으로 사람이 뭉치면 강해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용기있게 대통령과 맞서고 교회 목사와 맞서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고 그 사람과 합류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상담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때
세상에 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상담을 한다면,
여러분이 찾아간 그 사람도 하나님과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불순종에 더 많은 기름을 붙게 될 것입니다.
만약 목사나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여러분 안에 부정적 생각이 든다면,
그런 문제를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 성도도 없이 인터넷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해답을 얻으려고 하면 그들은 여러분의 문제를 더 키우기만 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서 싸우십시오.
성경은 여러분의 믿음을 위해서 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악함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분노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불타는 숯불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진리와 의를 전하는 사람들의
따뜻함과 열기와 광채와 불이 있는 주변으로 모여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던,
여러분이 얼마나 오랜시간 신앙생활을 해왔던, 상관없이,
여러분이 같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있게 된다면
여러분의 열기는 금방 식어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불만을 가지고, 화를 내고, 낙담하고,
나는 더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오래가지 않아서 자신이 비난했던 일들 속에 빠져있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결국 자신의 열기로는
이전의 열기 처럼 뜨겁게 주님을 섬기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도들의 열기 속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다투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면 자신을 정당화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불태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일주일의 대부분을 세상의 문화와 철학에 둘러쌓여 보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한 열정을 불태우려면 그보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한다면,
누군가 여러분을 설득해 세상의 다른 일들로
열정을 태우며 살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에서 주님을 위해서 열정을 태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고 반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함께 할 무리가 누구인지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접했던 두 개의 불꽃
베드로는 한때 예수님과 반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불꽃 주변에 모여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행동 뒤에 그에게 따른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일이었습니다.
몇 일이 지난 뒤에 베드로는 다른 불꽃 주변에 앉게 됩니다.
그 불꽃은 예수님이 피워놓은 불꽃이었습니다.
그 불꽃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님께 영광을 드렸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함께할 친구들을 지혜롭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어야 할 책들도 지혜롭게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선포하는
교회 목사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고 여러분을 그리워하는 성도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수요일에도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다른 요일에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서로가 함께 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모이고 연대하고 시위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함께 모이고 서로를 격려하고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교제하는 형제 자매가 있을때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올바르지 않은 교리를 말하는 사람과 사악한 교리를 말하는 사람과
싸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다투는 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떠나지 않게 하셔야 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