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가 되게 하라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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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가 되게 하라
본문: 롬 3:4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let God be true”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딛1: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신32:4) 그분은 반석이시요 그분의 일은 완전하니 그분의 모든 길은 판단의 공의이니라. 그분은 진실하고 불법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의로우시고 올바르시도다.
하나님은 자신이 진리가 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체가 진리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진리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믿게 만드는 일은 제 영역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은 진리라고 말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장식물로만 여겨지게 되고,
성경에도 없는 자신의 주장으로 삶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될 자리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죄의 유혹이 오게 된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준 말씀에의심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정의 선택권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서 진리를 버림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는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리를 손에 들고 있고 그것이 진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자신의 문제로 맞닥뜨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더이상 진리가 될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느낌을 지지하고, 상황 논리를 들먹이고
목사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 상황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시키는 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영화산업을 중심으로한 대중 오락 매체들입니다.
이들의 활동이 시작된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적어도 국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2:2) 땅의 왕들이 스스로 나서며 치리자들이 함께 의논하여 주와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르기를,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
기독교 주변에서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목사의 성추행이 언론에 보도되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목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합니다.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성추행을 하면
그 직업에 대해서는 동일한 강도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세상 사람들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에 대해서 도둑질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미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진리가 되게 만들고 있냐는 것입니다.
진화를 주장하는 이유
왜 세상에서 그렇게 열심히 진화라는 것을
가르치고 설득하려고 노력하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때문입니다.
그들도 창조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가 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진화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을 취하라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but every man a liar”
이 구절은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 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 가지 위치를 같이 동시에 취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위치만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진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소설에서
남편을 버리고 멋진 사랑을 만들어내는 책을 읽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책을 읽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그 행위는 잘못된 행위 입니다.
여러분이 듣고 있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설교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유명한 사람이고,
높은 학문을 했다고 해도,
그 설교는 틀린 설교이고 그 설교자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사람이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아직 그문제를 이해 못했나봐!”
“아직 그 말씀에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해서 그런가 봅니다.”
용납하고 사랑으로 품어주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맞든지 틀리든지, 하늘이든지 지옥이든지, 참 목자이든지, 거짓 목자이든지,
구원을 받든지 구원을 잃어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거짓말쟁이에게
그들이 자꾸 용기를 내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거짓말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의 의심을 점점 더 커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즐거워하고 박수를 보내고 재미있어 하는 반응을 보낸다면,
그 일의 결과는 여러분의 영적생활을 해롭게 만들 뿐입니다.
거짓말에 주의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리가 되게 하고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믿는다고 주장만 하는 사람들
성경을 기준으로 사는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타협을 시도하지 않지만,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만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향해서
자신은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읽어 보라고 해도 그들은 거부하고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이 믿을 수 없다고 입증하고
성경을 거부하는 쪽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고 언론은 거짓말이라고 말하면서
하루 종일 성경을 버려두고 뉴스와 오락방송만 보며 지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우리의 위치를 조금씩 포기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면서
사람들 앞에서 죄를 정당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예배는 꼭 모여서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상 공간의 교회)
여러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편협하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동성애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하고,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해야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록된 진리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
“이것은 기록된바”
누가 거짓말을하고 누가 진리를 말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사람들과 논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단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방향을 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이런 시도는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자신의 조카나 자신의 자녀가 동성애자가 되면
그들의 자세는 돌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삼촌은 동성애자이지만 비난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바라보며 사랑이 없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 사랑의 정체가 뭘까요?
죄에 대한 사랑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몸에 허용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술을 조금은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말에 여러분이 동의를 했다면 여러분도 거짓말쟁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기쁨과 행복이 풍성하게 넘치게 하고자 하시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면서
여러분의 삶을 힘들고 슬프게 만드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죽은 뒤에 갈 수 있는 하늘나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삶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모두 진리라면,
죽음 뒤의 삶에 대한 말씀도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선언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써 주께서(thou=you) 주의(thy=your)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영어 문장을 인칭대명사로 대입해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당신(개인 단수)은 당신이 말하는 것에 의해서 의롭게 되고 판단 받을 때에 이기리라”
그리고 당신이 판단 받을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 대해서 두 가지 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인용된 원래의 구절에 근거한 구약의 길이 있고(시51:4)
2. 인용된 지금 구절에 근거한 신약의 길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다윗의 모습
다윗은 육신의 욕망으로 한 여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여인을 탐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녀를 자신의 침실까지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을 술에 취하게 해서 둘이 잠자리에 들게 해서,
임신한 아이가 그들의 아이가 되게 하려고 계획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웃을 향해서 거짓 증언을 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계획이 실패하자 그녀의 남편을 전쟁에서 죽게 만듭니다.
다윗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대언자 나단의 등장
시간이 지나서 아이는 태어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말씀 선포자를 보내 다윗의 죄를 지적하게 하십니다.
(삼하12:7) ¶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왕이 그 사람이니이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나이다.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건져 냈으며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왕이시여 왕은 귀한 몸이니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하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왕이시니 당신은 원하면 뭐든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삼하12:8) 또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주며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네게 주었느니라. 만일 그것이 너무 조금이었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삼하12:9) 어찌하여 네가 주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그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족속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으며 암몬 자손의 칼로 그를 죽였느니라.
다윗이 업신 여기고 거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자신의 양심도, 자신의 느낌도, 사회적 규범도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업신 여겼던 것입니다.
(삼하12:10)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이 음행을 정당화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면 이 말씀을 눈여겨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야가 죽은 후 였지만
여전히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가 유죄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면서,
네가 그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51:1)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친절한 긍휼의 풍성함에 따라 내 범법들을 지워 주소서.
(시51:2) 내 불법에서 나를 철저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시51:3) 내가 내 범법들을 시인하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51:4) 내가 주께만 오직 주께만 죄를 짓고 주의 눈앞에서 이 악을 행하였사오니 이로써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 판단하실 때에 깨끗하시리이다.
Against thee, thee only, have I sinned, and done this evil in thy sight: that thou mightest be justified when thou speakest, and be clear when thou judgest.
(시51:5) 보소서,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
다윗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뜻에 반했을때, 다윗은 하나님이 옳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뜻에 반했을때,
다윗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게 한 것입니다.
다시 로마서 3:4로 가보겠습니다.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는 것과
사람들은 자꾸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번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성경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죠.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님을 의롭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의롭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에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되어 있는데,
여러분은 이 말씀은 인터넷이 없을때 이야기라고 무시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다윗의 삶에서 잘못된 부분을 보여주셨습니다.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한 것입니다.
왜 성경은 다윗과 같이 실패한 삶을 산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성경말씀과 다른 지체들과 교제를 통해서 지적 할 때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고, 사랑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고,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되게하는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을 외치고 메모도 하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먹음직한 나무의 열매를 제시하면,
과거의 진흙 탕의 삶으로 돌아가는 버튼을 눌러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토한것을 먹는 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을 하고 그분의 의로움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올바로 세운 것
여러분의 생각에 다윗을 올바로 서게 한 것이 나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만들 수 없습니다.
목사도 여러분이 올바른 삶을 살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조차도 여러분이 올바른 결정을하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이 진리가 되도록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정한 삶을 멈출 수 있게 할수 있는 사람을 당신 자신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친구의 의견을 의지하는 일
다른 교회가 하는 일에 의지하는 일,
다른 목사가 하는 말에 의지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일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다시 올바른 위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자신이 틀렸고 하나님이 옳다고 동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내린 판결이 옳고 나는 틀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윗은 회개를 하고 용서를 받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법을 하나님의 은혜로 덮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왕좌를 잃게 될 것이고
자신의 집을 잃게 될 것이고 아기를 땅에 묻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내리실때 마다
그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고 말했고,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저지른 일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주님께, 나라에, 한 여인에게
그리고 그의 남편에게 행한 일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신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못하고
우리가 뿌린대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족하고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엉망인 삶을 살아가다가 언제라도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면,
교회는 여러분을 환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미 뿌린 씨에 대한 열매는
여러분의 나머지 삶에서 분명히 거두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구약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의롭게 했다는 것과는 다른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두 가지 심판이 있습니다.
첫 번째 판단
첫 번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모든 비웃음,
놀림, 비난, 비판과 같은 판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냥 삶의 일부 입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자리에 들어 가기 까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온갖 것들을 판단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한마디 하면
갖은 생각으로 확대 시키면서 두렵고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자신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인 것입니다.
내가 할때는 합리적인 판단이고 합리적인 관찰이고 분석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일은 지나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내 뱉은 말을 사용해서 당신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판단하지 말하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매일 매순간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을 판단합니다.
목사를 판단하고 설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고,
예배시간에 음료수 컵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판단하고 있고,
목사가 강대상에서 자켓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너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져가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너를 판단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흠을 찾으려는 것이지 너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며 의롭게 되는 경우와 아닌 경우
“여러분도 저와 같이 구원을 받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시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서
“제발 그런 말도 안되는 말로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의롭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일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입증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선상에 서 있다면,
비난하는 일에 대한 결과는 그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뒤 이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죠.
“당신 같이 못되먹은 사람은 특별히 더 구원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이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죄에 대해서 다르게 취급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못되먹은”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판단입니다.
만일 당신의 잘못된 표현과 무례함과 잔인한 감정으로 인해서
그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해서 당신을 의롭다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잘못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당신과 함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일은 잘하는 일이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기도요청을 들어주는 일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월급받는 직장에서 30분 일찍 퇴근을 한다면,
사람들은 여러분의 위선적인 행동에 비난을 할것이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위선적인 행동을 방어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말씀에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삶
사람들은 여러분을 판단하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들의 판단에 앞서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히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잘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의 삶이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잘못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번재 판단에 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 판단 : 그리스도 심판석 앞에서의 판단
(롬14: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의 행위가 모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고전13장)
만약 우리가 이것을 믿고있다면,
우리 자신이 그 자리에 설 것을 한번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구속자와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도록 기록된 말씀을 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서 변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록된 말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그 말씀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안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죄를 지은 사람들도 사랑해야한다고 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기 위해서 늘어 놓은
다양한 논리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멋진 논리라고 예수님 얼굴 앞에서
말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끄럽지 않게 그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자신의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성경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고 있지 않고 있거나,
성경이 하지 말하고 하는 것을 하고 있거나,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하고 있는 변명을
예수님 앞에 똑같이 발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 그 이유를 당당히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요?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내가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대하고 그분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경이 제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할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주변 사람들의 설득에 항복하지 않도록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제가 원하는 삶에 동의해주는 목사를 찾아다니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삶의 일부라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우리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씀하신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옳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지적하는 삶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거짓말쟁이의 위치를 취하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서 당신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내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 목사를 향해서 당신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강단에서 내려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삶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을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쟁은 내가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있을때
내 자신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울속 자신을 보고 너도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칼빈주의를 향해서 용감하게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교리에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된 교리를 꾸짖는것만큼이나
단호하게 자신의 삶에서의 잘못을 꾸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변호하지 말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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