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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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와 사도직
본문: 롬 1:5-7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By whom we hav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for obedience to the faith among all nations, for his name:
(롬1: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Among whom are ye also the called of Jesus Christ:
(롬1:7)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To all that be in Rome, beloved of God, called to be saints: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7절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로부터 온 은혜가 있습니까?
1절 부터 읽으면서 오늘의 주제를 다뤄 보겠습니다.
1. 기록자를 먼저 밝힘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 called to be an apostle,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
1절은 바울의 이름인 바울 이라는 단어로 시작되고 있는 문장입니다.
요즘은 편지형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시대에는 글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밝히고 시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는 바울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2.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
바울이 태어날때 가졌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도행정 13장에서 바뀌게 됩니다.
성경은 왜 그의 이름을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측을 해 보자면
바울에게 주어진 주요 사역지는 로마제국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에
히브리 이름 사울 대신 로마이름을 사용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 뿐입니다.
기독교인은 초기에 종종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루아노(Silvanus). 실라(silas) 같은 이름 입니다.
바돌로매(Bartholomew)와 나다나엘(Nathanael)
요한와 마가(John and Mark) / 시몬(simon)과 니게르(Niger)
바사바와 유스도 (Barsabas and Justus)
3. 로마에 세워진 교회
로마에 있는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진것 같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로마에 보내는 서신서에 그 내용을 언급했을 것이고,
바울이 직접 가야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롬15:20) 참으로 이같이 내가 복음을 선포하고자 애써 왔으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는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Yea, so have I strived to preach the gospel, not where Christ was named, lest I should build upon another man's foundation:
성경 어디에서도 베드로나 바울이 로마에서 교회를 시작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순절의 열매로 인해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직함(타이틀)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 called to be an apostle,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5절로 가보겠습니다.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By whom we hav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for obedience to the faith among all nations, for his name:
사람들은 직함을 갖기를 좋아합니다.
기독교 안에서 종종 사도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라는 직책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인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직책에는 그 자리는 그에 걸맞는 자격이 주어져만 합니다.
직책에 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을 무시하고
직책이 주는 권위에만 욕심을 내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그 직함에 맞는 자격과 자세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힘들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되기 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람들을 섬기는 종의 일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사도라는 직함은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4. 목사라 불리길 좋아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라고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다른 직무를 맡기면 싫어하고 강대상에만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우리나라 교회를 보면 집사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집사가 되기 위한 자격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자리에 대한 욕심만 있고
그 자리에 가기 위한 섬김과 종의 자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직함때문이 아닙니다.
바울이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사도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가
수고하는 자세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 수고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사도라는 직함을 갖게 된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5절에서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것은 단어의 순서입니다.
“은혜와 사도직”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이
사도라는 직함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마음의 자세는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구절을 예로 든다면 고린도후서 입니다.
(고후12:15) 너희를 더욱 넘치게 사랑할수록 내가 덜 사랑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가진 것을 매우 기쁘게 쓰고 나 자신을 쓰리라.
And I will very gladly spend and be spent for you; though the more abundantly I love you, the less I be loved.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많은 헌신을 했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바울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점점 교만해져서 바울을 무시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우리 같으면 실망감으로 모든 일들 그만 두고 싶었겠지만,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대우를 받는 일 보다
고린도교회에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또한 갈라디아 교회에 자신의 삶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 모두가 차별없이 하나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자 마자 그들은 서로 진영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더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면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안디옥에 돌아왔을때 베드로 조차
이방인과 함께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는
바울의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갈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나와 같이 되라. 너희가 내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느니라.
Brethren, I beseech you, be as I am; for I am as ye are: ye have not injured me at all.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너희는 잘못하고 있었고 그 일로 내 마음은 아팠다.
나는 그 잘못을 바로 잡고 싶으니
내가 너희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를 바로잡는 일로 너희와의 교제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먼저이지
내가 사도라는 것은 그 다음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초청을 합니다.
그를 교회로 데리고 오기 위해서 일요일 아침마다
그 사람의 집을 방문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침에 가면 그제서야 일어나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옵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운전기사인지 복음 전도자 인지 헛갈리면서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은혜가 먼저 라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섬김을 지속하기 힘들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직보다는 은혜를 먼저 놓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직 보다는 섬기는 일을 먼저 앞에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5. 순종이 없는 지식은 소용없습니다.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By whom we hav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for obedience to the faith among all nations, for his name:
사도 바울에게 5절에서 은혜가 먼저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사도직이 다음에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갖지 못한 은혜를 따로 구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사도직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가 교회를 세워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는 곳에서 그는 하나님께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것은 그가 가르치고 혼을 구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잘 가르친다고해도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다른 여자와 부적절한 시간을 보낸다면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하나님께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순종하고 섬기지 못하면서
사람의 재능으로 교회를 세워나간다면,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교회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이기 전에 섬기는 사람이었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에는 분명히 성경에 관해서
많은 지적인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성경에서 여러분의 귀를 만족시켜 줄 만한 이야기를 꺼내서
여러분 앞에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평판이 점점 나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는 더이상 신뢰감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 대한 평판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는 성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부인하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강대상에서 삼위칠체를 설명하고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입증하는 성경구절들을 찾아서 설명해주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설명만 하는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그런 설명은 월급받는 학원강사가 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경을 다루는 자세가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먼저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처음 만나서 주님을 믿고 난 뒤에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9: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And he trembling and astonished said, Lord, what wilt thou have me to do? And the Lord said unto him, Arise, and go into the city, and it shall be told thee what thou must do.
내가 무엇을 공부하길 원하나이까? 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나이까? 가 아닙니다.
어떤 교리를 먼저 배워야 하리이까? 가 아닙니다.
교회론, 성령론, 요한복음 강해를 먼저 공부할까요? 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섬기는 자세가 먼저 이루어지고 나서 그 섬김을 위해서
교회론도 배우고 성령론도 배우고, 원문비평도 배우고 요한복음 강해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성경학교에서 여러분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의 사실들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고 다른 성도들을 돌보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믿기로 결심하고
나는 그의 마음에 끓어오르는 열정과 의지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도적 소명을 완수 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을 주님 앞에 굴복시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주님 앞에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이고
그리스도인이 보여줄 특징인 것입니다.
6.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자 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을 낮추시고 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방에 들어가더라도 그는 그 방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그 방에서 걸어나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항상 섬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본이 되어주셨고,
사도 바울에게도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삶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섬기지 않는 사도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섬길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요15:14)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더라도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저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만 말하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주신 명령이나 규제나 규칙들에대해서는
가르치고 요구하지 않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는데
우리가 구원만 받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주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녀를
사랑과 은혜와 축복만으로 양육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들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던
나는 너를 사랑하고 은혜로 대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르치겠습니까?
그런데 교회 성도들에게는 자신이 창안해 낸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라도 부모라면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해로운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런 해가되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7.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겠다
(요15: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
Henceforth I call you not servants; for the servant knoweth not what his lord doeth: but I have called you friends; for all things that I have heard of my Father I have made known unto you.
주님께서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자신을 종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종이라고 하고 있고, 야고보도 자신이 종이라고 말하고 있고
요한도, 유다도 자신이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안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노예는 포로된 자이고 노예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이고 노예는 주인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를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
그러나 종이 되는 것은 너의 선택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기에 오신 것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몽둥이로 때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강제로 교회에 오게 만들지는
않으십니다.
월드컵을 보다가도 예배를 위해서 일찍자고
예배시간에 맑은 정신으로 설교를 듣는 일을 여러분의 자발적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월드컵 경기 방송을 멈추게 하시고
예배를 위해 잠자리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섬기는자로 살기로 결심했고
주님은 그에게 합당한 일을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역에 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데,
가정교회와 지하교회 형식으로 모여서
목사자리 하나 만들어서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사역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 불쌍해서 못떠나요? ….
8. 너희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막10:35) ¶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무엇을 원하든지 선생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해 주시기 원하옵나이다, 하매
¶ And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come unto him, saying, Master, we would that thou shouldest do for us whatsoever we shall desire.
보통 우리가 기도시간에 간구하는 모습과 별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막10:36)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And he said unto them, What would ye that I should do for you?
예수님은 바로 “예”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요구하는 것이 뭔지 들어보고 해주겠다고 합니다.
(막10:37)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의 영광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선생님의 왼편에 앉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하거늘
They said unto him, Grant unto us that we may sit, one on thy right hand, and the other on thy left hand, in thy glory.
지금 두 사람은 예수님과 영원히 더 가까이 있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안되고 자신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막10: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But Jesus said unto them, Ye know not what ye ask: can ye drink of the cup that I drink of? and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어떤 지위를 갖게 되는지는
전적으로 각자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와 가까운 곳에서 임무를 맡고 싶으냐?
그렇다면 그 자리를 얻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라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막10:39)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참으로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침례를 받으려니와
And they said unto him, We can. And Jesus said unto them, Ye shall indeed drink of the cup that I drink of; an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al shall ye be baptized:
한동안 많은 교회들이 “Yes We can” 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막10:40) 내 오른편과 내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니라. 다만 누구를 위해 그것이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그것을 받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But to sit on my right hand and on my left hand is not mine to give; but it shall be given to them for whom it is prepared.
(막10:41) 열 제자가 그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하거늘
And when the ten heard it, they began to be much displeased with James and John.
다른 제자들도 자신들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켜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는 자리에서도 이들의 교제는 엉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막10:42)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을 다스린다 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고 그들의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But Jesus called them to him, and saith unto them, Ye know that they which are accounted to rule over the Gentiles exercise lordship over them; and their great ones exercise authority upon them.
(막10:43)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But so shall it not be among you: but whosoever will be great among you, shall be your minister:
(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지니라.
And whosoever of you will be the chiefest, shall be servant of all.
9.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라
바울이 종이 되겠다고 하는 말은
단지 예수님만을 섬기는 종이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섬기기위한 모든 것에 종으로 섬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은 섬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회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예수님의 전부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 중에 일부만을 섬기겠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와서 저에게 와서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제 신부인 아내에게 따귀를 때리고 욕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과 일치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런 사랑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교회에와서 신랑이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신부인 교회 성도들도 사랑해야 그것도 신랑에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섬기는 영역을 넓혀야
(막10:45)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For even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교회에서 머리가 되고자 한다면 그리고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리고 존경받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섬기는 영역을 더 넓혀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저 사람은 섬기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면,
섬기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는지는 여러분의 자유이지만
교회에서 섬기는 자의 머리가 되고 싶다면, 섬기는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여러분이 존경받는 자리에서 성도들을 주님과 더 까가워지게 만들고 싶다면,
섬기는 일을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10. 종된 우리 자신을 선포
(고후4: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의 종 된 우리 자신을 선포하노니
For we preach not ourselves, but Christ Jesus the Lord; and ourselves your servants for Jesus’ sake.
우리는 예수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나는 내 교회를 가지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9:18) 그런즉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이로써 복음 안에 있는 나의 권리를 남용하지 아니하는 것, 그것이로다.
What is my reward then? Verily that, when I preach the gospel, I may make the gospel of Christ without charge, that I abuse not my power in the gospel.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For though I be free from all men, yet have I made myself servant unto all, that I might gain the more.
성경의 말씀은 그 어느 곳에 있는 말씀이라도 진리입니다.
우리는 자유입니다. 누구의 종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종이 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 더 깊은 단계의 복종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면 교회로 오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여러분과 만나서 복음을 전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갓 태어난 복음의 어린아이라면 교회에 오십시오
우리가 여러분을 섬기고 돌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고 충분히 성장해 있다면
교회는 더이상 섬기를 받기 위해서 오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을 위해 혼을 구하는 일에 필요한 짐들을 나누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라면 누워서 관심이 필요할때 마다 울기만 해도 됩니다.
그러면 누군가 달려가서 여러분의 불편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15살이 넘어서도 계속 그러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성장과정은 엉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전히 여러분이 비디오게임만 하고 있고
엄마가 청소기를 들고 여러분의 주변을 돌아다녀야 한다면…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지 3년이 넘고 5년이 넘어가는데,
여러분이 교회에 예배만 드리면서 반찬이 맛이없다고 말하고,
설교를 더 많이 해달라고 하고, 찬양팀이 있어야 겠다고 말하고,
두 손만 벌리고 요구만 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성장할 시간이 지났다면,
여러분도 주방에 들어가서 반찬도 준비하고,
주일학교 선생님이 될 준비도 하고, 찬양을 드릴 준비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예가 아니라면 여러분 손으로 교회의 필요를 채워나가고
교회가 짊어지어야 할 짐들을 자발적으로 나누어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노예라면 주인이 시키는 일을 피해서
도망다니는 것이 남는일이겠지만,
여러분이 자유인이라면 하나님의 집에서 종이 아닌 아들로서
자발적인 종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교회를 세웠다고 해보십시오.
그 교회 청소는 누가 할까요?
교회 휴지통에 쌓이는 쓰레기는 누가 비우고 버릴까요?
여러분이 목회를 하고 싶다면, 먼저 주일학교에서 설교를 시작하면 됩니다.
거리 설교를 해도 됩니다.
여러분이 사역을 하고 싶다면, 섬기는 일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섬겨야 할 일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섬김이 없이 강대상에서 설교만 한다면
그런 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주의 종 모세
세상에는 많은 일들로 직업을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도 선수가 되어서 국가 대표가 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격투기 챔피언이 되려고 합니다.
그런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타이틀을 그 어떤 타이틀 보다
의미있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해 주신다면
그것은 그 어떤 타이틀을 얻는것 보다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수1:1) 이제 주의 종 모세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의 섬기는 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Now after the death of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it came to pass, that the LORD spake unto Joshua the son of Nun, Moses’ minister, saying,
모세는 120살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광야의 삶이 시작되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스타박스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베스킨라빈스 31에서 아이스크림 한컵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계곡 속에 발을 담그고
삼겹살을 배부르게 구워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현대인들이 흔하게 하는 일들을 한 번도 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에게 모세는 주의 종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주의 종” 이란 호칭은 변지않고 영원한 호칭입니다.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여러분의 삶을 내려놓고 험한 십자가를 붙들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손에 승리의 면류관을 쥐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리스도 심판석에서 다른 사람들은 트로피를 몇개씩 손에 들고 있는데,
자신은 손에 트로피 하나 없이 서있게 된다면,
돌릴 수 없는 이 시간을 무의미 하게 보는 것이 후회스럽지 않을 까요?
험한 십자가를 붙들다가 힘들다고 커피숍으로 가시겠습니까?
아이스크림 먹으러가서 수다떨고 계실 것입니까?
산으로 들로 좋은 공기 마시러 다니시겠습니까?
빛난 면류관을 그런 것과 바꾸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남겨줄 모습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겠습니까?
모세는 죽으면서 그가 주를 섬기는 종이었다고 인정받는 일을
후손에게 남긴 것입니다.
(느1:6) 이제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주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내가 이제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죄들을 자백하오니 우리가 주께 그 죄들을 지었나이다.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나이다.
Let thine ear now be attentive, and thine eyes open, that thou mayest hear the prayer of thy servant, which I pray before thee now, day and night, for the children of Israel thy servants, and confess the sins of the children of Israel, which we have sinned against thee: both I and my father’s house have sinned.
지금 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는 나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형제와 자신의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입니다.
구약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 called to be an apostle,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By whom we hav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for obedience to the faith among all nations, for his name:
우리가 왜 은혜를 얻어야 하고 순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모세가 주의 종이라고 말했을때는
여러분의 생각에는 그가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과
위대한 사역을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제가 느헤미야가 주의 종이었다고 말을 했을때,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다면,
제가 주의 종 다윗이라는 말을 읽을때,
여러분의 생각에 그가 위대한 주의 종이라는 주장에
좀처럼 동의하기 어려운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양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와 곰과 싸웠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그는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위해서 여러번 반복해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는 찬송을 불렀고, 노래를 만들었고,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삶은 위대했고, 그의 섬김도 위대했고,
하나님을 향한 섬김도 위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에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에는 밧세바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가 불순종한 순간의 기록을 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바울에 대한 기록이 지금과 다르다면 어떨까요?
만약 바울에게도 밧세바의 사건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면,
자신의 음행을 숨기기 위해서 그 여인의 남편을
살벌한 선교지로 보내서 순교하게 만드는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면,
우리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우리 교회에 신앙의 시작과 그의 삶의 끝이
중도에 실패없이 신실하게 헌신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어디를 가도 그를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아름답게 섬기고
분쟁과 분열이 생기는 일들을 피하고,
주님에 대한 것이 아닌 것들을 쓰레기로 여기며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기쁨이고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만약 제가 만약 교회 안에서 간증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게 될까요?
제가 교회 안에서 다른 이성을 만나 배우자를 버리고 도망간다면,
여러분이나 하나님이 얼마나 괴로울까요?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효가 되거나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간증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다윗 보다는 바울 스타일의 사역
우리는 목사가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우리를 순종하게 만드는 은혜를 붙잡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능하면 다윗 스타일의 사역보다는
바울과 같은 사역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시작도 잘하고 과정도 잘하고 끝마침도 잘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사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섬기는자가 되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집사나 다른 직책을 맡는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섬기는 일에 기쁨을 누리는 신앙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루어 놓은 일과 결과에 대해서
가치를 두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로
여러분의 삶의 가치를 매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도전해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더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목사나 성도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말하는 기회를 주는 일에
여러분의 행실이 포함되지 않게 주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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