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을 보이는 가르침

고린도전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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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을 보이는 가르침
본문: 고전 4:9
(고전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For I think that God hath set forth us the apostles last, as it were appointed to death: for we are made a spectacle unto the world, and to angels, and to men.
이 말씀을 다루기 전에 먼저 12장 27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도의 위치
(고전12:27)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Now ye are the body of Christ, and members in particular.
(고전12: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대언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기적들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선물들과 돕는 것들과 다스리는 것들과 여러 가지 타언어들이니라.
And God hath set some in the church, first apostles, secondarily prophets, thirdly teachers, after that miracles, then gifts of healings, helps, governments, diversities of tongues.
주요한 은사의 순위에서 사도가 첫 번째 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려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엡4: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And he gave some, apostles; and some, prophets; and some, evangelists; and some, pastors and teachers;
(엡4: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the ministry, for the edifying of the body of Christ:
성경은 사도의 중요성을 기록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대순으로도 사도가 첫 번째이고,
주님께서 신약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선물로 주신 것들 중에서
사도라는 선물과 사도의 사역이 중요성에 있어서도 첫 번째 입니다.
2. 교회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
(고전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For I think that God hath set forth us the apostles last, as it were appointed to death: // for we are made a spectacle unto the world, and to angels, and to men.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갈등과 분열과 시기로 인해서
사람들이 서로 순순한 마음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 아기같은 영적인 상태를 벗어나서
성숙한 단계로 성장하게 만드는 열쇠가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성경은 사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게 있어서 중요한 순서로 따지자면
사도 바울의 중요성은 교사인 디모데보다 중요한 사람이고,
타언어를 말하는 사람들보다 중요한 사람이고,
병고치는 사람들 보다 중요한 사람이고,
교회를 감독하는 사람들 보다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생각 속에는,
교회의 지체들과 함께 만나서 그들과 교제할 때
그는 항상 자신을 다른 지체들보다 더 낮은 자리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따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몸인 성도들에게
당신들 보다 내가 더 중요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누구나 한 번은 죽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정하신 자같이 마지막에 두셨나니”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때
이 말씀을 믿음으로 적용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하고 있는 행동들은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심판 석에 섰을때 주님과 다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지금 당장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잘못된 행동과 반응을 한다면,
다시는 바로 잡을 수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형제 자매들을 대하고 말과 행동을 주고 받을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관찰의 대상이 됩니다.
(고전4:9) ...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 for we are made a spectacle unto the world, and to angels, and to men.
일단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임을 선언하면,
그 시점부터 우리는 사람들의 관찰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은 제가 기분 좋을때의 모습이 아닙니다.
또는 주님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일할 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저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을 할 때,
제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어합니다.
당신이 무언가 도둑 맞았을때 어떻게 상황에 대처하는지,
당신이 방심하고 있을때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기독교인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찾아낼때까지
여러분의 행동을 지켜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 행동, 옷차림등,
5. 바울은 자신의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는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과,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거하고 계시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님이 계시지만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길은
그분이 거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잘못 대표하고 있다면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부당한 대우를 받아주는 바울
(고전4:10)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며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멸시를 받는도다.
We are fools for Christ's sake, but ye are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e are strong; ye are honourable, but we are despised.
(고전4:11) 바로 현재 이 시각까지도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일정한 거처가 없고
Even unto this present hour we both hunger, and thirst, and are naked, and are buffeted, and have no certain dwellingplace;
(고전4:12) 또 수고하여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참으며
And labour, working with our own hands: being reviled, we bless; being persecuted, we suffer it:
(고전4:13)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노니 우리는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Being defamed, we intreat: we are made as the filth of the world, and are the offscouring of all things unto this day.
이것은 바울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학대의 목록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이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은 목록일 것입니다.
(고전4:8) 너희는 이제 배부르고 이제 부유하며 우리 없이 왕처럼 군림하였도다. 너희가 군림하는 것을 내가 하나님께 바라노니 이것은 우리도 너희와 함께 군림하려 함이라.
Now ye are full, now ye are rich, ye have reigned as kings without us: and I would to God ye did reign, that we also might reign with you.
이 모든 것을 같이 합쳐서 보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그들이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왕이 된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바울을 그들에게 보내서
너희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씀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과 교류할때
그들을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오히려 자신을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신경쓰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자신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려준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바울을 더 잘 대접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가서 굳이 감정이 상할 일들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
내가 그를 왕처럼 대해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만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이 사람들과 다투게 된다면,
서로가 마음이 상할 것이고, 이들을 복된 길로 인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군가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영적 수준이 높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이 되는 일을 하는 길을
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의 삶을 보고 따라와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7. 고린도에 열거된 죄인들이 바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 삼각한 성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바울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7장에서는 결혼생활이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생활을 바로잡는 바울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10장과 11장에서는 농담같이 들리는 일이지만,
교회 성도들이 교회에 술에 취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술에 취해 예배에 참석인 그들의 생각은
바울은 비난 받아야 마땅하고
자신들은 축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8. 바울은 그리스도만이 전부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를 그대로 놔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죄에 대해서 범법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그들의 죄와 범법을 지적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향한 그들의 부적절한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는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전부이고
자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잊었겠지만
바울은 그것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그것이 억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해도 아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을때 마음에 상심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부심이라는 것
자부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때
매우 분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는 것을 잊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광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망쳐 놓았던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옥에서 건져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의 비천한 삶은 그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만큼 선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9.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자 했던 바울
바울은 부패한 사람들로 가득한 교회에서
첫번째이면서 가장 훌륭했던 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만약 누군가 배가 고파야 한다면 나도 같이 굶주리겠다.
만약 누군가 아무것도 마실 수 없다면, 나도 안마시고 지내겠다.
만약 누군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도 인정받을 필요없다.
나는 그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을 가장 마지막 작은 자리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자세로 오고 있다면,
다툼은 해결될 것이고 논쟁도 분열도 해결될 것이고,
마음에 상처 받는 것도 해결이 될 것이고,
나쁜 태도에 대한 상처도 해결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해도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에 취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갖게 되고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래로 끌어 내리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면서 살려달라고 외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십니다.
성경을 암송하고,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많은 일에 헌신을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 나의 삶을 봐주길 바라고 뿌듯해 합니다.
나는 과거에 짓던 죄들을 하나씩 둘 씩 멈추어 갑니다.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게 됩니다.
나는 점점 다시 자신의 삶이 대단하고 거룩해 보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다시 우리를 구원받기 전에 하셨던 것과 같이
다시 우리를 아래로 끌어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의로워지게 된 것과
구원받게 된 것과 하늘에 집을 가지게 된 것과
전적으로 예수님께 의지해서 얻게 된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때까지
그 중간에 놓여있는 삶에서 우리는 자주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자랑하면서
다른 지체들의 삶을 폄하하는 잘못을 반복해서 짓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성도인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과 같은 훌륭한 성도로서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 만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전도여행을 다녀야 할 곳이 많고
다니는 곳 마다 교회를 세워야 하고, 잃어버린 혼들을 이겨와야하고,
이런 일들로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감당해야하고,
신약 성경으로 남게 될 서신서들을 써서 보내야 하는 일로 너무 바빠서
당신 만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공을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는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 무례한 사람을 무례하게 대해서 그들이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으로
무례한 사람이 예의바른 사람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례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
무례하고 나쁜 태도를 보이고, 경우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자신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영적이고 훌륭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심지어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도와 주고 싶어하기 까지 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여러분이 나쁜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다른 성도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여러분을 여러분의 기대만큼
제대로 대해 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보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11. 스승은 많아도 아버지는 많지 않다
(고전4:14) 나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들을 쓰지 아니하며 다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를 타이르려 하노라.
I write not these things to shame you, but as my beloved sons I warn you.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스승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느니라.
For though ye have ten thousand instructors in Christ, yet have ye not many fathers: for in Christ Jesus I have begotten you through the gospel.
(고전4:16)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Wherefore I beseech you, be ye followers of me.
(고전4:17) 이런 까닭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주 안에서 신실한 자인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나니 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가 너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을 생각나게 하리라.
For this cause have I sent unto you Timotheus, who is my beloved son, and faithful in the Lord, who shall bring you into remembrance of my ways which be in Christ, as I teach every where in every church.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매주 바꿔가며 데려오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너희로부터 환영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나에대해서는 전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사실 당신들은 나에게 고마워해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나에게 매우 비판적이고 나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바울은 그 이유가 그들은 너희들에게 교사들이지만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23:9)
바울이 말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었기 때문에
영적인 측면에서 나는 여러분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에 대해서 그들이 바울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그런데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 다는 것입니다.
12. 그들이 바울에게 감사하지 않는 이유
자녀들을 키워보신 분들이라면
자녀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수학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게 됩니다.
자녀들은 선생님들에게 고마워합니다.
축구부에 들어가면 축구반 선생님에게 축구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음악반에 들어가면 음악선생님은 악기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은 좋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에게는 반항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자녀들이 살 집을 마련해 주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과 입는 것을 해결해 주시도 않습니다.
음악선생님이 자녀들의 휴대폰비용을 대주는 것도 아니고,
병원비을 내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자녀들이 아버지에게는 반항적입니다.
그 이유를 알려주겠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원 선생님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잠자리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다고 혼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부모는 다른 선생님들이 책임지지 않는
자녀들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인생이 올바로 세워져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왜 이들이 자신에게 반항적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해주는 교사들은
그들에게 칭찬과 좋은 이야기만 해줍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와서 또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바울의 존재를 피곤하게 여깁니다.
바울은 여러분의 결혼생활을 지적합니다.
성도들 간에 서로 고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편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오기 전에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소리칩니다.
바울이 이제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한동안 피곤해 질거라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사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점점 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큰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자녀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다면,
자녀도 교회도 바로 잡히지 못할 것입니다.
13. 매를 아까지 않는 바울
(고전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으로 가랴?
What will ye? shall I come unto you with a rod, or in love, and in the spirit of meekness?
바울은 내가 너희를 곧 찾아 갈거라고 말합니다.
내가 기분 좋게 가도 되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를 가져갈지 온유의 영으로 갈지는 너희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생각에는
아버지가 아침에 일찍 나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혼내기만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하루 종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하고 돌아와서
자녀들을 바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께 이겨온 이후에
그들의 영적상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갈 때
사탕을 가져갈지 회초리를 가져갈지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5장으로 넘어가면
아버지의 아내와 잠자리를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도착하기 전에 그런 일들을 바로 잡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을 편하게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어진 오늘의 사람들
지금 사람들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힘들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날 사람들은
여성화된 세대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편모 편부 슬하에 살고 있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가정 환경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는 엄마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아버지가 가르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엄마나 아버지가 맞벌이 하느라 하루 종일 아이만 집에 맡겨져 있거나
공교육시스템에만 맡겨서 자라게 한다는 것은
결국 자녀들이 가정의 보살핌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없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불편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내가 당신들의 죄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자녀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여러분을 미워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너무 잔인하게 여러분을 지적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버지의 역할을 잘 모르기 때문이거나
여러분의 나쁜 태도 때문이지
바울의 역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고 하지 않는 세상
세상은 점점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보다는
그 일로 인해 자신의 기분이 상하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 하게 여기게 됩니다.
오늘날 강대상에 서고 싶어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설교를 시키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쌓이고 쌓여갑니다.
바울도 가르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키우듯이
그들의 자잘 못을 지적해 주고 죄로부터 구별될 수 있도록 해주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15. 이 모든 이야기의 열쇠가 되는 구절
(고전4:17) 이런 까닭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주 안에서 신실한 자인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나니 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가 너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을 생각나게 하리라.
For this cause have I sent unto you Timotheus, who is my beloved son, and faithful in the Lord, who shall bring you into remembrance of my ways which be in Christ, as I teach every where in every church.
가르치는 곳에서 기억나게 해야 하는 것
“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가 너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 내가 모든 곳에서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바울이 말로 가르쳤던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칠때는
자신의 행실이 그 가르침에 반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정말 자녀들을 가르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말로만 가르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만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너희가 아느니라.
My brethren, be not many masters, knowing that we shall receive the greater condemnation.
16.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말씀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구도 그렇게 까지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삶을 살아내 주어야 합니다.
적어도 일반인들이 보여주는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가정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의 기준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지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사가 성도들에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자신을 제외한 성도들에게만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따르라는 바울
(고전4:16)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Wherefore I beseech you, be ye followers of me.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Be ye followers of me, even as I also am of Christ.
그리스도께서 오른쪽으로 가고 바울이 왼쪽으로 가면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예수님을 그대로 잘 따라가고 있으니
안심하고 나를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17. 말로 우쭐대는 사람들
(고전4:18) 지금 어떤 자들은 내가 너희에게 가지 아니할 줄로 생각하고 우쭐대고 있도다.
Now some are puffed up, as though I would not come to you.
(고전4:19)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곧 너희에게 가서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But I will come to you shortly, if the Lord will, and will know, not the speech of them which are puffed up, but the power
바울은 지금 또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도시들을 다시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 있고
그는 여러 도시들에 교회들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바울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여러도시를
세계여행을 하듯이 다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 마다 다니면서 관광을 즐기고
방문하는 도시에서 멋진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었고
바울은 39번의 채찍을 맞고서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바울은 돌로 죽을때까지 맞았고 상처를 치유중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바울에 대해서 나쁜 상상을 하며
자신들이 보낸 선교헌금으로 부당한 일이라도 하는 것 처럼
비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자신들을 구원시키고 가르쳐준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더 컷기때문입니다.
그들의 부패한 결혼 생활을 바로잡아주려했고,
그들의 부패한 말과 행동을 바로 잡아주려 했던 바울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그 많은 시간들과
과정들을 다 무시고, 자신의 감정을 불편하게 했던 마지막 순간에 갇혀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18. 바울은 우상과 죄와 사악함이 가득한 도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고 우상과 죄와 사악함이 가득한 도시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구원자 예수님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용을 충당하면서 이 일을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손으로 수고해서 일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들에게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일하고 너희 집에 가서 밤새도록 성경을 가르쳤다.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좋은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좋은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가지고
화평과 기쁨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너희 중에 몇명 사람들이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랑하고
내가 최근에 너희들을 위해서 해준 게 없다고 나에게 화를 내고
쓴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쓴뿌리를 가진 사람들
바울은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대상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는 이교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고, 거듭난 사람이고,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은 사람들이고, 성령님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해준 사람을 향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지 않았다고 화가 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담임목사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권위에 승복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오면 자신의 목사에게 먼저 상담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는 유튜브 목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자신의 자녀의 문제를 자신의 담임목사에게 먼저 상담하지 않고,
자신의 가정을 잘 모르는 다른 목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합니다.
다른 교회 목사는 그분이 돌봐야 할 양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사는 다른 누군가를 돌보고 다른 교회일로 분주하게 보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자신의 목사가 자신들의 기대만큼 도와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목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감옥에 있어서 연락을 못했고, 복음 집회를 하고 있었고,
혼들을 구원하고 있었고, 배가 파선이 되어서 일정이 지체되고 있었고,
교회를 세우고 있었고, 돌에 맞아서 편지를 쓸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이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9.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오늘 날 살고 있다면
매일 인터넷 댓글 창에다 매일 불평 불만을 적고 있을 것입니다.
배달이 10분 늦었어요...
단무지를 조금 덜 줬어요..
국수 사리가 너무 적어요… 주인이 친절하지 않아요…
1억짜리 승용차를 타고 중국집에 가서 단무지 더 안준다고
알바생들과 싸웁니다.
세상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빨라 졌고, 기술이 조금 발전했을 뿐
사람들의 태도는 그대로 인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멀리 떨어져 있고, 빨리 와서 설교를 해 주길 원하면서도
사실은 그가 와서 설교하는 것을 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설교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들은 바울이 그곳에 같이 있어주길 원하면서도
막상 바울이 찾아 온다고 하니 또 화가나 있는 것입니다.
21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20. 매 또는 사랑, 그리고 온유
(고전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아니면 사랑과 온유의 영으로 가랴?
What will ye? shall I come unto you with a rod, or in love, and in the spirit of meekness?
21절의 영어 문장을 보면, 이렇게 서술 되고 있습니다.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가랴, 또는(or) 사랑으로 가랴,
그리고(and) 온유의 영으로 가랴(“또는 or 온유로 가랴”가 아닙니다.)
나는 매와 사랑 둘 중에 한가지를 가지고 갈것이고
그리고 나는 거기에 더해서 온유의 영으로 반드시 갈것이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온유함이란 누군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를 어떻게 대접하든 내가 그곳에 가게 되면
나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이라는 겁니다.
내가 그곳을 떠나서도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들을 대할 것이라는 겁니다.
오늘 바울이 보여준 모습,
자신의 삶이 본이 되게 하려는 모습
자신을 가장 뒤에 두는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유익을 얻으셨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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