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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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본문 : 롬 1:3-4
(롬1: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롬1: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declared to be the Son of God with power”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아들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아들이심을 논쟁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설득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을 선포해 주실 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건강한 영적인 생활을 위해서
그분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예수님은 육체로만 다윗의 씨에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전에도 계셨지만 이전에는 육체로 오신 적이 없으십니다.
2천년 전에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신 그 시점부터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영어로 “to be the Son of God” = “I am that I am”
하나님이 자신을 말씀하신 문장과 일치하는 문장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분이 아닙니다.(become)
예수님은 어느 시점에 삼위 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삼위일체의 한 분이셨고 말씀이셨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이셨고 육체로만 다윗의 씨로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유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1:2)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오신데는 세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고유한 동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분을 기름부음받은 왕으로 또는 메시아로 증명하기 위해 마리아의 자궁에 임신하는 기적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윈의 잘못된 주장
다윈이나 진화론 학자들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무생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바위와 먼지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생명은 생명에서 만 올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장이 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모든 생명은 그분으로부터 나온것입니다.
나무, 동물, 공중의 새, 바다의 물고기 모두 그분의 생명에서 나왔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the Word”
이 "말씀"은 “하나님”, “창조자”, “생명”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시작”이셨던 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was made flesh”
롬1:3과 일치되는 말씀입니다.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다윗의 씨로 되었다) which was made of the seed of David according to the flesh”
그분은 항상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
(요1:14) …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육신의 몸 뒤에 감추신 상태로
인간의 몸 안에 담긴 채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1: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형체로 드러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18절 "독생자께서 the only begotten Son”
다른 성경에서는 (개역개정, NIV, 여호와의 증인, ASV)
독생하신 아들을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변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또 다른 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동시에 계시는 예수님
“아버지 품속에 계신 in the bosom of the Father”
우리가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독생하신 아들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그분은 땅에도 계시고 아버지 품속에도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3:13)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분리 되어 계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은 한 분 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나는, 독생자라고 선포하면서,
동시에 나는 아버지 품에도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외에 아들을 알지 못한다.
(마11:25)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마11:26)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았나이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주셨사오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낼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자신을 아주 제약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의로 심판하시고 그들을 긍휼로 덮어주셨습니다.
- 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창4장)
- 같은 이유로 노아에게도 다시 자신을 나타나셨습니다.
- 바벨탑의 심판때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시고 언어를 흩으시고 여러지역으로 흩으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브라함 한 사람과 한 민족만을 다루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고,
시내산에서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성경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 대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거의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 규례와 계명으로 다스리셨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보여 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좁은 면만을 보고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창세가 3장에서도, 4장 가인을 대하실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오래참음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날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셨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오랜 시도가 실패하고
더 이상 그들을 다룰 다른 방법이 없어졌을때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때,
그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모습을 선포하거나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모습에 대해서 선포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오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으로(추정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 무엇과 같으신지,
하나님은 어떤 것들을 인정하시고 어떤 것들을 거부하시는지를
성경과 다르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자신만이 아버지를 잘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심
예수님은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아들인 나만이 하나님을 정말로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제대로 알려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내 삶을 통해서, 내 가르침을 통해서,
나의 죽음을 통해서, 나의 부활을 통해서 너희에게 알려주겠다고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바로 잡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세속화 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조차도 절대적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있고,
성경의 진리를 포기하고 인권과 정치가 더 진리라고 생각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최종권위의 위치에 놓고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법이 있고 이 법을 운영하는 사법제도가 있습니다.
이런 법과 제도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에에 이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법보다 이 법에 대한 자신들의 느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법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국민들이 느끼는지가
중요하게 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학교 제도와 대중 문화의 영향 아래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찾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배우고 일치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문화 컨텐츠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찬송가를 좀더 빠르고 신나게 만들어야 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나는 찬송가를 목터지게 불러서
기분이 좋아져야 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목사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정치적 발언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자녀들을 잘 기를 수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어주길 바라고,
자신의 사업이 성공한 것에 기쁨을 얻고 싶어하고,
자신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간 것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하고,
자신이 저지르는 죄들에 대해서 위안을 받고 싶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지 않냐고 하고,
기독교인이라면 이 사람을 지지해야 하지 않냐고 하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리가 그런 감정을 끊어 버리면
이들은 기분이 안좋아 지는 것입니다.
그런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고,
먼저 말씀 앞에 순종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면,
기분이 안좋아 지는 것입니다.
그런 진리를 선포하는 목사에 대해서 기분이 안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에 다시 가고싶지 않은 감정이 드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당신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도 당신이 가진 느낌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당신 자신은 자신의 느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당신의 느낌에 대해서 당신 만큼 신경쓰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을 사기쳐서 이득을 챙길 사람이라면 잠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다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생각하기 바빠서
당신의 느낌에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물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에 대해 염려하는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 크게 상심하고 염려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로 인해 심판과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을 염려하십니다.
하나님을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실 것이고,
그분은 그 죄 위에 진로를 퍼부을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놓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가르치는 선포를 듣고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만들어 놓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죄를 씻고 의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
누가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한 이방인들은
참 하나님에 대해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가진 유대인들 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눅10:21) ¶ 그 시각에 예수님께서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 되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음을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았나이다.
(눅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주셨사오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낼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아버지를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을 볼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성경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뭔가 말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한 페이지도 읽지 않으면서
그들의 마음 속으로 상상해 가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나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내가 바로 아버지를 드러낼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알려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음성을 들려주어서 알려주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책을 들고 그 책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연구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나는 구원을 받았고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그 근거가
그저 자신의 느낌과 감정이라면 곤란한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서 그 진리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눅3:21) 이제 온 백성이 침례를 받았을 때에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눅3:22) 성령님께서 몸의 형태로 비둘기같이 그분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해 준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만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보겠습니다.
(벧후1:16)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벧후1:17)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자신의 독생자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구약에서 대언된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26:62) 대제사장이 일어나 그분께 이르되, 네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이들이 너를 대적하여 증언하는 것이 어떠하냐? 하되
(마26:63) 예수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내가 너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매
우리가 이 구절에서 보려고 하는 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하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 문장을 보면 이렇습니다.
"the Christ, the Son of God.” “그리스도” ,(콤마) “하나님의 아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 5장 1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때,
사람들은 그 말을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분노했습니다.
(요5:17) ¶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5:18) 유대인들이 이런 이유로 더욱더 그분을 죽이려 하니라.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더라.
“그리스도”라는 말도 오직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질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이냐”라고 묻거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그리스도냐”라고 묻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성립된다면
그분이 바로 약속된 메시아 이면서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같은 부분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막14:60) 대제사장이 한가운데서 일어나 예수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이들이 너를 대적하여 증언하는 것이 어떠하냐? 하되
(막14:61) 그분께서 잠잠하시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그분께 물으며 그분께 이르되, 네가 찬송 받으실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하매
(눅22:67) 네가 그리스도냐?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눅22:6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물어도 너희가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고 나를 가게 하지도 아니하리라.
(눅22:69) 이제부터는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편에 앉으리라, 하시니
(눅22:70) 이에 그들이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라고 너희가 말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과
그리스도라는 말은 서로 대체 가능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그분 위에 머무셨더라.
(요1:33) 나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게 하신 분 바로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성령이 누구에게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네가 보거든 바로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분이니라, 하셨기에
(요1:34) 내가 보고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침례인 요한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고,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라”
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예수님께서 요한이 침례를 주는 자리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를 보고 요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요한은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아고, 메시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이 세가지 용어는 서로 교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이 단어들을 서로 바꿔서
성경을 읽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침례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가 죄인들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어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바울
사도행전 9장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난 뒤의 모습입니다.
(행9:19) 음식을 받으매 강건해지니라. 그 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있던 제자들과 며칠을 지내며
(행9:20) 즉시 회당들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거늘
사도 바울은 지금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할때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삼십가지 이야기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이 삼십가지 이야기를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이고, 구원자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호칭의 의미
(시82:1) (아삽의 시)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 서시며 신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는도다.
이 세상에는 단 한 분의 참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경배하는 여러 권세들과 통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들도 있고 상상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참하나님은 이런 신들을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시82:2) 너희가 어느 때까지 부당하게 재판하며 사악한 자들의 외모를 받아들이려 하느냐? 셀라.
(시82:3) 가난한 자들과 아버지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고난당하는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게 정의를 베풀며
(시82:4)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건지고 그들을 사악한 자들의 손에서 빼낼지어다.
(시82: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며 어둠 속에 다니나니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났도다.
(시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이들이라, 하였으나
(시82:7)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
(시82:8)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땅을 심판하소서. 주께서 모든 민족들을 상속하시리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창조물이 창조당시에 죄가 없이 완전한 상태에 있을때 사용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욥기에서 창조당시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요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출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된 것입니다.
시편에서 이런 모든 소문자 신들은 사람들 처럼 죽게 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심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된 것입니다.
사망이 그분을 붙잡을 권능이 없었고, 사망이 그분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셨을 뿐입니다.(요10:18)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버릴 권능도 취할 권능도 있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덤이 그를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그분으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능력으로 죽음을 물리치신 분이십니다.
육신이되어 이땅에 오셔서 이 모든 것을 행하시고
자신이 신들 중에 참 대문자 신이신 하나님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분은 주 중에 주가 되시고 왕중에 왕이 되시는 분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신들도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신들 가운데 서서 죽음의 권능을 이기심으로
자기 자신을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고 메시아이고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리아의 자궁에 임신하는 기적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신성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지 않았고 아담의 아들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죄가 없는 상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눅1:30) 그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눅1:31)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눅1:32) 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찬송 받으실 이의 아들이시고
높으신 이의 아들이십니다.
같은 분을 의미합니다.
(눅1:33)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하니라.
(눅1:34) 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
(눅1:35)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현대 역본은 "thing"이라는 것을 "것"이라고 번역하지 못하고 “분”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것"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마리아의 자궁에 준비된 것이 몸이고 이 몸은 “것"입니다.
(히10:5)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이 몸 안에 말씀이신 분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신 것입니다.
[말씀]이 아담에게서 취하지 않은 죄가 없는 몸 안에 거하게 됩니다.
여자의 몸에서 죄가 없는 몸이 준비 되었고
말씀이 그 몸을 취하셔서 그 안에 거해서 존재하게 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논의의 대상도 입증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이 말씀은 그냥 선포되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든지 말든지는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 이시고
육신의 몸 안에 거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믿는 것은 성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이것입니다.
(롬1: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롬1: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