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충만히 거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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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이 충만히 거하소서
본문 : 고전 3:16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지금 읽은 16절에 말씀에서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데,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여전히 많은 부분이
무지함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몸 안에 거한다는 교리
고린도와 같은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우 놀라운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건물을 더럽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을 더럽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16절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7절의 경고의 말씀도 그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이 의미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올바로 가르치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 더 관심을 두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야할 책임과 의무는 무시하고 있다면,
그 모임은 교회가 아니고 그저 모임일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한 교회가 아닙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속지 않는다.
(고전3: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독립된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장입니다.
“,콤마”로 이어지거나, 한 문장의 일 부분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어떤 다른 조건과 부가적인 사항이 없이 독립적으로
완수되어야 하는 명령입니다.
사람들은 정부나 정치인들이 여러분을 속일까봐 걱정하고
거짓 종교가 여러분을 속일까봐 걱정하며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정부나 종교나 그밖의 어느 것도 여러분을 속이지 못합니다.
히틀러도, 문선명도, 이만희도 여러분을 속이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리석은 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신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이 취해야 할 자세는
세상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여러분이 지혜로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만들어낸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
이런 것들이 정말 여러분의 삶을 이전보다 좋게 만들었나요?
범죄는 지능화되고 있고, 가족관계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고,
직장 상사는 각종 다양한 소통방법으로 여러분의 삶을 얽매고 있고,
여러분은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전3: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음이니 기록된바, 그분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느니라, 하였고
백신을 맞지 않으면 직장을 다닐 수 없습니다.
백신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백신의 효과는 없는 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안전이라는 이유로 복지라는 이유로, 점점 자기 선택권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이념이 객관적인 진리인것처럼 서로 주장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은 다 거짓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마음에 안들고 짜증나지만, 명백한 것은
여러분과 제가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택은
세상과 구별될 수 있는 유일한 곳 교회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바로잡을 그 날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생명을 나누어 주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좋게 만들어 보겠다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그들의 꾀에 넘어가서 여러분이 세상을 어떻게 좋게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주장에 속아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거룩하지 않는 일들에 내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전3:20) 또 다시, 주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하였느니라.
(고전3: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고전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 것들이나 장래 것들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고전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은 헛된 것
세상 사람들의 의견에는
여러분이 신뢰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몇만명의 사람이 오가는 지하철이나
대형 마트나 백과점이나 술집이나 동성애자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적개심이 없으면서 교회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집니다.
교회에 온다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거나 별거 아닌 질병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집, 영화관, 음악회, 백화점, 어디에서도 걸릴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마스크 거리두기)
엄청나게 진지하게 대하는 것 만큼
성경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더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3:17)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님 세 분이 하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작은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어디일까요? 누가복음으로 가겠습니다.
(눅11:1) 그분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다가 마치시매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하니
(눅11: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는 모든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십니다.
나무나, 바위나, 자연을 섬기는 범신론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행7:47) 솔로몬이 그분을 위하여 한 집을 건축하였느니라.
(행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께서는 대언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르기를,
(행7:49) 주가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고자 하느냐? 혹은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떤 것이냐?
(행7:50) 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느니라.
하늘과 해와 달과 별, 나무, 산, 강 들은 하나님이 만든 것들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 입니다.
제가 성경을 근거로해서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과거에도 하나님이셨고 현재도 앞으로도 하나님이신 분이십니다.
(요16: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그분의 무오함을 입증하며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올리브 산으로 가셔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 땅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여기 계시지 않고 아들도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고전12:12)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롬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자!! 성경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상식적으로, 내 생각에는, 내 느낌에는, 목사님의 견해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현시점에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 우편에 계시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몸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임재하고 하나님의 드러나는 유일한 곳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산속이나 수도원으로 하나님을 찾으러 가봐야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뿐 입니다.
(막16: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닌 다른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을 나타내야할 사람이 거룩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진리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있으시고, 은혜가 있으시고, 친절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서 이런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되는 삶은 해가 됩니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옳다고 말하는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지혜로 속아서 자신이 하는 일이 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것은 죄입니다.
제가 십자가 목걸이를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일요일만 거룩하게 살면 되는 것 처럼 알려준다면,
저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선언하고 난 뒤에
죄로 가득한 삶을 사는 모습이 가득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가득하다면,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모습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지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6:17) 그러나 주와 결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습니다.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행하는 모든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느니라.
(고전6: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자신을 쉽게 음행에 내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기 때문에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은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계시는 것입니다.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가운데 거하고 계십니다.
(고후6:15)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무슨 일치를 보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고후6: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지금 읽은 구절은 우리에게 아주 이성적인 사실에 입각한
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몸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거하는 성령님의 전입니다.
이 말을 이해했다면 이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엡2: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엡2: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주 안에서 한 전으로 자라가고”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적
(엡2: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하나님의 처소”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의 처소이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헌신 할 수 있는
건물(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또한 교회 건물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 건물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인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서
자라나야 하는 곳이 교회 빌딩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공연장, 투표서, 축구 응원)
사람들은 교회에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면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을 거룩한 곳이니 교회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건물은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왔을때는 수준높은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거룩한 하나님의 전은 여러분의 몸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교회 건물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이 거룩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몸을 가지고 수준높은 규범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말을 하고 집에서는 부패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교회에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집에서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에 대한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건물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올바로 이해해야 우리의 경배가 생활 속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시온산에 세워져 있던 성전이 지금은 우리 몸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동하며 함께 했던 성막이 지금은 우리의 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해야
우리의 행동을 거룩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핵심 주제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보통은 뭔가 종교적인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지면 순간적으로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고
예수님과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방언을 하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행복감이 밀려와서
그 순간에는 누가 조금 싫은 이야기를 해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평안과 만족감의 극치를 성령충만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순간적인 종교적 만족감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성령 충만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런 설명을 하는 구절을 보기 어렵습니다.
성령 충만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조건
출애굽기 25-30, 36-39장까지
성막이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지 성막에서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내용이 소상히 적혀 있습니다.
그런 이 내용은 우리가 읽기에 매우 힘들고 지루한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 속에는
적들에게 우박이 떨어져서 피해를 입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피로 변하는 이야기도 없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우리는 화려하고 속이 시원한 결과만을 원하고 있고,
이런 승리와 결과를 위해서 우리가 따르고 순종해야할
내용에 대해서는 순종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순종해서 하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것 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어떤가요?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동시키길 원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 만으로 감동이 잘 안생기면 찬양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출40:33) 그가 또 성막과 제단 주위에 돌아가며 뜰을 세우고 뜰 문의 현수막을 다니라. 모세가 이와 같이 일을 끝마치니라.
(출40:34) ¶ 그 뒤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더라.
(출40:35)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더라.
(출40: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모든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갔으나
(출40: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구름이 떠오르는 날까지 그들이 이동하지 아니하였으니
(출40:38) 이는 이스라엘의 온 집이 자기들의 모든 여정을 통해 낮에는 주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위에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더라.
순종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령님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가득채워주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모든 지침들을
빠짐없이 다 순종하기를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막이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모든 퍼즐 조각들이 정확히 다 맞추어지면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성령이 그곳의 성막에 들어와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명령들에 순종하지 않고서,
교회에와서 눈물 콧물 흘리며 두팔을 벌려 성령이 임하라고 외쳐댄다고 해서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정한 여러분의 몸으로 성령님이 내려와서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 가르쳐야 할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향해서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청년이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예배를 위해서
춤추고 흔들고 신나는 모임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 안에 하나님께서 거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지켜지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느낌만을 느끼려고 한다면,
마약을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인 수 있는 것입니다.
(왕상8:10)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의 집에 가득하였으므로
(왕상8:11) 이에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의 영광이 주의 집에 가득하였기 때문이더라.
구약에는 하나님이 거하는 두 가지 종류의 건물이 있습니다.(성막, 성전)
이 두 곳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멋지고 특별하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 이곳에 와서 거하시라고 해서 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고, 긴시간이 걸리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지시한 말씀대로 모두 성취 되었을 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이 거하실 곳을 가득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오시라는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
성전으로 들어가면 외부 뜰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 앞에는 휘장이 있고,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의 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 긍휼의 자리에는 하나님께서 일년에 한번 내려와 거하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한 사람만이 모든 절차적 과정을 다 갖추고 난 뒤,
그곳에 일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휘장이 색갈이 아무려면 어떻겠어?
아무 나무나 사용하면 어떻겠어?
이런 마음의 자세는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일어 나는 일이나 내 개인적인 삶의 내용은
아무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네 안에 내가 거할 곳을 만들어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세상에서 최고의 설교자가 있고, 최고의 찬양 팀이 있고,
최고의 성경 교사가 있다.
그리고 말씀대로 세워져 가길 원하는 성도가 가득한 교회에 속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네 안에는 내가 거할 곳을 건축해 넣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네 몸 안에는 나의 성령이 채워질 수 없다.
성전을 버리신 예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성막과 성전에 거하시다가
새로운 거처를 세우시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때 성전의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 버리셨습니다.
(마23:38) 보라, 너희 집이 버림받아 너희에게 황폐하게 되었느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 실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는 그 집에서 떠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곳은 더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이방인에게 짋밟힘
에스겔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일로 인해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12세의 예수님께서 성전에 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오랫만에 성전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다시 품으려고 애쓰고 애쓰셨지만,
결국 성전에서 돈바꿔주는 사람의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은 내 아버지의 집이다. 너희가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가짜다. 너는 거짓말쟁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너희가 성전 건물을 가져라”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을 떠나신 것입니다.
(행2:2)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것이 가득하며
(행2:3)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행2:4) 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신 것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들도 붙잡히면 같은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삼년 반 동안 그분 곁에 신실하게 붙어있던 사람들입니다.
(행2:1)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이곳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예수님에게 치료받았던 사람
예수님으로부터 깨끗하게 된 사람, 예수님께서 구해준 사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려준 사람, 예수님께서 먹여준 사람들
그자리에 모인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신뢰한 사람들이 그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죽는 것을 보았을때도 그분을 믿었고,
그분이 죽음에서 일으켜 졌다는 것을 믿었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불법으로 규정되었을 때도 믿고 모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두려워하며 다락방에 숨어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신실한 믿음으로 한마음이 되어 함께 있을때,
바로 그때에 성령님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충만하게 채워진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고 싶다면,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약성경을 열심히 읽고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태가 거룩해지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채워지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 선출
고린도전서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은
교회 안에서 분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 아볼로 게바) 파당을 만들지 말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120명의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있습니다.(행1:15)
그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12번째 사도를 뽑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방안에서 두 그룹을 사람들이 나뉘어져서
두 명의 후보를 내 세우고 있습니다.
이 일은 이들에게 굉장히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왕좌의 권리와 왕국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이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제비 뽑기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들의 한 쪽은 다른 한쪽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 쪽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았고,
뽑힌사람은 결국 나머지 반의 사람이 원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행2:1)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이들이 뭔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이 멈출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 성령님께서 오셔서 이들이 있는 곳을 채우셨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구원 받았다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곳에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부드러움, 온유함, 믿음, 절제가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 곳에 거할 수 있겠다. 내가 이곳에 머물겠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내려오셔서 이들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신약성경 한 구절이라도 외우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신학원도 3년 다녔습니다. 로마서도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래?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어 살 수 있겠느냐?
아니면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모임을 깨버리고 뛰쳐 나가겠느냐?
네가 할렐루야를 잘 외치고 찬양 인도도 잘하고 기타도 잘친다고 해도,
너희가 예수님께 순종하며 따를 수 없다면 성령님이 채워질 수 없다.”
이것은 정말 지적인 진리 입니다. 이성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이 땅에서 거할 곳은 우리 성도들 몸 안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몸 안에서
여러분의 모든 삶에서 지배력을 가지고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순종 할때 그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릴때
그분이 여러분 안에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느낌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성령님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충분히 신뢰하고 신뢰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