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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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악의
본문 : 롬 1:29
(롬1:29)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우리의 상태
(롬1:22)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롬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롬1:28) 또한 그들이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사 합당하지 못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셨으니
(롬1:29) 그들은 곧 모든 불의와 음행과 사악함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하며 시기와 살인과 논쟁과 속임수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고 수군수군하는 자요,
“악의 maliciousness”
나쁘다, 좋지 않다, 작동이 이상하게 되고 있다. 오작동한다,
악의 라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극도의 적개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라는 것은 이유없는 분노, 증오 또는 원한을 말합니다.
단지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또는 복수심에 의해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싶어하거나,
다른 사람이 불행해 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또는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강한 사람이 대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길 바라는 마음이
바로 “악의” 입니다.
“악의"라는 것은 일단 행동으로 행해지고 나면
그것은 더이상 악의가 아닙니다.
행동했다는 것은 악의가 있었음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실행에 옮길 수 있던지 행동에 옮길 수 없는지와 상관없이
마음 속에 적개심을 갖는 것을 악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싶어하거나
그런 생각을 즐기는지를 보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악을 행하는 사람과 동일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혹시 잠시라도 마음속에
누군가 안좋은 일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회만 주신다면
그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악의 이고 적개심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저 내눈에는 음행을 저지르는 것과 같고,
그것은 우상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겔33:11)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자기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돌이키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하라.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꾸짖고 훈계하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악의가 없고, 의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향해서 죄를 짓는 사악한 사람에게 조차 악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없으십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으십니다.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은 일평생 하나님을 조롱하며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을 비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상태에서 죽게 되면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를 조롱하면서 살더니 결국 지옥에 가게 됐구나!!
그거 쌤통이다! 라고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일평생 하나님께 반발하고 조롱하며 일평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되고
주님을 부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마음으로부터 손을 내밀면
하나님은 기꺼이
“그래 잘 했다.. 고맙다.. 이제 내 자녀가 될 수 있구나..” 하면서
그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 순간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함께 매달렸던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강도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전해준 전도지를 구겨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서 쓴뿌리들이 솟아나지 않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죄인들을 향해 “네가 잘되는지 보겠다”든지,
“지옥에나 가라”든지,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이 통제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인들을 향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불쾌한 행동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여러분을 조롱하거나 불쾌한 행동을 한다면,
절대로 그런 모습에 반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서 그들의 불행이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은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모독하고 자신을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반응입니다.
나를 나 만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대한 저주인 것입니다.
내가 화가나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화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시 당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와서 나는 신학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면서,
내가 당신들 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안다는 자세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사람의 말을 성경과 비교하면서
당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이런 부분이 차이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하면
그 사람은 화를 내며 이 교회 더 이상 못다니겠다고 하고 나갑니다.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상대방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많이 공부한 사람인데,
감히 내 말을 무시하냐는 마음에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고 존중한 나머지 화가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여기서 이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다고 뛰쳐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자세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적이고 적개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분노를 빨리 버리십시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8) 이제는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내버리라. 곧 분노와 진노와 악의와 신성모독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대화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분노를 오래 품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분노를 오래 품고 있게 되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신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화를 빨리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왜 분노하는 것을 마치 의로운 일인것처럼 붙잡고 있을까요?
“나는 도저히 저런 일을 참을 수가 없어, 아~ 화가나서 못참겠어…”
라고 하면서 마치 의협심이 불타는 것 처럼 분노합니다.
우리는 빨리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통제하지 못해서 더 다른 일로 확전되기 때문입니다.
내 판단과 내생각은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지켜봐서 알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해서는 안됩니다.
“진노”
화를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의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니면 적개심, 악의를 갖게 됩니다.
내가 사장이 아니라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서,
누군가 나 대신 저 사람을 못살게 괴롭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검찰이 아니라 상대방을 감옥에 보내고 싶은데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 대신 저 사람을 감옥에 가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어떤 능력있는 신, 세상 용어로 귀신이, 저승사자가
저 놈을 데리고 가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주인공”으로 대해 주어야 하는데,
나를 무시한 인간들은 맛좀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방송에서 식당 이야기 하기)
세상 사람들도 양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분별을 합니다.
하물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뭐라고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전도하다가 무시당하면 상대방에게 저주나 하고,
감히 내 아내가 나를 합당하게 대접하지 않는다고 저주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뭔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으십니다.
“성경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말이 틀리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당신은 그리스도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이 마음에 안듭니다. 제 남편을 혼내 주세요”
예수님께서 그런 기도를 할까요?
예수님은 여러분이 누군가를 상하게 할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들어주실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면 그분은 여러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분노를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주님께 그런일을 맡겨서 될까요?
분노를 얼마나 참아야 할까요?
“주님 저는 이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내가 다음주에가서 그 형제에게 따져보겠습니다.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내가 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성경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걸까요?
주님은 당장 화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화가 났으면 그 순간에 화를 바로 버리셔야합니다.
다음주까지... 내일까지.. 저녁까지...
아니요. 지금 당장 분노를 버리셔야 합니다.
그런 분노는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골3:8) 이제는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내버리라. 곧 분노와 진노와 악의와 신성모독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대화라.
여러분이 차마 다른 형제 자매들 앞에서 사용할 수없는 대화를
여러분의 아내에게 뱉어내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도를 가지고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여러분의 분노의 상대를 향해서
그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더러운 대화를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힘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회사의 사장에게는 그렇게 함부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에 끌려가서 검사 앞에서는 그런자세를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고 곱게 빠져나가려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약자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는
마음에 악의를 가지고 행동으로 말로 옮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개심이 더러운 말로 입에서 나오기 전에 분노를 버리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여러분의 입에서 선을 넘는 악의적인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 해야합니다. 이혼, 죽어라, 등
입에서 나오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정치인을 향한 저주하는 말들
나쁜 말들에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악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입에서 나쁜 말이 나오기 전에
분노를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충분한 증오와 미움이 가득합니다.
에베소서 4장으로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많이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아십니까?
서로를 어떻게 세워주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악의와 적개심은 상대방을 한대 치고 싶고 무너뜨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이 맞을까요?
다음 주에 만나서 악의를 쏟아 붇고 싶은 형제가 있으신가요?
어떻게 하면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 하루종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다음주에는 적개심을 푸는 날로 정하고
만일 한 날을 정해서 모두가 서로를 향해서
품었던 적개심을 쏟아내는 날로 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에게는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여러분은 칭송만 받을까요?
아마 여러분이 불쾌한 말 한마디를 들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더 큰 모욕을 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치부를 들추려고 안간힘을 쓸것입니다.
적개심은 멈추어야 합니다.
더이상 작동시켜서는 안될 일인 것입니다.
서로를 세워갈때 서로를 향해서 기도할때,
서로의 형편을 돌볼때, 적개심은 그 어느 곳에서도 사용 될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어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누군가를 향한 적개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임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엡4:30)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은 안전하게 봉인이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 옆에 있는 형제의 봉인에 구멍을 내서
내가 미워하는 형제는 구원에서 제외되기를 바라고 계시나요?
그런 생각은 무익한 생각입니다.
잔불을 꺼야 합니다.
(엡4:31)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쓴것 : 내 마음에 쓴뿌리를 말로 표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노 : 내 마음에 쓴뿌리를 절대로 실행에 옮겨서는 안됩니다.
분노 : 우리를 진정시켜야 합니다.
소리 지르는 것 : 조용히 해야 합니다.
비방하는 것 : 입이 근질그질 하지만 뱉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악의와 함께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하게 만드는 악의를 없애지 않는다면
조만간 다시 여러분의 입에서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내 남편이 나를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지? 내 아내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것야? 오늘은 절대로 그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 저녁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내가 똑같이 해줄거야!)
(아냐!!! 오늘 또 한바탕하면 내일 시댁 or 친정에 같이 가야하는데, 내일 더 피곤한 일이 일어나겠지… 한 번만 더지켜보자…)
이렇게 상대방을 향해서 말은 뱉어내지 않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의 동기들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라면,
언제고 다시 여러분의 분노는 입밖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소방서에서 화재 장소에 와서 화재를 진압하고 나면,
바로 진화 작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잔불 진화작업을 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잔불을 진압하기 위해서 열기를 찾아서 열기를 끕니다.
또다시 큰 불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잔불도 찾아서 꺼야 나중에
큰 불로 번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일들, 집안에서 일어나는 잘 못된 일들,
눈에 보이는 큰 불꽃들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불들은 곧바로 달려가서 소화기를 뿌려서 끄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속에 남겨져 있는 화기는 여러분이 잘 정리하지 않으면,
불씨가 되살아나서 큰 불이 될 수 있습니다.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으면 오늘 집에가서 아내와 싸우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싸움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도 하지말고 저것도 하지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일을 하게 만드는 그 원인들 찾아서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원인이 악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다른사람을 다르게 대하시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저 놈은 욕을 먹어도 싸다고 말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사람이 욕을 먹어도 싸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대우가 합당한지
하나님과 한번 논쟁이라고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런 자격을 논할 처지가 아닙니다.
은혜에 대해서 오래 참음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격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에게는 은혜와 긍휼을 멈추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잔인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악한 일에 아이가 되어라
(고전14:20)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
어린아이는 뭐가 위험한지 뭐가 잘못된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는 친구들과 싸우고 놉니다.
그러나 친구와 다투면 울면서 집에 들어 옵니다.
어떤 친구가 안놀아 준다고 투덜거리면서
철수하고 다시는 안놀 것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에 가면 다시 그친구와 잘 놉니다.
아이들은 어제 감정을 다음날로 이어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혼냅니다.
삐쳐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급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버지가 맛있는 빵을 사가지고 돌아보면,
아버지를 끌어안고 기뻐합니다.
아이들은 나쁜감정을 오래가져가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런 미워하는 감정을 오래가져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당할때는 아프고 싫지만 그런 감정을 빨리 버리고 다가갈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친구에게 맞아서 안경이 깨져서 들어옵니다.
친구 엄마는 전화가 와서 미안해서 어쩔줄 모릅니다.
안경값과 치료비를 다 지불해 드리겠다고 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그 친구와 다시 같이 놉니다.
그리고 지금도 친구로 지냅니다.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고전5:7)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고전5:8)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악의와 사악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끼고계십니까?
그런 구원을 생각하며 매일 매일, 그리고 매시간, 감사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을때 가지고 있던 악의와 사악함을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악의와 사악함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들입니다.
뿌리채 없애버려야 합니다.
구원받았다, 친절하게 되었다.
(딛3:3)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
(딛3: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내가 전에는 구원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가요?
내가 과거에는 악의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친절합니다.
이 말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는 여러분에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거짓말로 꾸며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고
마음에 걸릴 것이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친절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친절하지 않으면서 친절하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친절하지 않은 것을 다 알아 버립니다.
저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딛3: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런 사람도 사랑한다는 거야?
라는 의미로 표현될때는 간단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사랑할 만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말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친절하십니다.” 이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도 친절하시다는 표현은
동의 받기 쉬운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친절을 보고
하나님이 정말 저사람을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일이라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친절은 모든 사람에게 나는 특정인에게
하나님의 친절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친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해를 비추면 자신의 백성에게도 비추시고
세상 사람에게도 비추십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면 자신의 백성에게도 비를 주시고
이방 민족에게도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랑과 친절은 항상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향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여전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우리의 삶의 근원이 아직 육신에서 나오는 것을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입맛을 사라지게 하는 것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모든 교활함과 위선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2:2)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2:3) 너희가 주께서 은혜로우신 것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제가 지금 강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앞줄에 앉아있던 형제가 짐을싸서 걸어나갑니다.
저는 생각에 감깁니다.
저 형제가 감히 내가 설교를 하는데
나를 등지고 내게 보란듯이 걸어나가다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악의 입니다.(1절)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기로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영적인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베드로 전서는 그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아직 앞이(치아)도
나오지 않은 갓난 아기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배를 대고 기어다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1절은 모든 악의와 교활함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에서는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면
나는 성경을 읽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계속 나를 불쾌하게 만든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게 됩니다.
제가 아내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있는 성경을 읽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계속 나의 감정을 부글부글 끊어 올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생각에 매달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려는 마음을 상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쓴뿌리와 분노와 진노와 악의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섭취하고 싶은 입맛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요삼1:8)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위한 동료 조력자가 되기 위해 그런 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삼1:9) 내가 교회에 썼으나 그들 가운데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요삼1: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하는 행위들을 기억하리라. 그가 악한 말들로 우리를 헐뜯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 자신도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들도 금하여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저는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형제 자매를
악의을 가지고 비난하고 비방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상처를 주려고 공격적인 상황을 만드는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시간을 구원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설교자를 비난하는데
강대상에서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다시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그분의 피로인해 죄가 씻겨졌음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외에 다른 것에 나와 동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공격하는데 설교 시간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간혹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설교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을 끌어내리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무시됨으로 인해서 자신이 받아야 할 영광이 가려진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서 공격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간극이론 하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싸우는데 인생을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지고 동의 하지 않는 사람과 다투고 싸운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환난전 휴거와 환난 후 휴거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
설전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저의 기준을 가지면 되는 것이고
저에게 맡겨진 성도들를 성경의 말씀에 따라 가르치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시간이면 자신의 양들에게 더 풍성한 말씀을 먹이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유익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교회 설교에 여러분의 지식으로 설교가 뭐가 잘못이라고
비난의 댓글을 단다고 해서 여러분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적개심에 만족감을 주지도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일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일 다른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구원받은 목사의 설교에 비난을 할 생각이 있다면,
그럴 시간에 다른 혼을 하나라도 더 이겨오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유익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악의를 지우고 제거해야합니다.
여러분이 악의를 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라지지 않는 악당들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여전히 육신의 옷을 몸에 걸치고 악의와 사악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영화속에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화를 보면 마음이 시원해 집니다.
그래서 나쁜 놈을 시원하게 패주고 물리치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입니다.
현실에서 악당들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불가능한 일에 생각을 빼앗기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결하려는 문제들의 어떤 부분은
해결이 필요없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살아가다 보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비난하고 여러분이 구원도 받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고
수 많은 공격의 글들과 소문이 있다고 해도,
여러분이 그런 일들에 악의를 가지고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설교의 내용이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이 진리이면 흔들리지 않고 붙잡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은 것이 잘못된것이 성경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바로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서 가는 그 길에 우리의 미숙함으로 뒤뚱거리고 가더라고
주님을 향해서 가고 있다면, 지켜보고 격려하고,
지혜를 나누면서 서로를 세워주고, 오래 참으며 함께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음에 안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기대하는 마음은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의 잦은 실수와 오류에도 인내하고 친절함으로
여러분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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