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가 예수님에 관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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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기독교가 예수님에 관한 것이 아닐까?
본문: 롬 1:16
(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사람들은 사역자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 자체 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더 강조점을 두거나 더 중요성을 두고,
더 관심을 갖고, 더 신뢰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권능은 설교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있다는 것을 규정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이 먼저라는 의미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성경에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유대인에게 먼저전해야하고
그리고 나서 그리스인에게 전하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시는 말씀이 아나라,
복음이 드러나는 순서가 그렇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디에선가 시작되어야 했고, 그 시작 점은 유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유럽이나 중국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면
복음은 유럽인들에게 먼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이 드러나는 순서를 말하는 것일 뿐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지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특별한 순서가 있거나 차별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롬10:12) 이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 위에 계신 같은 주께서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니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죄의 경중을 더하거나 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구원의 방법에도 어떤 차이도 두고있지 않으십니다.
(갈3:28)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뒤에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남자이고 여자 입니다.
마찬가지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구원받는데
구원과 의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륜에 따른 순서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왕국이 먼저 주어졌고(복음서) 복음이 먼저 제시되었습니다.(행)
이방인도 복음의 유익에 동일하게 참여함을 강조함
그러나 로마서 1장에서 설명하는 말씀의 초점은
이방인들이 복음의 축복에 참여하는데 배제되지 않고
동등한 지위에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복음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요?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적 복음이
유대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자신들의 문화를
다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1.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더이상 특별한 민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 너희가 가지고 있던 성전이나 제사장 제도가 더이상 필요없어졌다고 말합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특별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4. 교회가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5. 너희와 이방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말은 이방인들에게는 매력적인 말씀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잃어버리는 느낌을 갖게합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출애굽을 한 이후에
그들은 계속해서 너희는 특별한 백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갑자기 너희는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유대인들과 동일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되자
그들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반복 기록하신 하나님
사도행전에서 10장과 11장에서 이방인 고넬료가 구원받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반복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10장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 같은 그릇 하나가 땅으로 내려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 짐승들이 있었고 그것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환상이 끝나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초청을 받고 갑니다.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복음을 전해집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 내용을 11장 5절부터 베드로가 증언하며 다시 기록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반복해서 기록하심으로
10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외 사항이 아님
예루살렘 회의
그리고 15장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두 모아서
이방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를
토론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행15:6) ¶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
(행15:7) 많은 논쟁이 있은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매우 오래 전에 우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행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주사 그들에게 증언하시며
(행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관점에 대해서 복음이 불편한 이유는 뭘까요?
그렇다면 이방인들은
성경적 기독교관을 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가 입니다.
1. 기독교라는 것을 기존 유대종교의 한 아류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의 생각에는
유대인들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경멸받는 민족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마치 유대인 한 민족의 집안 싸움으로 생긴 것 같아 보입니다.
복음을 전한 사도 들도 유대인이고,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를
유대교의 아류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갈보리 십자가 사건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분지어 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유대인이나 믿는 종교를
자신들이 믿어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부정적 이미지가
자신들에게 씌워지는 것에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입니다.
2. 종교의 창시자의 미천한 출생과 부끄러운 죽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슈퍼 히어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슈퍼맨 어벤져스 원더우먼 홍길동 아이돌과 같은 영웅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그분은 여물통에서 태어나셨고,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목수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채찍을 맞고 조롱을 받고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창으로 옆구리가 찔리면서 다른 강도들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으켜지지 않으셨다면
예수라는 사람을 자신의 하나님과 왕으로 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전혀 설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예수님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지구를 공격하는 악당들을 무찌르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무찌르시고 이기신 것입니다.
슈퍼 히어로가 우주 악당을 물리쳐 준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을 지옥과 사망에서 건져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망이 가장 큰 적인것입니다.
슈퍼맨도, 홍길동도, 아이돌도 사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사망을 이려보려고 했지만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의 사망까지
해결해 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영웅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기독교의 앞선 사역자들의 상태와 그들의 사역이 너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대형교회들이 주류를 이루기 전에는
교회 사역은 부유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부유해 지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주님을 따르는 일들을 물질적 풍요와 연관짓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전도 여행을 하면서 도시들을 방문할때 그곳에 가져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 말고는 가져간 것이 없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다녔던 도시들은 바빌론 문화와 로마 문화와 그리스 문화로
풍요로운 도시들이었습니다.
그가 따르던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신은 머리 둘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삶을 따르는 바울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것은 복음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선교사의 모습
오늘날 선교사들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서 가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권능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일가요? 아니면,
선진국의 의료혜택과 먹을것과 재물을 더 가지고 가고 싶어할까요?
그렇다고 의료선교라는 것이 필요없다거나
어려운 지역의 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선포하지 못하고
의료혜택과 좋은 옷과 먹을 것을 나누어주면,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선진 문물의 혜택을 전할 뿐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풍요함의 중요성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더 많은 쌀을 요구하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많은 의료혜택을 받다가 지옥을 가는 일이 벌어질 뿐입니다.
과거 선교사들의 모습
과거 교회사에서 선교사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타국에갈때 다른 것들을 함께 들고간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복음만으로 그들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아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게 해주고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아프다가 죽더라도 죽음 뒤에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방법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그들과 같은 질병에 걸려 죽으면서도
주님을 붙잡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하면서
주님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들은 이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누구시길래
이들이 이렇게 죽음 앞에서 평안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물질을 선택하게하는 선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풍요로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들이 주는 풍요를 더 빨리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제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의사보다 음식보다 옷보다
더 우월하다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조차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가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
그래서 그들에게 돈과 재물을 퍼 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면,
그들에게 돈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줄 돈이 떨어지면 여러분을 쉽게 떠나서
돈을 주는 다른 종교 지도자를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물질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돈과 물질을 제공하면서
그것으로 그들의 혼을 구원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물질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약속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는 여러분이 열심히 일했거나,
열심히 사기를 쳐서 열심히 저축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의 통장에 입금된 돈 중에 일원 짜리 하나도
하나님의 계좌에서 여러분의 계좌로 송금된 돈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돈이 있다면 그 돈은 주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4. 사람들에게 반성과 회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17:30)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교회를 세워가는 길입니다.
쇠사슬에 묶여서 망가진 모습으로 로마로 끌려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곳의 콜로세움을 보고 그들의 부유함을 보고 거대한 조형물을 보고
그들의 궁궐을 보고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회개하라고 선포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로 십원짜리 한 장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모습 중에 자신있게 내세울 모습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쇠사슬에 묶인 상태로 로마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바울을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에게는 값비싼 선교버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자 후원해서 보내주는 돈과 나누어 줄 좋은 옷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식량을 후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나누어줄 영양제나 약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에게 교회 건물을 세울 돈을 지원해 주는 후원단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먹을 것과 입을 것만을 충족시키며
거대한 세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많은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복음만이
죄인들을 지옥에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바울의 이런 행보로 고린도에, 로마에, 빌립보에, 에베소에
교회가 세워지게 만드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시고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게 되면,
금과 은을 주지 않아도 새로운 생명이 마구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들에게 예수님이 아니면 모두 지옥에 간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길 이외의 다른 모든 길은
전부 지옥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만큼 착하고 선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담고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믿고 있는 모든 신념과 믿음을
다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고 전합니다.
오늘날 많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조차도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임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오지에 사는 부족을 만나서
지금까지 믿어왔던 당신들의 신들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믿는 신들은 당신을 지옥으로 보낼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은 따지듯이 물어볼 것입니다.
그럼 당신이 전하는 예수만 믿어야 되고 다른 종교는 다 지옥이라는 것이냐?
그 말이 맞다고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여러분을 향해서 조롱하고 비웃고 편협한 종교관이라고
비난을 서슴없이 할 것입니다.
자기들끼지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주장하는 (we are the world)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입니다.
6. 자신들이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노력과 자부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잘보이려고 해왔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 신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자신의 육신을 통제해 왔고 선행을 쌓아왔고,
고행도 서슴없이 해왔습니다.
면벽수련도 하고, 백 팔배도 하고, 몸을 학대해서 욕정을 참아왔고,
고행을 하며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별의 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기꺼이 하게 됩니다.
교주가 주는 썩은 물도 먹게 되고, 교주의 발씻은 물도 먹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딸을 교주의 잠자리에 집어 넣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값없이 구원을 주시겠다고 하면,
그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복음을 듣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은 값없이 생명을 주시는 복음을 거부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수준 높은 종교적 행위를 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스스로 결혼도 하지않을 것이고 편하게 잠도 자지 않을 것이고,
편안하게 잘 차려진 음식도 먹지 않을 것이고,
무릎으로 산을 기어올라가는 고행을 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노력으로 뭔가 더 수준 높은 삶을 만들어 내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루어놓은 구원을 값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자존심 상해 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복음이 매우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7. 복음에는 화려한 신전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관능적인 의식과 일반인들이 흠모할 화려한 사제직과 같은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 시설이나 사원들 가보면
뭔가 손에 잡을 수 있고, 눈에 보이는 형상을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교회 입구에 동상들을 세워놓고, 절 입구에 사대 천왕을 만들어 놓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경건함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뭔가 종교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회에 들어가면 그곳에는
그저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찬송가책과, 성경책과,
강대상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 만이 놓여있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종교적인 것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영적인 존재들의 형상이나 그림들이 없는 것입니다.
뭔가 여러분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있고 여러분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그리고 교제를 통한 관계가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방인들은 짐승과 창조물들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뭔가 느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8.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모든 인종이 평등하다고 가르치고,
사회적 계급도 주님 안에서 평등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에서 흩어진 이후에
선택된 신분에 따라 출생의 신분들을 자랑하는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허물어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인종과 자신의 언어가 다른 인종과 다른 언어보다 뛰어나다고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복음은 그런 차별과 자부심은
모두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차별을 없애는 복음
세상은 남녀의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
교육을 통해서 방송 매체를 통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남자는 여자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과정이 필요없이도
남자가 구원을 받고 성경을 읽게되면 여자를 존중할 줄 알게 됩니다.
흑인과 백인이 한 자리에 앉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양반과 상놈이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인과 종이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에 나오면 모두 한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인권과 인간의 평등을 이루어가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하나가 되려고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현대 교회의 문제점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으려하기 보다는
성경에서 자신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는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1. 현대 교회는 기독교의 근본 원천을 말씀에 근거한 복음에 두지 않고, 다른 것들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교회가 사도적 계승을 따른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교회와 유대적인 것과의 관련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는 유대인들을 위한 종교가아니고 유대종교의 아류도 아닙니다.
교회는 정확히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복음을 가리고 다른 것들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 조차도 아무 의미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미천한 구유에서 태어나셨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런 천한 것들은 뒤로 숨기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보여줍니다.
산타할아버지와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초라한 구유에 태어나신 모습을
사람들에게서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벌거벗겨져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셨던 모습을
알려주고 기억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피흘리신 모습을 여러분 마음 속에서 지워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여러분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연인과 함께 데이트하며 기뻐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육신적인 파티를 열고
음악회 공연 보러다니라고 죽으신 것일까요?
오늘날 현대 기독교가 가르치는데 소홀한 것은 예수님이 없었다면,
여러분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현대 교회는 부와 번영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현대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믿었더니 가난했던 삶이 부유해 졌고,
일요일에 쉬는 기업을 만들었더니 대기없이 되었다고 말하고,
자신이 드린 헌금이 얼마나 더 큰 부로 돌와왔는지를
간증하게하고 책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열심히 가르쳐왔습니다.
부자가 장로가 되고 유명인이 장로가 되게 만들어서
교회 재정이 풍부해지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
듣고 싶어하기 보다는, 재미를 위해 거짓 교리로 가득 채워진
휴거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 합니다.
영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오락산업입니다.
4. 현대 교회는 죄의 고백과 회개가 없습니다.
현대 교회가 가르치는 길은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을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넓은 길을 제시합니다.
진리의 길은 좁은 길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죄들을 포용하고 지적하지 않고 회개하게 하지 않고
숫자만 늘려서 교회 안에서 함께 가려고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5. 현대 교회에서는 사람들은 자부심이 부족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자부심과 자기 사랑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현대 교회에서는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교회가 성경적인 것들을 버리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어서
교회 숫자를 늘리는 것은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현대 교회는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선교단체라고 하고 신학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보다 더 좋은 개념의 모임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여서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그들은 학위를 주기도 합니다.
교회 장로님들은 청년 부흥을 위해서 말씀보다는 피자를 제공하고,
파티를 열어주면서 그들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배우며
교회에서 성장하게 만들어 줍니다.
6. 현대 교회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사람들이 교회 건축물들에 관능미를 느끼고 그곳에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들어 오는 입구를 웅장하게 만들어 경외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현대 교회는 무대 조명을 위해서 몇 천만원을 사용합니다.
마이크와 음향시설을 위해서 몇 억을 사용합니다.
방송 영상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몇 억을 투자합니다.
강대상의 십자가에 푸른 조명을 위해서 몇천만원을 사용합니다.
핀조명을 위해서 몇 천만원을 사용합니다.
이런 투자들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연극 공연과 같은 무대 공연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들이 바로 조명과 음향과 배경음악들 입니다.
7. 현대 교회는 하나님 보다는 육신적인 것들에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성애자들의 자유로운 성관계자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신주의자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고 말을 합니다.
주님은 당신들도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말합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라고 말을합니다.
왜 그들은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를 세워나가려고 하지 않고,
그분의 신부인 우리를 위한 교회를 세워나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자신이 속한 작은 단체를 만족시키는 교회를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세상을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진정한 기독교는 세상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구에 맞는 교회를 찾아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존중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교회의 진리를 세상에 맞추어 주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교회를 찾을 것인지,
세상의 즐거움을 가져오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을 것인지,
선택을 잘 하셔야 합니다.
(막8:38)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하시니라.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자기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중에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저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붙잡을 용기가 없는사람입니다.
낮은마음 침례교회에서 제가 감독으로 있는 한
교회 성도 한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 죄와 타협하는 시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세상이 미워하고
주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임을
교회에 하나 더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교회를 바로 세우고 여러분이 바로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좁을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제시한 의도와 길을 희석시키지 말고,
성경이 제시했던 그 길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에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저도 그 말에 동의 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믿음은 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믿음과 사역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