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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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합당한 교사
본문: 롬 2:23
(롬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입장에 놓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감독이나 교사, 믿음의 선배, 부모,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때,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 지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롬2:17)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 안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롬2: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롬2:19) 또 너 스스로 눈먼 자들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롬2: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롬2:21) 그런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사람이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롬2:22) 사람이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몹시 싫어하는 네가 신전 물건을 몰래 취하느냐?
(롬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 말씀은 가르치는 일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는 말씀을 하고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헌신과 수고의 필요성
작은 지역교회에서 합당한 사례비도 받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명성도 원하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 자체로 기쁨을 느끼고 있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쁨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멋지게 갖추어진 곳에서 조명을 받으며 강대상에 서는 일은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자칫 하면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죄를 쉽게 짓기도 합니다.
화려한 무대를 찾거나 기다리지 말고,
자녀에게 손자 손녀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으셨고,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알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도 알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도 알고 계시고,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다니엘과 사자 굴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롭게 알게 된 진리를 여러분의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에 대해서는
피를 토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서는 열심히 전파하면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과
그분이 알려준 진리가 담긴 성경을
신나게 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 입니다.
정치를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축구 팀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보다 값진 것을 여러분에게 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시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그 만큼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그만큼 삶에서 언급하고 살고 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경을 잘 몰라서 가르칠 수 없다면,
그래서 혼을 구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안타까울 것입니다.
오늘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성경이 언급한 다섯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율법 안에 안주하고"
(롬2:17)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 안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안주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 일까요?
싸우는 일이 끝나고 걱정과 불안이 끝나고, 모든 혼란스러움이 사라지고
더이상 의심스러운 문제로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의 믿음이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은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으로 확신을 가지고 한치의 의심이 없는 상태로
성경 말씀을 다른 사람들을에게 가르칠 수 있나요?
성경이 말하는 하늘과 지옥, 심판, 죽음,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나요?
매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목사가 있는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 일것입니다.
목사가 성경이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고,
성경에는 번역에 오류가 많이 있다고 가르치고,
성경에는 신화가 석여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 목사는 만씀에 안주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리인지 마음에 씨름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 말씀이 여러분 삶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르치는 말씀에 확고한
안주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1 더하기 1은 2 일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수학선생님 밑에서 배운다면
여러분이 그 선생님을 믿고 공부해서 수능시험을 볼수 있을까요?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확신하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에게
여러분의 생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가르치는 사람은 율법 안에 안주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롬2:17) 보라, 네가 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 안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자신이 감동받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가이드가 있는 단체 여행을 가서
가이드가 여러분에게 뭔가 열심히 흥미롭게 가르쳐 주거나
설명해 주지 않는 다면 여러분도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고 싶다면,
여러분이 먼저 흥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학생들에게 주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이 먼저 주님을 사랑하셔야 하고 그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이끌고 싶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세상 이야기로 채우기 보다는
주님을 통해 얻은 감동을 이야기 해주어야 그들이 매력을 느끼고
말씀의 진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분의 뜻을 아는 것 입니다.
(롬2: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학교 선생님이 되면 한 학기 동안 가르칠 교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교안이 정확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은
그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그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선생님 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도들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쳐서 어디로 이끄시고자 하는지를
가르치는 사람이 잘 알고 있어야
자신의 학생들에게 올바로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새롭게 영접해서 교회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그런 삶이 어떤 삶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러분의 능력과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러분이 돈을 벌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가이드 라인이 잡혀 있지 않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교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찾아서 교회에 모인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늘에 갈 수 있는지를
어떤 삶을 살아야 그리스도 심판석에서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고 가르치고있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다면 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잘 모르겠다면, 열심히 성경을 연구해서
먼저 자신이 충분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아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는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롬2: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이전에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매일 잘 적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고기가 신선한 것인지 볼 줄 모른다면,
여러분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마켓에 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고기보다 저 고기가 더 싱싱하고 좋은 것이라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대부분 우리 삶에 놓이는 것들을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를 선별하고 선택해 나가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어떤 행동이 더 좋은 행동인지,
어떤 말과 표현이 더 좋은 표현인지,
어떤 물건이 더 좋은 물건인지를 잘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술과 친구들에게 내어 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이
그냥 구절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 설교 저 설교 찾아서 들려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를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결정하는 문제도 중요한 것입니다.
잘못된 설교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오면,
무엇이 좋은 설교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타까울때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를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여자를 얻는 것과 음행을 통해 여자를 얻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과 진리를 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가치있는 일인지가 알고 선택하는 능력,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요일과
축구경기장에서 보내는 일요일 중에 어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인지..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느 교회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끝없는 방황을 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결정을 해서 혼란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을 하는 것과 기도를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우리가 해야 하는지..
나누어 주는 것과 탐욕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주님을 전하는 일과, 세상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여러분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놓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중에
어느 길이 훨씬 더 뛰어난 길인지를 명확히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를 찾아서 교회로 찾아온 사람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것이 뛰어난 것인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 비판이나, 다른 종교를 비난하고 조롱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때문에 뛰어난 것인지를
왜 좋은 것인지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금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먹고 배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다른 종교를 믿는 것보다
무엇이 뛰어난지를 비교해서 가르쳐 줄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안됩니다.
어떤 성경이 좋은 성경인지 말해 줄 수 없다면,
(이 성경은 읽기에 좋고, 이 성경은 문체가 좋은데,
그냥 마음에 드는것 읽으세요.)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방법보다 뛰어난 구원의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어떤 방법보다 뛰어난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성경보다 뛰어난 번역 본의 성경이 있다는 것,
더 뛰어난 교회를 찾는 방법이 있다는 것,
복음을 전하는 더 뛰어난 방법이 있다는 것,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느 것이 좋은 것이고,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최고로 뛰어난 것인지 그 차이를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정답이 어떤 것이어야 네가 기분이 좋아지겠니?
네가 기분이 나쁘지 않는 것으로 정답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는 것이 정답인지 내가 가르쳐 주겠다, 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롬2:18) 율법에서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훨씬 더 뛰어난 것들을 입증하며
아버지는 아버지이기때문에 집에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통해서 아버지로서 인품과 리더쉽을 배워서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최종권위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로만 외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이 최종권위라고 인정하면서
여러분이 성경으로부터 배워서 그 삶이 드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성경이 말하는 지혜를 그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배워서 진리를 가르치면 되는게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진리를 안다는 것 만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도덕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성경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성경을 가르치면서 성경과 정반대의 삶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있다면
제가 아무리 성경에 근거한 말씀을 가르친다고 해도,
여러분은 저에게 말씀을 배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음행에 가담한 상황이 드러난다면,
그 순간에 그는 모든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교회의 헌금이나 공적인 돈에 손을 대고
사적으로 이용했다면 그 순간에 그는 모든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으로부터 먼저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음행에 대해서 주의 하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성도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르친다고 해도 성도들이 배우는 것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목사의 몸에 밴 행동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이 유대인들을 싫어하고 존경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려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리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살고 있다면,
부모의 권위에 거역하고 사는 자녀들을 책망할 명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엄마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살고 있다면
자신의 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가르치는 것은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딸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미 모든 신뢰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가르치면서,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직장 동료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에 안주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더 뛰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먼저 가르치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라도 먼저 자신의 삶의 모습이 신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에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인 일에도 신실하라는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은 성경을 많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하겠지만,
자신을 말씀으로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그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을 먼저 말씀으로 가르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교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
교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니다.
눈먼자의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롬2:19) 또 너 스스로 눈먼 자들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시각장애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이 사람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쉽게 도로를 건너는 사람과는 다르게
지팡이의 도움을 받거나, 신호기의 소리에 도움을 받거나,
도로의 표지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서 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시각장애인을 보면
우리가 그 사람을 향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길을 건너는 동안 옆에서 도와 드려도 될까요?
제 팔을 잡고 같이 건너시겠습니까?
제가 말로 위치를 잡는 것을 도와 드려도 될까요?
라고 묻고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비난하고 비판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 형편없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의 능력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일을 하기 보다는
그들의 약함을 도와주고 그들이 가야할 길에 옆에 같이 서서
그들을 돕는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사히 집에 도착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거짓말하는 사람도 많고
도둑질 하는 사람들도 많고 탐심이 많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들이 범죄하고 감옥에 가는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릴때는 가르치는대로 잘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기 시작하면,
이들은 잠시 장님이 됩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던 순종은 사라지고,
뭔가 잘하려는 노력은 사라지고 삐뚤어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럴때 일수록 진리의 길을 보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안내하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외치지 말고 지적만 하지 말고,
팔을 내어주고 어깨를 내어주어서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롬2:19) 또 너 스스로 눈먼 자들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자에게 길이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무처럼 생긴 채 걷는 것을 내가 보나이다.
(막8:24) 그가 쳐다보고 이르되, 사람들이 나무처럼 생긴 채 걷는 것을 내가 보나이다, 하거늘
뭔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막 구원받은 사람에게 눈이 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초첨이 잡히지 않습니다.
어떤 젊은 친구는 머리가 장발이 되어 있고 몸에는 문신을 하고
옷은 요란하게 입고 담배를 물고 자신을 멋지게 뽐내고 다닙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거칠고
퇴폐적인 표현이 가득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멋있게 볼것이라는 생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보았더니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친구의 문제가 뭔지 아시나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장님의 상태가 되어서 여전히 어둠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정부분이 아직도 진리에 대해서 장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무래도 안되겠어!!
네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기 전에는 다시는 우리 교회에 오지마!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빛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둠에 놓여 있는 부분에 빛이 되어 주어서
그곳에 빛을 비출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인내를 가지고
술에 취하지 말라고 알려주었고,
부패한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알려주었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혼을 통해서 잠자리를 하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의 빛을 붙잡고, 잘못된 부분을 버리고,
잘라내고, 씻어내고 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은 학생이 졸업할 수 있을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한 수준에 이를때까지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지금보다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때까지
함께 알려주고 눈을 마주쳐주고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고
힘들어하면 옆에가서 격려도 해주면서
그 학생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미성숙한 성도들이 아직 높은 수준의 신앙생활을 못 한다고 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의의 수준을 낮추어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나 만큼 성숙하지 못한 형제 자매들에게
다짜고차 그런 옷을 입으면 안된다고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그런 머리스타일로 교회에 들어 올 수 없다고 돌려보내는 것은
또한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너무 조급한 것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지금의 모습으로 빚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가르쳐주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십년 삼십년 알게 된 빛의 양을 가지고
지금 막 시작한 성도들의 미숙함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데 마음을 쓰지 말고
그들에게 더 많은 빛이 비춰지도록 알려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 영적 어린아이 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긴 시간을 세상의 어둠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2: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면에서 하나님에대한 생각이 없이
생활을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말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서 기도하셨나요?
아니면 그냥 하고싶은 데로 시간을 보내셨나요?
지난 주말을 무엇인가를 구매를 하셨을 겁니다.
그런 구매를 할때 기도해 보셨나요?
아니면 그냥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셨나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하나님을 위해서 유익한 일인지에 대한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고 물건을 구매 했던 모든 행위는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행위를 그대로 한 것입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르쳐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때는 그 일을 결정하기 전에,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에,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계획하기 전에,
주님이 조명을 주실 수 있도록 주님을 그 자리에 모셔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손에 들고 성경 속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정말 모든 일을 할때 성경의 지혜를 구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좀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몇가지만
하나님께 자문을 구하고 계십니까?
아기들의 교사가 되셔야 합니다.
(롬2: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여러분도 갓 태어난 아이를 가르칠때는
하나 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쳐야 합니다.
그거 하면 안돼!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그래 잘했어!
그러면서 아이는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면 하루종일 하는 이야기는
안돼!, 하지마! 거기가면 안되! 그거 만지면 안돼!,
이러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아기를 사랑한다면,
지치지 않고 가르치려고 할 것입니다.
주일학교에 꼭 참석하라고 알려줄 것입니다.
예배는 꼭 드려야 한다고 가르쳐 줄 것입니다.
교회 갈때는 항상 감사의 헌금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가르쳐 줄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지식과 진리의 틀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롬2:20) 율법에 있는 지식의 틀과 진리의 틀을 갖춘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스승이요, 아기들의 교사라고 확신하는도다.
하나님의 진리가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진리인지
그 규모와 형태와 모양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코끼리를 설명하면서 코끼리 다리가 어떻게 생겼고
꼬리가 어떻게 생겼고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양과 형태를 알고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코끼리의 형태가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흥미롭게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차이를 모르고 가르치고 있다면,
듣는 사람은 여러분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줄 수 없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지낸지 십 수년이 되었는데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을 소유한 매력이 드러나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한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올바로 알지 못해서
성경을 이야기 하는지 불경을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올바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사가 가져야 할 기본
(롬2:21) 그런즉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사람이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롬2:22) 사람이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몹시 싫어하는 네가 신전 물건을 몰래 취하느냐?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일관적이지 못한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의지를 가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의 삶은 느슨해지고
어느덧 자신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우상을 섬기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지만 자꾸 우상을 만듭니다.
이들은 우상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한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잘못 속에서 결국 우상이 하는 일을 다 따라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신앙의 여정을 시작했고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잠시만 방심하면
여러분은 여전히 세상이 놓은 덫에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일요일에 교회 보다는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고
성경책 보다는 페이스북이나 세상의 뉴스에 관심이 가 있습니다.
신앙은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지속적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혐오집단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좋은 선례를 남기지 못했고,
그들이 가르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다 지켜보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쏟아지는 비난은
세상 사람들의 무지(無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지금까지 뿌려놓은 것들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게 구별하지 못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기복을 가르쳐왔고
교회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보다는 세상의 문화를 끌여들어와서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곳으로 만들려고 해 왔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되셔야합니다. 그리고 좋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