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를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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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기도를 해야하는가?
본문 : 히 4:16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지속적인 기도의 중요성
(눅18:1)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여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기도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기도는 성경공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증인이 되는 삶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에 참석하는 것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이런 모든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기도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끈질지게 기도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기도의 중요성을 가립니다.
우리의 육신은 기도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기도의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도 기도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는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성이 있습니다.
18:1의 말씀은 기도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야하는 이유
오늘 우리는 왜 우리가 항상 기도를 해야하는지,
왜 기도가 없이는 안되는지,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서 찾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히4:14)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히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이중 부정을 사용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의 삶을 경험해 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놀라운 초청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 담대히 갈 것이니라.”
누가 이 초청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
우리는 지금 셋째 하늘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북쪽에 있다는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를 그곳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 말고는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언젠가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든 휴거를 통해서든
주님이 계신 곳에 가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어느 시간에 있든지,
주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그 순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들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왕좌 앞으로
하나님은 이런 초청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아무때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집에 청와대로부터 온 대통령의 초대장이 도착해 있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여러분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10분정도만 만날 수 있어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 초청장을 들고 그분을 만날때까지 정말 설레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청와대에서 초청장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만일 제가 청와대 초청장을 받았다면, 초청장을 sns에 올릴 것입니다.
은근히 겸손한척 하면서 자랑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이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인 것이 맞습니다.
여러분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위한 많은 불편한 절차들을 모두 감수하고
그곳에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몸도 깨끗이 씻을 것이고 옷도 새로 사거나,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고 미리가서 기다릴 것입니다.
만나고 싶을때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신 시간에
정해진 시간 만큼만 만나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간단한 절차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절차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눈을 감고 두손을 모아 기도상태에 들어가면
여러분은 그 순간 주님 앞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예약할 필요없이 아무때고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를 초청하신 분은 대통령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초청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기 때문에
담대하게 은혜의 왕좌로 나가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담대하지 못했던 제자들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13:21)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영으로 괴로워하사 증언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하시매
(요13:22) 이에 제자들이 서로 바라보며 그분께서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셨는지 의아해하더라.
(요13:23)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 중의 하나 곧 그분께서 사랑하신 자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으므로
(요13: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그분께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그가 여쭙게 하니
(요13:25) 이에 그가 예수님의 가슴에 누워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게 누구니이까? 하매
(요13:26)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빵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빵 한 조각을 적시사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라.
제자들은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다 궁금해 했지만,
감히 누구도 예수님께 물어보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요한이 마지막에 물어보고 예수님께서 답변을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묻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이야기 할 필요도 없습니다.
특권을 주신 것은 함부로 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친구처럼 대하거나 함부로 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낮은자세로 겸손하게 주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이 두려워서
물어볼 것을 물어보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원하고 계시고
그래서 여러분을 자신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가길 원하십니다.
또한 겸손한 자세로 나아야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 담대히 갈 것이니라”
이 구절은 왜 우리가 이 초대를 받아서 그분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지
앞 구절에서 우리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담대히 나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4절과 15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고 하늘들로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께 가면 우리를 그냥 방치하실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우리가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긍휼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할때 도우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우리는 지속적인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대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앞에 들어 갈 수 있는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문제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결혼문제로, 교회 문제로, 의롭게 사는 문제로,
매 순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나의 건강의 문제도 도우실 수 있는 분이고
경제적 문제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자 하는 은혜와 긍휼을
넘치게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유혹에 빠졌을때 나를 신속하게 도와줄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을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상기 시키고 인정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고후3: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마6:8)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를 돕는 방법을 제안하거나 충고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도 정확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문제와 필요를 가지고 가서, 우리를 도우실 분은 주님 뿐임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로 알릴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이고,
그렇게 해서 그분의 은혜와 긍휼 가운데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의 임재 앞에 나아갈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주님께 감사들 드리고
그분께 그분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히10: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21)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히10:22)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해 주신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씻겨질 수 있게 해 주셨고,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성전 안에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언약 궤가 있고,
그 위에 긍휼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가운데 거하기 위해서
자신이 임재하는 곳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카다란 휘장이 가려져 있습니다.
1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 한 사람만이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한 희생물을 드려야하고, 백성들을 위한 희생물도 드려야하고,
언약궤에 피를 뿌려야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모형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모형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지는
희생물이 되셔서 모든 죄인의 죄가 씻겨 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머리가 숙여지는 순간
지성소 앞의 휘장은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로 씻김을 받은 우리는
그분의 선택된 민족이 된 것이고 왕가의 제사장이 된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사람인 제사장을 통해서
일 년에 한번 제한된 횟수와 제한된 시간에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무때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에 의해서 들어갈 담대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히10:22) …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우리가 그분 앞에 들어가는 목적은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런 경험을 해본적이 있을 겁니다.
시련이 닥치고 주변 상황이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때
그런 어려움은 여러분을 기도의 공간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상황이 마음대로 전개되지 않고,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서
여러분의 삶이 가장 힘든 순간으로 치닫게 되면, 그런 상황과 시간은
오히려 여러분을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더욱 더 머리를 숙이게 되고
무릎을 꿇고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순간이 되었던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기도
지금까지는 우리의 관점에서 기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는 우리의 의무이고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고 하십니다.
“ought to” (눅18:1)
(시62:8)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렘33:3) 나를 부르라(Call unto me).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이것은 문법적으로 명령문의 문장 구조입니다.
명령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 명령을 듣고 수행해야하는 대상은 우리입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마7: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26:41)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되 육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롬12:12) 소망 중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늘 절박하게 기도하고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그 일에 깨어 있고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골4:2)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벧전4:7)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
성경은 반복해서 계속 기도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고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하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기도를 멈추는 것은 죄입니다.
(삼상12:23)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바른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삼상12:24)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기도를 멈추는 것을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정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손해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약4: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기꺼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내가 너희를 위해서 기도를 멈춘다면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거짓말하고 누군가를 속이는 일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도를 멈추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말씀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죄를 주님께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는 명령이니,
내게로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해라! 그러면 내가 듣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우상들
(시115:1) 오 주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의 긍휼과 주의 진리로 인하여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시115:2)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이르기를,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하리이까?
(시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시며 무엇이든지 친히 기뻐하신 일을 다 행하셨도다.
(시115: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시115:5)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시115: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시115:7) 손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말도 하지 못하느니라.
(시115: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도 우상들과 같으며 우상들을 신뢰하는 모든 자도 그와 같도다.
많은 종교들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절을 하고 경배를 합니다.
절에가도 있고, 시골을 다녀 보면 곳곳에 장승들을 세우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들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어떤 집에 가면 마른 북어를 문 위에다 걸어 놓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문 위에 부적을 붙여 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사람의 기도는 그냥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됩니다.
어떤 종교는 하루에 세번 정해진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어느때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실제로 듣고 계십니다.
헛된 기도문을 반복하는 기도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순간의 문제들을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116:1) 주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도다.
(시116:2) 그분께서 자신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사는 동안 그분을 부르리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듣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귀를 우리쪽으로 움직이시면서
적극적으로 우리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물론 감사하게도 성령님께서 중간에 통역을 잘 하셔서
우리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걸러지겠지만,
그래도 그분은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therefore)내가 사는 동안 그분을 부르리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10:17) 주여, 주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예비하시며 주의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의 구원도 그분의 들으심으로 인한 것임
(시34:6) 이 가엾은 자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셨도다.
여러분이 구원받은신 것도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을때
주님께서 여러분의 말을 듣고 여러분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은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대언자들과 대결을 했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과연 누구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는지 대결 했을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바알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기도였습니다.
들을 수 있는 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왕상18:25) 엘리야가 바알의 대언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그런즉 너희를 위해 먼저 수소 하나를 택하여 예비하고 너희 신들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그 밑에 불을 붙이지는 말라, 하매
(왕상18:26) 그들이 자기들에게 넘겨진 수소를 취하여 예비하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오 바알이여, 우리 말을 들으소서, 하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만들어 놓은 제단 위에서 껑충 껑충 뛰더라.
바알의 대언자들의 기도는 그들의 신들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을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주의 불이 내려와서 희생물을 태우게 됩니다.
(시40:1)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내가 끈기 있게 주를 기다렸더니 그분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사 내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몇 구절 더 찾아 보겠습니다.
(잠15:8)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기도가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창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스스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찾아와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라고 말을 한다면, 그 순간 여러분의 마음이 어떨까요?
정말 기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같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 앞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기쁘지 않을까요?
나를 신뢰하고 부모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아버지에게 길을 묻고자 하는 자녀들
아버지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하는 자녀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합니다.
기도는 향 같습니다.
(시141: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향같이 놓이게 하시며 나의 손을 들어 올림이 저녁 희생물같이 놓이게 하소서.
기도가 향같다는 말씀은 계시록에 연관주절이 있습니다.
(계8:4)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피어난 향의 연기가 그 천사의 손에서 나와 하나님 앞에서 위로 올라가더라.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나 자동차 안을 좋은 향기로 채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뭔가 좋게 만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성도들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잠15:8)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분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눅18:1) 사람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여
(눅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고
(눅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가 그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 대적에게 내 원수를 갚아 주소서, 하되
(눅18:4) 그가 한동안 들어 주지 아니하였으나 나중에 속으로 이르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존중하지 아니하지만
(눅18:5) 이 과부가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내가 그녀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항상 와서 나를 지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눅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하는 것을 들으라.
(눅18:7) 비록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자기에게 부르짖는 자들 곧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향하여 오랫동안 참으실지라도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오늘 이 비유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교훈은
이 여인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지속적인 간청은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약5: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기도는 분명히 많은 유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분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가 어떻게 작동되어서 우리에게 유익으로 돌아오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결정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서
나의 삶에 변화로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는
기도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약4:2)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갖지 못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면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욕에 쓰려고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일 억을 주십시오...
오~ 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은 6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도움과 은혜와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함으로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이고,
여러분의 결혼생활이 회복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저의 기도로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변화는 그사람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의 기도가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다른 사람의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주어서
뭔가 변화시키는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삶에 강제로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영양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렘29:12)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렘33:3)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
(마7: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는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구하지 않아서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그분의 왕좌 앞으로 나아가서
그분의 은혜와 긍휼얻을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기도에 대한 구절들은 대부분이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누군가에게 복주시기를 기도하는 내용들 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장면들 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합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들은 여러가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기 단 한가지 기도 만큼은 누가 기도를 하던지
그 응답이 반드시 “그것이 내 뜻이 맞다"고 해주실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혼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누구라도 주님을 모르고 지옥을 향하고 있다가
자신이 죄인이고 주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지고 다시 일어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믿고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은 항상
“그렇게 해주겠다”인 것입니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여러분과 저는 이 기도에 응답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답을 얻기 위해서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동해서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합니다.
항상 지속적으로 기도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