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하나님의 화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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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에게 하나님의 화평이 있습니다.
본문: 롬 5:1-2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롬5:2)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화평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안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와 화평은 완성된 것이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의로워지는 중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의로움은 이미 완전히 완성된 상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화평도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의 신분, 우리의 소망, 이 모든 것들은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의를 예수님을 통해서 얻게 된 것입니다.
세상 종교는 여러분이 구원을 완성하도록 요구합니다.
세상의 종교는 여러분이 의로워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이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구원을 완성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워지기 위해서 여러분이 해야할 몫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몫을 채우기 위해서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댓가는 지옥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제안하는 기독교인의 삶은
예수님이 완성해 놓은 일을 받아들이고 시작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자체가 완성된 것입니다.
구원을 유지하거나 성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고,
우리에게 그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여러분이 믿기만 하면 의롭다 여겨지고,
하나님과의 화평도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하는자 안에서 받아들여 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소유했다는 확실한 지식 위에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롬5: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롬5:2)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롬5:3)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롬5: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롬5:6)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
(롬5:7) 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자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감히 죽고자 하는 자가 혹 있거니와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롬5:10)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을진대 화해하게 된 자로서 더욱더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롬5:11) 그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속죄를 받았으며 그분을 통해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느니라.
하나님과 원수 였다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맺었다고 하고,
1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을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한쪽만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전쟁 중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습니다.
대언자를 보내고 말씀 선포자를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편에서서 자신들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정도의 인간이라면 하나님이 싫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전쟁중이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물리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무기와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전쟁에서 한 번 지면 그 패배는 영원한 패배가 될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면 더이상 원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여러분은 더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과 영원한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더이상 하나님과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화평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원 이후에도 여전이 환난이 생깁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과거의 불의한 일들을 멈추고
주님의 진리 안에서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내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모든 일들이 정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모든 일들이 순풍에 돛단 듯이 흘러 갈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성경이 제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졌던 이런 소망은 성경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어떤 유명한 목사의 티비 설교나 인터넷 설교나,
친구따라가서 참석한 부흥강사를 통해서 들은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직장일도 잘되고,
아프던 병도 다 고쳐진다고 외치는 목사의 이야기는
성경이 말하는 소망이 아닙니다.
성경의 소망은 화평과 함께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고난을 겪게 된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은 모든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이 겪지 않는 어려움까지 겪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안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화평과 함께 겪는 고난은
조롱받을 필요가 없고, 두통약이 필요없고, 좌절이 찾아오지 않고,
분노가 찾아오지 않고, 자살을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목적
주님은 여러분을 고난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어려움에서 구원해주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지옥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고난이 있고,
이 고난을 구원자와 함께 승리로 이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은 보장이 아니가 가능하다는 것
이전에는 고난이 오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고난이 오더라고 마음에 화평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평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화평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롬5:3)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콜론)
여기서 한 문장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롬5:3) … 환난은 인내를,
(롬5: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구원을 받기 전과 후 고난의 차이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기 전에 우리 삶에 있었던 일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을 통해서 얻은 것은 그저 고난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매우 가치 있고 매우 유익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된 고난을 격으면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비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소망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성경적인 소망을 우리가 갖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내가 잘 될 것이라는 소망이나
내가 부자가 될 것이라는 소망이나 사람들과 더이상 다툴 일이 없을 것이라는
헛된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복된 소망을 갖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를 이 고통의 세상에서 언젠가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개인의 소망이 성경적 소망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처음 구원을 받았을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것이 너무도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때는 친구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전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나의 소망은 기대처럼 이루지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 목사들이 자신이 강대상에 서서 성도를 가르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삶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습니다.
이런 소망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좋은 소망을 가진 것이지만
그런 소망은 성경이 약속해준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던 사람들 중에도
세상으로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는 아픈 질병을 고쳐달라는 많은 기도제목이 올라오지만,
성경 어디에서 이 모든 질병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게 해 주는 고난
로마서 5장을 통해서
우리의 소망이 헛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것들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소망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없애준다는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도 화평을 주신다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가치있는 경험을 하게 해 주시고
그리고 그 결과로 5절과 같은 결과를 얻게 해 주신 다는 것입니다.
(롬5:5) ...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잘못된 소망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면,
그것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치료해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게 되고,
구원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파트를 더 큰 평수로 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누군가 나타나서 자신의 부채를 다 갚아주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신만 자신의 마음 속에 키워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기쁨과 함께 눈물을 흘리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매번 기적을 바라는 소망에서 벗어나
비록 내가 모든 사람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겠지만,
그 눈물가운에 기쁨이 함께 하는 상태로 바뀌길 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살면서 고난을 겪지만,
우리는 그 두려움과 고난을 하나님의 화평과 함께
기쁨으로 마주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고난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진 것으로 인해서
주님께서 내가 고난을 이기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어려움을 마주하는 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때 마주하던 고난과 얼마나 다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소망으로 삶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 만약 누군가 교회에 와서 자신을 버리고 간
남편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 요청을 했다고 해보죠.
그때 제가 그녀에게 당신의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말하고,
지금 이순간부터 내 남편이 집에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라고
말해 주었다면, 어떨까요?
그녀가 집에 돌아가서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원인은 제가 그녀에게 잘못된 소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녀에게 구원을 받았는지 확인을 하고,
헛된 소망을 가지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바른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권면하고 그 여자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그녀를 더욱사랑하셔서,
더이상 남편이 아닌 관계로 남자와 동거하지 않게 해 주실 것이고,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게 될 것이고,
이제는 정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삶을 바꿔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 후에 고난이 지속되는 문제를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기 전에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순간 부터 여러분은 더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원수라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들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모든 죄를 멈추게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여전히 아픔이 생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원수가 아니지만,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지은 죄가 여러분에게 댓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고난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지 않으면서 고난을 겪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화평은 88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화평이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여러분은 속죄도 구원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화평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롬15:33) 이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다른 방법은 일시적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심리 치료법들이 있습니다.
명상, 묵상, 마인드 콘트롤, 최면요법, 심리학, 칭찬요법, 자기 통제,
이와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분노나 긴장을 완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방법이 효과가 없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모든 문제에 진정한 답은
화평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리치료사를 만나서 상담하면 잠시 효과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화평은 금새 사라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시 고가의 치료비를 지불하고 그 치료사를 만나야 합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반지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진정한 화평을 주실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여러분이 일상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심지어 교회를 찾아 간다고 해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여전히 죄인들인 사람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화평의 무한한 공급원이신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온전한 화평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습니다.
이 화평은 어떤 힘이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이 화평은 하나님의 화평입니다.
이 화평은 여러분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서 얻어지는 화평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화평입니다.
여러분이 화평을 원한다면 하나님께로 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약물이나 자기 최면을 통한 통증완화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영원한 화평을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평강을 얻는 방법은 믿음
(롬15:13)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너희가 믿는 가운데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 너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 기쁨, 평강
이 모든 것을 충만하게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지만,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해주실 수 있지만
믿지 않으면 의로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화평도 여러분이 믿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이겨나갈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모든 문제를 이겨나갈 힘이 되신다는 것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대로 따르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일을 먼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아픔이 오면 화평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주님과 사랑에 빠져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되기도 하고,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교회 안에 다른 형제 자매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들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안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부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은
고난을 그냥 버티는 힘이나 목숨만 부지하는 인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고난을 승리로 이끄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얻는 유익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로마서 5장에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말해주는 유익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얻게 되는 유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생각보다 훨씬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
화평과 함께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염려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할 것이 없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가서
무엇인가를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빌4:7)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으로"부터"의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오늘 태풍같은 고난이 닥쳐오면 나의 평강은 곧바로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 앞에서 해야할 것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해라, 정신을 차려라"라고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하나님의 평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어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문제가 하나님을 정신차리지 못하게는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걱정을 할 만한 문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화평을 유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신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구원과 마찬가지로 평강도 내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할때
우리가 구원을 받을때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했을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주실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강의 문제도 여러분이 스스로 평강을 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평강으로
여러분이 평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내가 스스로 평강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봐 달라고 해서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은 정작 필요할때 사라집니다.
여러분이 비행기를 타고 안전한 비행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의 평강이 생기는것 같고,
비행기에서 주는 식사에 기뻐하면서 시간을 즐기게 됩니다.
우리의 평강이라는 것은 우리가 필요 없을 때는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생겨서 평강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의 평강은 곧바로 사라집니다.
두려워지고, 걱정이 앞서고, 머리가 혼미해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을 길러서 강한 평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의 평강을 채워주실 분은 교회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교회에서 공유하고 기도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 평안은 잠시 마음이 후련해 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저 잠시 일 뿐 충분한 평강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분이 주시는 평강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실패에 몰렸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은 우리가 스스로 실패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도 자신이 지옥에 간것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지옥에 가게 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로자가 해주시는 일
(요14:26)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위로자"라는 표현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성령님이 다루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위로자가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말씀하신다면
위로자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위로자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신다면
위로자께서 주님이 위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만약 고난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위로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요14: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나처럼 평안을 누리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골3:15)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너희도 그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
로마서 3장에서는 죄들로 인한 화해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지금 세상 밖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드리지 않습니다.
만약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가 가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자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마음의 평강을 잃게 됩니다.
그럴때 우리가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상황을 통제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평강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도움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우울해 하고,
분노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질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체질과 기질에 따라 따로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성경을 기록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한가지 성경만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한 분 구원자가 계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한 분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구원자가 되게 하시고, 평강을 주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적대시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과의 적대적 전쟁은 끝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엉망인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실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에
우리의 믿음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평강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26:3) 주께서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 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
(사26:4) 너희는 영원토록 주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 안에 영존하는 능력이 있도다.
여기 계신 분 중에는 자신의 가족중에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일로 마음이 아픈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의 일로 근심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여러분을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그 어떤 어려운 소식이 들려온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주님께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기억을 하나 둘씩 잃어가는 어머님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저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고
주님의 일을 위해서 시간과 분초를 다투어서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으로
우리의 생각이 땅으로 가라앉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하늘로 고정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헛된 일들에 여러분의 마음이 빼앗겨서
주님의 평강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5장의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주신 선물들을 선물주머니에 그냥 놔구도
뭐가 그 안에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살지도 말고,
그 선물들을 꺼내서 그 선물들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믿음을 실행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말씀으로 바로 잡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과 기쁨과 평강을 누리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