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언으로 세워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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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언으로 세워지는 교회
본문: 엡 4:11-13
(엡4: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 겸 교사로 주셨으니
And he gave some, apostles; and some, prophets; and some, evangelists; and some, pastors and teachers;
(엡4: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the ministry, for the edifying of the body of Christ:
(엡4: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Till we all come in 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nto a perfect man, un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ness of Christ:
8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교회에 이 선물들을 주신 것은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지 전에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엡4:8)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Wherefore he saith, When he ascended up on high, he led captivity captive, and gave gifts unto men.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대상에게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대상은 각 개인이고 또 다른 대상은 교회입니다.
11절을 보면 각 사람에게 선물과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각 개인에게 주어진 선물이 교회에 주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가지가 서로 잘 작동이 되어서
13절의 목적인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주어진 선물 중 대언자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구약의 대언자와 신약의 대언자
먼저 구약에서 등장하는 대언자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대언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신약의 대언자와는 어떻게다른지 보겠습니다.
(창20:7) 그러므로 이제 그 남자에게 그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대언자이므로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만일 네가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모든 것이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하시니라.
Now therefore restore the man his wife; for he is a prophet, and he shall pray for thee, and thou shalt live: and if thou restore her not, know thou that thou shalt surely die, thou, and all that are thine.
(창20:8)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의 모든 종을 불러 그들의 귀에 이 모든 일을 말하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더라.
Therefore Abimelech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called all his servants, and told all these things in their ears: and the men were sore afraid.
대언자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언자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받은 사람이고
이들은 다른 사람은 가지지 못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권한은 바로 하나님께 직접 접근 할 수 있는 권한 입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너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고 그러면 너는 살 것이다”(7절)
(민12:6)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내 말들을 들으라. 너희 가운데 대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려니와
And he said, Hear now my words: If there be a prophet among you, I the LORD will make myself known unto him in a vision, and will speak unto him in a dream.
대언자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환상이나 꿈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환상을 보거나 직접적인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대언자가 전하는 내용
대언자들이 받는 계시는 어떤 것들은 미래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과거에 대한 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대언자의 역할은 다음에 언급할 내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단9:22) 그가 내게 알리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능숙함과 깨달음을 주려고 나아왔느니라, 하니라.
And he informed me, and talked with me, and said, O Daniel, I am now come forth to give thee skill and understanding.
(단9:23) 네 간구가 시작될 때에 명령이 나왔으므로 내가 네게 알리려고 왔노라. 너는 크게 사랑받는 자니 그런즉 그 일을 깨닫고 그 환상을 깊이 생각할지니라.
At the beginning of thy supplications the commandment came forth, and I am come to shew thee; for thou art greatly beloved: therefore understand the matter, and consider the vision.
(단9:24)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법을 그치고 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Seventy weeks are determined upon thy people and upon thy holy city, to finish the transgression, and to make an end of sins, and 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 and 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and to 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and to anoint the most Holy.
구약에서 대언자가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관련된 과거나 미래에 관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대언자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면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과 훈계로 잘못을 바로잡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밧세바와 음행을 한 일에 대해 책망할때 나단을 사용하셨고
바알의 거짓 대언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엘리야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사용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범법과
음행으로 인해서 포로로 끌려가는 징계를 받게 될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대언자 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지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며서
하던 일을 격려하는 말씀을 전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이 자신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말씀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 달라진 대언자의 정의
대언자에 대한 정의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오면서 그 정의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루는 대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유대인을 중심으로 다루던 것이
신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다루게 되면서
대언자의 역할이나 목적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것은
대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대언자는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진짜 대언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취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히1:1)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God, who at sundry times and in divers manners spake in time past unto the fathers by the prophets,
(히1:2)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Hath in these last days spoken unto us by his Son, whom he hath appointed heir of all things, by whom also he made the worlds;
지나간 때 즉 구약에서는 대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즉 신약시대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시대의 대언자의 역할과 책임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신약시대의 대언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구약과 달리 미래에 대한 계시는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성경에 필요한 만큼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구약처럼 꿈과 환상을 통해 여러 대언자들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이미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모든 진리를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리게 하신 것입니다.
(고전14:1) 사랑을 따르고 영적 선물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너희는 대언하는 것을 사모하라.
Follow after charity, and desire spiritual gifts, but rather that ye may prophesy.
대언하는 것은 개인에게 주신 영적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4:2)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
For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speaketh not unto men, but unto God: for no man understandeth him; howbei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고전14:3)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But he that prophesieth speaketh unto men to edification, and exhortation, and comfort.
신약에서 대언자가 하는 역할을 기본적으로 구약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권면을 하고
개인들을 위로하고, 회중들을 세워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14:4)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
He that speaketh in an unknown tongue edifieth himself; but he that prophesieth edifieth the church.
구약에서 대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했던 일을 신약에서는
교회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과 경고와 권면의 말씀을 전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대상이 아닙니다.
(고전12:27)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Now ye are the body of Christ, and members in particular.
(고전12: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대언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기적들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선물들과 돕는 것들과 다스리는 것들과 여러 가지 타언어들이니라.
And God hath set some in the church, first apostles, secondarily prophets, thirdly teachers, after that miracles, then gifts of healings, helps, governments, diversities of tongues.
(고전12:29) 모두 사도이겠느냐? 모두 대언자이겠느냐? 모두 교사이겠느냐? 모두 기적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are all workers of miracles?
(고전12:30) 모두 병 고치는 선물들을 가지겠느냐?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겠느냐? 모두 통역하겠느냐?
Have all th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with tongues? do all interpret?
(고전12:31) 오직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내가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이노라.
But covet earnestly the best gifts: and yet shew I unto you a more excellent way.
29절과 30절의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입니다.
31절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선물은 대언하는 것입니다.
(고전14:1) 사랑을 따르고 영적 선물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너희는 대언하는 것을 사모하라.
Follow after charity, and desire spiritual gifts, but rather that ye may prophesy.
모든 사람이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대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대언할수 있게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기를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떤 면에 연약하고 어린아이 같은 입장만 취합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잘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과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따듯한 말로 위로를 잘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가 가지고있는 재능을 가지고 서로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재능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특별한 선물이 주어지지 않은것 같다면,
성경은 그중에 잘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고 시도해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능력이 없다면,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여러분을 말씀으로 훈련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분에게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 개발 될 수 도 있습니다.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게 된 하나님의 선물을 네가 불붙이게 하려고 너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노니
Wherefore I put thee in remembrance that thou stir up the gift of God, which is in thee by the putting on of my hands.
누군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선물로 받은 재능은 자꾸 사용해야 드러나게 됩니다.
만약 아무 재능도 선물로 받지 못했다면,
그 중에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자에게 금지되지 않은 대언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교회에서 여자는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는 일로
권위를 찬탈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여자가 대언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2:18)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하리라.
And on my servants and on my handmaidens I will pour out in those days of my Spirit; and they shall prophesy:
(행21:9) 바로 그 사람에게 처녀인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대언을 하더라.
And the same man had four daughters, virgins, which did prophesy.
여자가 대언을 잘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교회에서 여자가 다른 사람을 격려해주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은
금지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대언과 가르침의 경계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일은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운다는 의미
(고전14:3)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But he that prophesieth speaketh unto men to edification, and exhortation, and comfort.
세운다(edification)는 의미는
누군가를 믿음에서 굳건해지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체계를 밟아서 그들이 자신감을 얻고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집을 건축한다고 한다면, 건축과정에 실수 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창문의 위치를 잘못 잡거나 바닦의 두께를 올바로 유지 하지 않으면
나중에 건물에 하자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때 누군가 그 잘못을 알아보고, 지적해서 바로잡아 준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는 건축물을 지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집을 지어서 갖고 싶다면
누군가 감리 감독을 해주고 틀린 것을 바로 잡아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건축을 잘못하고 있는데 수고한다고 그냥 칭찬만 해주면,
형편없는 건물을 갖게 될 것이고 무너질 위험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집을 짓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빨리 전문가를 만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결과를 만들도록
우리 삶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고쳐나가는 것을
성경은 세워간다고(edifiy)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최고 전문가 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비판하고 지적해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잘못이 무엇인지 부족한게 무엇인지 이야기 해주면
그것을 기분나쁘게 듣지 않고 금방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유익한 과정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워주는 첫 번째는 격려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지적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을 수정하는 일을 잘하고 있다면,
그들을 격려해주는 일은 서로에게 복된 일입니다.
지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그길이 주님이 말씀하신 길이 맞다고
박수도 쳐줘서 그들이 거룩함에 머물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서로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이 일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바로잡고 격려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격려만 해주거나 누군가는 지적만 받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를 바로잡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또한 서로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는 서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권면하며 exhortation”입니다.
권면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밀어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달리는 일을 하고 있다면 뒤쳐진 사람을 향해서
좀만 더 힘을 내서 우리 같이 뛰어가자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함께한 우리가 모두
같은 목적과 바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을 격려한다는 것은
우리가 같은 일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는 형제 자매가 있다면,
오후 말씀도 듣고 가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일요일만 교회에 나오는 지체가 있다면 주 중에도 같이 모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토요 성경공부 모임에도 기도모임에도 같이 참여 하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대언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계속해서 경주를 하기 위해서
서로를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참여한 이 경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달리기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은 선수들이 있다고 해보죠.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면 좋은 팀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그들을 격려해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치는 프로 골프 선수도 자신의 코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알아서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잘못을 서로 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옆에서 나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내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잘난체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중요한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그래서 이 경기에서 우리 모두가 좋은 성적을 만들어내길 원한다면,
이 경기에 잘 임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중요한 이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런 지적과 충고와 권면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권면은 특정인 만이 가진 선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해야 할 역할 입니다.
(고전14:3)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But he that prophesieth speaketh unto men to edification, and exhortation, and comfort.
마지막 단어가 위로(comfort)입니다.
우리의 경주는 어느 하루 달리고 끝나는 경주가 아닙니다.
이 경주는 우리 전체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열정과 바램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은 지속적으로 경주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주가 진행 되는 동안 우리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을 마주하게 되고 깊은 계곡을 지나게 되고,
두려움이 마음에 사로잡힐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경주를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해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바로 교회 입니다.
(계11:6) 이들이 하늘을 닫을 권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들이 대언하는 날들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게 하고 또 물들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피로 변하게 하며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때에 모든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These have power to shut heaven, that it rain not in the days of their prophecy: and have power over waters to turn them to blood, and to smite the earth with all plagues, as often as they will.
(계11:7) 그들이 자기들의 증언을 마칠 때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대적하며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이리니
And when they shall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ascendeth out of the bottomless pit shall make war against them, and shall overcome them, and kill them.
계시록 말씀을 보면 대언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간증(증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도 있겠지만 나쁜 결과를 얻었던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여정의 경험을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힘이 되는 일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는지
그들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바꿔 놓으셨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도우셨는지를
듣게 되면 우리의 느슨했던 신앙에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서로를 세워주는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 안에 있는 한 권면과 훈계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경험은 반면 교사가 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은 권면과 훈계가 되고 위로되어서 교회를 강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점점 하나로 뭉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육신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악할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안에 있습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
For, brethren, ye have been called unto liberty; only use not liberty for an occasion to the flesh, but by love serve one another.
(갈5:14) 온 율법은 이것 즉,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 안에서 성취되었느니라.
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갈5: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물고 삼킬진대 너희가 서로에게 소멸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heed that ye 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
(갈5: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This I say then, Walk in the Spirit, and ye shall not fulfil the lust of the flesh.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세워주고 권면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깍아내리는 일로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무너뜨리는 일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하는 것은 신약 성도들의 목표가 되어 야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일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한계 없이 용납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돕는 것이지
불순종과 악한 일을 용납하고 사랑하고 세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사랑으로 권면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 권면과 책망을 해주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복수의 감정을 갖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복수의 마음으로 자신을 지적한 사람의 험담을 하고 거짓으로 비방하는 것은
몹시 나쁜 일이고
선악과 사건 이후 뱀이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뱀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뱀은 가인을 충동시켜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했습니다.
뱀이 직접 나서서 아벨을 죽이지 않습니다.
뱀은 교활했고 뱀은 자신의 혀를 이용해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신약 성도의 목표는 자신이 으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으뜸이 되고 싶다면,
여러분은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사람들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형제를 물어 뜯고 있다면,
여러분의 이로 여러분의 손가락을 깨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그 사람이 회개하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면
그 사람의 결점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을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의 일부이고 회중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실패하고 부족하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면
그런 일에 놀라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해야할 것은 그런 부족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서
목표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유익한 일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엡5:4) 또한 추잡한 것이나 어리석은 이야기나 희롱하는 말도 적합하지 아니하니 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Neither filthiness, nor foolish talking, nor jesting, which are not convenient: but rather giving of thanks.
(엡5:5)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받지 못하느니라.
For this ye know, that no whoremonger, nor unclean person, nor covetous man, who is an idolater, hath any inheritance in the kingdom of Christ and of God.
우리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때 이왕이면 헛된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굳이 다른 사람을 허무는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권면하고 세워주고 바로잡아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저도 이런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향해서 말씀에 뿌리를 둔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언자라고 하면
마치 미래의 일들을 예언하듯이 말해주는 사람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사례는 그런 것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신약에서 말하는 대언자는 미래를 말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약에서 대언자는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서로를 격려해주고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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