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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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시덤불
본문 : 삿 2:3
(삿2:3) 그러므로 또한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승리를 패배로 이끈 이스라엘
오늘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한 승리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을
완전한 패배로 끝나게 되는 불완전한 승리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이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적들이 있었습니다.
이 적들은 하나님의 적이고 의롭지 못한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 도착했을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내 말을 따르면,
이 땅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은 받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일은 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런 불순종은
더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불순종은 사사기 이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됨
지금 가나안의 적들을 모두 물리치지 않은 불순종으로 인해서
사사기 이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가져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도 이 때문이고,
다윗과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를 하게 된 것도
이들의 지속적인 불순종 때문인 것입니다. .
우리의 전쟁은 육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전투가 아닌 영적인 전투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적은 다른 민족이나 세상의 권세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죄들과 악한 습관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런 승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속이며 문제를 방치한 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방치한 죄들이
우리의 상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면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들이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
우리 삶에서 제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삿2:1) 주의 천사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말하되,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여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데리고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옮겨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 분이시고 그 약속은 안전하게 보장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도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삿2:2) 너희는 이 땅의 거주민들과 동맹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느냐?
이들은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들을 너무도 쉽고 빠르게 저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옛 삶으로부터 벗어나서 안전해지고 싶어 했으면서,
그 사실을 잊고 여전히 옛 삶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과거의 것들은 그 어느 것도 너희에게 유익이 될 만한 것이 없고
너에게 주어진 새 삶은 옛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반은 이스라엘이고 반은 블레셋의 모습으로 오기를 원치 않는다.
너희가 반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반은 거짓 신을 경배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모든 것에서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원한다.
나는 너희에게 그런 삶을 요구할 만큼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요구가
너무 까다롭고 너무 도덕적이고 너무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삿2:3) 그러므로 또한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2:4) 주의 천사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들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우니라.
(삿2:5) 그러므로 그들이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 하니라. 그들이 거기서 주께 희생물을 드렸더라.
시작도 전에 우는 이스라엘 백성
이들은 430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을 받아서 약속의 땅에 와있습니다.
이들은 더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 끝에 이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건네 주셨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새롭게 도시를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도시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약속의 땅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경험하게 될
가시 돋힌 광경이나 어려움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벌써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는 이유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는 것은 여부스 족속이 그들에게 전쟁을 걸어 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는 이유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고,
내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를 하는 것이
그들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감사할 일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더 이상 지옥을 향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매일이
감사와 찬양으로 넘쳐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받은 축복은 다 잊어 버리고,
지금 이순간 하나님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울고 불고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시키신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으면서
자녀들의 모습이 거룩하지 못하고 불량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울고 불고 불평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내를 성경적으로 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자신의 결혼 생활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하나님께 울고 불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는 삶은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돈을 마음대로 쓰고싶은데 자신의 주머니에 돈이 충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불평하고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건짐 받은 것과
홍해를 건너며 바다가 갈라지고 이집트 군사들이 수장되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마땅할 텐데,
그들은 그 일은 이미 오래전 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순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계시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장소에 불행하다는 이름 보김을 부여합니다.
이들은 이 장소를 우리의 불행을 따서 이름 짓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때는 자신들이 노예에서 건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요르단 강을 건널때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 기념비는 그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실망시킨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도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사
지금 교회를 다니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옥에서 건져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얼마나 선하셨는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로 복을 주셨는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찬 관심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불행의 원인은 너 자신
성경은
너희들이 나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지만,
사실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너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열심히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복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내 삶을 이렇게 만드시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뭘 모른다는 걸까요?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것?, 영원한 생명을 주신것?,
하늘에 거할 곳이 생긴것?,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주신것? 교회를 만들어 주신것?
아니요! 제가 팔을 다쳤거든요?
아니요! 어떤 사람이 나를 기분나쁘게 대하는것 때문입니다.
아니요! 사고싶은게 있는데 돈이 없어서 그래요.
(민33:5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민33:52)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며 그들의 모든 그림과 부어 만든 모든 형상을 멸하고 그들의 모든 산당을 완전히 허물며
가나안 땅에 있는 음란한 그림들을 없애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건전하지 않은 영화나 티비프로그램들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들을 더럽히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그림과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들이
너희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왜곡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에 동의 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동의 하지 않은 일의 결과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여러분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모든 산당을 완전히 허물며”
이 세상은 자신들이 축하할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기념하고 축하하고 그런 일들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서 우리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
주님과 만나게 될 일 보다 기뻐할 일은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 그리스도인들
현실의 세계에서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백화점 세일을 더 기뻐하고, 성탄절 연휴가 길어지는 것에 기뻐하고
연인들과 재야의 종소리를 같이 듣는 것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송매체들이 그런 장면들을 멋있게 티비로 송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조차 왜곡시키고,
그들은 왜곡된 가치를 위해서 기꺼이 돈을 쓰며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게 되면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대로 길들여져 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건져내 주신 것에 너무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티비를 더 많이 보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스포츠 관람보다 교회에 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길 바라신다면 그것은 과한 기대라는 겁니다.
우리는 티비를 보고 스포츠를 즐기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헌신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실망시키거나 배신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를 한 번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걱정하는 하나님의 생각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큰 상처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민33:53) 그 땅의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안에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소유하게 하였느니라.
(민33:54) 너희는 너희 가족들끼리 그 땅을 제비뽑아 상속 재산으로 나누되 수가 더 많은 가족에게 더 많은 상속 재산을 주고 수가 더 적은 가족에게 더 적은 상속 재산을 주라. 각 사람의 상속 재산은 그 사람의 제비가 떨어진 곳이 될 터인즉 너희 조상들의 지파들에 따라 너희가 상속할 것이니라.
(민33:55)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 땅의 거주민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려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그들 중에서 남겨 둔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너희는 그들을 몰아 낼 수 있었지만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쁜 습관들도 없앨 수 있었지만 원하지 않아서
남아 있는 습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란물을 보거나 다른 사람을 험담해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 해도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거하길 원하지 않아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아닌 여자와 만나면서
자신이 서로의 관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런것들을 관리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겨둔 자들이 가시가 될 것이다.
"남겨 둔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을 줄것이다.
나도 그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것이고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그곳에서 나에게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강제가 아니고 너희의 선택이다.
그러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바늘같은 가시가 너의 눈을 찌르듯이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다.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그 원인은 너희가 제공한 것이다.
방치한 습관이 가시가 됩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일은 이미 먼 옛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스스로 방치한 악한 습관들이 가시가 되어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어서
주님과 더불어 기뻐할 겨를이 없습니다.
직장에서 만들어낸 가시가 괴롭힙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만들어낸 가시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이 방치한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잘못과 죄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구원을 취소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가정을 빼앗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제거하라고 한 것들을
방치한 것으로 인해서 생긴 아픔인 것입니다.
계속 술을 마시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정치 집회에 몰려 다니고, 큰 돈을 벌려고 다단계를 찾아가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고,
폭력적인 게임을 한 것으로 인해서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남편을 버리고 네 이상을 성취 시켜줄 남자를 만나는 것이
네 인생을 아름답게 해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에게 교회에 와서 예배들 드리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
예배 정도는 빠져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네가 스스로 결정한 일로 불행해 진것을 가지고
이제와서 네가 불행해진것이 나때문이라고 불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로 의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 목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목사는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셨던 것 같이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문제가 생긴 뒤에 우리 결혼생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담배를 끊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게 기도해달라고 해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지가 바뀌지 않는한 어떤 믿음의 기도도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불륜드라마를 즐겁게 보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의 내일은 이기기 힘든 더러운 상상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을 지속적으로 방치한다면,
유익하지 않은 결과들이 여러분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잠깐 음란한 것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각입니다.
몰렉이라는 신
가나안에는 몰렉이라고 불리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몰렉이라는 신의 형상이 커다란 용광로와 같다고 생각했고,
그 신에게 자신들의 아기를 바치기 위해서
용광로를 만들어 그 속으로 아기를 던져 넣은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벌어지고 있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제거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문화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이런 문화는 문제가 있지만,
불쌍한 그들을 방치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일에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잠시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반복해서 보고,
그들이 그 일로 축제를 하고 시상식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덧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문화에 광분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을 그 불속으로 던져 넣는 것입니다.
나는 술마시지 않겠다고 하면서 반주로 한잔 정도는 허락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절대로 결혼생활을 망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가 만나자고 하면 그일에 반응을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피를 흘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신 분이시지 해를 가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남편은 다른 죄인들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내는 다른 아내와는 다르게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지만 내 경우 한해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이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23:6) 그런즉 너희는 크게 용기를 내서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며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
(수23:7) 또한 너희는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이 민족들 가운데로 들어가지 말고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며 그들을 두고 맹세하지 말며 또 그들을 섬기거나 그들에게 절하지 말고
(수23:8) 오직 너희가 이 날까지 행한 것 같이 주 너희 하나님을 굳게 붙들라.
(수23:9) 주께서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느니라. 그러나 너희로 말하건대 이 날까지 아무도 능히 너희 앞에 서지 못하였느니라.
(수23:10) 너희 중의 한 사람이 천 명의 뒤를 쫓으리니 이는 주 너희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니라.
(수23:11)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매우 조심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 부딪히는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물리칠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엇이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수23:12) 너희가 만일 어떤 식으로든 뒤로 물러가서 너희 가운데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의 남은 자들에게 굳게 붙어 그들과 결혼하고 그들에게 들어가며 그들이 너희에게 들어오면
(수23:13) 확실히 이것을 알지니라. 곧 주 너희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민족들 중의 어느 민족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와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 마침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너희가 멸망하리라.
(수23:14) 보라, 이 날 나는 온 땅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 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 중의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이루어져서 그중의 하나도 틀림이 없음을 너희가 너희의 온 마음과 너희의 온 혼으로 아느니라.
(수23:15) 그러므로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주께서 모든 악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마침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너희를 끊어 멸하시리라.
너희는 내가 준 모든 축복을 너희가 죽을때까지
모두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버리라고 한 쓰레기들을 그대로 놔두고 있다면
네가 방치한 그것들이 너희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라고
너희는 절대로 내가 준 복으로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로맨스 애정영화를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영화 줄거리는
부모의 말을 거부하고 자신과 결혼할 모범생 남자를 버리고,
범죄자나 나쁜남자를 영웅처럼 묘사해서
그런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건달도 멋진 모습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남자는 바보 멍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영화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영화라고 하면서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런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이를 길에다 버리고 다른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세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를 위해서 맞벌이 부부생활로 가정을 망가뜨리고
부강한 미래를 만들어서 성적 타락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입증하고 있는 바인 것입니다.
사사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불순종하고, 불순종하다가,
그 댓가를 치르기 시작하면, 그들은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희생물을 드리고 그들은 희생물을 드렸으니
이제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혼 당할 일을 했다면 이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임신할 일을 했다면 임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두 세번 들어갔다 와서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한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면,
제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입을 해악을 막기 위한 것 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 옆에 악어가 한마리 다가 간다면,
그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면서 다정한 어투로 자녀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천천히 생각날때 피해 보라고 말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큰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몸을 던져
그곳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자녀를 보호하는 아버지에게
자녀에게 큰소리로 야단친다고 아동 학대라고 말을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위험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간절하게 이야기 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으로 가겠습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을 괴롭히는 분으로 보는 사람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인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집어 넣어 놓고,
하나님이 주는 빵과 물만 받아먹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독방을 벗어나 마음대로 죄를 짓던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풍성한 것들을 주셨고
매일 매일 하루 종일 주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즐기는데
모든 시간을 다 보내도 다 즐길 수 없을 만큼 큰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를 둘러 쌓고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놀라운 풍성함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죄를 지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나무의 열매들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한 하나의 나무를 스스로 선택한 것 때문에
이 모든 복을 빼앗기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결과가 무엇일까요?
(창3:17)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하나님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해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창3:19)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너희가 굶어 죽게는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 불순종이 너의 삶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적대적이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을 필요없이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입니다.
(잠24: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명철이 없는 자의 포도원 곁을 지나갔는데
이 사람에게는 밭도 있고, 포도원도 있습니다.
이사람은 게으른 사람이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잠24:31) 보라, 그것이 다 가시덤불로 덮여 있었고 그것의 표면이 쐐기풀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것의 돌담이 무너져 있었으므로
(잠24:32) 그때에 내가 보고 그것을 매우 깊이 생각해 보았으며 그것을 바라보고 훈계를 받았느니라.
(잠24:33)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면
(잠24:34) 네 빈궁이 여행자같이,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로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언급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꾸어야 할 정원이 있다면,
작년 봄에 잡초를 제거했다고 올 봄에 잡초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지속적으로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지 않으면,
가시와 엉겅퀴는 계속해서 여러분의 정원을 어지럽힐 것이고,
두꺼운 시멘트도 뚫고 나올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30년간 진실함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다 등산 모임에가서 아니면 인터넷에 가서
자신을 위로해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생활을 망쳐 버립니다.
자신은 이정도면 지금의 남편에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방심을 하고 빈틈을 내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은 저절로 깨끗해 지지 않습니다.
자녀의 나이가 사춘기를 지나서 더이상 교회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그정도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잘 가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과 읽은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멈출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영화는 말씀보다 강력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방치하지말라고 가르치지만,
여러분은 그들이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영화를 보게하고
드라마를 보게 허락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 한편을 만드는데 몇 백억이 들어갑니다.
그런 영화 한편을 여러분의 가르침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대사 한줄이 전달 될때에 음악도 깔리고
효과음도 깔려서 엄청난 위력으로 내용이 전달 됩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때,
갑자기 뒤에서 배경음악이 흐르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시에 취하게 하면서
여러분의 가르침이 더 큰 효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을 일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앉혀 놓고 가르치는 일은
15분을 넘기기도 힘들지만 세상이 만든 영화는
여러분의 자녀를 3시간을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어디로 이끌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축구좀 하면
"와~ 우리 아들 공도 잘 차네..
우리 아들 이러다가 박지성이보다 더 잘하겠네…"
자녀는 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요?
아니면 세상에서 축구선수로 가수로 인정받고 싶어할까요?
여러분의 칭찬과 자녀를 이끄는 방향이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 세상을 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50분 설교를 하는 것으로
죄를 짓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이야기에 곁을 내어주게 된다면
그정도 죄는 내가 잘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빨간 불에 멈춰야
우리는 왜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는 걸까요?
우리는 왜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만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빨간 불이 켜져있으면 멈추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이혼을 향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의 갈등과 충돌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은 여러분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결코 부정적인 명령이 아닙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