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놀라운 미래

고린도전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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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놀라운 미래
본문: 고전 2:9-10
(고전2:9)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2: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준비해 두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은 빼고 9절만 인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9절이 인용한 구절은 이사야서 64:4 입니다.
(사64:4) 오 하나님이여,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주 외에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고 귀로 깨닫지도 못하였으며 눈이 본 적도 없나이다.
구약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신약에 계시해 주심
구약의 저자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믿는 자들의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성령님께서 같은 말을 인용하시면서,
아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것들을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에 의해서 그것들을
우리에게 드러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신약에서 구약 보다 더 진전된 계시가 주어지면서
이 삶의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주고 계시는 겁니다.
(고전2:6)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신 일들
우리가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신 일들 때문입니다. (고전1:6-8, 30)
(고전1:6)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증언이 너희 안에서 굳게 세워진 바와 같도다.
(고전1: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고전1:8)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
(고전1: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만약 남자가 자신이 여자라고 말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
선진국의 인권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서
청년들이 직장을 얻기도 전에 빚쟁이가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빚은 언제든지 일해서 갚을 수 있으니
대출을 받아서 밥보다 비싼 커피를 소비하게 만들어서
경제를 돌아가게 만듭니다.
동성애자가 코로나에 걸리면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 익명을 보장합니다.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온세상에 떠들어 대고 구상권을 청구합니다.
여자들이 남편은 갖기 싫고 아기는 갖고 싶어서
정자 은행을 통해 아버지 없는 임신을 해서 아이를 갖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즐기면서
세상을 발전시킨다고 지혜를 만들고 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2:6) ...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만약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완전한 자들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2:6) ...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고전2: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고전2:8)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우리는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을
조롱하고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지옥에 가는 길에서 탈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분을 코 앞에 두고 발견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모르는체
우주 어딘가에 우리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화성으로 목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2:9)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의 눈과 귀는 미래에 있게 될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경험하지 못했고,
아직 그 지점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 주신 미래의 것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2: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갈 수 없는 곳까지 가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 보고 오신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들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우리에게 올바로 조명해주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하늘의 것들
(요3:12) 내가 땅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주님은 이미 너희가 보고 들을 것들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 해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까지 이야기 해봐야
너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책은 하늘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어도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계신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 성경책은 이 땅의 삶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지
하늘에 대한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삶
(롬8:22) 또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저런 형태로 한달 내내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롬8:23)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고통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뿐만이 아니라 온 창조물이 모두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통, 시련, 신음, 가슴앓이 이런 어려움은 죄로 인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땅의 모든 창조물이라면 다 겪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짐승이나 새들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물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오염되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공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했기에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냐고 하겠지만,
여러분이 무슨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의 삶인 것입니다.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
(롬8:25)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인내로 기다리는 것은 23절의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롬8:29)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직접 보기 전이지만, 그분은 여러분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예정된 목적지는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롬8: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죄없는 예수님도 이 땅의 삶에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살면서 마음 속 깊이 슬퍼하셨습니다.
친구 나사로의 장례식장에서는 신음하셨습니다.(요11:33)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면서
자신을 거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음 깊이 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을 맞으며 등이 갈라지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두 손에는 못이 박히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신 분이시지만
이 땅의 삶을 살아가면서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고통
모두를 겪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고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영광을 받게 되십니다.
하나의 소망을 붙잡고 이 땅의 삶을 헤쳐나가게 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인다면,
주님은 여러분의 혼을 구원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이 땅의 삶을 헤쳐나가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땅의 삶을 비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젠가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 하나를 붙잡고 이 삶을 이겨나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혼이 구속을 받았던 것 처럼 나의 몸도 구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어떤 질병도 없게 될 것이고
몸의 상처도 없게 될 것이고 마음의 상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낙심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이 세상과 이 땅의 죄에서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귀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고통과 통증이 없는 몸을 갖게 될 것이고,
이런 모든 고통과 통증의 원인을 제공했던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곳에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신비가 여러분과 저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구약의 기록을 통해서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 왔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덤을 지나서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가 죽음 뒤에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신약에 와서는 그 궁금했던 부분을
주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시며 이야기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신비라고 말하는 것은
이 문제가 아직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비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이전에 신비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미래에 우리 몸의 변화는 점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여러번 환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환생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껏 환생해서 얻은 삶이 지금의 삶이라는 것은 너무 처참하지 않으신가요?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이 땅에 다시 내려보내서
반복적인 고난의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일은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때 벌어질 것입니다.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고전15:55)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고전15: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교회가 완성될때 일어나는 일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있지만
여전히 구원받은 성도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는 우리 교회가 완성될 때 입니다.
교회에 혼이 더해지는 일이 모두 끝났을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썩어가고 있는 우리 몸을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죽은 몸은 썩음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을 구원자로 믿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를
주님과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내 눈은 아직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목격한 바가 없습니다.
내 귀는 아직 그 승리의 트럼펫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 위해 일어날때
우리가 느끼게 될 기쁨을 느껴 본적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약속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이 반드시 너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열심이 다니면 아프던 가족의 질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헛된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사망과 무덤의 권능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그분이 선택한 때가 되면 순식간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신음, 고통, 죽음 부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빌3: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천한 몸”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들고 잘못 넘어지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고,
우리 몸은 그런 몸입니다.
노안이 오고 귀가 어두워 집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반드시 병원에 다니면서
쓸 수 있을때 까지 고쳐가며 사용하다가 무덤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가진 몸도 그 자체가 놀라울 정도의 기능을 가졌지만,
이 몸은 우리가 잠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몸입니다.
이 몸은 천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90살이 넘어도 충분히 살았으니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계속 붙잡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천한 몸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켜주지 못합니다.
(빌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예수님과 같은 몸을 같게 됩니다.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 반을 사신 후에
죽은 뒤 사흘 뒤 아침에 무덤에서 걸어나오셨습니다.
주님이 무덤에서 걸어나오실때 그분은 건강한 몸으로 걸어나오셨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을 이런 주님의 몸과 같게 만들어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가면 건강 문제로 기도제목을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으로 헤어진 가족을 가진 가정에 위로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약속에 대해서 우리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우리가 죽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미래의 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다시 결합해서
완전한 상태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은적이 없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게는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꾸 죄를 짓고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죄를 짓기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욕망때문에
스스로 죄를 선택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가족을 아프게하고 친구를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아프게 하고,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를 아프게 합니다.
우리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고 간증을 나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은 더이상 죄를 짓고싶어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아프게 할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감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귀가 그것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증거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새로운 몸은 성경적 용어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새로운 몸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가면 어떤 모습일지를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일단 새로운 몸이라는 것은 성경적 용어가 아닙니다.
새로운 몸을 받는 다는 것은 성경적 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몸이 고쳐지고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예수님처럼 보이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예수님처럼 보이는데
하는 행동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하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하신다고 한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과 같게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을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제자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모습을 우리가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게 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사랑 기쁨 평강 오래참음 친절함 온유함 절제,
선함, 믿음이 무제한으로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의 구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죽음에 놓인 천한 몸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살전4:13)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눈여겨 볼 부분이
우리에게 소망이 있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슬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슬픔은 소망에 의해서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살전4:14)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일어나심을 믿는 것이 전재 될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데려오실 수 있는 전재 조건이 됩니다.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고린도전서와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4: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다시 오실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영과 혼과 몸이 위로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영과 혼이 이미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몸이 일으켜져 부활되어서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아서 살아 있는 사람과
구원받았다가 죽어있던 사람들이 공중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살아 있는 상태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으로 서로를 위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맡은 일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잡고,
주님을 사랑하며 이 땅의 어려움을 승리로 이끌며 살도록
격려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저의 어머님이 회복해서 교회에서 다시 예배드릴 수 있길 바라지만
이 몸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살수 있다는 헛된 꿈을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한 날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과 헤어지지 않는 것 뿐 아니라,
믿는 성도간에도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었던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가 휴거된 사람과
우리 모두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공중에서 만난 우리 모두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장례식도 없고,
돌아가신 분의 기일을 챙길 필요도 없고,
보이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며 지낼 필요도 없는 곳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인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는 단 한 명의 회원도 줄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이름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이나 작별 인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죽어서 땅에 묻어야 했다면,
그런일은 아담으로 인해서 생긴일이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이런 슬픔을 없애주신 분이십니다.
슬픔도 아픔도 눈물도 없는 곳
여러분이 이 땅에서도 이런 슬픔과 고통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 해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꿈꾸는 그 세상은 지금이 아닙니다.
그 세상은 아직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고 듣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다릴 가치가 있는 소망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계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계21:2)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계21:3)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
잠깐 !!! … 계속 읽어가면 뒷 부분에서
이 도시가 금과 각종 보석으로 장식 된 이야기들을 읽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이야기로 우리의 미래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주제로 먼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계21:3) …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계21:4)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놀라운 사실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고급 병원과 고급 병실이 있습니다.
로비 가운데는 열대 식물도 심겨져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의사로부터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어야 한다면, 그 순간
여러분의 마음은 차라리 판자촌에서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걱정없이
잠옷바람으로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서 금으로 된 벽을 보고
벽옥으로 치장된 벽을 보고, 길바닥이 금으로 덮여있는 도시에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계속 보아야 한다면,
그런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곳이 어떤 장식과 보석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지가 아닙니다.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곳에는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고,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별이 없고 마음이 아픈 일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금으로 만든 집에서 내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느니,
고시원 한 평의 공간에서 살더라도
아들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겠습니까?
(계21:6)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계21:7)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오늘 이 순간 이 설교를 듣고 있는 분들 중에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구원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한가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결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지,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지,
둘 중에 한 가지 결말 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값없이 생명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지옥에 가면 여러분은 한 방울의 물이라도 마시고 싶어서
소리치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옥의 끝에서서
내가 실수를 했다고 말하거나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수가 흐르는 강이 흐르는 곳과 / 한 방울의 물도 없는 곳,
사망이 없는 곳과 / 생명이 없는 곳
슬픔이 없는 곳과 / 고통이 있는 곳
고통이 없는 곳과 / 쉴틈없이 생기는 고통이 있는 곳
여러분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지옥에서 불타는 곳에 던져지는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여러분을 구원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결론은 여러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던 그 방법은
여러분이 믿고싶지 않은 정도로 간단한 방법입니다.
(계22:1)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계22:2)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그것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의 나무에 12 종류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러나 정말 놀랍고 복된 것은 다음 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계22:3)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가 그것 안에 있으리니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계22:4)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
(계22: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계22:6) 또 그가 내게 이르기를,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 주 곧 거룩한 대언자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반드시 곧 이루어질 것들을 보이시려고 자신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놀라운 장면들 입니다.
우리의 눈은 아직 이것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시를 통해서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귀는 아직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아직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지
하나님은 이미 이것들을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놀라운 미래를 보장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약간의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할 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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