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두 가지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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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두 가지 유익
본문: 갈 6:14
(갈6: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But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
우리에겐 감사할 만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할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이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119구조대에 의해서 구조되었다면,
여러분은 주변사람들에게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죄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어떻게 구조가 되었지 할 말이 없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Wherefore, as by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by sin; and so death passed upon all men, for that all have sinned:
죽음이 오기 전까지 죄인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늘날 자기애가 강한 세대에게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 조차도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발언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살아있는 사람과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성장 과정에서도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체 살아갑니다.
결국 죽음이 찾아오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걱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영원히 살고 살게 만들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남자, 첫 번째 여자, 첫 번째 아이, 두 번째 아이,
그들 모두가 죽었고, 그 날부터 현재까지 죽음의 긴 행렬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조금의 지혜라도 있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진 지혜를 총 동원해서 최상의 방법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현실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사59:1)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Behold, the LORD'S hand is not shortened, that it cannot save; neither his ear heavy, that it cannot hear:
(사59:2)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But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between you and your God, and your sins have hid his face from you, that he will not hear.
지금 우리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게 됩니다.
만약 주님의 구원하는 손길이 개입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살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이 죄인으로 살다가 죽는다면,
이 생명이 줄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고 살다가 가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던 악하게 살던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죽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해 구원된 상태로 죽는 죽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된 것은
여러분이 가톨릭 교회나 침례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속한 교회에 헌금이나 시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속한 종교에서 요구하는 a, b, c, d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된 것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그리고 현대 종교의 가짜 신들과는 달리, 성경의 참되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시며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며 절대적으로 깨끗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며 혐오하며 멸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가 문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분이 계신 곳은 거룩한 장소이고,
그분은 오직 거룩한 사람만이 허용되는 곳이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하지 않은 존재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죄를 저질르고 기뻐했으며,
자신이 저지른 죄를 정당화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범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주장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요"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 팔은 너에게 닿을 수 있지만 너는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내 손은 너를 구할 수 있지만 너는 나를 찾지 않는 구나”
풍요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
여러분이 아름다운 집에 살고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며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여러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속이는 일들이 허용되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으면서도 여전히 풍요속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고,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으며서
자신이 짓는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가난이나 육체적 고통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의 대가로 가난이나 육체적 고통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의 대가로 일자리 상실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다면,
여러분이 죽기전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나를 구할 수 있었던 분을 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를 구하기 위해 내밀던 그분의 손을 잡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나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신을 구원자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질문
내가 이 죽음으로부터 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이런 질문은 세상 종교가 하는 질문이고, 자신을 구원자로 만드는 질문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교회나 종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전15:1)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Moreover, brethren, I declare unto you the gospel which I preached unto you, which also ye have received, and wherein ye stand;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By which also ye are saved, if ye keep in memory what I preached unto you, unless ye have believed in vain.
여러분이 진정으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는 수단이 무엇일까요?
(고전15:3)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For I delivered unto you first of all that which I also received, how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고전15: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And that he was buried, and that he rose agai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여러분을 구원하는 수단은 복음이고, 복음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여러분이 행한 그 어느 것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
만약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면,
그분은 자신의 죄가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분이 죄인이라면,
그분의 죽음은 자신의 죄의 댓가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는 착한 사람이었고, 예수는 좋은 인간이었으며,
예수는 위대한 교사였으며, 예수는 예언자였으며,
예수는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남겼다.”
그러나 예수가 이런 것 외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차단하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가 아니라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여러분은 복음에서 자신을 차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한,
여러분이 필요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대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종교로부터, 그리고 정부로부터 배신 당했고,
거짓 고소로 억울하게 죽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억울한 상황에
감정적 몰입이나 경험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은 것이며 법적인 해결책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복음에서 어떤 것이 있는지 보십시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여러분의 죄를 처리했다면,
그 죽음과 뗄 수 없이 연결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삶의 소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죽음과
그 뒤에 이어지는 그분의 부활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는 소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벧전2:21) 참으로 너희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나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For even hereunto were ye called: because Christ also suffered for us, leaving us an example, that ye should follow his steps:
(벧전2: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Who did no sin, neither was guile found in his mouth: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Who his own self bare our sins in his own body on the tree, that we, being dead to sins, should live unto righteousness: by whose stripes ye were healed.
하나님이 제안하시는 내용
우리가 죄가운데 죽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상태로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그것을 잘 알고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로 보내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의 몸으로 가져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고난을
자신의 독생자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믿고 내 아들을 믿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없는 의(義)를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그런데 이런 제안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만함으로
곧바로 이렇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내가 할 일이 없다고?…”
그들은 살면서 죄를 거부하는 삶을 살아본적도 없으면서
여전히 자신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여러분의 부모님도 모두가 죄인 이기때문에,
예수님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하기위해 선택한 방법
우리는 죄로 인해 거룩한 하나님의 징벌, 심판, 분노가 내려져야 합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우리를 대신해
우리가 받아야 할 그 고통과, 징벌과, 분노를 대신 받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의 종교나, 교회나, 성직자나, 랍비 등)
다른 방식의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면,
그 어떤 것도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이 제시한 길이고,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가 주는 첫번째 이익인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의 유익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을 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문자적인 6일간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것들을 만드시면서
모든 것이 보기에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매우 좋게 만들어 졌습니다.
이들의 결혼 생활도 매우 좋았을 것이고 좋은 가정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사는 땅과 모든 환경은 최상의 상태로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죄를 지었습니다.
창세지 3장 14절부터 눈으로 보면서 중요한 단어들을 집어 보겠습니다.
(창3:14) 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겠고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창3:19)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가시덤불, 땀, 저주받은 땅, 흙,
죄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영원한 형벌과 고통과 파멸을 안겨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인간의 삶을 너무 어렵고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삶을 가시와 엉겅퀴와 슬픔으로 가득 채우게 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지는 출산마저
여자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주는 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처음에 동산을 가꾸도록 하셨는데,
그에게 고통중에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평생 주변에 두고 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요?
저주하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괴로워하는 사람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부족한 수입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
우리의 삶은 정말 복잡하고 힘들고 어렵게 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 세상 가운데 제가 오늘 교회 안에서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게 된것에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는 우리에게 죽음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인이나 가족들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을 겪어야 하기도 하고
우리는 매일 자신의 몸이 노화가 되어가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매주 근심없이 지내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죄는 단지 장례 지도사가 당신을 찾을 때에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죄는 여러분의 매일의 삶에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죄는 누구라도 경솔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죄를 짓는 것을 농담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들을 어기는 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당신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능력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으로부터 오는 무절제한 분노와 고통스러운 결과에 대한
경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간음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 하신 것은
여러분이 이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일생을 망치는 결과로부터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제약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들이
자신의 삶을 제한 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주신 것은 각 계명을 위반할때 마다
사람들의 삶에 또 다른 고통과 상처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마련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죄를 저지르고 있고,
죄는 계속해서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53:4) ¶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 Surely he hath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did esteem him stricken, smitten of God, and afflicted.
(사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upon him;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이 말씀은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바라볼때,
여러분과 저의 죄의 대가를 치르는 예수님만 발견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리스도가 내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그가 하는 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고침을 받게 하는 일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좋은 부모님들과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떤 분들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어머님 아래서
자라신 분들고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분들고 계실 것이고,
부모가 돌아가셔서 비로소 잘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죄인들이 서로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의 용서 뿐 아니라 슬픔을 돕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의 죄로 인해 받게될 영원한 형벌을 위해서 일 뿐 아니라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얻게 되는 결과물들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을 망가뜨리는 일로부터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여러분이 결혼생활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여러분의 자녀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그리스도가 그 상처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죄는 삶을 어렵게 만들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여러분이 만든 어려운 삶의 문제들을, 함께 짊어지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삶 그 곳에서
함께 걷기 위해서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영원한 구원자일 뿐 아니라
현재 삶의 구원자 이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과거의 삶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분의 부모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으로 인해서
여러분을 힘들게하고 상처입게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나의 죄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더 솔직하고
냉철하게 바로 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고난과 어려움과 슬픔들은
사실 나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죄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삶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가시가 그분 없이 겪었을 때보다 그 고통이 훨씬 쉬워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의 도움 없이는 가시들이 더 날카로웠을 것이고, 슬픔은 더 깊었을 것이며,
우울함은 더 무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겪어야 할 일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안내해 줄 것입니다.
(마11: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무거운 짐은 창세기 3장에서 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분이 말한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수고를 없애주거나 무거운 짐을 없애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에 더해짐으로써,
수고하는 가운데서 안식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재 매고 있는 짐들 속에서
안식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리스도가 원하는 것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마11: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멍애라는 것은 한 마리의 짐승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두 마리의 짐승을 함께 묶어서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죄를 저지르고 여러분도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내 삶을 어렵게 만들었고,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우리는 서로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멍애를 없애준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의 곁에 들어가서 함께 해주겠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여러분 옆에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같이 멍애를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그 멍애가 얼마나 가벼워질까요?
여러분이 가는 길이 얼마나 분명하게 보일까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짐을 함께 지고 가는 여정이라면
그 여정은 즐거운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사는 삶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분리되어 영원토록 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죽은 후 영원한 삶에서 뿐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도 나와 떨어져 있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어려움이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혼자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짐을 함께 지고가실 분이 계신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안식으로 바꿔주시는 분
우리의 영원한 죄의 처벌을 없애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슬픔, 비애, 짐, 수고, 걱정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로 유익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나누어야 할 기도제목들이 있을 겁니다.
죽을 병에 걸렸거나, 법정에 서야 할 문제들이 기도제목이라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 만으로 위로받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오라고 초정하시는 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겁게 짓누르는 모든 문제를 안식으로 바꿀 수 있는
크고 강력한 분이십니다.
종교나 교회를 통해서 안식을 얻으려 한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충분히 강력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자신의 몸에 지고,
승리를 거두고 셋째 날에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어떤 것이든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십자가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것을 돕기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과 분리된 것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돕기 위해 바로 옆에서 멍애를 같이 지는 동료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너무 힘든 경우에만 내게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주님의 팔은 너무 짧아서 여러분을 돕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어서
내 손이 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이미 여러분의 혼을 구원했다면,
여러분이 지고 있는 짐을 함께 나눠 들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분은 멍애를 없애 주지는 않겠지만,
여러분은 "와, 이 멍애가 정말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정말 강하고 능력있는 분이십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