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 구원

고린도후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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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중 구원
본문 : 고후 1:10
(고후1:10)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건지실 것입니다.
큰 사망으로부터 건져진 이후에도
우리는 건짐을 받아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하노니
지금 말씀의 언급 순서를 보게 되면
교회가 성도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것이 성도들로 구성된 것이지만
교회 안에서 교회보다 더 중요한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후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고후1:3)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니라.
(고후1:4)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 받을 때 얻는 위로를 힘입어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는 것 같이 우리의 안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1:6) 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요, 혹은 우리가 위로를 받아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니 이 구원은 우리도 당하고 있는 동일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데 효력이 있느니라.
(고후1:7) 너희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굳건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안위에도 그러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
(고후1:8)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고후1:9)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1:10)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함께 돕고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선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상황과 지금 상황
고린도후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최근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시련과 고난을 겪고 있는 현실 속 교회에 대한 책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교회로 모이는 모든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경제적 부가 넘치는 교회의 모습에서
고린도교회를 보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책이고,
사도 바울이나 디모데 감독과 같이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한 엄청난 고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고난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했거나,
그들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고난을 겪게 된 것은
이 세상이 죄인들로 가득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 불순종한 사람들의 6천년간 만들어 온 결과들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 세상의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서 살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대륙을 누비며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던 바울은
4절부터 10절까지 고난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3절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고후1:3)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Blessed be God).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니라.
어떻게 바울은 우리가 보는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그 모든 일들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적으로 여러분이 경험하게 될 고난을 벗어날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해 본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지금 자신이 받는 축복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찬송받으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 그분 자체가 자신에게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축복입니다.(Blessed be God)
하나님의 아들이 축복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주먹질을 하지 않는 바울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겪게 되면 하나님을 향해 주먹질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난을 위로해 줄 유일한 분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들에게 고난이 닥치게 된다면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보고 손을 뻗치듯이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그분께 위안과 위로를 공급해 달라고 간청하라는 것입니다.
이 죄많은 세상에서 모든 폭풍과 고난이 끝날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는
누구나 고난이 떠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제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안하시는 것은 고난을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바울이 말한 축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고,
하늘에 거할 집이 생겼고, 영원한 생명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는지를 깨닫고 있기만 한다면,
이런 축복들이 우리가 삶에서 고난과 시련을 격게될 때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1:4)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환난(tribulation)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 받을 때 얻는 위로를 힘입어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
“tribulatio” 트리뷸레시오 : 라틴어/ 로마의 타작도구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기로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을 아프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구의 원래 목적은 알곡과 껍질을 분리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환난의 영어 tribulation의 단어는
타작도구의 용어에서 가져온 단어이고, 환난은 사람을 아프게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환난을 잘 사용하면 사람들의 삶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빵을 공급하기위한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사용되는 것입니다.
환난에 대한 바울의 반응
바울은 환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왜 때리고 괴롭히냐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축복이 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난이라는 도구를 자신을 파괴하는 도구로 보지 않고
나를 먹이시고 강하게 하는 도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1:4)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심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 받을 때 얻는 위로를 힘입어 우리가 어떤 고난 중에 있는 자들도 능히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
보통은 이 문장을 읽고 이렇게 접근합니다.
나는 고난을 겪곤 했습니다.
내가 고난의 문제를 주님께 가져갔더니,
하나님께서 그 고난으로부터 나를 꺼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고난에 놓인 나를
어떻게 고난에서 꺼내주셨는지 알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러분이 읽은 내용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나는 고난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고난에서 꺼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를 확실히 돕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도우셨는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환난이라는 도구가 사용되는 방법
환난(tribulatio)이라는 타작 도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타작도구 안에 밀 곡식을 집어 넣고 때리고 까불고
바람을 일으키고 해서 껍질은 날려 벌리고 알곡만 남기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맛있는 빵을 만들어 식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번의 식사가 끝나고 나면 이 타작도구를 버리실건가요?
우리는 추수한 곡식을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먹기 위해서는
타작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맛있는 알곡만 추려서
지속적으로 빵을 만들어 먹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고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필요한 환난이
이번 한번 만으로 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매번 추수 할때마다 이 타작 도구가 필요할 것 처럼
주님도 우리를 알곡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고난이 계속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의 고난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성취해 나가게 만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는 것 같이 우리의 안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성경에 없는 내용을 언급하고 싶지만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성경 기록을 근거로 추정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분의 전반부 삶 30년 동안은 죄로인한 고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프지 않았을 것이고 그분의 몸에는 통증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범법으로 인해서 징계를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을 30년간 살다가 십자가로 향하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하루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 고통을 받으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인들의 죄값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바울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수십년간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고난이 지속적으로 주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고통이
예수님이 겪은 고통보다 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미가 있는 이야기 입니다. 왜그럴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지불할 죄값이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로 가져가서
죄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죄인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저지른 범법들에 대한
징계를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심은대로 거두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맞이한 그 문제로 인해서
우리의 삶도 고난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이어서 보겠습니다.
(고후1:6) 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요, 혹은 우리가 위로를 받아도 그것은 너희의 안위와 구원을 위한 것이니 이 구원은 우리도 당하고 있는 동일한 고난을 견디게 하는 데 효력이 있느니라.
(고후1:7) 너희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굳건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안위에도 그러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
여기 두 번째 것이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살고 싶습니다.
고난의 효력
우선 그의 고난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멈춘적이 없습니다.
그는 한 번도 자기 중심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일이 생기게 하십니까?”
“그로 인해서 내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일이 생기게 하십니까?”
“그로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눈이 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짐을 지우십니까?”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이 짊어진 짐을 잊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난을 겪게 되면 하나님은 그것을 내게서 제거해 주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동해서 우리가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는 의미는
바울 자신이 삶에서 고난을 많이 겪은 것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이웃들도 나와 같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고난들이 효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고난은 그저 고통만 가득한 불쾌한 시간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고난의 효력을 믿는 다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래 네가 겪은 고난이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내 말이 맞았지?”라고
말씀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타작도구 안에 놓인 곡식은 어려운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제된 곡식은 식탁에 빵이 되어 놓이게 되고
식탁에 둘러 않은 아들과 딸과 아내와 모든 가족이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곡식의 입장에서 내가 겪은 일은 고난이지만
이들에게 어떤 유익이 생겼는지 보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 쓴뿌리를 갖지 않고,
주님을 향한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나중에 뒤돌아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감내하고 걸어온 길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려움을 격고 있을때
그들이 문제를 극복하고 주님께 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들과 동일한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이 듣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피할 수 없다면 유익한 결과를 위해서
여러분이 환난과 시련을 피할 수 없다는것을 알 수 있다면,
이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련과 환난이 여러분의 삶에 뭔가 좋을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창고가 있고, 그 안에 많은 귀한 물건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가 불이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타버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 창고 만한 집도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 창고 안에 쌓인 물건의 100분의 1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화를 낼 것이 아니라.
화재로 날려 버릴 재산이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삶의 방법을 수정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위기를 낭비하지 않고 좋은 기회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고후1:7) 너희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굳건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안위에도 그러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게 된 것
만약 당신이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은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교회에 당신과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당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살고 있다고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하고 있었을때는
그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주님께 자신을 헌실할 수 있는지 돕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고난을 겪고 난 뒤에는
이제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 일이 주어진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기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항상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1:8)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가 힘에 겹도록 한량없이 눌려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we were pressed out of measure, above strength”
힘에 겹도록 압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압력이 너무 세서 측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above strength”
바울과 디모데는 이 땅에 살았던 그리스도인 중
최고의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절망하는 다윗
(삼상27:1) 다윗이 자기 마음속으로 이르되, 이제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멸망하리니 내가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빨리 도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내게 없도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지경에서 나를 더 찾다가 나로 인해 절망하리니 내가 이와 같이 그의 손에서 도피하리라, 하고
다윗에게 힘든 시가가 닥쳤습니다.
그는 이제 더이상의 믿음이 없이 두려움으로 행동 하고 있습니다.
그는 더이상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도 사라졌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거라는 확신도 사라져 있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원수들에게로 가서 미친것 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있던 믿음도 소망도 모두 사라졌고,
그가 부르던 노래들도 더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계치를 넘어서 압박을 받게 되면 삶조차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욥
(욥3: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부터 죽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가 배에서 나올 때에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욥3:12) 어찌하여 무릎들이 먼저 가서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젖가슴이 먼저 가서 내가 빨게 하였던가?
(욥3:13) 그리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제는 내가 가만히 누워 평온히 지내고 잠들어 안식하였을 것이요,
욥은 자신의 한계치에 다다른 고난을 겪으며
그래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욥은 바로 그 고난의 정점에서 성경을 기록했고,
그 기록으로 인해 욥과 같이 고난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해 준 것입니다.
죽고싶어하는 엘리야
(왕상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또한 그가 어떻게 그 모든 대언자들을 칼로 죽였는지 이세벨에게 고하니
(왕상19:2) 이에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네 생명을 그들 중의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리고 더욱 더 내리기를 원하노라, 하므로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의 대언자를 죽였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엔 엘리야가 그녀에게 얼마든지 올테면 와보라고 할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싸움과 승리에 대한 엄청난 압박으로 인해서 그가 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상19:3) 그가 그것을 보고 일어나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가서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 종을 거기에 남겨 두니라.
(왕상19:4) ¶ 그러나 그가 스스로 하룻길을 가서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에 이르러 그 밑에 앉아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오 주여, 족하오니 이제 내 생명을 취하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그는 하나님께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이세벨이 죽이게 놔두면 될텐데 그러지도 못합니다.
뭔가 생각이 올바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욥, 엘리야, 이 세 사람은 성경에서 상당히 뛰어난 인물들 입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삶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민11:14) 이 일이 내게 심히 무거워 나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민11:15) 주께서 나를 이같이 대우하실진대 원하옵나니 내가 주의 눈앞에서 호의를 입었거든 즉시 나를 죽여 내가 내 비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니라.
모세는 광야 교회를 40년간 이끌었던 지도자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신다면 나를 죽여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요나
예레미야가 50년간의 말씀 선포 중에 위대한 대언입니다.
(애1:20) 오 주여, 보시옵소서.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며 내 애가 타고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뒤집혔나이다. 내가 극심히 반역하였으므로 밖에서는 칼이 앗아가고 집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애1:21) 내가 탄식하는 것을 그들이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내 모든 원수가 나의 고난을 듣고는 주께서 그렇게 행하신 것을 즐거워하나이다. 주께서 이미 부르신 그 날을 가져오시리니 그들이 나처럼 되리이다.
(애1:22) 그들의 모든 사악함을 주 앞에 끌어내시고 나의 모든 범법으로 인하여 주께서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시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힘을 잃었나이다.
예레미야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하나님께서 죽인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도 저들처럼 죽여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욘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또 해가 요나의 머리에 내리쬐매 그가 기진하여 스스로 죽기를 바라며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더 낫나이다, 하니라.
바울, 다윗, 욥, 엘리야, 모세, 예레미야, 요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답변
이들 모두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 감당하기 힘든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버림 받고
패배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위대한 사람들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에 너무 큰 압력이 가해지자 한계치를 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제발 나를 죽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답변
일곱 가지 경우 모두 주님께서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를 살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후
이들이 죽고 싶어할 만큼 큰 고난을 겪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 고난을 이겨냈는지를 보여주고,
이들이 끝까지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이루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하려는 것입니다.
(수7:6) ¶ 여호수아가 자기 옷을 찢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주의 궤 앞에서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며 머리에 흙을 끼얹고 저녁때까지 있다가
(수7:7) 여호수아가 이르되, 슬프나이다. 오 주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주께서 이 백성을 데려다가 요르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주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르단 저편에서 만족하고 거기 거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수7:8) 오 주여, 이스라엘이 자기 원수들 앞에서 자기 등을 돌렸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수7:9) 가나안 족속과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이 그것을 듣고는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이름을 땅에서 끊으리니 주께서는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하니라.
(수7:10) ¶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같이 얼굴을 대고 엎드렸느냐?
성령님이 우리를 위로하는 모습
여러분은 위로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오~ 불쌍한 아들아 얼마나 힘들겠니…”
라고 위로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성령님의 실제 모습은
“그렇게 맥아리 없이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
올라가서 내가 죽이라는 사람들이나 죽여라.. !!”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가셔서 동굴에서 나가서
내가 하라고 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친척하는 다윗을 돌려 보내시고
내가 이미 너에게 준 왕좌에 앉을 준비과정을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에게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고후1:9) 우리 속에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도시로 들어가서 혼을 이겨오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삶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압박이 가해질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구나!”
9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함이라.”
네가 아직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안에는 여전히 네 자신을 믿는 옛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안에는 여전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똑똑하고 잘난 바리새인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삼중 구원
(고후1:10) 그분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여전히 건지시리니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노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원자로 믿으셨다면,
여러분은 과거에 큰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도 여러분을 여전히 건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미래 시제로도 우리는 건짐을 받을 것입니다.
과거 사망에서 건져졌고, 현재도 미래에도 사망에서 건져지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고난에서 건져졌고, 현재도 미래에도 고난에서 건져질 것입니다.
과거에 압박에서 건져졌고, 현재도 미래에도 압박에서 건져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셨고, 지금도 건지시고 계시고,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경험 밖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해 기도로 함께 돕고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선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나는 성경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나의 경험과 이해 밖의 이야기 들입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가 내 손안에 다 잡고 있는 것 처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11절의 말씀이 진리라면, 이 말씀은
여러분의 기도가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문제들을 이겨나가는데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여러분이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기록하게하고 있는 것은,
내가 과거에 감당할 수 없다고 했던 일들,
그래서 내가 죽고 싶다고 했던 일들,
다시는 주님의 일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했던 일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모두 감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 어려움들을 다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의 기도가 내가 이 고난과 어려움과 압박을 이겨내는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진리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실 필요가 없으셨을 겁니다.
이 말씀이 진리라면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신뢰하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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