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하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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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소망의 하나됨
본문 : 엡 4:4-6
(엡4:4)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엡4:5)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엡4: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지난 번에 우리는 연합이라는 교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연합이라는 교리는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가 된 우리에게는 한 몸이 있고 한 영이 있고 한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의 소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엡4:1)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엡4:3)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4)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소망의 일상적 의미
“소망”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에서는 의심이 포함된 의미로 사용됩니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으면 좋겠어.”
“우리 남편이 잘 됐으면 좋겠어!” “교회가 인원이 늘었으면 좋겠어!”
이런 것들이 우리 일상의 소망들입니다.
이런 소망들은 이루어 질 수도 있고 안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소망이라는 것을 갖게 됩니다.
소망의 성경적 의미
성경에서 사용되는 “소망”은 우리의 일상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찾아서 성경이 소망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찾은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사전적 의미로 성경적 의미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잠10:28)의로운 자의 소망은 즐거움이 되려니와 사악한 자의 기대(expectation)는 사라지리로다.
잠언에서는 대조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지금 의로운 자의 “소망”이라는 표현과 사악한 자의 “기대”라는 표현을
비교하면서 서술하고 입니다.
‘소망’과 ‘기대’는 다른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연속적으로 나열되면서 비교되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가 공통점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소망이라는 것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와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에는
일어나게 될 확신의 의미도 있다는 것입니다.
(욥31:24) 만일 내가 금을 내 소망으로 삼았거나 정금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가 확실히(confidence) 믿는 바라, 하였다면
욥기에서는 ‘소망’이라는 단어가 ‘확신’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사용되었습니다.
소망으로 삼았다는 의미와 확실히 믿는다는 것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의 소망은 기대하는 일이고
그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하고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소망의 의미에 불확실성이 강조되는 것과는
다른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히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나니
성경은 소망은 확실하고 굳건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듯이,
뭔가 바라고 있지만 그대로 되지 않은 것을 전재로한 의미가 아닙니다.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는 소망은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전재로
혹시나 운이 좋아서 들어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은 확실하고 굳건하게 일어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확실한 이유
(히6:18)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소망이 확실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소망이기에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지기로 한 소망인 것입니다.
이득의 소망
(행16:16)¶ 우리가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영에게 사로잡힌 어떤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점치는 것으로 자기 주인들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더라.
(행16:17)바로 그 소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라, 하며
(행16:18)여러 날을 이같이 하거늘 바울이 근심하여 몸을 돌이켜 그 영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령하노니 그녀에게서 나오라, 하매 그가 그 즉시 나오니라.
(행16:19)¶ 그녀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이득의 소망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에 있던 치리자들에게 끌고 갔다가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바라며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부가 늘어나는 것일겁니다.
자신의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더 큰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지금 타는 중고차를 버리고 더 좋은 차를 사는 것일 겁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일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물질적인 부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를 위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넣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싶고 행운을 잡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합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국가 대표가 되어서 알려지는 것일 겁니다.
성공해서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이런 성공의 목표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힘을 쏟아붙고
열정과 정열을 받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일주일 내내 자신의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육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사람들은 도덕적 목표를 세워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지구를 구하는 운동에 열정을 바칩니다.
노숙자를 돕거나 노인을 돕는 일에 열정을 바치기도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삼고 있는 사역자들도 많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보존하는데 열정을 불태우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땅을 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바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관심을 끌어모으고
많은 자금을 끌어모아서 이 일을 합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의 목표이고 그들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던 소망
(엡2: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우리는 은행에 돈이 많은 부자가 되고 싶고 멋진 집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게 되면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워했던 사람에게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명성을 얻고 추앙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를 추앙하던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게 될 것이고,
그들로부터 험담과 비난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추앙하고 존경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추앙을 받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도, 우리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잊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안실에 늘어진 상태로 놓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들 조차도 죽은 내 육신과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았지만,
차가운 시신이 되어버린 여러분의 몸은
더이상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정받고 싶어했던 여러분의 가족도
여러분을 추앙하고 존중해 주었던 그 모든 사람들도
차가워진 여러분의 육신 앞에서 여러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헛된 것으로 헛된 육신을 채우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지구의 미래를
그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지구의 미래를 그들이 예측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일 주일 뒤의 태풍의 진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지진이 어디에서 언제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보존하려는 지구는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 언젠가는
지구는 유성과 충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구상의 많은 것들이 멸종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런 멸종을 막기위해서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지구를 지키는데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그들의 노력은 무엇때문에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을 이 땅에 100년을 더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해도,
그 다음에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죽음이고
결국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가 썩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노력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점점 나빠지는 지구를
이들이 얼마나 더 유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그저 이것 저것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그들의 노력으로
좌지 우지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배고픈 사람들을 먹인다면 몇명이나 더 먹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돈으로 사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지원해 주는 돈으로 사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밥을 준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몇십년 후에는 죽게 됩니다.
여러분의 노력으로 그들의 생명을 몇 년 더 연장해 준 것때문에
더 많은 죄를 짓다가 더 처잠하고 추악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금 괜찮은 지옥이라도 갈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소망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조차도 이런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이나 사역자들 조차도
자신의 사역의 목적을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집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밥을 먹는데 복음이 불편해 보인다면 그저 밥부터 먹이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밥먹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은 자신의 사역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하는 일은
뒷전입니다.
그리스도인 조차도 자신의 노력으로
이 세상을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소망으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일은 오직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 땅에서 통치하시며 모든 불의를 정리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이 땅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욥8: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든 자의 행로들도 그와 같으며 위선자의 소망은 사라지리니
위선자의 소망은 위선자와 함께 땅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자손이 그들의 소망을 이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소망은 죽은 소망이고 아무 의미 없는 소망인 것입니다.
대안이 없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절망만 안겨주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소망은 아무 의미가 없는 소망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무슨 소망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든 자”
위선자의 소망이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여러분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바라는 모든 소망은
헛된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것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은 하나님을 전재로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과학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하나님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범위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 이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이것을 알고 싶어서 철학을 동원하고 과학을 동원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철학이나 과학을 통해서 의미있는 답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이 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습니다.
과학자도 철학자도 사실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창조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할 뿐입니다.
과학이 하나님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알고싶다면 하나님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과학자들도 이 세상의 존재가 자신들의 영역이 아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일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전도지를 받아도 곧바로 휴지통으로 던져넣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는것 같지만 지금도 새로운 혼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 말고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듣는것 같지 않다고 집에서 티비만 보고,
우리끼지 앉아서 교제만 하면 복음이 전달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산 소망
우리의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패하고 타락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벧전1:3)[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 이시고,
오직 그분 안에서만 영원한 산 소망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기억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지금 이순간에 가질 수 있는 것은
부활의 확증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소망
(히7:19)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더 나은 소망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더 나은 소망입니다.
복된 소망
(딛2:13)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복된 소망입니다.
그럼 복되고 살아있고 더 나은 우리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갈5:5) 우리가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기다리나니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의를 세우고 죄를 제거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살인을 제거하실 것이고 범죄와 성희롱과 사악함을 없앨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될 것이고
그곳은 순수하고 의로운 곳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말을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의롭게 살려고하거나 거룩하게 살려는 모습을 비웃습니다.
이 땅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 의로움으로 기쁨과 화평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잠10:28)의로운 자의 소망은 즐거움이 되려니와 사악한 자의 기대는 사라지리로다.
우리의 소망은 언제가 더 이상 슬픔이 없을 것이라는 것과,
더 이상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것과, 더 이상 우울함이 없을 것과,
더 이상 죽음이 없는 것 그리고 기쁨만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다툼, 불만, 분노, 시기, 속임수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엡1: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상속 유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빚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건강을 위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우리를 그분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속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골1:26)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골1: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 그분은 왕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분이 왕관을 쓰실때 그분이 들어 올려질때 그분이 영광을 받으실때
그분이 위대하게 높여지실 때
그분을 조롱했던 사람들, 그분을 경멸했던 사람들은
입을 닫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가 그분은 이 땅을 의롭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것입니다.
주님이 왕좌에 앉으실때
모든 사람이 그분이 주중에 주이시고 왕중에 왕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그분은 홀로 높임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벧전1: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그 은혜로 인해 끝까지 소망을 가질지어다.
우리가 감사한 것은 우리는 더이상 그분이 우리를 버리실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더이상 의롭지 못한 죄인으로
그분 앞에 서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는 은혜로 우리에게 오신 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 올 때 이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은혜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
(행24:15)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
여러분 왜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소망이 없는지 아시나요?
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없이는 소망이 없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없이 그들이 살면서 이 땅에서 노력해 왔던 모든 것은
결국 그들 자신과 함께 죽음을 맞이 할 일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죽어 무덤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절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과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구원의 소망
(살전5:8)그러나 낮에 속한 우리는 정신을 차려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죽음에서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게 될때
주님은 우리가 살가가고 있는 현 세상에서도 구원해 주고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신적인 불의(不義)에서도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과 영원을 함께 할 새로운 몸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데리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게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소망인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고, 썩을 육신에서 구원해 주시고,
마귀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세상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주님이 재림하실때 이 모든 것을 성취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소망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딛1: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오직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는 이것을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으로도 이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을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17:2)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주셨사오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그가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우리는 이 소망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가 그분이 다시 오실때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고 그분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의롭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의로울 것이고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잘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은 주님 밖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어나서 세상에
이 유일한 한가지 소망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소망
(엡4:4)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우리가 지금 여러가지 소망을 살펴보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각의 여러가지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딤전1:1)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와 우리의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소망은 무엇이 아니라 그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의로움도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소망은
만약 우리의 소망이 그저 영원한 생명이나 부활이라면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불필요한 다양한 방법을
간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영생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로 오고싶어 하지는 안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죽어서 영원한 상속유업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살 폭탄테러를 하면 예쁜 여자와 큰 집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수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욕구를 채우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고 속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지 않다면 올바른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이유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중에 가장 첫 번째는 주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모두 채워주신 주님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그분의 발 앞에 자신의 왕관을 던지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분이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사람대 사람으로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겸손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와 같은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죄인들 사이에서 살아가시며 고난과 모순을 겪으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영광을 받으실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하늘의 왕좌에 계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과 연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몸 안에서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17:11)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목표가 바로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이유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몸 안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소망이
그곳에 머물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 모두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이 소망에 두고 섬기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밖의 모든 소망은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봤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망과 희망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헛된 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소망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여러분의 이웃과 친구들이 이 소망에 참여 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주변의 잃어버린 혼을 향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 소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요일3:3)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여러분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그분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삶의 방식은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향한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