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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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
본문 : 롬 1:16-17
(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복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결과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인해서 얻게 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고
-죄인들이 살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다는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의(義)”가 처음 언급되는 곳
창세기와 계시록으로 가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해 보겠습니다.
먼저 처음으로 “의(righteousness)”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의(righteousness)라는 단어는 성경에 289번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 33번이 로마서에서 나옵니다.
(창15:3)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And Abram said, Behold, to me thou hast given no seed: and, lo, one born in my house is mine heir.
(창15: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더라.
And,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him, saying, This shall not be thine heir; but he that shall come forth out of thine own bowels shall be thine heir.
(창15:5)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And he brought him forth abroad, and said, Look now toward heaven, and tell the stars, if thou be able to number them: and he said unto him, So shall thy seed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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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오르는 등불이 그 조각들 사이로 지나가니라.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the sun went down, and it was dark, behold a smoking furnace, and a burning lamp that passed between those pieces.
낮에 별을 세라고 하신 아나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낮에 부르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는데
밝은 하늘을 보고 별을 세어보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한 낮에 볼 수 없는
별을 세어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또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손의 숫자가 별의 수 만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늘에 있는 별의 수를 세어 보거라"
"제가 볼 수는 없지만 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압니다."
"네 자손들도 그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네 그 말씀을 믿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등장하는 의()
(창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And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for righteousness.
성경에 “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면서 이 “의 righteousness”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등장을 합니다.
교회에 참여하는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고,
술을 더이상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상관이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돈을 내는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약속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그것을 믿겠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내가 그 약속을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바로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뭔가 선한 일을 해서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성경이 말하는 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된 “의”를 보겠습니다.
(계19:10) 내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려 하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예수님의 증언을 가진 네 형제들 중에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님의 증언은 대언의 영이니라, 하더라.
And I fell at his feet to worship him. And he said unto me, See thou do it not: I am thy fellowservant, and of thy brethren that have the testimony of Jesus: worship God: for 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
예수님을 증언을 전하는 사람을 경배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을 들으면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And I saw heaven opened,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that sat upon him was called Faithful and True, and in righteousness he doth judge and make war.
대문자 신실함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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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9:13)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And he was clothed with a vesture dipped in blood: an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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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9:16)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
And he hath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11절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And I saw heaven opened,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that sat upon him was called Faithful and True, and in righteousness he doth judge and make war.
성경의 첫번째 책에 등장하는 “의”와 성경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의”가
기록된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입니다.
첫 번째 “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의”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 “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시는 모습을 의라고 합니다.
로마서로 돌아오겠습니다. 복음과 의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롬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of Christ: for it is the power of God unto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도
죽음에서 일으켜진 것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믿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은 모든 자에게 나타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자에게는 이 구원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정죄에서 벗어날 길을 만드셨는데
그길이 믿음이라면,
그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정죄 받은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된 것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하나님의 의가 … 계시되어 있나니”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때문에 죽으신것이 맞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을 방법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하셨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을 길을 얻을 수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규정하신 의미에 근거해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법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의로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은 옳은 방법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고,
그런 방법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도 그분에게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길로 오기만 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할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향을 피우거나, 우상이나 부적을 소유한다거나
제단을 쌓아야 한다거나 여러분에게 뭔가 의로운 행위들을 하게 만들어서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가 제시하는 방법으로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그 무엇으로도 여러분을 죄로부터 구원받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그 어느 과정도 여러분을 의롭게 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여러분이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벙법은 너무도 쉬워서 이 길을 부한 사람을
모두 멸망시킨다고 해도 그분은 여전히 의로우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복음보다 공평한 방법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꾸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1억을 조건으로 구원을 준다고 한다면,
평생 1억을 가져본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공평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평생 술을 마지지 않으면 구원을 준다고 한다면,
그런 기준이 있는지도 모르고 술을 이미 마셔왔던 사람에게는
억울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제시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매번 믿음을 행사합니다.
다리를 건너갈때, 버스를 탈때, 놀이 기구를 탈때,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누구가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제시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올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돈도 수고도 희생도 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은 자를 의로 여기시고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복음에는 사람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그들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구원은 내가 누구보다 더 낫다는 관점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일한 수준으로 의로운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함경직 목사나, 무소유의 스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3:23)
여러분이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수준과 동일한 의로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의로우셔서 자신의 아들의 피흘리는 죽음을 빼고는
여러분을 하늘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만큼 의로운 것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10만 마리의 소를 희생물로 가져오거나,
여러분이 남은 생애를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이 너희들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런데 네가 나에게 너를 부당하게 대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감히 네가 내 아들의 피값보다
더 의로운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으냐?”
하나님은 내 아들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그 어떤 노력도 예수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너무도 의로워서
너희들의 죄가 내 아들에게 닿았을때 나는 내 아들을 죽여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의로움을 대하는 수준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강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문제는 사랑이 아닌 의로움의 문제입니다.
오는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만을 말하고,
하나님의 의에 대해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이 아닌 티비니 방송을 통해서 자녀를 사랑법을 들으면
그들의 잘못을 혼내서 바로잡지 않고 감싸는 것을 사랑이라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자녀들을 지옥으로 향하는 것을 돕는 것과 같습니다.
(잠23:14) 너는 그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의 혼을 지옥에서 건질지니라.
Thou shalt beat him with the rod, and shalt deliver his soul from hell.
오는날 교육 환경은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혼내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자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때리지 못합니다.
과거에 아이들과 관련된 법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징계를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가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도 부모도 학생들을 혼내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때 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혼내야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혼내야 하고,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면 맞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를 지옥의 방향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이야기 한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은
죄의 문제를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지저분한 선행 몇가지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보여주고 이정도면 저도 하늘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복음의 취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義)는 점도 흠도 없는 완벽한 의 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때 하나님의 의를 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우리 교회와 우리 목사가 뭐가 좋은지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 교회 나오라고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들의 의를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은 사회에서 효자상, 효부상, 의인 상을 받은 것이나,
다른 사람보다 선행을 많이 한 것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원짜리 영화관 앞에서 10원도 안되는 돈을 들고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하나님의 의가 구원의 계획에 계시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사악한 자 위에 그리고 불신자 위에 선언한 심판은 의로운 것입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자신의 명령을 어긴 모든 사람을
영원한 불못에 집어 넣겠다고 선언한 것은 의롭고 합당한 일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만원짜리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9천 900원이 있는 사람도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 사람보다 제가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정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동일하지 않은 의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작 70년을 잘 못 살았다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간다는 것은 억울하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보다 더한 시간을 주어도
절대로 죄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 근거는 계시록의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대환난이 지나고 천년간 화평과 의의 왕이신 예수님의 통지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천년의 기간이 지나나면 지옥이 열리게 됩니다.
그때 그 지옥에서 마귀와 그의 무리가 일부 나오게 됩니다.
그 지옥에서 나온 무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무기를 들고 예루살렘으로가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이 여러분을 선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고난이 여러분을 의롭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의롭게 바꾸어 놓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사람들이 지옥에서 생고생을 해도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옥에 들어갈때 그 모습 그대로 나오게 됩니다.
성경에 지옥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누가복은 16장의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대화가 오고갑니다.
그런데 그 대화중에 그 부자는 단 한 번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은 여기가 너무 뜨거워서 목이 마르니 물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지옥에 가보고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 기간이 지나면
예수님 없이 여러분이 주님께 돌아갈 방법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옥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재난 중에 사람이 찾는 것
산불이 나고 지진이 나고 태풍이 불고 해일을 불어닥쳐도
사람들은 소방서 구급대를 찾을지언정 하나님을 외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재난 지원금을 언제 얼마나 줄지에만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맑은 날씨와 따듯한 햇살과 화창한 날씨를 보면서,
이렇게 좋은 날을 주신 주님과 교제를 위해서 교회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은 사라지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산으로 들로 놀러갈 생각을 할까요?
사람들은 자연을 숭배하는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삶은 죽을때 모습 그대로 영원히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징계하는 것은 그분의 의로움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심판하고 싶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의 길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 말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2. 구원의 길은 모든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대학원생이나, 초등학교 학생이나 구원을 받기 위해서
복잡한 공식을 외우거나 어려운 철학서적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교수도, 거리에 포장마차 할머니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주어진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은 어려워서 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제시한 구원의 방법이 너무도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이 방법을 거부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누구도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라않는 배에 승선해 있습니다.
누가 바닷 속으로 가라앉게 될까요?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라앉아 죽게 될 것입니다.
동성애자도 죽게 될 것이고 이성애자도 죽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죄는 못본체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으로 모든 죄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죄로인해 지불해야 할 댓가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값으로 지불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모든 요구가 이 피로 채워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죄를 지었는데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형량을 받았다면, 그것은 의로운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으면 불타는 지옥에 간다고
성경에서 수 없이 경고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지옥은 그냥 겁을 주려고 한 것일뿐
진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면
지옥을 실제로 있는 곳으로 믿고 생활한 사람에게
공정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폭행을 하는 사람들을 벌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 긍휼을 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원하지만
다른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해줍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는 티끌만큼도 드러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의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하늘의 별을 보면서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의를 알 수는 없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해주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인지는 그곳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입니다. 그곳은 바로 복음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인지를 알고 싶다면,
자연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절대로 가까이 할수 없으시고 용납할 수 없는 분이시기때문에
자신의 아들조차도 죄가 그분에게 전가되자 그분을 죽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입니다.
(요12:32)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
And I, if I be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unto me.
여러분이 하나님의 의(義)와 거룩함과 공의와 사랑을 보고 싶으시다면,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통해서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느낀다고 말하거나
내 여자 친구의 눈에서 천사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안이나 자연속이나 애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의(義)는 갈보리 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는 길을 만드시는 일에도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네가 나를 위해 뭔가 해 줄께 있다."
"제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아, 지금 낮에 하늘에 있는 별을 한 번 헤아려 보겠느냐?"
"저는 셀 수가 없습니다. 그냥 많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저 하늘의 별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냥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를 의롭게 여기겠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셨다가 다실 일으켜진 것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복음을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을 믿는다면 그로 인해 여러분이 의로워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너는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내게 가져온다면, 너는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는 뭔가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늘에 갈 충분한 상태가 아직 안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여러분 앞에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의를 얻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십자가를 보시기 바랍니다.-끝-
주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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