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퍅해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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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강퍅해진 마음
본문 : 롬 2:5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롬2:1) 그러므로, 오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누구이든 변명할 수 없나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서 네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이라.
(롬2:2) 그러나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롬2:3) 오 그런 일들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들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롬2: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우리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유아세례 & 예정론
로마 가톨릭은 어린아기의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어린 아기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부였던 요한 칼빈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지 못받을지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이 여러번에 거쳐서 경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오래 참으심을 징계하지 않는 분으로 오해
4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선하심은
사람들이 뉘우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지,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아무 징계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오판을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또 다른 오판은 이것입니다.
2. 하나님은 징계를 그때 그때 작게 나누어서 하신다.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거나, 직장을 잃게 되거나, 재물을 잃게 되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친구를 통해서 상처를 입게 되는 것들이
하나님이 그때 그때주시는 심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교통사고, 직장 해고, 화재 등은
우리의 부주의와 관리 소홀로 인해서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이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 것입니다.
바울도 아팠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지만 몸이 아팠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나중에 큰 심판을 쪼개서 받는 작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고 참다가 나중에 한 번에 진노하십니다.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모든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권면하시고 가르치시면서,
지켜보시고 지켜보시고 지켜보시다가,
나중에 한번에 모든 분노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기서 5% 징계하고 저기서 10% 징계해서
징계를 분산해서 100%의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평상시에 죄를 지어도 아무 불편함 없이 살다가
마지막에 100%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판한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바로바로 징계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적 접근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징계 사이에 여유를 주시는 하나님
(출8:15) 그러나 잠시 연기된 것을 파라오가 보고는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더라.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재앙을 내린 후에 시간을 잠시 주었지만,
그러나 파라오는 그 기회를 하나님께 돌아서는 기회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제 심판이 다 끝났나?”
하나님은 파라오가 잠시 숨을 고르고 하나님께 돌아서기를 기다렸지만,
오히려 파라오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삼상6:6) 그런즉 이집트 사람들과 파라오가 자기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느냐? 그분께서 그들 가운데서 놀랍게 행하셨을 때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파라오가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파라오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대언자를 통해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파라오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파라오처럼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일은 이렇습니다.
죄가 여러분을 붙잡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그 죄의 올가미 안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별다른 나쁜일들이 생기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여러분 마음속에 이야기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사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기도를 할때 기도가운데 여러분 마음에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성도의 간증이나 교제가운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을 지적하고 회개하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에 벽을 쌓고 하나님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과 갈등이 생기는 부분은
하나님 앞에 비밀로 하고 내어 놓지 않고 피해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육신은 여러분을 쉽게 놔주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여러분의 마음은 육신의 설득에 설득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형제들의 권면의 말들이
여러분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쉬운 예를 하나들어 보겠습니다.
굳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술마시는 사람의 예를 들지 않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듣고,
성도간에 교제를 좋아하며, 찬송가 부르기를 좋아했고,
교회안을 돌아보며 늦게까지 남아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예기치 않은 일로 교회에 가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교회에 빠지는 날이 길어지면서
이전만큼 교회에 나가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마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다른 여자와 남자를 만나서 음행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이전처럼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신나지 않습니다.
이전처럼 교회에 나가고 설교를 듣고
성도들을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신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 다른 누군가가 나는 교회가 너무 좋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나도 이전에는 저런 마음이었는데…. 저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두 번째
“나도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 이 모습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해!!”
“일요일에 너무 교회에만 얽매여 있었던것 같아.”
그러면서 여러분의 마음이 점점 강퍅해 집니다.
오래가지 않아서, 여러분의 삶에 죄들이 늘어가게 되고,
시간이 갈 수록 함께 열심이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교회에서 왜 안나오냐고 전화오는 것이 싫어집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는 교회에 안나가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점점 딱딱해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점점 벽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얻으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것들은 그냥 형식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버리고 빠지고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도
여러분에게 어떤 재앙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면 얼마든지 멀리 멀리 더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구원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다루고 싶으시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딱딱해져서 더이상 듣고 싶어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고 벗어날 수 있어야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지체들을 사랑했던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로 된것인지
그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멀어져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던 상태에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데도 별다른 징계나 고통이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성적인 문제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누군가 군대가 쳐들어와서
성적인 타락을 부추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죄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성적 타락을 성적 자유라고 말하고, 문화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며,
성적 타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목사나 신학자들은
맘에 안드는 남편과는 이혼해서 더 좋은 남편을 만나라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남자와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도
자신에게 별다른 저주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착각하고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강퍅해지지 말라고 경고하심
(시95:7) 그분은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분의 초장의 백성이며 그분의 손의 양들이로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시95:8) 격노하게 하던 때와 같이 또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마음이 강퍅해지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그 행위의 책임자에게 경고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95:9)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여 입증하고 내가 행한 일을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집트 사람들과 파라오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강퍅하게 만들었다.
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해서 광야로 이끌어 왔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은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먹이셨던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롱했던 백성들을을
하늘에서 음식을 내려 먹게 하셨습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장에 다닐 필요도 없고 집도 살 필요 없고 신발도 살 필요 없고
옷도 살 필요도 없고 은행에 빚진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졌다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직장 때문도, 학교때문도, 목사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몰라서 속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의 손에는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옳은지도 다 알면서,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과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징계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은 아침에 눈을 뜨면 구름 기둥이 올라가가고,
저녁에는 불기둥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의 눈으로 항상 목격한 것입니다.
그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들이 먹을 것을 내려주셨습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원망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우리를 얼마나 선하게 대하시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악으로 취급받는 시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보낸 민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빠른 인터넷, 풍부한 먹거리, 높은 최저 임금,
정부의 복지 정책, 치안상태, 종교의 자유,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죽기로 작정하지 전에는
굶어죽을 일도, 얼어죽을 일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처럼 하나님을 조롱하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사회악처럼 취급하는 상태는
지금이 최고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시위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리에서 선포하는 것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말씀과 교회가 없어도 불편해 하지 않는 성도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거나 교회를 나가지 않아도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을 하다가도
그들의 반응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별로 불편해 하지 않는다는 것에
놀랍기도하고 슬프기도 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바위처럼 딱딱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슥7:8) ¶ 주의 말씀이 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슥7:9)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진실한 재판을 집행하며(롬2장) 저마다 자기 형제에게 긍휼과 동정심을 베풀고
(슥7:10) 과부와 아버지 없는 자와 타국인과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며 너희 중 아무도 마음속에서 자기 형제를 치려고 악을 꾀하지 말라.
(슥7:11) 그러나 그들이 귀 기울이기를 거절하여 어깨를 빼고 듣지 아니하려고 자기 귀를 막으며
그들 스스로 한 일입니다.
(슥7:12) 참으로 그들이 율법과 또 만군의 주가 이전의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영으로 보낸 말들을 듣지 아니하려고 자기 마음을 금강석같이 만들었으니 그러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주로부터 나왔느니라. (롬2장)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었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고 듣기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기로 정하는 것입니다.
그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롬2:5) 다만 네가 네 강퍅함과 뉘우치지 아니하는 마음에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닥칠 진노를 네게 쌓아 올리는도다.
보상과 진노의 작동원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우리가 하늘에 갔을때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과 작동원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매일 매번 심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에 대한 징계는 미래에 한꺼번에
다 계산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노를 쌓아갈 것인지 보화를 쌓아갈 것인지
우리의 마음의 결정에 따라 같은 작동원리가 적용되어서
하늘에 진노 또는 보화가 쌓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날에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여러분이 80년의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여기 저기 조금씩 진노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날을 정해서 그 날에 모든 것이 정산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일어나는 것도 같은 원리 입니다.
한 날을 정해서 우리의 의로웠던 삶을
모두 정산해 주시고 그에 따라 보상을 해 주십니다.
(잠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을 굳게 하는 자는 갑자기 멸망을 당하며 또 구할 길이 없으리라.
“자주”
하나님은 여러분에 돌아설 기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렸을때마다
여러분은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책망을 보내십니다.
“갑자기 멸망을 당하며”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못하도록 혼을 냅니다.
사람들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혼을 내서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점집에 가서 나의 미래를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혼구녕을 내서 다시는 점집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아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여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음행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접짐에 가서 타로집에 가서 점을 봅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하지만
여러분은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아도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멸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분이 설마하며 세상을 즐겼는데
어느날 눈을 떠보니 불이 타는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별다른 징계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가,
마지막에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것을 이해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와서 자신이 회개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오래 살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잠1:24) ¶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절하였도다. 내가 내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도 중시하지 아니하였으며
예정론이 설자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실때 거절한 것때문입니다.
(잠1:25) 도리어 너희가 내 모든 권고를 무시하고 내 책망을 전혀 원치 아니하였은즉
(잠1:26) 나도 네 재난을 보고 웃으며 네 두려움이 이를 때에 조롱하리니
(잠1:27) 그때에 네 두려움이 황폐함같이 이르고 네 멸망이 회오리바람같이 이르며 네게 고난과 번민이 이르리라.
(잠1:28) 그때에 그들이 나를 부를 터이나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일찍 나를 찾아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리니
(잠1:29) 이는 그들이 지식을 미워하고 주 두려워하기를 택하지 아니하며
(잠1:30) 내 권고를 전혀 원치 아니하고 내 모든 책망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니라.
(잠1:31)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 길에서 난 열매를 먹으며 자기 계략들로 채워지리니
주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를 불렀고, 네가 대답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너를 조금 자극했다.”
주님은 이렇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손을 뻗었고, 너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감기를 앓게 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부르고 부르고 불렀다. 그러나 너는 거절하고 거절하고 거절했다.”
“나는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안된다고 거듭 말해주었다.”
“그러나 너는 상관하지 마세요. 신경쓰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서 사라지세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한 날을 정해
너에게 회오리바람을 보내서 너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했다.”
이것이 바로 원리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뺨이라도 때리면
그들은 더 삐뚤어져서 회개하지 않는다고 그분의 지혜로 알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선하게 대해야 그들이 회개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이 또한
자신의 선함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말이 아닌 성경책을 들고 시작
우리가 해야할 것은 성경과 함께 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에서 시작해야할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손에들고 신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줄것이라는 말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원의 문제에 대해서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이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 오류가 있고, 고쳐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하고,
결국 성경을 잘 알것같은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거나
대형교회에 가서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강퍅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기록으로주신 성경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려는 시도는 멈추어야 합니다.
성경만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하신 하나님
만약 오늘 누군가 교회에 불만을 가지고
좋은 교회를 무너뜨렸다고 해보죠.
그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슨 질병이라도 앓게 만드실까요?
그의 자녀나 아내에게 사고라도 일어나게 하실까요?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뿐 아니라 그의 자녀나 아내에게도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교회를 허물고 난 뒤에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그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판단이고 주장입니다.
그는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자신이 잘 살고 건강한것과 그가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잘살던 못살던 그가 한일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기준은 성경 말씀 이어야 하는 것이지
어느 성공한 사람의 삶의 경험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경험이 아닌 말씀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지금 이순간 다른 여자와 살고 싶어서 자신의 아내를 모함해서
이혼할 궁리를 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변사람이 아무리 말리고 성경말씀을 보여주어도,
그는 자신의 결심을 굳히고 지금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래도 그에게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옛 여자를 버리고 불쌍한 이 여인과 결혼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인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이 여인을 만났더니 하던 일이 더 잘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으로 보아 자신이 한 일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줍니다.
지금의 아내와 잘 맞지 않으면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더 복된 삶을 살라고 상담해 준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미뤄두고 계십니다.
(신32: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니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들의 송이는 쓰며
(신32:33) 그들의 포도주는 용들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니라.
(신32:34)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 속에 밀봉된 채 있지 아니한가?
(신32:35) 원수 갚는 일과 보복하는 일은 내게 속하였으니 그들의 발이 정한 때에 미끄러지리라. 그들의 재앙의 날이 가까우므로 그들에게 닥칠 일들이 속히 일어나리라.
(신32:36) 이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며 그들의 권능이 떠나가고 갇힌 자나 남은 자가 없음을 보시고 자신의 종들로 인하여 뜻을 돌이키실 것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진노는 그 정한 때에 가서 한 번에 처리하시겠다는 겁니다.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는 것에 대해 오해하면 안됩니다.
(욥21:30) 곧 사악한 자가 멸망의 날까지 남겨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이 진노의 날로 끌려 나가리로다.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단지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노의 심판은 어느 한 날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결혼식도 어느 한 날 정해서 많은 증인들 앞에서 행하는 것 처럼,
여러분의 심판도 어느 한 날 정해서 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벧후3: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보상은 지금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날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받을 보상인 하나님의 진노도
정해진 날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인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분이 죄를 지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일이
어려워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십자가로 향하시고
선하심과 오래참으심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을 전할때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이 개발한 논리로 전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구원을 받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오래참으심을 오해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없을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진노의 대상이 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피할 길을 아들을 통해서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의미있게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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