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Notes
Transcript
제목: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본문: 갈 1:4, 갈 2:19
(갈1:4)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Who gave himself for our sins, that he might deliver us from this present evil world,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and our Father:
(갈2:19) 내가 율법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
For I through the law am dead to the law, that I might live unto God.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갈라디아서는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명과 규례와 율법과 절기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갈라디아서의 압도적인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율법으로 인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의로움 이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로우신 분에게
자신을 내 줄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거해서
여러분을 통제하실 수 있게 된다면 의롭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과 나무는 사과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
과일 농사를 지어본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사과 나무를 심어 놓고 햇볕과 물과 거름을 주는데
그 나무에서 사과를 열리지 못하게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과 나무는 안에 사과가 열리게 만드는 과정이 내장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과 나무의 본래의 특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인 교회 생활과 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나무처럼 그 자체 내에 내장된 프로그램으로 인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내부에서
스스로 열매를 맺기 위한 모든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성령을 소유한 사람의 본래 특성입니다.
사과가 열리게 되는 나무는 사과 나무라고 하듯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그는 거듭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전체 6장을 보면서
우리는 더이상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1500년 이상을 율법아래 있었지만 의로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분은 율법이 해주지 못한 일을 우리에게 해주셨습니다.
1장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반만 알면 안됨
(갈1: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Grace be to you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from our Lord Jesus Christ,
(갈1:4)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Who gave himself for our sins, that he might deliver us from this present evil world,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and our Father: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로 인해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그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뜻의 반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절반은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은
이 악한 현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현재 속해 있는 세상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이 더 이상 악하게 되는 일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가 세상처럼 악해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비극은 우리는 세상이 악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세상이
그들을 의롭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일을 허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자기들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일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길 원하십니다.
2장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
(갈2:19) 내가 율법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
For I through the law am dead to the law, that I might live unto God.
“내가 율법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갈라디아서의 핵심 주제는 율법이 더이상 우리를 붙잡아 둘 수 없다 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관계가 끝이 났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롬7장)
19절의 내용이 가능해 진 것은 20절의 내용때문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19절이 가능해진 것이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4에서 주님께서 우리 죄들로 인해서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19절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
갈1:4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분명히 사망이 있었고,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갈2:20)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세상이 있고 육신이 있고 마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귀의 손에서 건짐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세상에 있고,(갈1) 나는 여전히 육신 안에 있습니다.(갈2)
우리가 여전히 세상과 육신안에 있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로 인해
우리가 더이상 세상과 육신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의로운 삶이 가능해지는 원리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로마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갈라디아에서는 이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순종이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의 의로운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 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성경은 남편들에게 너희 아내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사랑할 만큼의 충분한 믿음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목사를 찾아가서 아내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하소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아내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하면서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께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을 만들어 낼 것을 믿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겠지만 예수님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을때
그분의 믿음이 여러분 안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믿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항상 믿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말씀은 실행가능하다고 항상 믿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다투고 논쟁하는 자세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상태로 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것 처럼 변명하려는 자세를 멈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확신을 합니다.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아내들은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연로한 여인은 젊은 여인들에게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어울릴때 마다
자신이 남편에세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믿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너희 남편을 향한 충분한 사랑이 있고,
너희 관계를 위한 충분한 기쁨이 있고,
너희 괴로운 마음에 필요한 충분한 화평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부드러움과 온유함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정당화 해 주길 원하는 성도들
그러나 오늘날 구원받은 사람들은
설교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보다는 정당화 해주길 원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주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주길 원하지만, 이 땅의 삶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세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은 원하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살아주길 원하면서
나는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알았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러나”라고 토를 달려고 하는 것을 멈추 길 원하십니다.
“당신이 내 상황을 이해 못해서 그래요..”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들어보세요..”
주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의심과 반대의사들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삶에서 자신의 길을 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의 죄값을 지불하는 것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일상의 죄들로 부터 건지시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3장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
(갈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O foolish Galatians, who hath bewitched you, that ye should not obey the truth, before whose eyes Jesus Christ hath been evidently set forth, crucified among you?
“누가 너희를 꾀어”
구원을 받고도 속이는 사람의 영향력 가까이 있다는 것은 나쁜일 입니다.
이들은 마법에 걸린(bewitched)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과 마법에 걸리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보았고 그것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라.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
This only would I learn of you, Received ye the Spirit by the works of the law, or by the hearing of faith?
여러분이 구원을 위해서 여러분의 수고가 더해진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구원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선하십니까?
모두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분께 그 일을 저를 위해서 해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묻히셨고 사흘 뒤에 죽음에서 일으켜 지셨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일로
은혜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하시고 씻어 주실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의 혼을 구원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주님께서 제가 이모든 것을 믿겠다고 고백했고
이 모든 것이 저에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말한 것입니다.
(갈3:3)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
Are ye so foolish? having begun in the Spirit, are ye now made perfect by the flesh?
여러분은 스스로 구원을 얻고 선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는 욕설을 멈출거야! 나는 욕을 그만해야지! 더이상 욕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다 큰 소리로 욕을 해 버립니다.
나는 술을 안마실 거야 나는 술을 더이상 안마실 거야.. 나는 안마실 거야..
그러다 술을 마셔 버립니다.
나는 더이상 미워하지 않을 거야를 반복하다.
미운 마음이 불쑥 솓아납니다.
여러분은 복종하고 싶은 마음 조차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제발 자신의 의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에게 도와 달라고 해주길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 믿음을 두기 전에는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서 의를 성취하실 수 있도록
주님께 믿음을 두기 전에는 절대로 의로운 삶을 살아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 안에
아예 주님께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고 싶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싶어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이 그분께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그분께 복종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가 20살이 넘은 청년에게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면
내가 받아줄 거라고 말하면 그들은 절대로 뛰어내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저를 쉽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살 짜리 꼬마아이에게 뛰어내리라고 하면 그 아이는 뛰어내립니다.
그 아이는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나의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지식은 다른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더 많이 알 수도 있지만 믿음은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분 보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보다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탁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기독교인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계단에서 뛰어내려서
주님의 품에 안기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에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일에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두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 구원의 완전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합니다.
4장 기념일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갈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는 본래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느니라.
Howbeit then, when ye knew not God, ye did service unto them which by nature are no gods.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10절에서
이들이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을 지키는 일을 포기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제를 만들고 기념일을 만들어 잘 지킨다는 것이
여러분이 주님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른 번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서른 번의 부활절을 기념하고 500번의 교회 참석을 했는데,
어느날 여러분은 나의 구원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종교적 형식과 경험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한 일들은
여러분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한 종교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갈4:9)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 당하려 하느냐?
But now, after that ye have known God, or rather are known of God, how turn ye again to the weak and beggarly elements, whereunto ye desire again to be in bondage?
(갈4:10)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Ye observe days, and months, and times, and years.
(갈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헛되이 수고하였을까 너희로 인해 염려하노라.
I am afraid of you, lest I have bestowed upon you labour in vain.
여러분이 성찬식을 하는 종교를 가졌을 수 있고,
침례식을 하는 종교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걱정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여러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순간
그 종교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왔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고백했고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서 구원을 받아놓고
어떻게 다시 옛 종교로 돌아 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의롭게 만드는 일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과 예수님을 비교하면 율법은 부족하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들과 명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율법을 비교하셨을때
하나님은 율법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해 주신 일들과
절기들과 거룩한 날들과 규례들이 해준 일들을 비교하면
후자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파산해서 갈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때 빌게이츠가 와서 우리집에 와서 아들이 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불쌍한 얼굴로 다가와서
순대국 한 그릇 먹게 만원만 달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빌게이츠를 따라가지 않고 그 가난한 사람을 따라가는 일이 생길까요?
아무도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갈라디아서를 기록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는 너희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종교로 돌아가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고, 맑은 정신을 갖게 되고,
깨끗하게 되고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고 예수님과 함께 즐거운 삶을 살다가
몇년이 지나고 나면,
교회에서 사라지고 세상으로 떠나가서 전화도 받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왜 노숙자의 캠프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5장 유대인의 형식으로 돌아가지 마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wherewith Christ hath made us free,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갈5:2) 보라, 나 바울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시리라.
Behold, I Paul say unto you, that if ye be circumcised, Christ shall profit you nothing.
(갈5:3) 내가 할례를 받은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온 율법을 행할 의무를 가진 자니라.
For I testify again to every man that is circumcised, that he is a debtor to do the whole law.
(갈5: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느니라.
Christ is become of no effect unto you, whosoever of you are justified by the law; ye are fallen from grace.
여기서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40가지의 명백한 구절을 놔두고
혼란스러운 한 구절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을 받는 지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종교들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종교들은
여러분의 삶을 의롭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의롭게 되려고 하는 일들은
모두 헛된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유대인의 옷을 입고 유대인의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유대인의 일을 하기 시작하고 유대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고 다니냐고 5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어떻게든 내 형제들이 저주받은 것처럼 저주받아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롬9)
이 말의 의미는 육신적인 출생과 의식들은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면서
왜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으로
여러분을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빵을 떼고 이 잔을 마시며
내가 다시 올때까지 내 죽음을 기억하는 일을 자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느날 유대인을 데려다 유월절을 지키겠다고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갈5:5) 우리가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기다리나니
For we through the Spirit wait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by faith.
이 구절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예수 그리스께 순종하지 못하면서
다른 것들로 의로워지려는 모든 노력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갈5: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And they that are Christ's have crucified the flesh with the affections and lusts.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If we live in the Spirit, let us also walk in the Spirit.
지금 이 말씀은 여러분이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라면 마땅히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우리가 이상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일정을
교회의 예배를 중심으로 잡기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말고 누가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주말 등산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누가 교회로 인해 야구경기를 포기하겠습니까?
누가 교회를 가야하기 때문에 주말 여행을 포기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에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즐겁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일들을 통해 꿈구는 욕망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보다 너의 욕망이 더 크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만가지 율법을 기록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율법들보다 너의 욕망이 더커서 너의 욕망을 잠재울 수 없다.
내가 명령들을 만개를 만들어 줄수도 있지만
그 어느 명령도 너의 욕망보다 크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담배에 애착이 있다면, 그리고 술에 애착이 있다면,
그리고 음란물에 애착이 있다면, 그리고 게으름에 애착이 있다면,
여러분의 육신은 계속에서 그것들을 원하게 됩니다.
지금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도
그들의 마음 속에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죽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의 분출이 죄라는 인식을 이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버릴 수 있어야
여러분이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훨씬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음행의 욕망이 좋지만 그분이 나에게 해주신 일들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음행이나 마약으로 얻는 쾌감 뒤에 오는 후회와 불쾌감 보다
성령님을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유익한 것입니다.
세상도 죄라고 하지 않는 일들을 가지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더 나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뭔가 더 나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6장 지시와 명령을 넘어서 스스로
6장에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녀들을 길러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서 기르면서 부모나이 80이 될때까지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지내고 싶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이 자기 방 하나 치우지 못하는 상태로
키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계속해서 방을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책상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봅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자신의 게으름에 이끌려서
엄마 아빠의 명령을 거부하고 살아가다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이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가르침이 삶에 녹아들게 됩니다.
지시와 명령을 넘어서 스스로 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부모가 더이상 회초리를 들고 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시점이 오는 것입니다.
신앙도 어느 시점에 가면
강대상에서 위협과 협박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 예쁜 여자가 와서 같이 차를 마시자고 한다면,
제 아내를 불쾌하게 만드는 부분은 없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음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명령이 있고,
성경에는 자신의 아내에게 신실하라고 말씀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예쁜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다면,
다른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명령이 저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면서 까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고,
지금도 여러분에 대한 사랑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그분을 향한 사랑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명령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의롭고 사랑스러운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제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면,
성경에 음행에 관한 명령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는 다른 여자와 차를 마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명령들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잔소리가 없더라고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해 낼 수 있는 상태가 되릴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을 감지하는 시점 스스로 하는 시점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어느날 집에 왔더니 여러분의 자녀가 자기 방을 깨끗하게 치워 놓았다면,
여러분은 자녀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더 많은 것을 해 내기를 원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더 많은 기도제목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장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올바른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갈6: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But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이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는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같이 못박혔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그 죄들을 다시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에게 사람들의 고문이 가해졌고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졌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유쾌한 일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내가 나를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해주시는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으로 내가 더이상 과거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게 해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혼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한 번 보았고,
매 순간 나의 삶에서 내가 죄들로부터 구원을 받게 해 주시는
예수님을 또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건져주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건져주시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는 일들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갈라디아서 매 장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