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7 고등부 설교 '몸도 텐텐, 믿음도 텐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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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1장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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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계시를 통해 이것을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를 믿게 된다.
이를 통해서 믿음의 삶을 산다.
설교포인트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 말씀을 듣고 아는 우리가 되자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이끈다. 감사의 행동이 우리 삶에 있기를!
0. 서론; 몸성장 의약품; 텐텐
0. 서론; 몸성장 의약품; 텐텐
우리 어린 시절 이 제품을 안먹어본 친구는 없을 겁니다. ‘텐텐’은 어린이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가있다고 하죠. 어머니께서 늘 하루에 하나만 먹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늘 5개 심지어 10개도 먹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텐텐은 우리의 몸을 자라나게 합니다. 물론 텐텐을 먹어야만 자라는 것이 아니지만, 도움을 주죠.
지난 시간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시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선물인, 믿음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믿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라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이 텐텐처럼 우리의 믿음에도 성장을 위해 도움을 주는 도움을 주다못해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1.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심.
1.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심.
1) 믿음은 말씀을 통해 생겨난다.
1) 믿음은 말씀을 통해 생겨난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음이라고 표현했는데, 말씀이죠. 복음에는 의가 하늘 아버지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늘 아버지의 의’란 무엇인가? 의롭게 지은 자들을 의롭게 여기시는 의, 죄인된 상태로 두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당신의 계획을 분명히 성공시키시는 실패하지 않으시는 의입니다.
복음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가장 복된 소식; 바로 이땅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그 소식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땅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가 왜 오게 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성경 66권 전체가 예수님의 이야기이며, 예수님 그 자체이시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도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우리의 믿음은 로마서 10장의 복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듣게 되면, 우리의 머리로 들어와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을 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믿는다 라고 고백하죠.
그렇기에 믿음은 우리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는다. ‘무조건 믿어’, ‘잔말 말고 믿어’ 라는 식의 말은 믿음의 절대성을 부여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믿음은 복음과 상관없다’, ‘예수님과도 상관없다’는 말과 같다.
어떻게 믿음이 생겨나나요? 라는 답에는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나요? 라는 질문에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를 통해서 주신다.
복음을 통해서 나의 죄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고,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참함이 나에게 몰려오고, 그래서 이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그분을 의지하게 된다.
우리주님은 우리의 이성과 마음에 찾아오셔서 무지한 우리를 일깨우신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능력이 무한하신 주님께서는 참으로 인격적이시다!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한 인격체로, 자녀로 대하신다.
자녀의 무지에 대해 부모님께서 따뜻한 마음으로 가르쳐주시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따뜻하게 가르치신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내려서 복음을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길 소원한다.
복음에 나타난 하늘 아버지의 의는, 태초부터 우리를 아버지의 형상, 아버지를 닮은 자녀로 지으셨던 그 사건 이전에 이미 우리를 아버지의 자녀로 삼고자 정하신 그 때부터 시작한다.
부족함이 없으신 분께서, 외로움이 없으신 분께서 우리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고자 우리를 지으셨다. 그것은 우리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이미 기쁨이 무한하신 분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통해 기쁨을 누리시고자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무한한 존재의 기쁨이 되는 존재인것이다. 아주 작은 우리가 아주 큰 존재인 것이다. 그런 놀라운 정체성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를 걷어차버리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떠나버렸다. 죄를 지어서 나는 아버지 없이도 잘 살수있어요. 나는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어요. 당신같은 사람 필요없어요. 라고 말하며 떠나버린 것이다.
자녀의 무지함은 얼마나 큰가 그러나 부모님은 그런 자식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기를 욕하고 떠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런 자녀를 용서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보여주시는 사랑은 정말 놀랍다.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을 계획하셨다. 하늘 아버지를 떠난 죄의 크기는 놀랍도록 커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사망이라는 절망스러운 크기였기에 사람이 사망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늘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상황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죄의 값 사망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죽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으로서 다시 살아나셨다.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더이상 죄가 건들일 수 없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회복시켜주셨다. 원래 자녀였지만, 잊고 있었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다. 마치 떠난 둘째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팔을 벌려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이 복음의 말씀이 잘 담겨 있는 로마서5:8에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놀라운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은혜를,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주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혼자 읽고 묵상하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말씀을 풀어 해석하고 묵상하는 자리인 예배 설교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 예배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집에서도 믿을 수 있지 않나요? 저는 교회 안나와도 예수님 믿어요. 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은 생겨날 수 없으며,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난다. 학교에서 말씀을 들으며 주일 말씀을 어렴풋이 듣고, 큐티를 하면서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중의 신앙생활은 주일을 기초로 한 뒤에 쌓아진다. 그런데 기초가 없이 그런 것들을 쌓게 되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 주일 예배없는 사람이 주중 말씀 나눔, 큐티, 기도회와 같은 그런 활동들을 마음을 다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일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허락하시기 또 성장시키신다. 그러므로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예배시간은 우리 삶에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진정 소중한가를 알게 되는 시간이다.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시간을 통해 다시금 회복시키고, 각성시킨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 그래서 매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기에 매일 말씀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주일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주일 예배는 사막에서 발견하는 오이시스이며, 주릴 때에 먹는 밥 한그릇과 같다. 우리에게 식사로 채우지 못한 영양분을 채우는 텐텐과 같다. 맛은 좋지만 몸에는 영양가가 없는 불량식품같은 게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자라나게 하는 양식이다.
물고기 두마리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그 이후에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표현하시며, ‘나’를 먹을 때 생명을 얻게 된다 말씀하셨다. ‘나’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 그자체이신 말씀 말씀을 받아 먹을 때 오천명을 먹였던 것보다 더큰 생명, 죽지 않는 생명이 허락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무한한 생명이신 예수님, 그 분의 말씀을 먹어서 영생을 얻게되는, 우리 새음 고등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2. 믿음과 행위의 관계
2. 믿음과 행위의 관계
1) 의인은 말씀을 통해 자라난다. 자연스러운 관계
1) 의인은 말씀을 통해 자라난다. 자연스러운 관계
생명을 얻게 된 자들, 말씀을 들음으로 거듭나고 믿음을 얻게 되서 의롭게 된 자들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간다. 그 정체성이 회복되었기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간다. 이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께서 계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시기에 그분께서 지켜주심을 믿으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간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말씀과 함께 하는 것,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생겨난 믿음은, 이후에도 말씀과 함께 살며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 믿음이 자라난다. 말씀과 믿음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땔래야 땔 수 없는 그런 관계이다. 믿음이 주어지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이고, 믿음으로 살아가고 순종할 수 있는 힘도 말씀을 통해서이다. 말씀을 들으므로 주어지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양식을 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듯, 우리의 믿음도 말씀이라는 양분을 받아 먹어서 자라난다.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동의를 주고, 그 동의는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행동하게 한다. 그렇기에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이다. 믿음이 자라면 자랄 수록, 행동도 달라진다.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행동이 달라지고, 보다더 성숙해지듯이 우리의 믿음도 인격적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자라나면서 어린 시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달라지고 성숙해진다.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옆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예배에 대한 사랑이 샘솟고, 교회에 대한 마음도 생겨나고, 이 나라의 죄악들에 대한 슬픈 마음,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성장에 문제가 생겨서 이미 말씀은 많이 들어서 잘 아는데 그래서 그에 맞게 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어딘가 정체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마치 결함이 생겨서 몸은 커졌는데, 팔다리가 자라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머리는 커졌지만, 믿음은 자라지 못해서 마치 가분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들음이 많아서 믿음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저 머리만 커지고 몸과 마음은 크지 않아서 어린아이과 같은 마음, 자기의 것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가 있으리라 선포하셨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성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단순히 문제다 라고 끝낼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은 무너질 것이다.
유튜브가 나의 관심사를 너무나 잘 알아서 영상만 누르면 처음 광고로 어려운 친구들 후원영상을 틀어준다. 월드비전, 초록우산, 국경없는 의사회 등등 거기에 아픈 아이들이 참 많다. 그런 아이들 중에 나이는 많이 자랐는데, 정신이 자라지 못한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정신이 잘 자라지 못해도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 몸이 제때 잘 자라지 못하면 어떨까?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의 모습이 그러지 않는가? 신앙 생활은 오래해서 아는건 많은데,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 여전히 죄를 사랑하는 마음, 죄를 고치지 못한 마음, 또는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해서 성장하지 못하도 마치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마냥 그렇게 있지는 않는가?
그것은 우리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무시하고 아프게 하는 일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서 회개하고 이제라도 잘 성장할 수 있기를 힘썼으면 좋겠다.
호세아의 고백처럼 우리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여호와 하늘 아버지를 알아가자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말씀을 잘 먹고, 잘 먹으면 잘 자란다. 잘 먹는 것은 무비판적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믿음은 우리의 이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저 말씀은 왜 그런 것인가?를 고민하며 먹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비판이 되어서는 안된다. 저 말씀은 이상하다 가 아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특별한 음성은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 말씀을 받기에 내 마음에 부딪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피고, 그 말씀에 내가 복종하기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행해보는 것 이것이 잘먹는 것이다.
말씀이 이해가 안될때에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반 선생님들이 계시는 것이고, 제가 있는 것이다. 저는 거의 웬만하면 점심시간 새음홀에 있다. 늘 묻지 않는가? ‘커피 한잔할래?’ 이때 기회가 되면 물어보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답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어보라. 저는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위해 있는 사람이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준비해서 답해주도록 하겠다.
2) 그러나 행동이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2) 그러나 행동이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잘 먹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우리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간혹 헤깔리는 것은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다.
오직 우리의 행동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 하늘 아버지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 감사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들어서 알고, 그 은혜에 마음으로 감사하며, 그 감사가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진정 의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자의 행동이다.
간혹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혼동이 와서 내가 이만큼하니까 이렇게 해주시겠지, 이정도했으면 하늘아버지께서도 이해하시겠지, 좋아하시겠지 그런 마음이 들때가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행동은 오직 ‘감사’의 표현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어떤 다른 종교의 행위처럼 108배를 하거나, 무릎을 꿇고 계단을 오르거나, 성물에 입을 맞추거나 하는 식으로 은혜를 받을 수 있다거나 믿음이 생긴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우리의 죄악된 습성이 그런 행동과 잘 맞는다.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아니면 어떤 규율을 만들어둬서 우리가 그것을 달성했을 때 성취감을 얻는 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단순원리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과거 로마카톨릭이 말씀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행했던 방식이다. 돈을 얼마만큼 내면 죄를 용서받는다, 성상을 만들거나 성물을 만지면 은혜를 받는다, 금식을 몇번이상하면, 무릎꿇고 기도를 하면,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면 보다더 믿음이 좋아진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속였던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1517년 루터를 비롯한 칼빈, 츠빙글리, 부써 등과 같은 종교개혁자분들이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그 당시 너무나 값비쌌던 성경을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배급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들으므로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통해 알려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한 감사로 우리의 행동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반대가 되어서 이런 행동을 했으니 복주시겠지, 이렇게 했으니 아시겠지 라는 식의 행동은 우리가 다시 믿음의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종교개혁시대, 자유의 시대를 포기하고 종교개악시대와 복종 억압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런 미신과 같은 행동은 없는지 돌아봐야 하겠다. 점검하며 다시 말씀으로 돌이키는 우리가 되자. 말씀을 들으므로 성장해서 믿음의 행하는 우리가 되자.
3) ‘온전히 맡긴다’의 주의 사항
3) ‘온전히 맡긴다’의 주의 사항
우리가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일을 다 아버지께 맡기며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행동할 지혜와 힘을 주셨는데, 그것을 다 무시하고 그저 해주시기를 방관하며 기도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시험을 치는데 공부도 안해놓구선 아버지 시험 백점맞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는 물떠놓고 비나이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에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셨다. 시간을 주셨고 공부할 수 있는 책과 필기구를 주셨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머리를 식힐 수 있게 용돈도 허락해주셨다. 공부할 수 있는 열린 책방과 같은 공간을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 지혜를 주세요. 아버지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공부합니다. 이 공부를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세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 마음에는 분명 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버지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고 이런 평안한 상황을 주셔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감사하다 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 내가 했고, 아버지께서는 그냥 옆에서 숟가락만 얹으셨어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의 모든 상황과 여건을 허락하셨음을 믿으며 감사해야 하겠다.
또한 우리가 모든 것을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는가 하며 원망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기억하자. 그분은 선하신 분이다. 우리의 기도에 YES 로 응답하실 때나, NO, WAIT으로 응답하실 때에도 우리 아버지는 선하시다.
모든 상황을 아시고 이미 이 땅을 짓기 이전에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정하신 것처럼, 그리고 이미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땅을 다스릴 것을 아시는 것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보시며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분을 믿으며 우리의 눈에는 정말 이해가 안되고, 심지어 이땅의 악한 상황들 전쟁과 고통, 살인 등과 같은 사람의 죄악으로 일어나는 악한 일들을 보며 어떻게 저러실 수 있는가? 하며 원망하고 이해가 안되라고 말하기 보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신 분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
우리의 눈에는 악하고 안좋은 일, 원망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그 일을 역전시키고 선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실 수 있는 분이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하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3. 정리 및 결론
3. 정리 및 결론
말씀을 정리하자.
믿음은 예수님의 복음; 생명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난다. 이 말씀을 들어서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과 기쁨을 주는 구원을 받게 되길 소원한다.
또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라난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영적인 각성을 얻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말씀을 들어서 잘 자라나 우리의 삶 속에서 거듭난 자로서의 의로운 자로서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믿음의 행동이 나타나길 바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말씀을 통해 믿음을 얻고,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말씀을 먹어 믿음으로 살아간다. 몸도 텐텐, 믿음도 텐텐 말씀을 통해 자라가는 우리가 되자. 어디까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의 분량까지! 그런 우리의 삶에 주님의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가득해서 그분의 향기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길 그래서 오직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증거되길 기도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우리의 고백
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라가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2. 믿음이 자라서 아버지의 자녀로 행동하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
아버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아버지의 자녀로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삶
믿음은 어떻게 자라나나요(롬10:31)?
말씀을 통해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으시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이 믿기 어려운가요?
내 행동을 통해서 죄책감을 없애려 하거나, 축복을 얻고자 했던 적이 있나요?
내 삶속에서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 해야할 행동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