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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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말라기 첫 5구절을 봤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땅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언제 사랑하셨습니까?’ 이에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사랑했다’ 하시면서 에서와 야곱의 역사로 증언하셨지요? 하나님의 주권으로 야곱의 후손으로서 택함을 받은 것, 그 언약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우리는 주권자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구할 것은 은혜 밖에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주권적인 은혜로 사랑이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계속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시는데요. 그 첫부분으로서 오늘 본문은 제사장들의 행태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앞으로 거의 두 주간은 이 제사장들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들의 문제를 이렇게 길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곧 예배에 문제가 상당했다는 말인 것이죠.
6절. 제일 먼저 제사장들의 마음의 자세를 지적하십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누구입니까? 당시 백성들은 함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뽑으셔서 백성들 대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특별한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직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거룩한 마음과 거룩한 삶이 요구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 앞에서.
그래서 이 제사장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했어야 했습니까? (1)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2) 종이 주인을 두려워 하는 것처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그렇게 예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시는 겁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마음 없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내 이름을 멸시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존재를 소홀히 여기고, 중히 여기지 않고,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은 오히려 멸시하는 것/despise라고 하십니다. 경멸하고 얕보는 것입니다. 멸시는 그 대상에 대하여 욕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를 무시하는 자체도 멸시입니다.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욕을 당하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되묻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멸시하지 않았다, 할 일 했으니!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종교적 의무를 다했으니 난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근데 주님은 뭐라 하십니까? 근데 그게 할 일 한거냐? 수박 껍데기는 있는데 시원한 알맹이는 없다! 마음이 없다! 그것은 예배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멸시했다! 무서운 말씀을 하신 겁니다.
7-9절. 마음 자세에서 비롯된 제물의 문제도 지적하십니다. 당연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예배의 행위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제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까?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빵/떡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protocol/방식을 분명 말씀하셨고, 동물제사도 흠이 없이 잘 자란 동물의 제사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친 제사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제사장들이 바친 제물의 질이 어떻습니까? 더러운 빵을 바쳤고, 눈멀고 온전치 못한 동물을 바쳤다고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받으시려는 방법이 아닌 정반대로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십니다. 그 예배 받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되묻는 질문이 가관입니다.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뭐라 하십니까? 7절 나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8절 페르시아왕이 임명한 너희 총독도 이런거는 받지 않을거다 일침을 날리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잘 구어진 빵과 흠없이 잘 기른 동물도 분명 있었을텐데, 그 빵과 동물은 그럼 어디로 갔을까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제사장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부과 명예와 권력을 키우며 자신들 배불리우는 일에 쓰지 않았을까요? 제사장과 성전이 부자가 된 신약시대의 상황을 여기서 미리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못보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제물을 바치는지 다 보셨습니다. 그저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다 예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9절 으례 늘 하던 것을 했다고 해서 다 예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마땅한 존경과 경외 없는 예배, 세상 권력자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함부로 예배하는 그 작태, 결코 좋게 보실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마음의 정성이 없는데 은혜 베풀어 달라고 하면 은혜 주시겠는가?
마지막 10절. 하나님은 제사를 받지 않겠다 하십니다. 성전 자체도 아예 셧다운 시키고 제사 못하게 하는게 더 낫다! 이것은 거의 관계 단절에 가까운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사 1: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사 1: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암5: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지난주에 선지자의 경고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혈압이 올라가신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지 않고, 예배 받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사랑했다’에 대한 합당한 반응 -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언제 사랑했느냐고 한다.
히10:8-14
그리스도의 제사
하나님께서 받으신.
적용:
지난주 주권, 언약, 은혜에 이어서.
은혜 입은 자들의 자세!
정말로 그 은혜를 아는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갑니까?
산 제사로 매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 하나님이 좋게 보시겠습니까?
이제는 제사장 제도가 없어졌습니다. 제사장 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라는 예배장소의 커텐이 찢어지면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JX의 피가 적셔진 믿음의 성도들은 모두가 제사장으로서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제사장 역할을 한 이스라엘
우리도 교회로서 세상을 섬기는 제사장 역할
예배하는 자들
으레 하는 일은 무엇인가?
으레 하는 일, 원래 하는 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빠짐없이 계속 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떨까?
몸에 밴 자세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일상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속이는 질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경외하라고 외칠 수 있는가?
구원받지 못했는데, 어찌 구원받으라고 선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예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찌 예수 믿으라고 할 수 있는가?
예수처럼 살지 않는데, 예수 믿으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습니까?
멸시 받은 자로부터 오는 mercy가 필요한 사람들! JX의 자비!
창세기 보시기 좋았더라.
만물들이 예배. 아담과 하와가 제사장 역할을 해야 했다.
보시기 좋게 하기 위하여 예수가 오셨다.
맺는말:
설교후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