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삶으로 피어나는 꽃(행1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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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예배의 홍수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회와 플랫폼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유명한 명설교나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홍수 속 가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물은 많은데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겁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목마름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만족시킬만 한 예배를 찾아다니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는 것을 봅니다.
본문 속에는 한 예배가 소개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한 여인을 자유케했으나 이 선한 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예배를 드립니다. 바울과 실라가 드린 예배를 살펴보며 예배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Q. 우리는 언제 예배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다양한 예배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성경 속 예배는 감사한 일이나 복을 받았을 때, 예배를 드릴 만 한 상황일 때 드려지는가 하면 본문 속 바울과 실라처럼 예배를 드릴만 한 상황이 아닐 때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어디에서, 언제 예배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산과 예루살렘이 아닌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또 아버지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그토록 찾는 생수가, 그 예배의 대상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장소와 형식이나 어떠한 상황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녀는 이 말씀을 들은 뒤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내려놓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통해 살펴보는 예배의 처소는 성전이나 궁궐이 되기도 하고 광야나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상황 또한 다양합니다. 간절히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것과 같은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상황 속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배합니다. 본문 속 바울과 실라가 드렸던 예배도 그렇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옷이 벗겨져 수치를 당할 때에, 매를 많이 맞았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억울해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 예배합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만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유익을 얻을 때에만 예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원인들 중 하나는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중심이 우리에게 있으면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를 올려드리는 개념에서 나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거나 또는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를 받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얼마를, 어떤 능력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예배를 통하여 어떤 유익을 얻었는가, 오늘 예배 속에서 설교, 찬양, 기도를 통해 내가 은혜를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로 예배를 드렸는가 드리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예배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감정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순간들을 제사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예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예배처소는 회당이나 성전이 아닌 좁은 감옥이었으며 정갈하고 거룩한 옷이 아닌 찢어지고 반쯤 벗겨진 천을 걸친 채였습니다. 예배자들의 몸은 깨끗한 몸이 아닌 상처 투성이의 몸이었습니다. 예배자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감옥이라는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명의 예배자가 드린 예배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예배드릴 만 한 상황에서 드린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높이고 뜻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거룩한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이러한 아름다운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가난과 부함, 낮음과 높음, 슬픔과 기쁨, 있고 없음이나 우리의 상황과 감정을 따져서 우리의 생각에 예배드릴 만 한 때에만 예배한다면 이는 세상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거룩한 예배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럴만 하지 않을 때에도 산 제물로 우리를 드려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 모든 상황 속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거룩하고 순전한 예배자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배를 드릴 만 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니 우리는 당연히 예배해야 한다는 정답은 있지만 그 답이 고난 가운데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성경 가운데 가장 억울한 사람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일과 영광을 위해 살았지만, 돌아온 것은 고난과 배신과 처참한 죽음이셨던 분.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기자는 예수님께서 고난 속에서 인내하심은 물론 기뻐하셨다고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힙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 속에 바울과 실라가 고난 중에도 예배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며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새롭게 하여 상황과 환경을 너머 그 앞에 있는 기쁨과 소망을 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Q. 우리는 왜 예배하는가?

제가 생각하는 예배의 아름다움 중 하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한다. 절망 중에 소망을 본다. 죄 가운데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예배의 아름다움이자 예배의 능력이며 우리가 예배를 통해 얻는 힘과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고난 중에도, 실패한 듯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예배했습니다. 작은 소리가 아니라 그곳의 죄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예배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예수님과 같이 내 상황이 지금 환난 가운데 있고 지금 실패한 듯 보여도 그 앞에 있을 기쁨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러한 믿음으로 고난 가운데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 믿음을 세 가지 측면으로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믿음은 이 상황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바다 밑으로 길을 내시는 분, 산을 들어 옮기시는 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든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 문제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과 상황들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예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창조주이시고 놀랍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증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선하시며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위대하고 놀라우신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신실하고 선하시며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믿음을 통해 우리는 절망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 힘과 능력을 그리고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당장은 비극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 부분에는 분명 실수가 없으실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예배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저와 여러분의 예배에도 이 믿음이 있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가 상황과 환경을 너머 기쁨으로 예배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고백이 아니면 우리는 삶이라는 폭풍을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작은 흔들림에도 요동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닻을 내려 드리는 예배만이 폭풍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정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할 때, 상황이 아닌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바울과 실라가 드렸던 것과 같이 아름답고 순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소망하기는 동서울광염교회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의 이유가 하나님 한 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예배,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예배, 신실하시고 선하시며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변하게 됩니다. 예배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삶 속에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는 여지없이 선한 일들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바라봅니다.

Q. 우리는 어떻게 예배하는가?

이번에는 바울과 실라가 고난이라는 삶의 폭풍 속 맞서 들었던 예배의 무기는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이들은 기도와 찬송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무엇을 기도하고 찬송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저였다면 하나님, 이 곳에서 꺼내어 주십시오.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해 주십시오와 같은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예배는 단순하게 감옥에서 풀려우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옥문이 열렸을 때에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신나게 나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 옥문을 열어주었음에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자결하려는 간수를 살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경 속 환난 가운데 예배했던 장면들이나 믿음의 고백들을 찾아보면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예배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좋습니다.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입니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바울과 실라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 가운데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높여드리는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와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내용들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바울과 실라에게 그들이 갇힌 감옥은 고통의 자리, 억울함의 자리, 고난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예배를 바라보며 저의 예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을까?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구하며 예배의 처소로 삼는가 아니면 완벽한 예배의 처소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의 경우 보통 예배를 통하여 상황이나 환경이 새롭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 상황은 예배를 드리기 합당하지 않으니 상황을 바꾸어 주십시오. 주님 이렇게 일이 진행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것들을 얻게 해 주십시오. 이런 내용들로 가득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스스로 기도와 찬양을 돌아보고 예배를 대하는 저의 마음을 다잡아보게 되었습니다.
수련회나 사경회에서 뜨겁게 예배하고 나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보였던 경험 있으십니까? 이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뀔 것만 같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와 찬양을 듣고 역사해주셨을 것만 같습니다. 수년 전 한창 뜨거운 기도회 때에 옆에 있던 지체가 갑자기 자리를 비웠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옆자리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자 그 지체가 큰 시험에 빠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그 지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믿음으로 나의 시력이 좋아지길 기도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렌즈를 빼고 왔다. 그런데 내 눈이 그대로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렸다면 삶 속에 다시 돌아갔을 때,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의 상황과 환경을 보고는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이루어주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너무나도 쉬운 일 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일이나 기적이 아닌 하나님 자체이십니다. 그렇기에 나의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여전히 고난 중일지라도 기쁨과 소망으로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아무것도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속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얼마나 큰지 곡식들이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고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실라의 예배 속에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시험에 빠졌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했던 것은 옥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백 또한 이렇게 되어야 마땅한 줄로 믿습니다.
주님, 저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면 좀 더 못 가져도 좀 더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제 눈이 좀 더 잘 보이거나 불편함이 사라진다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괜찮습니다. 여전히 제 삶은 고난 중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품에 품어주셔서 폭풍 가운데 저의 영혼이 잠잠하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저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이 고백을 교회로 돌려봅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또 좀 더 많은 재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성가대와 또 큰 주차장이나 건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을 누리고 선포하고 높여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와 항상 함께해주세요. 우리 교회가 요동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우리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아멘.
모든 순간들이 이러한 고백으로 아름다운 예배의 순간들이 되는 귀한 역사가 우리의 삶과 또 교회 가운데에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고백을 통해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운 예배의 순간들이 되는 귀한 역사가 우리의 삶과 또 교회 가운데에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신앙은 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들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또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삶으로 예배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로 꽃피운 삶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이후에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고 죄인들이 자유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간수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구원을 선포하는 일. 사람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배라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면 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을 소망하며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우리에게도 믿음과 은혜를 주셔서 모든 상황들 속에서도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순전한 예배자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고난 중에도 또 축복 중에도 예배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바라보셨던 상황 너머의 기쁨을 우리도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배하는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기도와 찬송으로 드리는 예배의 목적이 나의 만족과 유익이 아닌 하나님께로 고정되길 소망합니다. 감옥을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만들었던 바울과 실라의 예배가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찬양의 고백이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되어 우리의 삶이 주를 향한 아름다운 예배로 꽃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아름다운 꽃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줄로 압니다. 성경을 통해 예배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자유케 되는 역사와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 저희의 삶을 통해, 저희 교회를 통해 이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하며 걷는 걸음과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갇힌 자가 자유케되며 병든 자가 치유되며 눈먼 자가 눈을 뜨는 일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구원이 선포되고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귀한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저녁 이후의 우리 모든 삶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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