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① - 정체성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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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들어가며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참 잘 오셨습니다.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날씨가 덥고, 장마도 시작을 했었습니다. 이제 7월, 본격적인 여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뜨거운 만큼 우리의 모습도 청년의 때에 걸맞게 열정을 갖고 뜨겁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곘는데요. 이번 한 달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회복”입니다. 회복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나아갈 떄, 우리가 그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에 들어가기 앞서, 여러분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회복이 되었으면 하나요? 어떤 분들은 꿈을 향해 다시금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겠고, 또 어떤 분들은 일상에서 무너진 루틴에 대해서 회복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겠고, 여러 가지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우리가 첫 번째로 어떤 회복에 대해서 나눌 것이냐 하면, 정체성에 대한 회복입니다. 청년부 예배를 드릴 때 종종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몇 번 말씀 드렸었는데, 우리가 오늘은 이 정체성에 대한 회복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면 생각을 해보았을 때 정체성, 우리의 정체성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부모님의 자녀, 학생, 일하는 사람,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 중에 우리가 나눌 것, 회복을 향해 나눌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정체성을 잊어버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무기력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회에는 열심히 나오면서 내 삶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다, 기쁨과 감격,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데 있어서 그 정체성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본론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이 당시, 초대교회 때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핍박이 있었으며,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고, 또 그 가운데서 수 많은 유혹이 있었는지,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쓴 것이 바로 베드로전서입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해 베드로는 우리가 계속해서 나누었던 것처럼 정체성에 대해 본문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1. 정체성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합니다. 어떤 것들이 있나요? 선택하신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는 것이죠.
먼저는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통치 아래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다시금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셨죠. 그 이후에도 하나님은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이끄셨고, 예수님을 보내어 구원해 주셨으며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시어 끊임없이 이끄셨습니다.
다음으로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왕의 제사장이라 말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져 있을 때 제사를 통해서 그 관계를 회복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여금 더 이상 제사는 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제사를 드리지는 않지만, 이제는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어 주님을 예배하는 제사장, 다른 말로는 예배자가 되었죠.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 중 하나였습니다.
또 다음으로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거룩한 나라라고 말하고, 그 나라에 사는 백성이라 말합니다. 계속해서 보고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분별된 모습이 요구되어졌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들과 같이 부정하고, 욕심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맞는, 요구 되어지는 것에 따라 살아가게 되죠. 다른 나라들과 다른 하나님의 기준과 법에 맞게 그들은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보았을 때, 베드로는 흔들리고 어려움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다. 왕의 제사장이다. 거룩한 나라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정체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11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나그네가 어떠한 사람입니까?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바로 나그네입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는 잠깐 있다가 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큰 미련을 두며 사는 사람이 아닌,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2. 삶의 적용
여기까지 보았을 때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이 정체성들, 여러분의 삶에서는 얼마나 적용되어지고 있습니까? 머리로 아는 정체성이 아닌 정말 나의 삶에서 그 정체성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씩 볼까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 여러분, 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를 택하셨고, 자녀 삼아주셨고, 그러한 우리를 이끄시는데 그러한 하나님을 믿으며 나의 정체성을 알고 살아가고 있나요? 말씀을 처음 시작할 때 잠깐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모르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참 많습니다. 그럼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교회는 나오지만 무기력함이 가득합니다. 슬픔이 가득합니다. 왜요? 내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요. 영화 속에 나오는 비련의 주인공이 나와 같거든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 삶은 왜 이럴까?’ 절망과 한탄만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그 삶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무기력함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왕의 제사장인데, 이것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오늘날로는 예배자라고 할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예배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는 지금 이 시간, 주일에 예배 드리는 이 자리만 예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예배자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예배와 예배자는 이 자리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도 우리의 삶이 예배이며, 그 자리에 있는 내가 그곳에서도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어떻습니까? 예배의 자리에는 있지만 자리만 지킬 뿐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배가 끝이 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것을 예배합니다. ‘돈이 최고다.’, ‘사람이 최고다.’, ‘다른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최고다.’ 그것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에 나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과도 이어집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냥 지구에 있는 한국인가요? 내가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크게 와닿지 않고, 크게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대부분이죠. 여러분, 다 다른 나라에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법이 있고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따라 살고 있나요? 우리는 그것에 맞게 분별되고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나요? 이 또한 안타깝게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내가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로, 혹은 등한시 하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왜 이렇게 나타나겠습니까? 나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습이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애써 모른 척 하며 부정하는 모습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모습에서요.
여러분, 이번 한 주를 보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사셨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이끄심을 경험하셨습니까? 말도 안 되는 슬픔이 기쁨이 되고, 무기력함 속에서 활기찬 모습이 있으셨습니까? 왜 경험하지 못했을까요? 한 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방금 말씀 드린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내 모습 속에 있었는지요. 그 정체성이 없는데 방금 말한 은혜들을 경험한다?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이번 한 주를 보내면서 참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통의 경우에 아침에 일어나면 굉장히 피곤하고 의욕이 없도 없고 예민한데, 그날따라 희한하게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자.” 이걸 계속 되뇌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오는데 왜 이렇게 도로에는 이상한 차들이 많은지, 원래라면 굉장히 짜증이 날텐데 모든 것이 너그러워집니다. 왜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포용하게 되고, 기다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일상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으로 하여금 활기차니까 인사도 밝게 하고, 저 사람이 어떻건 밝게 대합니다. 내 정체성을 알고 그렇게 살고자 하니 그 모습 속에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지, 너무나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확 그랬는지, 저녁에 두통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3. 내가 해야 할 것&결단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고,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10절을 다시 한 번 볼까요?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았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어떠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는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살아가도 큰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잖아요.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지옥에 가는 게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나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는 무서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잖아요.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 거잖아요.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며, 나의 삶을 이끄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나그네와 같은 자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년데 왜 이 세상에 그렇게 얽매여서 살아가나요? 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학교 때문에, 사람 때문에, 뭐 때문에 왜 이렇게 걱정, 근심을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냐는 거에요. 물론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을 보면 좌절하고 무너질 것 같죠. 그걸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가 세상의 것은 잘만 바라보는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바라보지 못하냐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대한 소망은 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나요? 방금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를 징계하시기 위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잖아요. 분명하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하늘의 약속을 하셨는데, 그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이 세상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도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데 왜 땅의 것만을 보며 전전긍긍 앓고 살아가는지,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정체성을 회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은 11절 말씀처럼 육신이 원하는 악한 일들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곧 그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정욕들, 재물, 명예, 성, 음주, 이 외에 모든 것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신실한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고 고백하고, 누렸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살아갈 때 정체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은혜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2절 말씀과 같이 주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어리석고 답답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불이익도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를 향해 착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그 모습을 통하여 믿지 않는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라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빛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빛을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본다는 것이죠.

정리

이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한 주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매일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는 여러 상황과 환경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으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알고 그렇게 결단하며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분명한 이끄심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깨닫게 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꿈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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