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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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선지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다들 시험기간이었을텐데, 다들 시험 잘 보셨나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아마 시험의 결과는 좋을수도, 반대로 오히려 안좋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는 이제 새로운 말씀인 예레미야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나누기 전에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요, 예레미야는 선지서에 속해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내용들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언제이고, 어떤 말씀을 예언했냐면, 이스라엘 나라가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시기, 즉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있던 시기,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담겨있어요.
그 예언의 말씀은 크게 어떤 것이었냐, 바로 남유다 국가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어디서했느냐, 바로 본인이 멸망할 것이라고 한 남유다에서 외치고 다녔다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 예레미야를 향한 시선이 어땠겠어요? 당장 우리나라로 생각해보자구요. 여러분들이 길을 걸어가는데, 저기 멀리서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 곧 멸망할거야! 라고 하는 셈인 것이죠. 여러분들의 기분은 어떠실 것 같으신가요?
아주 기분이 좋지 않을거에요. 그러면서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고 하겠죠.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저주나 하고 다니냐고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 뿐인데, 남유다 내에서는 이미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선포는 오늘의 말씀에도 이어집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바로 예레미야에 대항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냐라는 인물이었죠.
이 하나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오늘 말씀 첫부분에서 그의 일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요, 어떤 말씀을 전하고 있죠?
예레미야 28:2–4 NKRV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니라
네 맞아요. 하나냐가 전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실 것이고, 빼앗겼던 모든 성전의 기구들이 돌아올 것이고, 포로들도 결국에는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어요.
어떤가요? 정말 좋은 말씀이죠.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말을 들은 다른 신하들도 매우 좋아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예레미야가 나타나서 또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거에요. 뭐라고 하느냐, ‘그래 하나냐 선지자의 말대로 정말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옛날부터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선포했다. 만약 너가 평화에 대해서 말하려거든 너의 그 말이 인정되어야만 너가 진짜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거야’
이 말을 들은 하나냐.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뭐에요? 하나냐의 선지자로서의 자격부터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느꼈을 수 있겠죠. 그래서 하나냐는 예레미야와 모든 백성들 앞에서 한가지 퍼포먼스를 합니다.
바로 예레미야가 차고 있던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린 것이죠.
사실 예레미야는 이전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멍에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목에 예레미야의 목에 멍에를 걸도록 하셔서, 예레미야를 통해 지금의 상황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여러분들이 지금의 저와 같이 바벨론의 종이 될 것입니다! 라는 뜻으로 소의 멍에를 자신의 목에 걸고 다녔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냐가 그 목에 걸린 멍에를 완력으로 꺾어버린거에요. 그리고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처럼 꺾어버리실 것이다! 라고 외치죠.
그리고 예레미야는 더 싸우지 않고 자신의 갈길로 향합니다.
자 그러면 하나냐의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겠죠.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냐,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해라. 너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지만, 하나님께서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드셨다. 이제 이 쇠 멍에를 모든 나라의 목에 걸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도록 할 것이다라고.
그리고 예레미야는 하나냐에게 가서 이 말을 다 전하고 자신도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않으셨는데, 너가 이 백성들에게 거짓을 믿게 한다. 하나님께서 너를 지면에서 제하시리니 너가 하나님 앞에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그리고 하냐나는 그 말씀대로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냐는 사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인 것처럼 꾸며 거짓을 말했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벌로 죽게 된 것이죠.
자. 그런데 우리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왜 하나냐는 그러한 잘못을 행했을까요? 물론 그 마음 안에 큰 욕심이 있었을거에요. 여기서 이 예레미야와 싸워 이겨서 명성을 얻어야겠다.
하지만 한번 하나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구요. 아까 우리가 예레미야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만약에 우리나라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매우 싫었을 것이라고 했었죠?
맞아요.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사실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런데다가 자꾸 그런 이상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고 다니면 또 어떻게 돼요?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것 아니에요. 그러면 나라에 결코 좋은 일이 아니겠죠.
하나냐는 아마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생각도 있었을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선택하셨는데, 결코 그냥 이렇게 우리 나라를 이방 나라에 넘겨주실리 없다. 분명 우리나라는 다시 일어날거야!’라는 생각이죠.
그래요. 아마 여러분들도 하나냐의 이러한 생각에는 꽤나 공감이 될거에요.
분명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까지 계속 승승장구 하면서 살아왔고,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를 이겨내왔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다윗 왕에게 분명 나라를 지켜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죠.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은 절대로 예레미야 말처럼 그러실 분이 아니야. 저건 예레미야가 이상한거야. 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땠나요? 하나냐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었죠. 하나님의 뜻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그 말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백성들도 포로로 끌려가게 되죠.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하나님이 마냥 착한 분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는 모습들을 보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행했던 모든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저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맘대로 생각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셔야 해! 라는 마음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만큼 큰 죄악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운영하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동을 제어할 수가 있겠어요.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요즘 AI 많이들 사용하죠?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과제도 물어보고 할텐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어떤 과제를 하려고 AI에게 물어봤다고 해봅시다.
뭔가 새로운 레시피가 없을까? 막 이런걸 물어본거에요. 그런데 AI가 이렇게 대답하는거죠. 요리사를 한다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야지 왜 이런걸 나한테 물어보시죠? 알아서 생각하세요! 라고 답이 오면 여러분들은 어떠시겠어요? 완전 어이가 없겠죠.
마찬가지라는거에요. 하나님의 뜻대로 지음받은 우리가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대로 하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오히려 하나님을 꾸짖으려는 태도. 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행동이냐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행동을 오늘 말씀의 하나냐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평소의 삶에서 너무나도 많이 행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뇨 전 그런적 없는데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마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분명 한번쯤 생각해보았을거에요.
‘아니 하나님은 왜 이걸 이렇게 안해주시지?’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했는데, 왜 이런 일들이 생기지?’ 이런 질문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질문들을 한번쯤은 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이 싫고 미워서 이런 질문만을 던지는 것은 아니겠죠. 정말로 궁금하고 이해가 안되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커져나간다면, 어쩌면 우리는 하나냐처럼 우리 뜻대로 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질문을 던질수조차 없습니다.
로마서 9:19–23 NKRV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에 그저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거에요.
뭐 말씀에 그렇다고 하니까 알겠어요. 근데, 그렇게 끝나면 뭔가 아쉽지 않나요? 너무 강압적인 것 같이 보이잖아요.
그러면 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봅시다.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죠.
얼마 전에도 차가 사람들을 덮쳐서 인명사고가 일어나기도 했고, 해외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참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은 말씀대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실 그렇게 선하지 않으셨던 분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 오늘의 말씀을 먼저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말씀, 그리고 또 다른 예언서인 이사야 말씀을 잘 보면, 분명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서 모든 말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멸망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 나라를 회복시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원하시고 다시금 나라를 일으키도록 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으시다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포로에서 풀려나 귀환했구요, 성전과 성벽까지도 재건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죠. 어떤 나라일까요? 지금 열심히 전쟁하고 있는 이스라엘나라일까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신 나라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계획 안의 나라였죠.
결국 하나님의 크신 뜻은 뭐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먼저 보여주시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그의 나라로 부르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크신 뜻이었다는 거에요.
당장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선한 계획이 아닌 것 같이 보이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에는 어때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위한 과정이었을 뿐인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전 세계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중에는 하나님이 이러시면 안되지! 싶은 일들도 벌어져요.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그 모든 일들을 과정으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마치 세월호 사건을 통해 안전불감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훈련병 사망 사건을 통해 군대 내에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등의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는 거에요. 무얼 가지고? 바로 굳센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분명 이 일들은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 일들까지도 하나님이 분명 선하시게 사용하실 것이다! 라는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명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신다! 라는 것이죠. 틀린 게 없어 보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명제의 올바른 답은 바로 하나님이 선한 일을 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선한 것이라는 답입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모든 일의 선과 악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판단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알려주신 바, 말씀에 따라서 그것을 추측할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죄를 갖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죠? 아담과 하와가 한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었죠.
여러분 그 열매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의 죄는 그저 열매 하나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선과 악이라는 하나님께 주어진 큰 주권을 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어떻게됐죠? 바로 부끄러움을 느꼈죠.
사실 뱀의 말대로 이루어졌어요. 눈이 밝아진 것이죠. 다만 아담과 하와는 어디에 눈이 밝아진 것일까요? 죄에 눈이 밝아져버린 것이죠.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일에만 눈이 떠져있었다면, 선악과를 먹어 그 주권을 탐하려 하니, 죄에 눈을 뜨고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지고, 결과적으로 죄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게 된 것이죠.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삶을 전하는 것일 뿐입니다.
선과 악을 판단하고, 그 판단대로 결과를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 오늘 모인 모든 조리고 친구들, 이제 한학기를 마무리해가는 시기에 있는데, 다들 어떠셨나요? 이번학기 만족스러우셨나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지금까지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끄시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삶을 이후로도 이끄셔서 결국에는 그의 선하신 뜻대로 여러분들을 이끄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기쁨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조리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내 삶은 주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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