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어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3 views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형통한 삶"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여기서 '형통'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행운을 의미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며 선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셉이 겪은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변치 않고 하나님께 충실한 모습을 통해 진정한 형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우리도 시험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함으로써 참된 형통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Notes
Transcript
핵심주제 :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형통한 삶"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여기서 '형통'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행운을 의미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며 선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셉이 겪은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변치 않고 하나님께 충실한 모습을 통해 진정한 형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우리도 시험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함으로써 참된 형통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주석작업
2절 ‘형통한’자가 되어
2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 삶에 함께 하셔서 형통한 사람이 되는 것을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형통한 자라고 이야기한 요셉의 삶을 살펴볼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요셉은 아버지 요셉에게 사랑받은 사람이었다. 12형제 중에서 가장 아버지에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요셉에게 성경은 형통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차라흐’라는 단어는 창세기에서 6번 밖에 사용하지 않을 만큼 희귀한 단어인데 그 중에서 절반인 세 번이 39장에 쓰인다.
만약에 우리가 요셉과 같은 상황이라면 계속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받으며 무탈하게 사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거나 팔아넘기게 하시는 것을 막아주시고, 보디발의 아내의 누명도 벗겨주시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허용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요셉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시는 일도 허용하셨고, 그가 형제들의 손에 잡혀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는 일도 허용하셨다.
얼마나 기구한 인생인가? 부잣집 도련님에서 한순간에 노예로 전락해버린 청년의 삶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일어난 슬픈 일들을 모두 막거나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가운데에서 그와 함께 울고 웃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가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그의 손을 통하여 그와 그가 속한 대상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가 어떻게 형통한 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형통한 삶이란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형통한 삶이란 무엇인가?
형통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시편 1편을 먼저 함께 살펴보자.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의 말씀이 마치 요셉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 본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형통하리로다로 이어진다. 곧 복있는 사람이 형통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먼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악인들의 꾀는 무엇입니까?
37장에서 “무엇이 유익할까?”를 따져 물으며 동생을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채색옷에 가짜피를 묻혀 거짓말로 위장하는 형제들의 꾀가 악인들의 꾀 아니겠습니까? 자기의 유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행동이 악인들의 꾀일 것입니다. 요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38장에서 며느리는 수절하라고 처갓집에 보내놓고 자신은 몸을 파는 여자와 잠자리를 한 유다와 같습니다. 그는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같이 건전하지 못한 친구와 가까이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며느리와 동침하여 자녀를 낳게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는 39장에 나온 여주인과 같습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용모가 빼어난 요셉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줄 알았겠지만 그녀의 오만함이 양심의 가책을 덮어버렸습니다. 요셉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인이 신뢰하는 종이었고, 힘과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충분히 오만할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본분을 지킬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형통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함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요셉이 친위대장의 집에서 가정총무가 되어 모든 살림을 맡게되는 최고의 위치에 간 것이나 감옥에서 간수장의 신임을 얻어 제반 사무를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둘째로 중요한 형통함은 요셉이 죄를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들을 원망함으로 증오하거나 복수심에 불타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로써 욕을 하거나 저주를 퍼풋거나 험담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주인의 유혹에도 끝내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통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계속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요 가장 큰 형통입니다. 어떻게 나무가 가뭄에도 철을 따라 열매를 맺거나 잎사귀가 마르지 않겠습니까? 비가 오지 않아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계속 양분을 얻기 때문에 시들지 않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형통한 자가 되었는가?
37장에서 요셉을 보면 정말 철없고 얄밉고 자기중심적이고 한마디로 정이 안가는 스타일인데 어떻게 39장에서는 주인의 신임을 얻어서 젊은 나이에 이 큰집의 총책임자가 되었을까요?
이것은 마치 삼호조선소에 큰 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는데 그가 부사장직을 맡게 된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을까요? 단순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인생이 이렇게 바뀔까요?
힌트는 요셉의 말에 있습니다. 요셉의 말이 바뀌었어요.
37:2 ‘그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나 4절에 사람들이 그와 대화하기를 싫어해요.
37:5 ‘그는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 넘쳐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리고 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그릇이 작아서 머가 조금만 차도 입으로 튀어나와버려요. 그것을 담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39장에서 요셉의 말은 어떻습니까? 정말 절제하고 꼭 필요한 말을 합니다.
9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것이 39장에서 유일한 요셉의 말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으로 충만하니까 상대를 욕하거나 저주하거나 협박하는 말이 아니라 그리고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구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행동은 어떨까요?
39:5 요셉이 맡은 일에는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을 대충 대충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이 아닙니다. 아마도 요셉은 힘들고 고된 일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매우 하찮아 보이는 일부터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를 보고 있었습니다.(3절에 2번 ‘보며, 보았더라’)
처음에는 외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워 뽑았는데 볼수록 사람이 진국인 것입니다. 다른 노예들은 요셉처럼 일을 안합니다. 그저 하루 대충 때워보려고 하고, 말도 안 배우고, 주인이 없을 때 모여서 주인의 험담을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미루고, 딱 맡겨진 일정도만 하지 더 이상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은 희망이 없어야 하는데 희망이 있어 보이고, 대충 살아도 되는데 너무 열심히 살고, 히브리 인인데 애굽 말도 금새 배우고, 주인이 없을 때에도 주인에게 충성하고, 힘들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가 나서서 하고, 맡겨진 일보다 더 잘 해내려고 늘 노력합니다.
왜 요셉은 저렇게 특별한가 보았더니 주인이 요셉의 기도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요셉이 예배하는 모습을 본 것이에요. 그가 섬기는 신이 그와 함께 함으로 인하여 그가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겼습니다. 주인의 예상처럼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니 만사가 형통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예배자의 삶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교회를 오라고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상대 머릿 속에 주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 분이라면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자의 삶이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형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까? 요셉의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므로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근본, 마음이 바뀌어야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잖아요.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마음의 중심이 변하게 되었을까요?
답이 39:1에 있습니다.
그가 형제들의 손에 있을 때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끌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거나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라가는 일이면 너무 좋겠지만 내려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내리막을 경험할 때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셉의 삶에 이런 시련과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마다 내리막의 경험이 다릅니다. 요셉은 형제에게 떠밀려 구덩이로 내려갔습니다. 이스마엘 상인의 손에 이끌려 애굽으로 내려갔어요. 안주인의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감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충분히 삶을 비관할 수 있고 안 좋은 생각으로 가득찰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도대체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무엇을 했을까요?
노예가 손발이 다 묶인채로 끌려가면서 할 게 무엇일까요? 생각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왜 그랬을까? 처음에는 화도 나고 원망도 했지만 그래도 왜 그랬을까? 왜 한사람도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떠오릅니다. 자기가 형들에게 했던 말 그리고 행동....그리고 후회와 미안함과 형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할 때에 자기의 모델이 되어주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그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버지가 환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장애를 갖게 되셨을 때 어떻게 하셨나?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제단을 쌓고 전제를 붓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배에 자기 가진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방 신상을 다 버리고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운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성숙해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예배를 배우고, 삶에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지만 그들이 인생의 내리막을 경험할 때 무엇을 떠올리며 의지하겠어요?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의 자녀들은 친구들을 의지하죠, 유튜브를 의지하죠, 인스타그램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가정의 자녀들은요 부모님을 의지합니다. 우리 아빠는 어떻게 했을까? 우리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그러므로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형통한 삶은 하나님께 맡기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키워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요셉은 아버지의 손에 있을 때보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 때에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자녀를 맡기면 하나님이 형통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요셉과 같이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합니다. 자기가 정말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를 변론하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팔려갔을 때에도, 여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았더니 자기도 모르게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요셉과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이 처방해주신 약을 아침과 저녁으로 드세요. 구약과 신약입니다. 3일, 5일 먹으면 거의 모든 마음의 질병이 치유됩니다. 아주 중병이라서 수술이 필요하다면 기도하세요. 성령께서 말씀의 검으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마음과 생각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