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꿈을 해석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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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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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주제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의미와 뜻이 달라진다. 점쟁이나 역술인, 무당 등을 찾지 말고 하나님께 해석을 의지하라.

본문에서 핵심 내용 추출

1 그후에
요셉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는 시점에 일어난 일이다. 요셉의 마음이 어땠을까?
우리 인생에 ‘내리막길’이 있다. ‘그후에’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경험한 이후를 이야기한다. 아무도 요셉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요셉의 말을 믿어주지도 않는다.
안주인은 하루가 멀다하고 요셉에 대한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요셉을 파렴치한으로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나쁜 종으로 소문을 내고 다녔을 것이다.
요셉은 침묵했다.
간수장은 요셉을 환영했다. 왜냐하면 친위대장의 집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요셉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도 요셉을 잘 알고 지냈을 것이다.
간수장은 보디발과 다르게 요셉을 지켜보는 시간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버리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요셉은 엉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그것을 포기하거나 나몰라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내팽게 치지 않고 성실하게 임한 후에 바로 40장의 사건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여기까지 일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요셉이 성실하지 못했다면 이후에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바로가...노하여
그 때에 왕의 궁전에서 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식사를 하던 애굽의 왕이 독살을 당할 뻔 한 사건이 생긴듯 하다. 고대 왕들은 언제나 살해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언제나 주변에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두는 신하인 친위대장, 술맡은 관원장, 떡맡은 관원장은 왕이 제일 신뢰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가장 큰 권력자였다. 그런데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배신은 당사자를 충격에 빠드리는 법이다. 왕은 자신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왕은 보디발에게 두 사람을 맡겼다.
이제 둘중에 한명은 배신자이고 한명은 충실한 자기 사람인데 이 사람을 분별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자기 사람이 옥에서 죽게 될 수도 있고,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람을 살려두는 실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은 이제 보디발 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 이 사건에 전말을 조사하게 하고 그의 집에 있는 옥에 관원장을 가두도록 지시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과 같았다.
이것이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요셉을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는데
요셉이 만날 수 없는 고위급 관계자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요셉은 간통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기때문에 바로 사형을 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유다도 며느리의 간통 사실을 알았을 때 곧장 화형에 처하라고 했지 않는가?
요셉을 즉시 처형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에 옥에 갇히는 벌을 받게 되었지만 그 옥은 일반죄수들을 가두는 옥과 다른 시설이 나쁘지 않은? 옥이었고, 또 그곳에서 평소에는 만나볼 수 조차 없는 고위급 장관들을 둘이나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애굽의 총리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빌드업이라는 사실을 그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계획하거나 일을 이루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납작 업드려 순종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4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요셉이 친위대장의 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그 주인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100% 신뢰할 수 없기에 행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요셉이 그럴 행동을 할 인물이 아니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매우 중요한 죄수인 관원장들의 수종을 요셉에게 들게 하였다.
요셉이 만약 감옥에 갇히는 시점에 난리를 피우거나 미쳐버렸거나 간수장이 그에게 일을 맡겼을 때 엉망으로 처리했다면 친위대장은 요셉에게 장관들의 수종을 들게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둘 중에 한명은 복직이 될 사람인데 왕의 최측근으로 이곳에서 대우하는 것이 친위대장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잘 섬겼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멘탈의 문제인데 아무리 머리로 잘 섬기려고 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잘 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요셉은 언제부턴가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마음과 멘탈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총리’가 되기 위한 준비의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된다.
8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은 두 관원장을 잘 섬겼다. 요셉이 그들에게 여러 날동안에 얼마나 신뢰를 쌓았는지 어느 날 그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울 때에 요셉이 무슨 일이 있으신지 물었더니 그들이 요셉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해주었다.
장관이 노예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할 때에는 그 사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거나 또는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해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요셉과 함께하는 동안에 그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충분히 그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물었을 때 그들은 요셉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해석되지 않을 때가 많다.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이 계속 꿈을 주셔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지나버린 사람들이 많다.
이 관원장들도 하나님이 꿈을 주셨지만 요셉이 그들의 얼굴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요셉에게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 해석을 듣지 못하고 그 꿈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모든 것이 우연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얼마나 치밀하게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섭리인지 해석이 되어 갈수록 성경은 정말 놀라운 책이고,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이 꿈으로 인하여 근심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요셉의 반응을 주목하라.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것이 전도의 포인트이다. 전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행동이다.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전도의 방법이다.
그리고 자신있게 그 꿈을 자기에게 말해보라고 했다.
이 말은 마치 요셉이 하나님인가? 오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해석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기 때문이다.
해석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의미와 뜻이 달라진다.
평화광장에 길가에 봉고차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 타로나 사주를 봐주는 차들이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에게 말해봐 내가 해석해줄께”
좋은 해석은 정확한 해석이다. 명확하게 해석할수록 좋은 해석이다.
타로카드를 뽑았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거기에 담겨 있다고 보고
그 카드를 해석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을 해석한다.
내가 태어난 년, 월, 일, 시가 내 운명을 담고 있다고 보고
그 년월일시를 해석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 사주팔자이다.
‘사주팔자’란 네 개의 기둥과 여덟개의 글자라는 뜻이다. 년월일시라는 네 개의 기둥에 운명이 담겨있다고 믿는 것이다.
무당들은 신들을 통하여 신이 그 사람에 대해서 보이는 사인을 해석함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해석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황보다 중요한 해석을 맡길 때 누구를 찾아갈 것인가?
점쟁이인가 역술인인가 무당들인가? 아니면 데이터에게 맡길 것인가?
가짜들은 여기서 할 술 더 떠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떡맡은 관원장에게 화를 피하고 싶다면 부적을 하거나, 굿을 하거나, 심지어 기도를 하라고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뒤집는 기도는 무속신앙의 치성을 드리는 행위와 같다.
‘치성’이란 절에서 불공을 드리거나 산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신에게 제물을 드리고 비는 행위이다.
요셉은 그런 점쟁이나 무당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형들이 불렀던 별명과 같이 ‘꿈꾸는 자’였다. 어려서부터 꿈을 꾸던 요셉은 그 꿈이 한번에 그쳤던 것이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리하게 해석하지도 않았고, 안좋은 내용이었지만 떡맡은 관원장에게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사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높은 사람에게 직언을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관원장이라면 지금의 장관과 같은 직급인데 그보다 훨씬 낮은 지방의 시장에게도 얼굴을 마주보고 잘못을 언급하거나 심지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직언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목회자도 사실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요셉이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떡맡은 관원장에게 확실하게 직언하는 모습은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반증이다.
22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그를 잊었더라
요셉의 해석과 같이 상황이 이루어졌다.
용하다고 요셉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
요셉이 이야기 한 것처럼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기억해야할 것은 관원장들이 꿈을 꾼 것과 그것을 통해서 요셉이 기가 막히게 꿈을 해석한 것이 아니다.
타로는 카드를 매개로 역술인은 사주를 매개로 무당은 신을 매개로하여 그것을 해석하려 하지만 결국에 용하다는 사람을 만나도 해석대로 되어도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해석하기 위해서 엉뚱한 사람이 장소를 찾아다니지 말라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공로나 업적이 잊혀진다고 아쉬워하지도 말라.
요셉과 같은 사람의 업적도 다 잊어버리지 않는가? 사람은 모두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모두 다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도 그 인생의 해석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라.
일을 계획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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