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2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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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를 위하라

오늘도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또한 캠프를 놓고 기도하기 위해 모인 모든 분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준비하는 손길들을 통해, 기도하는 마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또한 캠프 가운데 크신 은혜로 부어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나누고 있는 마태복음 말씀에 맞추어서 본문을 가져왔습니다. 오늘은 7과와 8과이죠? 다들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본문인 18장 1절-14절 말씀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그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는 바로 가장 작은 자 입니다. 말씀에서 자주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본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요,
이제 캠프를 한주 남겨놓은 우리에게 이 말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정말 눈앞에 우리의 캠프가 다가온 것이잖아요? 어쩌면 우리 마음에 조급함, 걱정, 이런 마음들 때문에 혹여나 우리 안에 함께 나아가야 할 한명의 영혼들을 나도 모르게 놓칠 수도 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캠프는 잘하기 위한 캠프가 아닙니다. 모든 공동체가 은혜를 누리기 위한 자리가 바로 우리의 캠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명의 영혼이라도 더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역할 하에서, 우리 준비팀부터 먼저 그 공동체성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구요. 어쩌면, 우리도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서로에게 조금씩 상처를 주고,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내어놓는 모습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시겠죠. 그래서 이시간 함께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나누면서 어떻게 우리 가운데 공동체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첫 구절인 1절에서는 이 모든 것의 시발점, 제자들의 질문이 나타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런 질문이었는데요, 이 질문은 어쩌면 막연한 궁금증일 수도 있겟지만요, 거의 9할은 의도성이 있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간의 급을 나누고 순서를 정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도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정말 로마 제국과 같은 세상의 국가일 것이고, 주님께서 그 강한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을, 다른 이방 민족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날이 오게 되면, 자신이 예수님 옆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제자들 사이에서는 지속적으로 큰 자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졌고, 말씀에서도 그러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말씀에서는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리 청탁이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자들의 무지에 의한 천국에 대한 잘못된 오해였죠.
오늘의 말씀에서도 제자들은 같은 선상에서 천국에서 큰 자를 물어봅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큰 자가 될지를 알고자 했던 것이죠.
그때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그 말씀 3절과 4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8:3–4 NKRV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곧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작은 자의 예시로 어린 아이들을 들으십니다.
당시 어린아이들은 어떤 이미지였을까요? 요즘에야 어린아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하면서 교회에서도 다음세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열심히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아이는 어땠을까요? 한명의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 당시 어린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힘도 없고, 생각도 부족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자면, 한 명의 생명체로서 기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당시의 여성과 같이 인원수에조차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 중간중간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제자들이나 다른 유대인들을 살펴보게 되면, 지금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 포착이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하니 제자들이 극렬히 이를 막고 혼내는 모습들도 등장합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에는 좀 심하지 않나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당대 어린이를 향한 기본적인 인식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완벽하게 그 이미지를 변화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작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런 작은 이를 나를 영접함 같이 영접해야 한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러한 작은 자를 영접하는 대표적인 모습 중에 하나로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6절부터 9절까지 그 내용이 나타나는데요, 예수님은 아주 강력하게 실족하지 않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혹시나 누군가를 실족하게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목에 달려서 빠지는 것이 낫고, 혹여나 손이나 발이 그렇게 한다면 찍어내버리고 눈이 그렇게 한다면 빼어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이 문자 그대로 그렇게 하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주님은 맷돌을 메고 빠지고, 손발을 자르고 눈을 빼는 것만큼 남을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왜냐,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것이 결국에는 모든 공동체를 수렁으로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주님은 우리 모든 이들을 공동체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이 상한 자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한 부분 같을지라도 주님은 그조차도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 하나의 몸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겠죠.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세포들이 있죠. 어쩌면 어떤 세포와 장기들은 그 전체에 비하면 보잘것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부분 하나가 상하고 없어지게 된다면, 우리 삶 자체가 유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공동체를 모두 부르시지만, 그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소중하게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10절에서도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신 것이죠. 작은 자들 하나하나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신경쓰는 것처럼 모두가 그분께는 귀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한가지 예를 들어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다고 한들,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리면 그냥 됐다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흔아홉을 잠시 신경쓰지 못할지라도 그 한 양을 위해 열심히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게 된다면 그 기쁨이 다른 아흔아홉이 존재하는 기쁨보다 더욱 크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바로 이 목자의 모습이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께는 어떤 부족한 한명이라고 해서 뛰어난 다른 한명보다 그 한명이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는 모두가 소중한 영혼이고 그의 백성이고 그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의 작은 자, 세상에서는 관심받지 못하는, 수에도 들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자를 영접하고 그를 주님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를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 준비팀에게 남은 시간은 한주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분주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구요, 그것은 어쩌면, 열심히 앞으로 달려나가다가 중요한 것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이 맞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두고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쩔수 없는 희생과 같은 단어로 이를 포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빠르게 들어가지 못할지언정 주님은 모두가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왜요? 하나님께는 우리가 각자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주도 신고있는 신발이 먼저 들어갔다고 해서 먼저 간 것으로 해주지는 않습니다. 온 몸이 다 들어와야지 골인으로 인정해주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나아가 그의 뜻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온 몸, 온 지체가 함께 해야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의 뜻을 이루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 캠프가 바로 그러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때까지 그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일단 불편하더라도 감수해! 라는 식의 모습보다는, 정말 모두가 하나되어 한마음으로 캠프를 준비하는 모습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캠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준비의 순간 뿐만은 아니겠죠. 캠프가 시작하고 끝나기까지의 2박3일의 시간이야말로 더욱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캠프가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마음이 더 분주해질지도 모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이고, 기본적으로 인원도 많고, 그러다보니 조도 많고, 그러면서 준비해야할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여유는 사라지고 분주함과 긴장으로 인해 우리의 시선이 공동체보다는 일정과 목표에 맞춰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일정을 챙기고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한 마음으로 캠프를 행한다면,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작은자의 마음, 그들을 영접하는 마음까지 나아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우리 준비팀분들께서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작은 자를 바라보고, 기억하고, 영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학교 사람, 선배 후배, 그리고 친한 사람들, 오랜만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이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캠프,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작은 자들도 함께합니다. 캠프에 완전히 처음 오는데, 하디데오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정말 지인과 가족을 통해 오게된 이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보니 가족분들도 계시구요, 멀리 상산고, 서귀포 고등학교에서도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연결해주신 분들께서 더욱 신경을 써주시겠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그냥 두게 된다면, 그들에게 우리 공동체는 다가서기 어려운 곳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하늘고 교사들에게 설교하면서 비유를 든 것이 있는데요,
우리 하디데오 공동체가 워낙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공동체이다보니 너무나도 좋지만, 한가지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겉바속촉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죠.
음식은 겉바속촉이면 너무 좋지만, 공동체가 그렇다면, 그 누구도 우리 안에 있는 촉촉함을 느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는 속이 정말 촉촉하지만, 겉으로도 촉촉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촉촉한 초코칩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말씀을 마무리하면서요, 마지막 14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8:14 NKRV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자는 우리 준비팀 공동체에 있을 수도 있구요, 또한 캠프에 참여하는 인원들 중에 있을수도 있구요, 혹은 나 자신이 바로 이런 작은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말 멋지게 완벽하게 실수없이 모든것이 진행되는 캠프가 아니라, 어느 하나의 어린양도 잃어버리지 않는 캠프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준비팀부터 겉촉속촉한 한 몸이 되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표까지 나아가는 길은요, 주님께서 분명히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그러한 믿음 있을 테니깐요, 더욱더 하나되어 촉촉한 공동체로 나아가시는 우리 준비팀, 그리고 모든 캠프가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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