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구력을 키워라!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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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수련회
2024 여름수련회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수련회의 주제로 ‘믿음의 지구력을 키워라!’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고 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은 끝까지 믿음의 완주를 포기하지 말고 점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지구력이 점점 더 강해져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유튜브 중에서 여행 유튜브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빠니보틀, 곽튜브, 체코제’ 등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유튜버들을 보면서 간접 여행을 통해 방구석에서 대리만족할 수 있어서 요즘들어 해외여행에 대한 간절함이 딱히 없다. 이 유튜버들을 보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고, 갑작스러운 상황도 영상에 담겨 있어서 같이 마치 같이 여행하는 것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사실 이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여행도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체력이다. 아무리 열정이 많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없거나 건강하지 않으면 여행에 있어서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해서 여행 유튜버를 하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보지 않은 곳, 특히 유명하지 않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서 영상을 제작한다. 이번 사도행전을 쭉 읽어가면서 이런 마음으로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길 소망한다. 마치 유튜브처럼 성경이라는 콘텐츠로 함께 이렇게 유튜브 이름을 제작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바울과 바나바, 튀르키예 도시인 루스드라에서 생긴 일” 함께 신나는 성령과 동행하는 행복한 전 여행 즐기길 소망한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이라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인해서 그 도시로부터 쫒겨나게 된다. 그러면서 루스드라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 도착을 해보니 어떤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이 장면은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사람을 고쳐준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도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준다. 이 두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걷지 못하던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들은 것이다. 바울이 그 사람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딱 한 마디한다. “당신 발로 똑바로 일어나 서시오”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때 모여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깜짝놀란 것이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강력하게 이 지역의 가장 큰 종교였다. 그래서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날개달린 신발을 신은 신인 헤르메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 그러자 두 사도가 이들을 말린다. 자신들은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라며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말한다.
먼저 두 사도는 제사가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인 제우스와 헤르메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다고 설교한다. 그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말한다. 실제 개발도상국에 선교할 때, 또 그곳에 그 나라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없으면 선교사님들이 그 땅의 최고의 신이 무엇인지 찾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으로 표기했는데, 그 땅의 있는 신들의 특성을 모르면 하위의 신으로 생각하여 굳이 믿어야 하는지 의문은 갖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이 숭배하던 최고의 신이 진짜 신이 아니라 이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전파한다. 대표적으로 크리스마스이다. 로마황제를 숭배하던 로마시대에 태양신을 기념하는 12월 25일이 진정한 우리의 왕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이렇게 거짓된 가짜신을 섬기는 일을 멈추고 그러한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구약에서 말하던 회개의 개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과거에는 우상 숭배하는 것을 내버려 두셨지만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나타내셨다. 다양한 방식 중에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고, 때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는 등 모두에게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먹을 것을 풍성히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신 분이기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연현상이라 말하겠지만, 이미 자연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은 자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설교한다. 그렇게 두 사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려는 것을 간신히 말린다.
이전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고 이방인들에게 설교한 후에는 5,00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치고 나서 설교를 했을 때는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호응이나 큰 회개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돌로 바울을 친다. 그렇게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버린다. 그러나 바울은 제자들이 둘러 서 있을 때 기적적으로 일어나 성으로 들어간다. 나는 뭔가 이 장면을 드라마처럼 만든다면 아주 극적인 장면이 연출 될 것 같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처럼 (BGM) You’re my everything~ 노래가 나오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쓰러진 바울과 함께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나바가 오열을 하며 바울을 끌어 않는 것이 예고편으로 나온다면 이야기가 엔딩 장면과 함께 마지막회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죽지 않았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을 통해 우리는 3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4장 9절에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을 듣는 것인가? 로마서 10장 17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이 분명하게 루스드라에서 전했던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은 매일 믿음이 충만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 살다가보면 인생에 큰 결정이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있어 돌파구가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돌파구를 넘어서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때 나의 마음에 누구의 말을 가까이 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결정에 있어서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부정적인 말, 우울한 말을 계속해서 듣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사고와 우울함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이 매우 무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우울의 감정을 전이시킬 수 있기에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감정을 남기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짐을 기억하기 원한다.
예수님이 여리고 쪽으로 가까이 가셨을 때 맹인을 만난다. 그때의 맹인도 예수님이 지나가심을 알고 곧바로 소리치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다. 이 맹인도 어떻게 믿음이 생겼겠는가? 주변 사람들의 소문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서 듣다보니 또 생각해보니 “어느 누구도 나를 고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면 가능하다”라는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자신이 오랫동안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가져와서 고백하는 것이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분명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왜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보게했다”가 아니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교자인 나도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려고 애쓰고 있고, 여러분 또한 복음을 전해야지 생각하지 못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내 안에 최고라고 여기는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고 따른다. 신화에서 가장 으뜸되는 신은 제우스 신이다. 그렇기에 세상에 없고 가짜인 신화를 따르고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모습은 “헛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쁜 말로 “뻘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의 일화만 봐도 이게 과연 최고의 신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인간 말종인지 신화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내 헤라를 두고 바람을 피워서 많은 자녀를 가지고, 강간을 일삼으며 인간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을만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이 최고의 신이라면 그 신화를 따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최고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가치관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육체의 즐거움을 따라사는 것이 최고로 여긴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점점 자신이 즐기고 싶은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지는 것이 최고로 여기는 시대이다. 결국 나의 즐거움, 나를 위한 삶이 오늘 바울이 말하는 “헛된 일”, “뻘짓”이라는 것이다. 이 문화도 교회 안에 은근슬쩍 들어와있다는 것을 아는가? 내가 듣고 싶은 설교를 취사선택하듯이 들으려고 하고, 하고 싶은 섬김만 하고, 내 취향대로 내 생각이 맞다고 느끼는대로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찬양할 때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타일의 찬양이 아니라서 은혜가 안된다는 등의 생각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높임 받으시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밤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과 성경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 있다면 모조리 십자가 앞에 던져버리기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바울이 기적과 같이 믿음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멋지게 사람들 앞에서 설교했다.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오천명이 회개의 역사 결과를 기대했으나, 사람들은 반대로 자신들에게 돌을 던졌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했으면 열심히 한 만큼의 댓가를 바라거나 그 이상의 많은 보상을 바란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지면, 그 일에 대해서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감과 절망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회의감에 빠지지 않았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잠깐 기절하고 바로 일어나 다음 도시로 이동한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쿨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은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요즘 들어서 나는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해놓으셨고, 잘되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려고 하려던 찰나, 계속 출발이 지연되었고 가려고 했던 비행기가 날씨도 좋은데 승객들에게 내리라고 하더니 취소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비행기를 놓쳐서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이나 여행 일정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게 되었다. 왜 취소되었는지 알고 보니 비행기에 여권을 위조한 테러리스트가 있었고, 출발하기 전 그것을 알고 화물을 찾아보니 폭탄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면서 비행기가 안뜨길 잘됐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생각은 어쩌면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여러분이 한 영혼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섬겼지만 그들에게 뿌린 만큼 열매나 성장한 모습이 없어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노력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때는 아니지만, 반드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소망하며 바라보기 원한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고백하기 원한다. 그리하여서 내가 실패라고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의 과정이며 여기 있는 각 사람들을 통해 일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저와 여기 모인 여러분들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