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2 금요기도회: 잠언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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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살아갈 때마다 저희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저희에게 주신 복음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 동시에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의 모든 삶의 모습과 인격을 변화시킨 복음을 저희가 소중하게 여기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 걷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말씀과 기도로 마무리하기 위해 나아왔으니 이 자리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1:8-19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1:8–19 NKRV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어려움에 처한 나를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고, 세상 속에 나 혼자 외톨이와 같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기도를 통해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니 우리는 결코 세상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이러한 큰 복을 이 금요기도회에서도 우리가 누리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잠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훈계입니다. 어떤 것이 참된 지혜이며,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지를 훈계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오늘은 그 시작으로 첫 번째 훈계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첫 번째 훈계에서 어떤 지혜를 가르치는 지 함께 살펴보고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아버지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가르치는 훈계를 들을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아들은 실제적으로 부모가 있는 자녀들 뿐만 아니라 이 잠언을 읽는 모든 이들이 이 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모의 훈계를 “들으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들으라”라는 단어는 잘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쉐마”라는 단어입니다. 이 쉐마는 귀로 듣는 행위 그 이상을 뜻합니다. 바로 듣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쉐마입니다. 아들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듯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계속해서 말하는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보통은 훈계를 하거나 규칙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지키지 않을시에 내려질 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8절의 “훈계”라는 단어에도 순종하지 않을시에 내려질 징벌의 위협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지키지 않을시에 내려질 징벌보다는 자신이 가르치는 훈계를 지킬시에 받을 유익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9절입니다.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바로 자신이 가르칠 훈계를 지킨다면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 되며 목의 금 사슬이 되는 유익을 누릴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머리에 쓰는 관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특권 또는 대적에 대한 승리와 정당함을 보여주고, 힘과 생명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목의 금 사슬은 오늘날의 목걸이처럼 화려하게 꾸미는 것 뿐만 아니라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음을 상징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목의 금 사슬입니다. 다시 말해 9절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훈계에 순종할시 힘과 생명, 그리고 보호를 받게 되는 유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키지 않을 때 내려질 징벌보다는 지킬 때에 받게 될 유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맥락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을 때 내리실 심판과 저주에 대해서 말하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징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받게 될 유익에 더 포커스가 있습니다. 십계명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을시 삼 사대까지 저주를 내리겠다고 하셨지만, 그에 비해 순종했을 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시기 보다는 복을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이 잠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훈계를 지키지 않을 때 아들을 징벌하기 보다는 아들이 훈계를 듣고 순종할 때 받게 될 유익에 대해서 말합니다. 징벌에 대해서 말하면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자극하여 순종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키고 싶지 않은데 단지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 지키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순종하게 만드는 진정한 원동력은 순종했을 때 받게 될 유익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좋은 것임을 말해야 사람의 내면에 자발성이 생기고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진짜로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을 이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유익에 대해서 말한 아버지는 이제 본격적으로 훈계를 시작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훈계는 타인으로부터 착취하는 악인에게서 떠나라는 겁니다. 10절을 보시면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라고 악인들이 유혹하더라도 따르지 말 것을 훈계하면서, 11-14절에서 이 악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들을 유혹하는 이 악인들은 심지어 살인과 강도를 일삼으면서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자를 희생시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아들을 꾀어 자신들의 범행에 동참하도록 유혹합니다. 이러한 유혹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 무리에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저항할 것을 경고합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이 악인들과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무고한 자들에게서 살인과 폭행을 일삼으면서까지 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려고 합니다. 비단 재물에서 뿐만 아닙니다. 자신의 어떤 욕망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조주빈의 N번방 사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채우기 위해 죄 없는 여성들을 이용하는 극악 범죄가 바로 N번방 사태이지 않았습니까? 이것처럼 현대에도 여전히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집단 지성이라는 것이 있어 어떤 무리에 들어가면 자연스레 그 집단의 방향성이나 가치를 따라가게 됩니다. N번방 범죄에 참여한 모든 자들도 죄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취해 처음에는 안 그랬다가도 점점 이 집단에 빠져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집단이 주는 이러한 특징을 오늘 본문의 아버지는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에게 자신의 무리에 참여하도록 유혹하는 이 악인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들어가지도 말 것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이 악인들은 타인에게서 이득을 취할 때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11절을 보시면 무고한 자를 숨어 기다리다가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득에 희생될 자들에게 심지어 싸울 기회조차 주지 않는 아주 비겁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악인들을 두고 아버지는 15절에서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길이라는 것은 삶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악인들의 삶과 똑같이 살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1-9장은 두 가지 길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는 지혜롭고 선한 길이며, 또 하나는 어리석고 악한 길입니다. 부모는 아들에게 어리석고 악한 길을 멀리하라고 권면하지만, 악인들은 아들에게 그 어리석고 악한 길에 합류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처럼 아들을 유혹하려는 악인들의 무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아버지는 이 무리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서 아들에게 말해주기 시작합니다. 그 약점은 바로 이 악인들이 속임수를 사용하여 무고한 자들을 약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약탈당하는 것은 이 악인들이라는 겁니다.
16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악인들의 길은 자신들의 악한 목표를 향해 길을 달려가며, 폭력을 행하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길입니다. 이 길을 갈 때 부요하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아버지는 이 악인들의 길은 부요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정이 있는 길임을 설명하기 위해 새를 잡으려고 덫을 놓는 사냥꾼의 모습을 비유하여 사용합니다. 새를 잡기 위해서는 덫을 놔야 합니다. 그러나 덫이 덫이라고 대놓고 들어낸다면 결코 새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덫이 아닌 것처럼 위장해놔야 새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새도 명백하게 덫으로 보이는 위험한 곳에 날아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로 새가 명백하게 덫이라고 알 수 있는 곳에 덫을 놓는 것은 시간 낭비, 헛일이라고 말하면서 이 악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덫을 놓지만 그 덫은 오히려 악인들에게 닥칠 징벌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악한 자들이 자신들의 덫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18절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자신이 쳐놓은 덫에 자신이 걸려들게 되는 이 모습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악인들이 처할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악인들은 자신들이 당할 일을 위해 매복하고 기다리는 아주 미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악인들의 이러한 음모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줌에도결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범죄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의 결론으로 19절에서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아들이 이 악인들과 같이 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에는 여전히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자신들이 처놓은 덫에 자신들이 걸리게 되는 겁니다. 이들의 삶에 우리가 동참하고 따라가는 것은 지혜가 없는 미련한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계속 범죄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하여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죄에 대한 심판을 언젠가 반드시 내리실 겁니다. 다시 말해 악인들의 길의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인들이 걸어가는 길은 우리에게 너무나 달콤한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는 것보다 더 달콤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는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심지어 무고한 자에게 폭행과 살인을 일삼으면서까지 이익을 취하기까지 말입니다. 우리라고 이 악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도 이 악인들의 무리에 참여하게 될 때 악인들과 똑같은 모습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가 훈계하는 것처럼 이 무리에 참여하지 않고 이 무리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호기가 생겨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을 것과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에 걸려넘어지기 너무나도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죄와 싸워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죄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이 악인들의 무리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악인들의 무리에 동참하지 않게 될 때 누리게 될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악인들의 특징은 약자들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래 인간은 약자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내어줌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섬겨주며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사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삼위 안에서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사니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두가 이익을 누리며 사는 아주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께서 이 모습을 이 땅에서 너무나 잘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거나 약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타인을 위해 사셨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으며,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죄의 짐을 지고 있는 자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오늘 본문의 악인의 길을 결코 걷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참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타인을 약탈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 악인의 모습을 바꾸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까?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교회는 서로의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재산과 소유를 팔기까지 하여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모습, 바로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분에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그분이 창조하신 모습을 회복시켜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잠언에서 아버지가 경고하는 이 악인의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악인의 무리에게서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이 악인의 길을 걷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속한 모든 이들이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되어 모든 이들이 이익을 누리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의 영혼을 구원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가치와 인격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오늘 이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 타인을 위한 길을 걷는 우리 모든 새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잠언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악인들의 길에 동참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길이며 자신들이 처놓은 덫에 자신들이 걸리게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길은 타인을 위한 삶이 있는 길이며 모든 이들이 이익을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가 악인의 길을 멀리하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죄의 길은 너무나도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은 그보다도 훨씬 유익한 길입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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