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부르심 2024 0714 출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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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12 (NKRV)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인트로

할렐루야! 오늘 1, 2청 연합예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마음 귀함. 한빛교회 안에서 1청, 2청이 서로 다른 기관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한 가족이 되길 원함. 그러한 연합의 움직임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임.
Hebrews 10:25 NKRV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에 힘쓰는 우리를 하나님이 보고 계심. 이번 2청년부 수련회 주제가 어텐션.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청년,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만 고정하길 원함.
얼마 전, 롯데월드 갔음. 그런 곳의 꽃은 무엇일까? 퍼레이드. 저녁에 퍼레이드를 하는데, 참 재밌게 봤음. 이번엔 특히 더 재밌었음. 우리 아이들이 맨 앞에 앉아서 퍼레이드 연기자들이 지나갈 때 마다 손을 뻗고 하이파이브 하길 기다림. 우리 아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앞자리에 앉은 모든 아이들이 손을 뻗고 있음. 아이들만 뻗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이번에 갔을 때는,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여자애 무리들이 연기자들한테 하트 날리고 소리치고 막 오버함. 왜? 우리를 봐달라고. 봐주면 어떻게 함? 연기자들이 본인의 연기 범위 안에서 다가와서 하이파이브 해주고 하트 날려주고 함. 그리고 그러면 우리의 기분이 어떻게 됨? 기분이 좋음. 왜? 주목을 받았기 때문. 특별한 관계가 막 생기는 것 같음. 연예인들 콘서트에 갔을 때, 팬들과 소통하는 연예인들. 그 때, 눈 마주치거나 혹은 요즘에는 핸드폰을 연예인이 들고 셀카를 찍어주고, 왜 그것이 좋은가? 왜 그것이 기념이 되는가?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그를 주목하고, 그가 나를 주목하여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
주목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 보는 건데 그냥 보는게 아니라 주의하여 지켜본다는 것. 관심이 있게. 그리고 그 관심으로 관계가 맺어짐.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겠고, 또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관심있게,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이 세상에 나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주목하심은 이와 같다. 주목받는 인생은 행복하다. 관심받는 인생은 행복하다. 그 누가 뭐래도 내 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주목하심을 받는 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인물, 사건, 배경

인물

지금 모세는 아무것도 아님. 왕자였음 -> 살인자, 도망자 -> 무명의 양치기. 본인 양도 아님. 그 양의 주인은 자신의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님.

배경

미디안 광야에서 서쪽 광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음. 광야. 아무것도 없음. 돌. 황무지. 특별한 장소가 아님. 어떤 거룩한 표징이 나타날만한 장소가 아니었음. 호렙도 하나님이 계시의 장소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산이 된 것이지. 원래 있었던 그냥 깡 돌산. 아무것도 아닌 곳.

사건

아무것도 아닌 사람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보기에 기대할 것이 하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하심.
세상적인 눈으로 봤을 때, 그 모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 모세에게 화려한 궁정에서의 삶은 끝이 났다. 과거의 영광은 다시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됐다.
그 황무지 광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 남의 양이나 치면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But!
모세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지만,
- 하나님이 그를 민족의 구원자로 부르고 계심.
그가 서 있던 그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음.
-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 미는 전치사 from. 다바르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 광야이다.
바로 그 곳, 광야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주목하고 계신다.
출애굽기 3:4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주목하심은 우리를 부르심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발화 사건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 불은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다.
출애굽기 3:3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오해하지 말 것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음. 떨기나무가 타지 않음.(2절) 그 떨기나무를 감싸고 도는 불꽃, 그 자체의 형상으로 드러나신 것이 아님.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하게 떨기나무 속에서 나오고 있음. 어떠한 세속적 형태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심.
다시 모세의 인간적인 호기심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발전된다. 모세는 이 큰 광경, 생소한 광경,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모세가 오는 것을 “보고” 계신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키워드는 “본다”이다. 사람의 눈은 호기심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당신의 사명을 맡길 사람을 보고 계신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에게 떨기나무 불꽃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하나님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를 먼저 보고 계셨고, 그가 가까이 오자 부르셨다.
예화) 삭개오. 누가복음 19:3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보는 것과 주목하는 것은 다르다. 예수는 먼저 삭개오를 보고, 가까이 와서 그를 부르셨다. 누가복음 19:5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그 부르심은 삭개오를 변화시켰다. 그 만남은 변화를 부른다.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바꾼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복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예화) 청년. 친구 따라서 교회. 호기심. USB 준다고. 아마도 전도 축제. 호기심. 교회를 처음. 교회 친구들도 처음. 환영. 한번 두번 예배 나오더니, 부서활동을 참여하더니. 지금은 신학생이 되어 있음. 전도사가 됨.
그저 나를 주목해주신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진 것이 감사한데, 하나님은 당신의 사명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심. 그 부르심에 반응하려면 우리도 그를 주목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방법. 우리의 찬양이고, 기도이고, 예배의 순간들이 하나님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도 하나님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심이 사명으로 : 하나님이 함께 하심

그러나 때로는 이 부르심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이기에. 나 같은 사람이? 하지만 반드시 우리가 믿어야 할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모세는 두려웠다. 내가 누구이기에.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자기 자신을 잘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그런데 너무 자기 자신을 잘 알면,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는 그 가능성을 제한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목하심은 아무 것도 아닌 “무의미”한 존재인 나를, “유의미”한 존재로 바꾸신다. 그 유의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 안에서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 나 혼자 하게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출애굽기 3:12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출 3:7, 개역개정)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 이미 우리 앞서서 당신께서 친히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요 은혜가 되기를. 왜냐하면, 세상의 어떤 신이 나의 상황을 세밀하게 보고 듣고 알고 있다고 말하는가?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나 한 사람 밖에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실 때 하나님의 부르심이 발동이 됨. 어떠한 형태로든. 그 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더 이상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내 상황과 환경을 주목하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주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12: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바뀌길 원한다면, 하나님을 주목하여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주목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결단이 우리에게 있기를. 그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시선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단하겠습니다.
<결단찬양>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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